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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07화 (207/232)

207화

리엔타 공작이 독화살을 맞았다는 소식은 수도를 휩쓸었다.

여전히 황성에 발이 묶여 있던 귀족들은 혐의를 벗어 귀택했다. 그들이 목격한 공녀 독살 시도가 더해져 이야기는 한층 자극적으로 되었다.

본래라면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었을 테나, 해독제가 존재하니 화두에 올린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 독이라지요. 너무 불길해요.”

“리엔타 공녀도 모자라 공작 각하까지……. 범인은 대체 무슨 속셈일까요?”

“그러고 보니 대공 전하께도 독살 시도가 자행되었다고 들었어요. 혹시 같은 독은 아니겠지요?”

대화에 마가 뜬 것은 그 순간이었다.

선황제와 리엔타 공작 일가, 그리고 대공.

이 조합은…….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는 낼 수 없는 말이었으므로 귀부인들은 차를 마시는 척 찻잔으로 하관을 가리며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보다 일찍 이 소식을 접한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일라이저 바이에르였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일라이저 자신도 음독의 대상이 된다면 황제에게 올가미를 제대로 씌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샤를리즈는 일축했다.

“공녀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그렇게 말하는 입술은 휘어져 있었다.

방문을 알리는 노크 소리에도 일라이저의 두 눈은 쪽지를 불태우는 벽난로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

루카스가 쭈뼛쭈뼛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오늘 예정대로 수도를 가실 거예요?”

“그래야지.”

“안 가시면…… 안 돼요?”

루카스가 주먹을 꾹 쥐고 결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수도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어요. 같은 공작가에도 사악한 짓을 했다는데, 어머니가 걱정돼요.”

그대로 다시 고개를 푹 숙일 것 같던 아이는 침을 꼴깍 넘기면서도 빳빳하게 일라이저를 올려다보았다.

어린 아들을 무표정하게 응시하던 일라이저가 딱딱하게 말했다.

“하나. ‘같은’ 공작가가 아니다. 리엔타는 자금력은 대단하나 기사단 수준은 바이에르와 비견할 수 없지. 둘. 수도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니 가야 하는 게다. 독살이 두려워해야 할 일을 외면하며 제 영지에 꼭꼭 숨어 있는 것이 맞는가?”

“……아닙니다.”

루카스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언제까지고 무표정할 것 같던 어머니가 엷게 웃은 것은 그다음 순간이었다.

“네 생각을 똑바로 주장한 건, 아주 잘했다.”

눈을 마구 깜빡인 루카스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럼 저도 채비하겠…….”

“루카스 너는 영지에 머물러.”

“네?”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된다면 가브리엘 경과 이동해라. 육로로 제국의 경계를 넘어야 할 테니 수련은 게을리하지 말고.”

아직 어려도 저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루카스가 입술만 겨우 달싹여 꺼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어머니는요?”

“나는 선택의 대가를 치러야지.”

눈을 가늘게 뜨며 일라이저가 웃었다.

“이번이 어떤 의미로든 마지막 수도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녀가 죽어 마지막이거나, 현 황제 치하의 마지막이거나.

* * *

리엔타 공작이 독화살을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안토니오는 즉각 튜베롯 여러 송이를 리엔타 공작저로 보냈다.

제 소행이 결단코 아니라고 외쳐대는 꼴이 꽤 볼썽사나웠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선황제의 사망이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가 아니라 독살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대두됐다. 그것도 모자라 리엔타 공작가를 겨냥한 연이은 독살 사건까지.

‘누가 봐도 엘루이든에 날개를 달아 줄 리엔타를 무너뜨리려는 황제의 소행 같지 않나!’

하지만 안토니오는 리엔타를 해독제가 알려진 독으로 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확실히 죽는다면 모를까, 살아난다면 좋을 게 없었으므로.

과연 리엔타 공작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튜베롯 독약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대상단을 운영하는 리엔타의 정보꾼은 제국 전역에 퍼져 있다.

