소설리스트

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65) (165/232)

165화

“아.”

저도 모르게 흘린 탄성이었다.

칼릭스 엘루이든은 뒤늦게나마 썩 부드럽게 웃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조금은 흥미로웠고, 꼭 그만큼 불쾌했다. 아니, 그보다는 가소롭다는 쪽이 적합하겠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걱정하지 마. 샤를리즈. 나는 쉽게 죽지 않거든.”

그러자 샤를리즈가 선뜻 수긍했다.

“그렇죠, 참.”

그러며 흘깃 바라보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더니 슬쩍 시선을 피하며 덧붙인다.

“검은밤의 기사들 실력은 대단하니까요. 물론 전하도 말입니다.”

이건 또 뭘까. 습관적으로 눈웃음지으며 칼릭스는 생각했다.

그러나 곧 빙그레 웃었다.

“요즘은 괜찮아?”

“뭐가 말입니까?”

전혀 모르겠다는 듯 샤를리즈가 눈을 깜빡였다. 그에 어쩐지 초조해져 칼릭스는 손끝을 매만졌다.

“각혈이라든가 코피라든가 그런 것들.”

“괜찮습니다.”

“그래…….”

시간은 많았다.

많지 않다면, 꼬리라도 잡아채 멈춰 세울 작정이었다.

* * *

맞다. 칼릭스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지.

한낱 악녀였던 나도 숨이 까딱까딱 넘어갈 듯하면서도 안 넘어갔는데, 주인공이 쉽게 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세상일은 모를 것이니 방심은 안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리안은 잘 지내려나?’

보잘것없는 글솜씨를 훌륭한 편지지로 상쇄시키고자 열심히 고르고 있던 때였다.

똑똑.

약간 낮은 위치에서 통통거리는 소리. 사샤의 노크였다.

고르고 고르던 편지지를 빠르고 신속하게 반듯이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샤를 님.”

상의를 아래로 쭉 늘리며 자꾸 끝단을 매만지는 자그마한 손을 한 번 확인하고는 다시 시선을 올려 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실은요. 사실은 제가.”

그리고 꼭 한 시간 뒤…….

퍼억―!

화창한 햇살이 비치는 방 안에서, 나는 망치를 휘둘렀다.

한때는 오르골이었던 잔해를 장갑 낀 손으로 칼릭스가 파헤쳤다.

‘성물인데 이래도 되나’라는 머뭇거림은 사샤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나는 생략했다.

‘신전의 것이라고 부수고 보기 전에 가격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도 생략한 지 오래다.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오물거리던 아이가 눈을 크게 떴다.

“저기……!”

다른 빛깔로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아주아주 조그마해서, 먼지라고 착각해 놓칠 수도 있는 크기였다.

그것을 확인한 칼릭스의 눈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 *

제가 한 말로 신전의 성물을 부수려고 들자 폴짝 뛰던 아이는 한 건 하고 뿌듯하게 웃었다.

그리고 지금은 성격처럼 얌전하게 잠을 자는 중이다.

보들보들한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주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칼릭스는 지금 대공저에 없다. 필리엄 백작 만나러 갔다.

[필리엄 백작가가 온전해야 해, 샤를리즈?]

칼릭스는 그렇게 물었고,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에 칼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리고는, 조금 기이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신전에서 정원에 심으라며 준 튜베롯이 꼭 저만큼이었던가?]

무언가를 누르듯 느릿느릿한 발음으로 한 물음에 나는 이번에는 곧장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나눴습니다.]

칼릭스는 “응.”하고는 “다녀올게.” 하며 웃었다.

“칼릭스는 홀수가 좋은가?”

열렬한 동화책 낭독의 후유증으로 지쳐 책상에 널브러져 있는데, 문득 톡톡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많이 부나 보다 하고 여전히 엎드려 있던 나는 돌연 벌떡 일어났다.

과연 발목에 쪽지가 묶인 새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어라.”

익숙하다면 익숙한 저 새는 아드리안의 새였다. 저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아드리안이 나한테 왜?’

서신을 확인한 뒤 나는 다시 어리둥절해졌다.

“어라…….”

세상에는 신기한 인간 군상이 참으로 많던 것이었다.

* * *

모친을 안전하게 모셨다고 확신한 아드리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서구의 발목에 쪽지를 묶는 것이었다.

“부탁한다.”

대답하듯 작게 운 새가 날아올랐다.

이틀 뒤, 돌아온 새에게 먹이를 주고 쪽지를 펼치며 아드리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샤를리즈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랬다.

저는 공녀님의 지척에 있다는 것만으로 쓸모있는 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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