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96) (196/232)

196화

준결승은 케이크를 가져다준 사샤 덕택에 승리했다.

결승을 위해 두 번째 케이크를 열심히 해치우던 나는 힐끔 옆을 돌아봤다.

“그거 맛있습니까?”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기사가 대뜸 질문했다.

‘뭐야.’

의문점은 두 개였다.

하나는 당연히 맛있을 걸 왜 묻냐였고, 하나는 그 샤를리즈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가문의 기사지?’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경기도 구경할 걸 그랬다.

“저도 한입만 주시면 안 됩니까?”

“안 돼.”

내가 다 먹으려는 못된 심보는 아니다.

샤를리즈가 준 음식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간계라도 있을까 봐 몸 사리는 것뿐이다.

진짜다.

“하긴 남한테 주기에는 너무 맛있을 것 같이 생겼습니다.”

기사가 뒷머리를 긁으며 넉살 좋게 웃었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은 것까지 주절주절 말했다.

“아, 제 이름은 나단입니다. 기사단에 소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큰 대회도 나가게 돼 영광입니다.”

‘그렇군’하는 얼굴로 케이크를 열심히 입 안으로 퍼 날랐다.

“벌써 다 드셨습니까? 대식가시군요. 저도 한 먹성 하는데 이거 공녀님께는 지겠습니다.”

때마침 대회 시작을 알리는 뿔고둥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경기는 지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끝까지 치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들뜨기도 합니다.”

기사가 눈을 빛내며 호기롭게 웃었다.

나는 멀뚱히 그를 쳐다보고는 청포도를 마저 씹어 먹으며 경기장으로 걸어갔다.

와아아―

놀랍게도 저건 관중들이 내는 환호성이었다!

막바지로 치달은 열기란 샤를리즈 리엔타를 보고도 환호성을 지를 수 있게 했다.

“선공을 가리겠습니다.”

시종이 양면이 다르게 조각된 주화를 높이 던졌다.

경쾌한 박수 소리가 들리고, 시종이 조심스레 맞잡은 손을 돌려 왼손등이 아래로 가게 했다.

“리엔타의 선공입니다!”

어떤 가문의 기사인지는 화살을 세 번 날릴 때까지 모르게 됐다고 생각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기류가 안정되는 미묘한 지점.

화살을 놓았다.

‘인중.’

“10점!”

‘인중.’

“10점!”

‘인중!’

“10점입니다! 리엔타, 30점!”

뒤로 돌아오자, 환호성 사이로 옆에서 ‘휘유’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단하십니다. 그래도 대기실에서 제가 했던 말, 부끄럽게 여기진 않겠습니다.”

기사가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새로운 삶의 자세를 배웠다.

‘나도 흑역사에 뻔뻔하게 나가야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투박하게 웃은 기사는 그를 호출하는 말소리에 걸음을 뗐다.

“다음은 닐레의 후공이 있겠습니다.”

‘닐레?’

귀가 있어서 안 봐도 들렸다.

‘대진 운이 엄청나게 좋았는데.’

이번은 끝까지 경기할 수 있어 좋다고 한 말은 진심이었나 보다.

‘돈 먹일 수 없었을 텐데, 그럼 대진 순서는 그저 운인가?’

닐레는 바로 사샤가 신전의 호수에 빠지게 되는 데 일조한 가문이다.

탈세 건이 터져 황제의 눈밖에 제대로 난 것도 모자라 어마어마한 벌금을 배상하느라 가문이 휘청거려 입지가 크게 줄었다.

사샤를 괴롭히는 대가로 황후에게 받은 돈이 없었다면 더 휘청거렸을 테다.

‘그런데, 그 닐레가 최근에 기사를 새로 뽑았다고.’

있는 기사도 해고해야 하는 재정 상황인데 말이다.

남의 집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내가 닐레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잊지 않았다. 네놈.’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직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눈물을 삼키게 된다.