안토니오 자신에게 독을 건넨 작자는 확실히 제거했지만 어떤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몰랐다.

“리엔타 공작을 당장 불러들여 이것은 명백한 월권이라고 하시…….”

“공작에게는 충분한 동기가 있다. 그런데 내가 막으면 켕기는 게 있다고 떠드는 꼴밖에 되지 않잖나!”

이럴 때 카타리나가 있었다면 그녀는 분명 묘책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하여, 그 동생이란 걸 불러봤더니 저런 소리나 지껄이고 있었다.

안토니오가 이마를 짚으며 나가 보라고 손을 휘저었다.

유르겐은 초조하게 입술을 축였다.

‘백만 델톤이 걸린 일이야!’

한때 황후의 동생으로 승승장구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지도 모르는 절호의 기회를 허망하게 놓칠 수는 없었다.

“하오시면 리엔타 공작이 조사에서 눈을 뗄 수밖에 없도록 하시는 건 어떨는지요?”

안토니오가 짜증스레 돌아봤다.

굴하지 않고 유르겐은 준비한 말을 읊었다.

“다른 일에 신경이 쏠려 조사에 관심을 가질 수 없도록 말입니다. 머리가 무관심하면 손발도 이전처럼 열심히 뛰어다니지는 않을 테지요.”

제 딸과 자신을 독살하려던 놈에게서 눈을 돌릴 만한 일이 대체 뭐가 있겠느냐고 버럭 소리 지르려던 안토니오가 멈칫했다.

“…….”

그런 일이 있었다.

‘칼릭스 너는 이 핑계로 사샤를 신전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하겠지. 하지만 결국 이 일 때문에 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마.’

이건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였다.

* * *

연이은 독살 시도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던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화제의 중심인 극독과의 연관성이 밝혀진 것이다.

“로나터스 후작이 소유한 숲에 신성한 나무가 있었다면서요?”

“네. 그리고 그 나무에 신성력이 있다던데요? 일리든 포르테 경이 신관에게 확인했대요.”

“공녀가 그 나무에 신성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폐하께 가장 먼저 말씀드렸다고 들었어요.”

“그 정보는 공작 각하로부터 들은 거겠죠?”

“그렇겠죠! 그러니 공작가가 그렇게…….”

분위기가 냉각되기 전, 티타임을 주최한 귀부인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래서 수습 신관들이 신성한 나무에 대한 기록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아예 살고 있다고 하던데요?”

“공녀도 몸이 회복되는 대로 조사에 합류하라고 황제 폐하께서 칙서를 보내셨다고 해요.”

정보들은 구체적이고 상세했다.

이 기회에 튜베롯 독에 관한 화제도 덮게끔 안토니오가 손을 쓴 까닭이다.

“아무튼 빨리 일이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너무 뒤숭숭해서 아이들을 내보내지 못하겠다니까요?”

그러며 머리를 스친 것은 언젠가의 신탁이었다.

이 자리의 귀부인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선황자의 놀이 친구를 대공이 어서 구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역시, 그쪽과 줄을 만들어 두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들은 “그러게나 말이에요.”하고 겉으로는 한숨을 폭 쉬었다.

* * *

신성력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신성력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확증만 없을 뿐 심증은 넘쳐난다.

범인으로 신전을 콕 집어 언급하는 이들은 없겠으나, 근래 신전에 드나드는 귀족의 수가 급감했다고 한다.

‘이 정도 눈치도 없다면 수도에 발붙이고 살기 어렵기는 하지.’

시원하게 물을 한 컵 해치웠다.

“공녀님. 요즘 물을 많이 드시네요?”

“불순한 걸 씻어야 하거든.”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공녀님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할게요.”

“덕담 고마워. 레아.”

지금 내 목 뒤를 넘어가는 것은 물이 아니라 내 눈물이다.

‘화살에 묻은 그 피, 누구 거냐.’

