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긴급한 소식을 알리고자 문을 마구 두드리는 손처럼 심장이 불규칙하게 박동했다.
나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혹시 신수의 심장을 모방해 돈벌이를 시도했다고 천벌 받지는 않겠지……?’
그거 정말 엄청난 우연인데요.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짜인데 말입니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을 장갑에 욱여넣던 순간이었다.
‘맞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대단해진다더니 과연 나도 그랬다!
꽤 오래전의 일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
‘소원권!’
이제 본체로도 현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신 좀 막아 보라고 매달리면 되겠다.
빠르게 안정을 찾은 몸은 빠릿하게 움직여 장갑을 모두 끼웠다.
마지막으로 돌아보았을 때, 신수는 여전히 작은 어깨를 간헐적으로 떨고 있었다.
‘하는 수 없지.’
혹시 내가 신수의 심장을 만져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준비한 물건을 유용하게 쓰게 되었지만 내 치밀한 준비성이 뿌듯한 기분은 당연히 못 됐다.
‘미리 언질 줬어야 했나. 인간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교황 그거 몹쓸 놈이라며 혀만 찰 줄 알았더니…….’
교황이 신수와 수호 계약을 강제적으로 맺을 계획임을 알아챈 순간부터 나는 그가 심장과 성혈을 함께 보관하고 있겠다고 짐작했다.
신수를 제물로 쓰는 상황까지 몰렸다면 마음이 조급할 테고, 그렇다면 이동 시간도 아쉬워졌을 테니까.
‘이 근처에는 흑마법사에게 연락할 방도도 있을 테지.’
손을 뻗었다. 제 목숨마저 온전히 맡길 수 있던 친우에게 종속된, 지금보다 더 어리고 서툴렀을 신수를 생각했다.
마침내 손끝이 닿은 순간.
거대한 공간을 모두 메우는 빛이 폭발하듯 터지고, 그것은 종내 내 시야마저도 완전히 차지해 버렸다.
“샤를리즈!”
어깨를 다급하게 붙잡은 손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 *
[나는 인간사에 관여할 마음 따위 없다.]
[기다리는 분이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뭐?]
신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누가, 어디서 그런 말을 하였어!]
사내가 회심의 미소를 속으로 지었다.
오래도록 존재한 생명에게는 헤아리기도 힘들 수많은 기억이 있고, 그 기억 속엔 반드시 특별한 인연이 있기 마련이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던진 들풀이 깊은 수면을 뒤흔드는 데 성공했다.
사내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현재 대륙의 정세는 어지럽습니다. 신성 제국의 붕괴 이후, 뿔뿔이 흩어진 신관들이 모두 하나씩 나라를 건국한 수준이지요. 그러니 신수 님의 소중한 그분…….]
[소중하지 않다!]
[……인연께서 다시 환생하시어도 금세 격랑에 휩쓸려 덧없이 숨을 거두시고, 신수 님께는 또 천고의 기다림만 남게 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네 건국에 조력하라는 말이더냐? 대륙의 안정을 위해?]
[용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용에게 은혜를 몇 곱절로 갚게 된다는 말이 있지요. 그렇다면 제 후사의 몸으로 신수 님의 인연이 돌아오시리라는 강한 예감이 듭니다.]
신수는 부정하지 못할 만큼 동요했다.
신은 영생을 제멋대로 끊은 용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그의 환생의 고리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신수가 그때 착각한 것이 있다.
그건 저 인간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신수는 애초에 인간을 믿지 않았으니 배신당할 것도 없었다.
그에게 제 심장까지 내어 준 이유는 인과율로 은혜를 더 크게 불릴 요량에 불과했다. 신이 지금처럼 막을 수 없도록.
착각한 것은 다른 쪽에 있었다. 유일한 친우를 오래도록 볼 수 없던 이유.
신은 인간이 된 용의 환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막는 행동이었고, 신에게도 법칙은 적용됐다.
법칙을 감수하고 신이 그럴 수밖에 없던, 절박하게 붙잡아야 했던 이유는 필멸이 되었음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세상을 뒤흔들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군.]
[너……,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거냐?]
남자는 대답 대신 웃었다. 보기에만 섬연한 미소가 익숙했다.
[부탁할 게 있어.]
[네게 부탁도 다 들을 줄이야. 정말로 한낱 인간이 되었구나. 그래서, 무엇…….]
돌연 느껴지는 기운에 신수가 굳었다.
[너……, 너는 정말로……, 정말로 미쳤구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앞으로 관여할 것도 미리 세는 건가?]
[시답잖은 농을 할 때가 아니다! 진짜로 소멸할 수도 있단 말이다.]
[알고 있어.]
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푸른색 눈동자가 가늘게 휘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러 온 거잖아.]
* * *
“―리즈! 정신 차려라! 샤를리즈!”
순식간에 사라졌던 의식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정신 차렸습니다.”
번쩍 눈을 뜨고 또렷하게 말하자 신수가 긴 한숨을 내쉬며 풀썩 옆을 짚었다.
“네가 이렇게 죽나 했다.”
“시간이 오래 흘렀습니까?”
“그건 아니다. 체감상 일 분도 지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인간의 체감으로 말이다.”
신수가 그 뒤에 소심하게 ‘아마도’라고 덧붙였지만, 교황이 여전히 없는 걸 보면 얼추 비슷한 시간이 흐른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
딱딱한 무언가가 손끝에 걸렸다.
‘심장을 몸에 넣는 것도 잊을 만큼 놀랄 수도 있단 말인가!’
