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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32화 (232/232)

에필로그 2화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은 단연 화려했다.

단순히 귀족들이 참석한 장소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국민들도 이 기쁜 날을 맘껏 즐길 수 있도록 제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열렸다. 수도의 평민들도 눈을 휘둥그레 뜰 만큼 대규모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았다.

한때 가로막혀 샤를리즈가 절규하게 했던 소망이 이번을 기회로 이루어진 것은 여담이다.

빈민들에게도 풍족한 음식이 제공됐다. 당연히 돈은 받지 않았다.

귀족들이 가늠할 수 없는 엘루이든과 리엔타의 자금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 것은 당연했다.

* * *

―그런고로 내 지갑은 다시 홀쭉해졌다.

“어차피 안토니오가 준 거 갖고 있기도 싫었는데 마침 잘 됐지.”

나는 히히 웃었다.

그렇다. 나는 슬프지 않다!

사샤의 즉위식이 끝났는데도!

이유야 하나다.

사샤가 황성에 안 간다!

히죽히죽 웃으며 복도를 거닐던 중, 나는 돌연 끌려갔다.

정정한다. 끌려간 게 아니고, 새빨간 눈을 보고 내 발로 엉거주춤 따라갔다.

“어라.”

그곳에는 집사가 있었다.

‘이 상황 뭐지.’

어리둥절해 있는데, 눈물을 하도 흘린 탓에 새빨간 눈을 한 리반이 물었다.

“공녀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사샤 님, 아니 황제 폐하, 아니, 사샤 님께서, 아니…….”

이름을 부르고 싶은 소망과 한참 맞서 싸우던 리반이 코를 훌쩍이며 원망스럽게 물었다.

“……황성으로 가시지 않는 것을요.”

“나도 몰랐어.”

“정말이십니까?”

“그래.”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자 몇 번 더 되물은 리반이 눈물을 주룩 흘렸다.

“아무튼 다행입니다아아아. 우리 작고 어리고 소중하신 ……께서 홀로 황성에서 지내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와 사표를 낼까 고민했었는데요.”

“뭐?”

이번에는 내가 원망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순번도 모른 척하고 곁에 쭉 붙어 있을 기회를 엿본 나쁜 리반 같으니.”

집사도 내 말에 동조하는 듯 충격적인 얼굴을 했다.

“그, 그런 생각도 했었다는 것이지요. 그나저나 주군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을 텐데 어째서 말씀해 주지 않으신 걸까요? 우리를 위한 깜짝 선물이었을까요?”

그거 나도 궁금했다.

그에 대답한 것은 집사였다.

“가주님께서는 아마도…… 깜짝 파티의 목적을 단순히 즉위를 축하하는 것으로 아셨던 듯합니다.”

“아, 그랬지.”

선황제와 칼릭스는 유독 우애가 깊었다. 겨우 찾은 조카와 다시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니 굳이 강조하여 말하지 말자고 논의한 바 있다.

그래서 칼릭스 앞에서는 두루뭉술하게 파티를 설명하게 됐던 거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리반이 연신 혼잣말했다.

‘맞아. 그랬지.’

아리송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킨 나는 모임이 파하자마자 칼릭스를 찾았다.

“황제궁에 불 일부러 지른 거죠?”

“응. 그랬어.”

칼릭스가 순순히 실토했다.

나는 감탄하며 엄지를 척 들었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셨습니다.”

“고마워. 공녀 덕택이야.”

어쩐지 빈말 같지 않은 칭찬에 나는 모른 척 눈알을 굴렸다.

눈을 휘어 웃은 칼릭스가 문득 제안했다.

“축제, 가 보지 않을래?”

* * *

축제는 볼거리가 풍성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늦어 아이들은 찾아볼 수 없는 지금도 복작복작 사람이 많았다.

칼릭스와 나는 손을 꼭 맞잡은 채 거리를 걸었다.

무려 공 다섯 개로 저글링을 하는 능력자를 보기도 했고, 불을 삼키는 능력자를 목도하기도 했다.

“허어?”

내가 연신 이 소리를 내며 다녔다는 뜻이다.

한 가지 의문점은, 그때마다 칼릭스가 내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는 것이었다.

