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31화 (231/232)

에필로그 1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이것은 모함이네! 황위를 욕심낸 칼리스의 계략에 모두 속은 거란 말일세!”

안토니오는 처형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성토했으나 확실한 증거와 더불어 오래된 심증이 있었기에 귀담아듣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나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 법.

모두의 시선이 제게 쏠리기를 염원했던 안토니오의 소망은 이뤄졌다. 비록 그것이 그의 죽음으로 얻어낸 것일지라도.

처형이 진행된 장소는 다름 아닌 신전이었다.

한 명은 흑마법과 깊은 연관이 있고, 한 명은 흑마법으로 제작되었을 확률이 높은 독약을 사용하였으므로 신전의 고루한 방식을 차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신전에서 처형되다니.’

자연스럽게도 참석한 모두의 머릿속에 이 기억은 또렷이 남아 신전은 오래도록 오욕을 씻어내지 못했다.

여러 일이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언제나처럼 차곡차곡 흘렀다.

그렇게 일주일.

후일, 제국 알로페에 유례없는 부흥기를 열었다고 회자되는 황제의 즉위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 * *

“어떠십니까, 공녀님?”

마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이전에 칼릭스와 함께 방문했던 바로 그 의상실의 주인이다.

‘즉위식을 워낙 촉박하게 잡아서 다른 사람들은 입던 옷 입고 가야 할 테지. 나만 새 옷 맞춰 입는 게 좀 얍삽하긴 하지만…….’

우리 애가 무려 황제가 되는 날이란 말이다! 눈에 담고 손에 닿으면 그날을 곧장 추억할 수 있는 즉각적인 매개체가 필요한 인간은 기꺼이 얍삽이가 될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고작 일주일, 아니 실질적으로는 닷새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일 내에 옷을 완성해야 하는데 어떡하나 끙끙대고 있던 때.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시일은 얼마나 소요될 예정입니까?]

[두 달, 아니 한 달. 아니, 아니. 보름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마담이 어째 일주일 전보다 눈 주위가 퀭하고, 안색이 초췌해진 것 같은 건 내 착각이 분명하다.

그녀는 작업 속도를 1/4까지 줄일 수 있는 능력자였다.

“제 미천한 능력으로 공녀님의 심미안을 충족시킬 수 있을 리 없을 테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으실지요?”

“흠.”

나는 턱을 쓸며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완벽해.”

“신이시여.”하고 질끈 눈을 감은 마담이 덧붙였다.

“제 작업물이 공녀님의 심미안에 부합했다는 것이 너무도 기뻤답니다.”

과연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호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리도 옷에 진심인 사람이라니. 앞으로도 새 옷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야겠다.

“수고했어.”

“별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감사한 것을요.”

인사한 마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도 빠르게 움직였다.

“공녀님! 늦으셨습니다!”

“미안, 미안.”

오늘의 비밀 접선은 자유롭다.

칼릭스가 사샤를 데리고 황성에 간 덕택이다.

“그럼 지금부터 사샤 님께서 대공저에서 지내시는 마지…….”

집사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짚어 주었다.

목울대를 크게 울렁인 리반이 집사를 대신해 말을 이어갔다.

“사샤 님께 대공저가 집으로서 기능하는 마지막 날을 기념할 깜짝 파티를 마지막…….”

형체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아랫입술을 말아먹은 리반이 끝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다른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말을 맺었다.

“마지막 점검을 시작할 시간이로군.”

여기저기 요기조기.

뜯어먹을 기세로 우리 셋은 나란히 도끼눈을 뜨고 열심히 점검했다.

그로부터 꼭 한 시간 뒤.

마차가 저택 대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저런.”

젊은 나이에 벌써.

안타깝게 바라본 나는 위로를 건넸다.

“그럼 리반은 휴식을 가질 예정인가?”

“아니요? 제가 사샤 님 테라피의 신봉자인 것을 잊으셨습니까?”

꽥 소리 지른 리반이 다시 긴장된 얼굴을 했다.

“그럼 건투를 빌자고.”

집사는 자못 미안한 기색이었다.

“공녀님께 너무 무거운 책임을 떠넘긴 건 아닌지…….”

“아니야. 집사. 여러 시뮬레이션에서 내가 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웠는걸.”

그렇다. 내 임무는 막중하다.

식사 시간이 아닌데도 사샤를 다이닝룸까지 데려오는 일을 해내야 한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고 삐걱거리며 현관을 열었다.

마침 마차에서 아이가 내리고 있었다.

땅에 두 발을 디딘 사샤가 나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휘었다.

“샤를 님!”

그리고는 쪼르르 달려오는 것이다.

“숙부님과 함께 황성을 구경했어요. 내일 입을 옷도 입어 보았고요, 그리고…….”

나는 말없이 아이의 눈가를 엄지 끝으로 쓸었다.

아이의 버릇이었다. 눈물을 참기 위해 많은 말을 쏟아 내는 것은.

“즐거웠겠구나.”

“네. 즐거웠어요.”

하지만 다행인 건 슬퍼서 흘린 눈물은 아닌 것 같다는 거였다.

“많이 걷느라 지쳤겠는걸. 오늘 저녁은 일찍 드는 게 좋겠어.”

“괜찮…….”

그렇게 말하던 아이가 “아!”하고 외마디 탄성을 내더니 예쁘게 웃었다.

“저도 배가 고파졌어요.”

“…….”

칼릭스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묘하게 침통하면서도 일이 잘 풀려 다행이라는 복잡다단한 기분이 되어 복도를 가로질렀다.

다이닝룸의 문이 보일 즈음부터 나는 은근슬쩍 걸음을 늦췄다.

