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72) (172/232)

172화

칼릭스는 순순히 대답했다.

“생김새가 꼭 심장을 닮아서.”

‘그런가?’

이전 생에서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있다. 의뢰인 중 확실한 방식을 선호하는 부류가 있었던 탓이다.

‘모양이 좀 달랐던 것 같은데.’

음. 이 세계의 심장은 다르게 생겼을 수도 있겠다.

‘장기를 보고 놀라다니 연약한 면도 있구나.’

의사가 아닌 칼릭스가 그것을 보게 되기까지의 경위가 썩 연약하지 않았으리라는 건 지나가기로 하자.

‘그렇군’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자 칼릭스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그간의 상황을 풀어 설명해 주었다.

‘황제에게 미리 통보―황제의 입장에서는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을 테지만, 진실은 왜곡할 수 없는 법이다―해 검은밤이 그놈의 안위를 살피는 척 때를 노리고 있었는데, 암살자 무리가 리닉스 공작저에 쳐들어왔군.’

‘그래서 리닉스 공작이 저택에서 피습당하자 업적에 안달 난 황제가 공작이 죽을까 봐 신병의 인도를 선뜻 수락한 거였어.’

성실한 학생처럼 열심히 경청하며 의문점은 차곡차곡 머릿속에 기록해 두었다.

‘교황이 그 집단에 깊게 얽혔다는 건 이제 확실해졌고.’

“교황은 왜 부자연스럽게 움직인 걸까요? 우리가 의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진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의심하고 있으니 더 그랬을 거야.”

칼릭스는 갸름하게 웃었다.

“공개 재판에서 공녀가 흑마법을 파훼하는 모습을 보았을 테고, 리닉스는 알고 있는 것이 많지.”

그럼 어째서 저 이후로도 살려두었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간단했다. 아직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다.

그럼에도 지체 없이 버릴 정도라면…….

“아쉽게 생각하며 버릴 수 있을 만큼 수하가 많다거나. 아니면.”

신전 방향을 응시하고 있던 칼릭스가 문득 고개를 기울여 나를 응시했다.

“설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에 거의 다다른 모양이지.”

“아직 다다르지 못했는데 시간이 촉박한 탓에 발목을 잡힐 만한 변수를 제거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응. 그렇네.”

[신전과 결탁해 제국에 반기를 드는 행위.]

그곳의 신전은 리엔타 공작의 분노를 감당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제국 자체를 무너뜨릴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좁히며 의식 저편에서의 교황과 나누었던 짧은 대화를 떠올렸다.

* * *

가까스로 붙잡아서 그런지 여전히 샤를리즈의 몸속에 있지만, 어딘지 유리된 듯한 기분이었다.

“숭고한 결정입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이 칼릭스가 나를 찾으러 오기 전의 시간대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교황이 두 손을 모아 짐짓 경건하게 기도했다.

곧장 이어진 샤를리즈의 행동에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맞혔다!’

“하하.”

뺨에 묻은 침을 손등으로 닦으며, 교황은 퍽 부드럽게 웃었다.

“그대의 영혼은 영원한 안식을 얻을 겁니다.”

“그 안식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너나 얻지 그래.”

“그대의 숭고한 희생으로 재건된 평화 속에서, 그대의 부친이 이전과 다르지 않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지요.”

굳이 언급한 이유라면 달리 없겠다. 진부하지만 협박이다.

부친을 대신해 제 발로 걸어들어왔으니 리엔타 공작을 적절히 이용해 샤를리즈를 주무르면 되겠다고 생각하나 본데, 말까지 잘 듣기를 원한다면 아주 큰 착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샤를리즈의 폭주하는 주둥이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우습네. 네 꼴이 말이야.”

할 수 있는 것도 없겠다 진작에 포기하고 교황의 표정 변화나 면밀히 관찰하고 있는 중이다.

“너는 마치 황제의 폭정으로 시름 하는 제국민들을 구원하는 듯이 굴지만.”

입꼬리를 올리자 아릿한 걸 보니 인도적인 절차가 부족했나 보다.

지나치게 고결한 척, 깨끗한 척 구는 것들은 역시 구린 구석이 있다는 편견이 한층 두터워졌다.

“실은 황위 계승권이 없으니 선택지는 반란밖에 없는, 권력에 눈먼 개잖아.”

희미한 비웃음이 담겨 있던 교황의 두 눈이 순간 굳었다가 깊이 휘어졌다.

“인간의 사고로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겠지요.”

“너는 꼭 인간이 아닌……, 아.”

‘너’로 시작해 ‘닌’으로 끝나는 저 말은 일부러 한 거라는 데에 내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나는 차분하게 내 맷집을 점검했다.