‘해괴한 소리 내고 다니는 게 부끄러워서 내 입을 막는 건가?’

흠.

하지만 칼릭스는 좋지 못한 방법을 선택했다.

난 시방 위험한 짐승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번은 국수를 빠르게 먹는 사람이 묘기를 선보이는 줄 알고 ‘허어?’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결국 내 음흉한 계략이 들키고 만 것인가.’

흠칫 굳어 흰자로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작게 소리 내어 웃은 칼릭스는 이번에도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사방에서는 흥겨운 춤곡이 연주됐다.

연인은 물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서로 손을 잡고 즐겁게 춤을 췄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함성 소리가 터졌다.

뭔가 하고 보니 청혼 순간이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고, 남자는 그녀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나도 같이 손뼉을 짝짝 치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언제 결혼할까요? 즉위식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반년쯤 뒤가 좋겠죠?”

대답이 없어 돌아보자 칼릭스는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마 제 청혼을 잊은 겁니까……?”

“아니.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어, 샤를.”

충격에 빠지려던 나는 ‘다행이군’의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저 청혼이 제가 한 것보다 더 멋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주기도 하고 말이지요.”

“내겐 샤를이 해준 청혼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청혼이었어.”

나는 뿌듯해져 웃었다.

칼릭스는 내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무심코인 듯 중얼거렸다.

“시무룩한 얼굴은 또 보고 싶지 않네.”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는 ‘허어?’를 하지 않았는데도 칼릭스는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맞닿기 직전, 그가 속삭였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사랑하고 있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마음이 흠뻑 쏟아졌다.

* * *

그날, 나는 꿈을 꾸었다.

직감할 수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고.

[흑마법에 대해 직접적으로 나열할 수는 없다. 대신 추측할 수 있도록 해 두지.]

[그래. 그럼 이렇게 해.]

샤를리즈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입술만 비틀어 웃었다.

[나는 너 때문에 죽게 된다고. 그럼 아무리 나라도 너를 피하지 않겠어?]

[…….]

[엮이기도 싫은 악연이잖아, 우리. 이러라고 기억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 아니었나?]

담담하게 이어지던 목소리가 문득 흔들렸다.

[그리고…….]

언제 동요했냐는 듯 샤를리즈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까딱였다.

[선황자와 내 접점도 지워.]

마지막으로 보았던 흔들리는 눈망울을 떠올리며, 샤를리즈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스쳐 지나가는 우연조차 없다면 더 좋겠지.]

[신도 관여할 수 없는 게 우연이니 그건 어렵겠군.]

[하.]

샤를리즈가 느른한 숨을 토해냈다.

[신조차 막을 수 없는 만남이라니 그것참 지독히도 낭만적인 인연이네.]

칼릭스는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렸다.

그리고는 느릿한 시선을 던졌다. 그 말을 한 사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잊어야 하는 얼굴을 잊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그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 * *

나는 바빴다.

이상한 일이다.

내 친구는 총 셋뿐인데 어째서 이리도 바쁜지 모를 일이다.

[공녀님.]

안토니오를 황위에서 끌어내렸다고 공식으로 발표한 지 채 한 시간이 지나기도 전. 라베트는 기별도 없이 방문했다.

평소 그녀의 성정을 아는 모두가 놀랄 일이었다.

그랬기에 나 역시 놀랐다가 이내 ‘아하’하고 웃었다.

[그래. 황제와도, 사랑하지 않는 다른 사람과도 결혼하지 않아도 돼.]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연신 살피던 라베트가 입술을 꼭 깨문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는 언젠가처럼 달려들며 안겼다.

[이리안이 공녀님의 이야기를 듣고 때마침 수도에 도착했지 뭐예요.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됐으니 당연히 첫 방문자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공녀님. 괜찮으신 거지요?]

선두를 빼앗겼다는 게 아쉽다는 듯 말한 로제타였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건 그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리안은 내 소식을 듣자마자 짐도 챙기지 못하고 허겁지겁 삯마차를 탔다고 한다. 올라오는 동안 걱정을 무척 많이 했는지 희게 질린 안색이 오래갔다.