충격을 받아 돌아본 그곳에는 심장이 아니라 웬 활이 있었다.
본 적 있는 것이었다.
‘혹시 부탁했다는 것이…….’
이건 다음에 물어도 됐다.
고개를 털어 생각을 지우고 몸을 일으켰다.
“성혈들 챙기고 어서 나가죠.”
“그래 맞다! 챙겨야만 한다.”
신수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직은 사용되지 않았어. 그러니 환생할 수 있다.”
성혈로 만들어져 사용되면 환생의 고리에서조차 추방되는 거다.
‘쓰레기 같은 교황 자식.’
나는 오래오래 살고 싶지, 안 태워지는 쓰레기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죄 없이 스러진 목숨을 외면하는 건 똑같은 쓰레기가 되는 길이다.
특히나, 내가 돌린 시간 속에서 기회를 포착한 교황의 손에 희생된 그들을.
“제게 아공간 주머니가 있습니다.”
“서두르자꾸나.”
성혈 쪽으로 손을 뻗은 신수가 화급히 돌아보며 외쳤다.
“만지면 안 된다! 허락되지 않은 손에 닿으면 성혈이 소멸하는 주술이 걸려 있다.”
발견한 이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없어지라고 말이다.
신수가 입술을 물어 당겼다.
“족쇄를 풀고 넋을 위로하려는 일도 허락되지 않는 것인가.”
그 어감은 꽤 묘했다.
아공간 주머니에 활을 던지려다 멈칫하고 물었다.
“혹시 그 일이 결정체를 부수는 겁니까?”
“그래. 결정체는 영혼을 속박한다. 그것이 깨어져야 족쇄가 풀려 다시 고리로 돌아갈 수 있게 돼.”
나는 슬쩍 시선을 내렸다.
손끝의 감각에 바짝 집중해 깃털만 한 힘을 실어 다리를 두드려 보니 묵직하게 아팠다.
“아악.”
“일단은 속히 빠져나가고 교황의 접근을 막는 수밖……, 뭐하냐?”
“이걸로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요?”
* * *
사샤는 신중하게 꽃을 골랐다.
샤를 님이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직접 만든 화관을 선물해 드릴 생각이었다.
[좋은 계획이야. 샤를이 아주 좋아하겠는걸.]
대단한 숙부님으로부터 ‘대단하구나.’라는 칭찬을 듣고 수줍게 손을 꼬고 있던 사샤는 이어진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들었다.
[음. 마침 적당한 마도구가 있단다.]
그렇게 받은 건 무려 시간의 흐름을 멈추는 투명한 유리 보관함 형태의 마도구였다.
‘숙부님께서 마도구도 주셨으니까 더 예쁘게 만들어야 해.’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화관을 만드는 자그마한 손은 군데군데 상처가 나 있었다. 가시를 모두 제거한 줄기에도 쓸릴 만큼 연한 탓이다.
따끔거리는 고통에도 묵묵하게 매진한 아이는 마침내 그럴듯한 화관을 완성했다.
입을 벌리고 뿌듯하게 쳐다보다가 서둘러 보관함에 화관을 조심조심 넣었다.
‘완성했다고 말씀드리면 좋아하시겠지?’
작은 보폭으로 아이는 열심히 달렸다. 걸음 소리마저 모두 잡아먹을 정도로 푹신한 융단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지만 드디어 도착했다.
숨을 돌리고 이제 문을 두드리려는데, 안쪽에서 “그래.”라는 말이 들려왔다.
문으로 막힌 데다 낮은 목소리라 순간 멈칫한 아이는 곧 납득했다.
‘오늘은 피곤하신가 봐.’
어떻게 아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숙부님은 늘 제 방문을 알아챘다. 그러니 숙부님이 맞을 터였다.
아이는 손을 위로 뻗어 문고리를 돌렸다.
손가락 한 마디가량 열린 문 사이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리반이었다.
“리엔타 공작이 황제에게 교황과 제 감시를 자청한 이유는 분명 이상한 기류를 읽었기 때문일 테지.”
그다음 목소리는 사샤에게 친절한 또 다른 보좌관의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가 교황을 감시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도리어 공작의 발만 묶인 셈이 되었습니다.”
“공녀님으로부터 벌써 이틀째 소식이 없으니 이를 어떡해야 할지…….”
“주군께서는 어떠셨습니까?”
“보기로는 침착하시지. 하지만 어디 겉만 보고 짐작……, ……사샤 님.”
“무슨 말이에요?”
사샤가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샤를 님께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아닙니다. 공녀님께서는 연락하는 걸 깜빡 잊을 정도로 무척 즐거운 여행을 하고 계신 것이겠지요.”
리반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사샤는 이것을 알았다.
아버지에 대해 물을 때 선황비가 보인 얼굴과 똑같았다.
문고리를 여전히 꼬옥 붙잡은 채 사샤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리반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명백한 실책이었다.
칼릭스의 집무실이기도 한 데다, 사샤는 반드시 허락을 구하고 들어오는 아이였으므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소리 없이 숨을 들이켜며 눈을 뜬 리반이 무슨 말이라도 하고자 입을 연 순간이었다.
“사샤.”
“숙부님!”
아이는 다시 힘껏 달려가 매달렸다. 늘 친절하고 상냥한 숙부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샤를 님, 여행가신 거 아니죠?”
칼릭스는 새하얗게 질려 저를 붙잡은 작은 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럼…… 어디에 계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