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장롱 안에서 빛이 일렁이다
“헤이, 뭐 하는 거야? 움직임이 느려, 빨리빨리 하라고. Hurry up, hurry up.”
사장 아들 김래원은 되지도 않은 영어를 섞어 가며 경일의 옆에 딱 달라붙어, 살찐 볼살을 푸들푸들 떨어 대며 연신 잔소리를 퍼부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뒤룩뒤룩 살찐 얼굴에서 땀인지 육수인지 모를 땀이 흘러내렸다.
“네, 네, 네.”
경일은 김래원의 말에 재빨리 대답했다.
대답마저 느리면 그의 갈굼이 더 심해지는 건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몸은 움직이란 말이야. 눈은 몬스터 사체에 집중하고, 손은 빠르게 재활용 부위를 분류하라고. 그렇게 느려서야 월급 받는 게 미안하지 않겠어? 최소한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는 말아야 할 거 아냐?”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경일을 째려보고 옆에 딱 달라붙어 계속해서 재촉했다.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아,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경일은 재빠르게 몬스터 부산물을 분류했다.
김래원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한 번씩 작업장에 내려와 경일에게 잔소리를 퍼부어 댔다.
자신의 위치와 경일의 위치를 확실히 각인시키려고 하는 행동이었다.
조그마한 공장에 사무직이라고 해 봐야 사장과 부장인 김래원과 경리뿐이었다.
그리고 영업을 뛰는 두 명의 직원과 공장 직원 열 명이 전부인 작은 회사였다.
김래원은 몬스터의 역한 냄새를 막기 위해 혼자서만 비싼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 손에는 작은 확성기를 들고 연신 경일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확성기에서 나온 시끄러운 소리가 경일의 고막을 날카로운 창처럼 찔러 댔다.
‘씨발, 그때 회식을 왜 가서는. 분명 안 간다고 했는데, 지가 억지로 끌고 가서는…….’
경일은 그때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회식에 끌려간 걸 후회했다.
문제는 한 달 전 회식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을 쥐어짜기만 하는 회사가 처음으로 회식을 열었다.
사장이 고레벨 헌터와의 계약에 성공을 했기 때문이다.
여긴 다른 몬스터 처리 공장의 하청을 받거나, 저레벨 헌터들이 가지고 오는 몬스터 사체의 일부분을 사들여 운영하는 영세한 공장이었다.
그런데 이번 고레벨 헌터와의 계약으로 하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크게 기뻐한 사장은 직원들 단도리도 할 겸 돼지갈비 집에서 처음으로 회식을 열었다.
경일은 굳이 가고 싶지 않았으나 전 직원 참석이라는 김래원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참석을 해야만 했다.
문제는 경리가 술에 취하면서 일어났다.
평상시 공장 직원인 경일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경리가 술에 취해 온갖 끼를 부린 것이다.
“와, 경일 씨 너무 잘생겼다. 경일 씨는 생긴 걸로 봐서는 이런 곳에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흑~ 잘생긴 경일 씨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을 보면 내 가슴이 너무 아파.”
술이 취한 경리가 자신의 큰 가슴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경일에게 은근하게 추파를 던졌다.
“헉!”
경리의 요염한 모습에 남자들이 숨을 크게 들이셨다.
이에 김래원이 화난 눈초리로 사람들을 째려보자, 모두 각자 앞에 놓인 소주잔으로 눈을 깔았다.
그가 경리를 꼬시려고 별 지랄을 다하고 다녔다는 걸 알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이라 경일은 절대 경리와 엮이기 싫었다.
자리까지 옮겨 가며 경리를 피했으나, 그럴수록 그녀는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거침없이 경일에게 돌진했다.
최대한 피한다고 노력했지만, 결국 김래원이 폭발했다.
경리를 자신의 애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그가 그 꼴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김래원은 자식이 두 명이나 있는 유부남이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자신의 눈에 비루하게만 보이는, 피비린내 나는 몬스터 사체나 분류하던 놈에게 자신이 침을 바른 여자가 흥미를 보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자존심이 상했다.
평소 김래원은 사장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직원들을 무시하고 차별하기 일쑤였다.
다들 더럽고 아니꼬워서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참고 일해야 했다.
20년 전 어느 날, 지구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대기 중에 균열이 생기며 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게이트에서 쏟아져 내린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몬스터였고, 순식간에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 나갔다.
몬스터의 힘은 막강했으며 오로지 먹이에 대한 본능만을 가지고 인간을 잡아먹었다.
인간은 기존의 무기로 대응했으나, 이계의 몬스터에게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많은 땅을 몬스터에게 내주어야 했고, 인간들은 계속해서 밀렸다.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전술핵을 사용했다.
지구는 방사선으로 병들어 갔다.
점점 희망을 잃어 가는 인류에게 변화가 탐지됐다.
신체 능력의 리미터를 해제한 뉴 인류 즉, 각성한 헌터가 나타났고, 그들이 몬스터와 싸웠다.
그리고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게이트가 열리는 곳을 탐지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게이트가 열리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에 헌터들이 먼저 들어가 던전을 폐쇄시켰다.
그 덕에 인류는 문명을 지킬 수 있었고, 최소한의 손해로 몬스터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에 입은 상처가 너무도 컸다.