“너는 인간이 아니라 개였지.”

“더는 들어 줄 가치가 없군요.”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네가 말한 대로 이성적인 결단이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

이 말을 하며 샤를리즈는 치욕스러워했다. 놀랍게도 퍽 간절했던 탓이다.

나는 자신이 죽고 난 뒤 부친이 어떤 마음으로 평생토록 살게 될지를 알면서도 독약을 넘긴 샤를리즈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샤를리즈를, 정확히는 신성력을 시험하기 위해 인위적인 독을 건네라고 명령했을 저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하.”

교황이 나직이 웃었다.

“겁도 없이 황족의 심기를 거스르기 일쑤라 목숨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지요.”

샤를리즈가 입술을 움직였다.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썩 좋은 내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교황의 얼굴은 검은 크레파스로 어설프게 색칠된 탓에 조금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겨우 그만큼으로도 그가 분노했음을 여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 대답은 이번에도 들을 수 없었다.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이 세계로부터 밀쳐졌는지도 모르겠다.

* * *

“―그래서 이번에는 저렇게 끝났습니다.”

칼릭스와 이리안이 등장한 부분은 적절히 자른 탓에 이야기는 짧았다.

반쯤 내리뜨고 있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고, 그 아래 선명한 벽안이 드러났다.

그 눈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다 불쑥 묻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무엇이?”

그곳에서 그는 이리안을 사랑하고, 나를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

같은 상황을 몇 번이나 반복해 정답을 얻어야 끝이 나는 해괴한 꿈을 그는 단순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을 터다.

“현실이 아닌데, 너무 생생하니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얼버무렸다.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게. 궁금해.”

주제를 바꿔 보려는 목적이 뚜렷한 화두에 칼릭스는 이번에도 순순히 따라왔다.

“그래서 알고 싶어져.”

이곳이 소설 속이라는 사실을 밝혀도 답이 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때였다.

“샤를리즈.”

갑작스럽게 불린 이름에 순간 그의 말을 놓쳤나 싶어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담긴 것은 가늘게 웃는 얼굴이었다.

“나는 결국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 거야.”

마치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 *

금이 간 성물을 들어 확인하며 라우드는 웃었다.

뚜렷한 균열은 옅어지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나 알릴 만큼의 실금이 흔적처럼 남은 채였다.

그의 선택이 맞았다.

그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는 역시나 칼릭스 엘루이든이었다.

[……지금 나보고 피를 나눈 동생의 죽음을 용인하라는 뜻입니까?]

가증스럽게 저리 말하는 황제를 보며 비웃음을 참는 것은 고역도 아니었다.

[아니지요, 폐하. 토벌에 참여한 신관들이 대공의 목숨을 첫 번째로 두지 않아도 죄를 묻지 않을는지, 그것을 미리 알아두려고 했을 뿐입니다.]

눈을 몇 번 굴린 황제는 ‘신관들의 뜻은 내 어쩔 수 없지요.’ 하고 대답했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이제는 멸종된 새를 닮은 성물을 주시하던 눈이 문가로 향했다.

이윽고 앳된 목소리가 고했다.

“다이브 백작과 리엔타 공녀가 도착했습니다.”

“곧 찾겠다고 전해 주세요.”

“예. 성하.”

종종걸음이 바쁘게 멀어져 갔다.

탁.

만발한 꽃 무더기를 바라보며, 라우드는 성물을 협탁에 무신경히 내려 두었다.

만약 그러지 않고 끝까지 관찰했더라도 발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균열은 내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 * *

‘이게 뭔 일이냐.’

다이브 백작을 졸졸 따라갔더니 도착한 곳은 신전이었다.

‘정체를 이렇게 바로 밝힌다고?’

나는 백작을 의심스레 노려봤다.

‘이 사람도 혹시 그 집단 소속인가?’

신실함이 유별난데도 흑마법에 매료됐을 정도라면 엄청나게 지독할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할 선택에 영향은 없다. 그냥 기분 문제였다.

집에 자라나는 아이가 있으면 괜히 다 신경 쓰이는 법이다.

‘음습한 기운은 멀리해야 하는데.’

“가, 가시지요.”

나는 여전히 백작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따라갔다.

몇 번 봤다고 눈에 익은 어린 신관이 안내한 응접실에서도 나는 백작의 옆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제 오른쪽 얼굴을 두 손으로 슬며시 가리며 백작이 울먹였다.

“왜 그러십니까?”

“백작의 신실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왜 신전에 오게 됐는지 궁금하네.”

“그게 말입니다.”

그때, 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들어온 남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 대답은 제가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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