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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77) (177/232)

177화

느지막한 오후.

황제궁 응접실.

안토니오 황제는 정무를 대체로 집무실에서만 처리하는 편이다.

역대 황제의 초상화가 나열된 벽에 붙은 형과의 기억을 추억하기 위함이었다. 승자는 자신이라고.

그러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열흘마다 귀족들의 정세를 보고 받는 시간이다.

마치 휴식을 취하듯 차를 한 모금 넘긴 안토니오 황제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이 건은 귀족에만 국한되지 않사오나…….”

엄연히 주제넘은 짓이었다.

그러나 표정이 하도 결연했던 터라 황제는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세간에 ‘진실의 묘약’이라는 약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중독성이나 독성이 강한가?”

“아닙니다. 그 효과 때문이온데, 복용한 사람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면 진실만을 답한다고 합니다.”

“허.”

안토니오 황제가 실소를 지었다.

찻잔 받침과 찻잔 밑바닥이 맞부딪쳐 울린 챙 하는 소리가 그의 못마땅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자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낭설에 귀를 기울일 줄을 몰랐네만.”

진실을 토하게 하는 약이란 건 들어본 적도 없지만,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해도 횟수에 국한되게 제조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했다.

안토니오 황제가 눈썹을 꿈틀했다.

‘흑마법인가.’

“토벌대의 다음 목적지가 아룬펠 설산이었지.”

만약 신전이 칼릭스의 암살을 노리고 있다면 그곳이 적격지일 터다.

‘그전에 흑마법사를 한 번은 색출해낼 줄 알았건만, 번번이 허탕이나 치고.’

아우의 모자람은 언제나 안도가 되었으나 이번에는 실망스럽기만 했다.

짜증스레 팔걸이를 툭툭 내리치며 황제가 물었다.

“칼릭스는 현재 어디쯤이라고 하던가?”

“오늘 열 시 경, 포탈을 이용해 북부에 도착했습니다.”

북부가 언급되자 안토니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필 그때 루카스 바이에르가 공작저에 머무르고 있을 건 뭐란 말인가.

심지어 암살자들이 생포되기…….

“…….”

안토니오 황제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당연히 그는 직접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이에르의 실행력과 리엔타의 정보력이라면 끄트머리만 잡아내도 연결 고리를 통해 진범을 찾아내기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 약.”

그리고 이내 초조하게 덧붙였다.

“그 해괴한 약을 구해 와라. 당장!”

야심 차게 준비한 보고가 면전에서 헛소리로 치부돼 묵살 당해도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수족은 그만 깜짝 놀란 기색을 내비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질책을 살 걱정은 덜어도 되었다.

황제는 제 생각에 사로잡혀 수하의 표정 변화 따위에 신경을 쓰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 * *

헤이즐에게 진실을 실토하게 되는 약을 받아 온 날.

나는 그때 그녀에게 부탁했다.

[혹시, 약효가 1분 정도만 지속될 수 있도록 개량할 수 있을까? 음, 그러니까 질문 하나를 하고 대답할 만한 시간 말이야.]

[한 번 해볼게요.]

시원시원하게 대답한 헤이즐은 며칠 만에 시제품이 완성되었다는 서신을 보내왔다.

손뼉을 짝짝 치며 마차를 타고 쏜살같이 향한 길의 끝에서, 나는 입을 떡 벌리게 된다.

[……1분이 아니었어?]

[그건 여기 있어요. 공녀님.]

헤이즐은 탁자에 쪼르르 정렬한 약병을 하나씩 짚었다.

[이건 질문 한 개. 이건 두 개. 이건 세 개예요. 세 개 이상은 필요 없으실 것 같아서 하지 않았…….]

나는 당장 헤이즐의 손을 꼬옥 끌어 올려 맞잡았다.

[혹시…… 그럼 생명 연장 물약도 만들 수 있을까, 헤이즐?]

[히이익!]

목숨 연장에 눈이 멀어 갑작스럽게 접촉하는 실례를 거하게 저지르고 만 것이다.

신수가 지금 내 꼴을 본다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니 뭐니 그런 말은 하지도 않을 게 틀림없다.

[앗. 미안.]

그러며 손을 빼려는데, 빼지지가 않았다.

놀라면 도리어 손에 쥔 것을 절박하게 잡는 버릇이 있는 것 같은 헤이즐이 당혹스러움에 볼을 붉혔다.

[한 번 해볼게요.]

“흑.”

회상을 마치며 붉게 달아오른 눈시울을 콕콕 찍어 냈다.

이번 일로 나는 알았다.

‘아무래도 헤이즐은 카타리나 리닉스와 비슷한 경우 같다.’

피를 타고 이어지는 능력 말이다.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면 수도 변두리에서 혼자 연구를 하는 유명세 없는 어린 약제사를 카타리나가 발견한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을 터였다.

‘황제도 지금쯤 소식을 들었겠지.’

황제는 언제고 사샤든 나든 제거하려 들 터.

암살자들 잡아 두고 진실을 읊게 만든다는 해괴한 약물을 시중에 유통시켜 기강을 잡을 속셈이었는데, 과장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시작을 ‘사랑의 묘약’으로 정한 데 세속적인 마음가짐이 한 톨도 없었다는 비겁한 변명은 하지 않겠다.

[헤이즐. 이제 물량을 줄이자.]

[그럴게요.]

[……괜찮겠어?]

헤이즐은 중앙은행에 금고를 새로 만들어 세 개나 됐다며 뿌듯해했다.

‘이것도 다행이고, 저것도 다행이고.’

원작에서 전염병이 그토록 창궐한 이유는 카타리나 황후 때문이다.

황후가 죽고 리닉스도 몰락의 단계를 착실히 밟아가고 있으니 이번에는 그 전염병은 금방 잡힐 것이었다.

금전적 이득을 위해 허망하게 죽을 예정이었던 목숨을 뒷걸음질로 엉겁결이라고 해도 어찌 됐든 구하게 되었으니 다음 생에는 어느 동화책의 시골 주민1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건 또 너무 속이 투명해서 안 들어주려나.’

힐끔 하늘을 쳐다본, 그 이튿날 오전.

바이에르 공작이 리엔타 공작저로 찾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암살자들의 이양 시기로 바이에르에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을 날짜는 언제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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