돌아오는 대답은 이번에도 없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설마 아니겠지만, 설마 혹시 시간이 흐르면 피가 저절로 지워져서 새롭게 묻을 피를 찾아다니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자꾸 증식될 때는 몸을 혹사시켜 머리에 포근한 침대만 두둥실 떠다니도록 하는 게 최고다.

정원을 빙빙 돌기 전, 칼릭스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계단을 오른 차였다.

“교황이 순순히 협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상합니다.”

“교황이 대외적으로 움직일 리는 없어. 그보다는 황제 쪽을 주시해.”

“예. 주군.”

언제 일 잘하는 수하처럼 똑 부러지게 대답했냐는 듯 리반이 궁금해 죽겠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공녀님이 진짜로 그겁니까?”

그것참 아주 묘한 어감에 칼릭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계단이나 마저 오르기로 했다.

포기를 모르는 리반이 재차 물었다.

“그거 말입니다. 그거. 공녀님께서 진짜로 그거랑 그거 하신 거 맞습니까?”

“신수랑 계약한 게 맞냐고?”

“히익! 혹시 누가 들을지 모르는데!”

리반이 질겁했다.

불량하게 팔짱을 낀 채 통행에 방해되도록 복도에 척 버티고 선 내 몰골을 보고 리반은 “그런데 진짜로 그게 맞습니까? 진짜?” 하며 수상해 했다.

“리반의 어감이 더 수상해. 그리고 누가 들으면 뭐. 퍼져도 상관없어.”

“안 됩니다! 그럼 신수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해서 수호 계약까지 했냐고 공녀님의 평판만 더 흉흉해질 테고, 소문을 들은 사샤 님은 마음의 상처를 대신 입으실 게 틀림없습니다. 공녀님은 아무렇지 않을 텐데도!”

“……나 조금 상처받았어.”

“새삼요?”

리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짚을 벽을 찾아 휘청거리는 나를 칼릭스가 지탱했다.

“……지금 제가 더 상처받았습니다. 제 얼굴 보고 헛구역질하신 거 맞죠, 그렇죠?”

“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미안하게 중얼거리자 리반이 새침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속이 뒤집히셨던 걸 수도 있으니 얼른 사라져 드리지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저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

“응접실로 가자.”

잠시 뒤, 기다란 카우치에 누워 숨을 골랐다.

“공녀의 침실에 비치하는 물병을 큰 사이즈로 변경해 달라고 레아가 집사에게 요청했던데 거절해야겠어.”

“거절은 하지 마세요. 레아가 상처받아요. 제가 적당히 먹겠습니다.”

“응. 조금만 마셔, 샤를리즈. 이러다 정말로 탈이 나겠어.”

내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칼릭스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간지럽게 하던 게 사라졌는데 이상하게 아직도 간지러웠다.

“찝찝해서요.”

“무엇이?”

그러고 보니 칼릭스에게 말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첫날은 입 밖으로 내는 것도 경악스러워 차마 못 했고, 이튿날은 공작이 독화살을 맞아서 경황이 없었다.

“피가 묻은 이상한 물건이 제 몸속에 들어왔습니다.”

몇 번을 떠올려도 기괴했다.

음울해져 눈을 내리깔고 있던 때였다.

“그거 혹시, 활이야?”

“아. 칼릭스도 봤습니까?”

대공저로 반입되는 물건이니 칼릭스가 사전에 확인했을 수도 있겠다.

“데칸드 백작이 성물로 속아……, 아니 유물인데 성물 값을 주고 비싸게……. 흠. 아무튼 제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좋은 선물을 받았네.”

칼릭스가 작게 웃었다.

내 몸속에 들어왔다는 게 장난인 줄 아나 보다.

‘장난으로 들을 만큼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진짜인 줄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받을까.’

은근히 연약한 구석이 있는 연인을 염려하며 나는 “예에에.”하고 대꾸했다.

“샤를리즈. 정말이야.”

칼릭스가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듯 은밀하게 속삭였다.

“그 피, 용의 것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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