[저 꼭 유명한 화가가 되겠어요. 그래서 공녀님의 일대기를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사람이 목표가 있으면 건설적으로 살 수 있기 마련.

나는 친구를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착잡함을 애써 감추곤 응원했다.

“어째선지 그 이후로도 계속 돌아가며 만나는 게 일상이군.”

물론 아직 어린 사샤를 대신해 섭정하는 칼릭스보다 바쁜 건 아니지만, 여하튼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귀족 몇은 칼릭스가 조카를 황좌에 앉히고 섭정할 야욕을 드디어 이뤘다고 생각하겠어.”

뭐, 어차피 사샤가 성년이 되면 곧장 깨질 오해이니 굳이 반박하려고 노력할 것 없겠다.

“게다가 악독한 이미지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지…….”

나는 산처럼 쌓인 초대장을 필사적으로 외면하며 조금은 그리운 기분이 되어 중얼거렸다.

[공녀님 이제 무도회 참석하시면 난리 날걸요? 친해지고 싶어서 말이에요.]

이클리스 백작이 된 로제타가 흐흥, 하고 웃었다.

[그래……? 로제타. 축하해.]

[흐응?]

[나는 사교계에 얼굴 잘 안 비치고, 로제타는 내 가장 막역한 친우 중 한 명이면서도 사교적이니 그대를 이곳저곳에서 초대하려고 소란일 테지.]

[……그렇네요.]

로제타는 그때 무척이나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봄 축제가 언제였더라…….’

안 봐도 그려지는 고난에 먼 산을 바라본 순간.

나는 언제 아련한 기분이 되었냐는 듯 눈을 번뜩였다.

“해가 저 각도로 기울었다는 것은 곧 오후 세 시가 된다는 뜻!”

바로 사샤의 공식적인 간식 시간이다.

바쁘게 서두른 덕택에 나는 1분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이좋게 청포도 생크림 케이크를 한 조각씩―물론 크기는 달랐다―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때였다.

“내가 왔다!”

신전의 위상은 바닥으로 처박혔는데, 신기하게도 신수의 신성력은 그대로였다.

모쪼록 다행인 일이었다.

아무래도 신수는 바깥나들이에 맛 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제도 있었구나.”

‘다 알고 온 티 팍팍 납니다.’

신수가 도대체 어떻게 내 순번을 아는지는 모를 노릇이었으나 줄기차게 끼어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그시 바라보자 슬쩍 시선을 피하던 신수가 돌연 외쳤다.

“그, 그러고 보니 소원권은 언제 쓸 작정이냐? 이젠 들어줄 수 있다.”

“…….”

“……설마 까먹었던 게냐? 진짜? 정말로 그랬다고?”

이번에는 내가 신수를 슬그머니 외면했다.

“이리도 존귀한 기회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느냐? 대답해 보아라. 너, 힘만 센 바보지?”

내 케이크를 우걱우걱 먹으며 신수가 혀를 끌끌 찼다.

“그렇다면 오늘도 못 쓰겠구나.”

소심하게 청포도를 씹으며 나는 어깨를 축 내렸다.

‘아, 그러고 보니!’

입을 막 열었다가 멈칫했다.

‘그런데 이걸 소원으로 쓰기는 아깝지 않나?’

“뭐냐?”

신수가 포크를 흔들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나는 빵가루를 얻어먹기 위해 조심스레 말을 골랐다.

“소원은 아니고, 단순한 궁금증입니다. 용의 심장은 모두 같은 모양입니까? 소원은 아니고, 단순한 궁금증입니다!”

앞뒤로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신수가 픽 웃더니 대답했다.

“그래. 그렇지. 인간도 그렇지 않더냐.”

‘그렇구나.’

그럼 내가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심장의 형태는, 역시나 칼릭스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신수 님. 차도 한 잔 드세요. 여기 있어요.”

“나는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무뢰한이 아니다. 그러니 샤를리즈의 것을 마시겠다. 네 것은 네가 마시거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아이를 바라보다 불쑥 중얼거렸다.

“소원, 오늘 쓰려고 합니다.”

“그래? 말해 보아라.”

차를 꼴깍꼴깍 마신 신수가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

나는 잠시 웃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들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앞으로도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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