자연히 가장 앞서 걷게 된 아이가 문을 열었고.

파앙―!

어린이용 소음 절감 폭죽이 터졌다.

대롱거리는 오색 실을 머리에 얹게 된 아이가 눈을 깜빡이더니 다급히 물었다.

“오, 오늘 혹시 새, 생신이신 분이 있으신 거예요?”

“아니.”

사샤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아무 날도 아닌데…….”

“왜 아무 날이 아니지? 오늘은 사샤가 황자를 졸업하는 날이잖아.”

아이의 뺨에 붙은 자그마한 반짝이를 떼어주며 말했다.

“그러니 아주 특별한 날이 맞아.”

아직 손가락이 닿은 뺨이 움찔움찔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윽고 위로 동그랗게 올라갔다.

입술을 꼭 맞문 아이가 기쁘게 웃었다.

“네에.”

그 끝에 울음이 묻어 있었지만 분명 기쁜 목소리였다.

이전, 로제타가 조사해 준 ‘요즘 아이 취향’이 과연 사샤의 취향도 정조준했나 보다.

“자. 드디어 선물 증정식이야.”

칼릭스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미소는 세 명의 어른을 휩쓴 팽팽한 긴장감의 신호탄이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선물을 준비했길래……!’

이 생각을 저 둘도 지금 하고 있다는 데에 리반의 심약한 심장을 걸겠다.

선물 증정식이 모두 끝나고 우리는 조금 이른 식사를 했다.

후식으로는 케이크가 나왔다.

아이는 케이크를 보며 포스스 웃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이 있으셨습니까?”

“저는…….”

아이의 대답에 누군가는 눈동자를 떨었고, 누군가는 처량하게 고개를 떨구었으며, 누군가는 감격해 눈물을 글썽였고, 누군가는 “고마워.”하고 대답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무수히 남은 아이의 생일과 그밖에 분명 즐비할 여러 기쁜 일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을 이 결투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고.

* * *

즉위식 날이 밝았다.

일주일이라는 전례 없이 촉박한 시일을 준비 기간으로 둔 즉위식은―.

“……대단하네요.”

모든 귀족들의 경탄과 찬사를 끌어냈다.

“믿을 수 없어요. 어떻게 일주일 만에.”

“엘루이든과 리엔타의 자금력이라면 충분하죠.”

“어머. 돈만 있다고 가능한가요?”

“리엔타 공녀가 계시잖아요.”

“……아.”

그제야 그녀들은 공녀의 그 유명한 심미안을 떠올려냈다.

“정말로…… 엄청나네요.”

“그러게요.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데요…….”

공녀가 티파티 한 번 연 적 없는 탓에 실감하지 못한 그 유별난 재주가 시선을 잡아끄는 탓에 걸음이 자꾸만 멈추곤 했다.

하다못해 꽃마저도 완벽하고도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시선을 떼지 못하고 연신 대단하다며 탄성을 외친 그녀들은 무심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대단하잖아?’

사악한 계획을 실행시키고자 흑마법에 손을 댄 교황을 저지한 게 바로 공녀였다.

그래. 정말로 대단했다!

“……공녀님……, 달라지신 것 같죠?”

“그러언…… 것 같으시죠?”

“아마도요……?”

자신 없게 대답한 그녀들은 이윽고 말했다.

“그래도 정말 대단하신 것은 맞아요!”

그 전환된 생각은 누군가가 결심한 삶의 지향성과 맞닿아 있었다.

마치 축하하듯 나팔 소리가 울렸다.

즉위식의 거행을 알리는 소리였다.

* * *

사샤는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내디뎠다.

부드러운 융단에 금세라도 발이 엉키고 말 것 같았지만, 숙부님과 여러 번 연습한 덕택에 그러지 않을 것을 알았다.

지켜보는 여러 시선에도 위축되지 않는다.

혼자가 아니다. 숙부님과 함께 걸었던 길이었다.

[사샤. 앞으로도 같아. 혼자 감내해야 하는 길이 아니야.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함께 걷는다는 것을 잊지 말렴.]

숙부님은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시선을 맞추어 주셨다.

[그러니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어.]

마침내 도착한 길의 끝에서, 아이는 고풍스러운 푸른색 천 위에 놓인 황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본래 절차는 교황이 황제에게 황관을 얹어주는 것이지만 교황이 없으므로 스스로 써야 했다.

자그마한 손이 황관을 신중하게 집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무게가 무거웠던 탓일까.

‘어, 어떡해.’

손에서 놓친 바로 그 순간.

밑에서부터 분 바람이 사샤의 손에 다시 황관을 쥐여 주었다.

‘……신수 님이시다.’

아이는 희미하게 웃으며 황관을 쓴 채 돌아섰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아이는 놀라지 않고 웃었다.

어젯밤 어린이용 소음 절감 폭죽뿐 아니라 어른용 폭죽을 다 같이 바짝 긴장한 채 들으며 연습한 덕택도 있지만.

시선 끝에 있는 사람이 속삭인 다정한 목소리가 아이의 어깨에 포근히 내려앉은 덕택이다.

[내일이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황제 폐하가 될 사샤를 위한 선물이야.]

그 선물은 소중히, 정말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샤를리즈가 주었던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선물에는 감히 순위를 매길 수 없지만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은 있다.

아이가 받았던 가장 큰 선물.

그것은 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구걸하던 꼬질꼬질하고 더러운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잡아 준 손이다.

난생처음 느낀 따뜻한 온기였다.

아이는 그 다정한 온기 역시 아주아주 오래오래 간직할 자신이 있었다.

마치 이미 그래 본 적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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