‘어쩐지 수상하다 했다…….’

부상이 다이아몬드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 * *

“10점. 10점. 10점. 총 30점, 동점입니다!”

과연 결승전다운 팽팽한 승부였다.

과연 결승전다운 팽팽한 승부였다.

총 아홉 발로 겨뤄지는 승부에서 고작 세 발만 진행되었을 뿐이지만, 화살을 더 가져오라며 가볍게 눈짓한 시종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리엔…….”

시종은 멈칫했다.

샤를리즈가 하늘을 노려보고 있던 탓이다.

저도 모르게 공녀의 시선을 따라간 그 종착점에 곧이어 웬 새하얀 새가 나타났다.

영물이라고 칭해도 될 법한 크기에 압도되어 입만 뻐끔거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길조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길조가 틀림없어.”

“세상에. 길조라니!”

“혹시 신수가 아닐까요?”

“대회는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웅성웅성한 가운데 시종의 말은 애처로울 만큼 묵살 당했다.

“수도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길조도 보고. 올해는 제 운이 좋은가 봅니다.”

나단 역시 입을 벌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멍청해 보이는 얼굴을 흘깃 쳐다본 샤를리즈가 손을 움직였다.

“공녀님?”

하늘을 겨냥한 화살을 발견한 나단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어리둥절한 물음을 들은 시종은 다소 아쉽게 하늘에서 시선을 떼었다가 기겁해 펄쩍 뛰었다.

“고, 공녀, 공녀님!”

막을 새도 없이 쌔액거리는 바람 소리를 내며 화살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두 눈을 가렸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 단위의 시간이 흐른 후, 추락한 것은 소리가 없었다.

“……사라진, 아니, 사라진 게 아닌데.”

“새가 아니었어……?”

구름이라고 하기에는 형태가 명확했다.

수도를 뒤흔든 놀라운 소식을 기억하는 한 귀부인이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혹시…… 환영이었을까요?”

흑마법을 에두르는 말이었다.

동시에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관중석을 휩쓸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듯 발을 움찔거리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자리를 지켰다.

용의선상에 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하나도 조심해야 하는 분위기인지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으나 하고 있는 생각들은 비슷했다.

‘공녀는 환영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알아챈 거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서늘한 벽안으로 천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신관들이 왔어. 목숨처럼 여기는 사제복 없이.]

그들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던 이유는 미리 기억해 둔 얼굴이 있었던 덕택이다.

말단 사제로만 꾸릴 수 없던 이유가 과연 있었다.

교황이 신관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둘러대 행하게 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신성력의 소행을 흑마법으로 몰아 샤를리즈의 무능함을 입증하려고 했던 거겠지.’

어렵지 않게 속셈을 꿰뚫은 칼릭스는 시선을 내려 샤를리즈를 바라보았다.

샤를리즈는 하늘 귀퉁이를 차갑게 쏘아 보고 있었다. 그 내심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칼릭스는 조금 웃었다.

“그, 그럼 대회는…….”

“중지하는 게 좋겠군.”

샤를리즈가 머뭇거리는 시종에게 한발 다가갔다.

신속하게 세 걸음을 뒷걸음질 쳤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 시종이 가까스로 발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일대를 수색하는 일을 제의하고자 하는데.”

“수색 말씀이십니까? 하나…….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시종은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달려온 시종을 보며 표정을 구긴 황제는 오묘한 얼굴로 수색을 허가했다.

정체도 모를 무언가를 찾기 위한 수색은 진척이 느릴 게 틀림없었다. 잡혀 있는 시간만 늘어난다는 소리였다.

귀족들은 난처한 기색을 애써 감춘 채 심심하다며 투정 부리는 어린 자식을 달랬다.

그러나 의외로 상황은 빠르게 돌아갔다.

“주군. 이것 혹시…….”

웬 나뭇가지를 조심스레 든 기사가 필리엄 백작에게 속삭였다.

적막한 시야에서 움직임은 드물었으므로 어느새 그들을 주목하는 시선이 꽤 됐다.

그중에는 하품을 쩍 하는 에리히 로나터스의 옆에 앉은 친우도 있었다.

“필리엄 백작가의 기사가 나뭇가지를 주웠어.”

“백작이 원예에 심취했나 보지.”

심드렁히 대답한 에리히의 옆구리를 친우가 쿡쿡 찔렀다.

“아무래도 이상해. 에리히, 한번 봐. 저 나무가 그 나무인지 말이야!”

“이 거리에서 뭘 보긴 보…….”

그때, 에리히는 익숙한 시선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재깍 고개를 돌렸다. 훈련시키지도 않았는데 머리에 입력되어버린 반응이었다.

역시나 샤를리즈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 번 볼까?”

그간의 일로 에리히는 눈치가 빨라졌다.

“흐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나! 그런데 왜 그 나무가 여기에 있는 거지?”

호들갑 떠는 친우는 안중에도 없이 에리히는 힐끔 샤를리즈를 훔쳐봤다.

그녀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이 거리에서 그들이 나눈 말을 샤를리즈가 듣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하나, 어쩐지 샤를리즈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도 사리며 살아야지.’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쓸며 에리히는 굳세게 다짐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뒤편의 수군거림이 커질 즈음.

필리엄 백작이 결심한 얼굴로 황제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 * *

나는 시방 화가 났다.

줄 생각도 없던 다이아몬드에 혹해서 열심히 참여한 게 분해서가 맞다.

‘나쁜 놈들.’

도리도 모르는 못난 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엔타 공녀. 가까이 오게.”

도착하자마자 황제가 우다다 말했다.

“공녀는 조금 전 나타난 새가 환영임을 관철했지. 혹시, 흑마법이었나? 아니지. 공녀가 혼절을 안 하지 않았나.”

황제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그 새는 뭐란 말인가.”

‘교황과 사전에 논의한 바가 아닌 모양이군.’

속고 속이는 진탕의 복판이 바로 여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 진탕에 한참 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폐하. 제가 그 나무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공녀가?”

황제가 미간을 좁혔다.

* * *

이른 오전.

안토니오는 다소 신경질적이었다.

예정대로 중단된 궁술 대회가 그들이 예정한 방식으로 끝나지 않은 탓은 아니었다.

[결승전에서 기사가 불운하게 사망하고, 그 일을 흑마법의 소행으로 추측할 때, 공녀의 반응을 보면 흑마법을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샤를리즈가 했던 말을 밤새 곱씹은 탓이 컸다.

[흑마법이 아니라 신성력 같다고? 하나, 이곳에는 신관들이 없네.]

[신성한 나무는 있지요.]

[나무의 별칭 때문이라면 나도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일세. 하지만, 특별히 신성력이 감응되지 않는다고 여러 신관이 진술했어.]

[사용하기 전에는 신성력이 있었다면요?]

그 말을 하는 샤를리즈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표정했다.

망나니가 제 몽상을 지껄인다고 무시할 수 없던 이유는, 아카데미 월반을 거듭한 머리 때문이었다.

단순히 교과 과정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흑마법이 아니라면, 저만한 환영이 가능한 일은 신성력 말고 달리 없지 않습니까.]

 

말을 마친 샤를리즈는 그가 움켜쥔 나무를 응시했다.

곁의 기사가 패용한 검을 뽑아 들어 직접 확인한 내부는 과연 텅 비어 있었다.

 

[필리엄 백작의 배에서 발견되었다지요.]

[신성한 나무이니 다른 대륙에서 가공해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폐하의 말씀은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저는. 사용한 나무를 굳이 밀반출하려는 것이 마치 제국의 눈을 피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공녀의 추측대로 신성력이 있는 나무라면…….”

신성력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안토니오가 테이블 위의 나뭇가지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황제 폐…….”

“들라 하게.”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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