지구의 많은 지역이 핵으로 오염되었고, 일부는 몬스터에 뺏겼다.
경제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사람들의 삶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경일이 20년 전 부모님을 잃었을 때, 그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이던 그는 치열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살인 빼고는 모든 걸 해 봤을 만큼 그는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
김래원이 그를 잡아먹을 듯이 괴롭혀도 몬스터의 피로 얼룩진 부산물을 처리해야 하는 더럽고 힘든 일을 참고 묵묵히 일하는 이유는 월급 때문이었다.
더럽고 힘든 만큼 다른 곳에 비해 월급이 많았다.
“경일 씨, 이따위로 일하면서 다음 달에도 당신 자리가 계속 있을 거라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입니다. 내일은 오늘 분류한 수량보다 최소 1.5배는 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경일은 어쩔 수 없이 대답은 했지만, 속에서는 욕이 치밀어 올랐다.
‘오늘 내가 분류한 수량이 제일 많아. 이 이상 어떻게 하란 거야. 돼지 같은 새끼야, 제발 내 옆에서 그 더러운 면상 좀 치워. 돼지 비린내가 몬스터 피비린내보다 더 독해. 씨발, 좆같아서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놈의 빚 때문에 어휴…….’
김래원은 괴로워하는 경일을 보고 비릿하게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가 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 시간이 됐다.
피로 얼룩진 몬스터의 부산물을 다루는 공장임에도 샤워 시설 하나 변변치 않았다.
그래서 공장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씻는 수밖에 없었다.
일을 마친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아침에는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어도 나는 몬스터의 피비린내 때문에 퇴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두 시간 거리의 집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김래원의 갈굼에 무리해서 일을 한지라 경일은 얼마 가지도 못하고 완전히 지쳐 버렸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버스를 타고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경일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코를 막고 인상을 찡그리며 눈치를 주었다.
이런 처지인데 버스를 타면 난리가 날 것은 빤한 일이었다.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 어릴 때는 나이만 들면 떵떵거리며 살 자신이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아진 건 1도 없구나.’
환했던 거리가 어둠으로 조금씩 물들어 갔다.
저녁 시간이 되자 거리에 행인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성질 급한 가게들은 아직 일곱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문을 닫는 곳도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삶은 팍팍했다.
경일은 조금 돌아가더라도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길로 걸어 산동네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집에 먹을 것은 많지 않았다.
없는 사람들의 주식은 라면이었다.
던전 관련 산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산업이 망하거나 힘들어졌는데, 유일하게 시세를 유지한 곳이 라면 회사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의 옥상으로 걸어 올라가니 작은 옥탑방이 보였다.
방문을 열자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훅 하고 덮쳐 왔다.
벽을 아무리 닦아 내도 습기로 인해 늘 곰팡이가 슬었다.
10월이 지나 11월이 되자 찬물로 목욕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족히 10년은 넘었을 세탁기에 작업복을 넣고 돌렸다.
세탁기는 힘에 겨운 듯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겨우 돌아갔다.
“큰일이네. 세탁기 소리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니 이제 얼마 못 버틸 거 같은데… 휴~ 하긴 너도 이만큼이나 버텼으면 할 만큼 했지. 그나저나 세탁기를 살 돈은 없고, 이제부터는 손으로 빨아야 하는 건가? 곧 있으면 겨울인데, 이거 큰일 났네.”
경일은 세탁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세탁이 끝나길 기다렸다.
내일 아침 축축한 작업복을 입기 싫으면 빨리 빨아서 말려 놔야 했다.
“무슨 회사가 직원 작업복을 한 벌밖에 안 주냐? 아니지, 한 벌이라도 나온 게 다행인 건가?”
수압이 약해서 샤워를 하려면 세탁이 끝나야 했다.
이 시간에 식사라도 하면 되지만, 저녁까지 몬스터의 피비린내를 맡으며 먹고 싶지는 않았다.
라면이야 10분도 안 돼서 끓일 수 있는데다가 되도록이면 저녁은 깨끗한 몸으로 먹고 싶었다.
덜덜거리는 세탁기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탈수를 마치고 멈춰 섰다.
“수고했다. 내일도 고장 나지 말고 힘을 내주렴.”
세탁기에서 작업복을 꺼내 널고 샤워를 시작했다.
걸어오면서 데워졌던 몸이 빨래를 하는 동안 식었다.
손과 발에 먼저 물을 묻히고 다음으로 가슴에 물을 묻혔다.
시린 느낌에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휴~ 앞으로는 더 추워지겠지? 그래도 쪄 죽을 거 같은 여름보다는 지금이 낫다. 샤워하는 동안만 추운 게 났지, 하루 종일 찜통 같은 더위는 사양하겠어.”
옥탑방은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추웠다.
더군다나 경일이 살고 있는 건물은 지은 지 20년이 넘은 건물이었다.
옥탑방은 건물 주인이 한 명의 세입자라도 더 받으려고 불법으로 지은 곳이었다.
건축비를 아끼기 위해 벽돌로 지은 것이 아니라 속이 텅 빈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집이라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추웠다.
여름에는 블록 안에 빈 공간이 한낮의 뜨거운 공기를 머금어 밤에도 집 안을 찜통으로 만들었고, 겨울에는 밖의 찬 공기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해 더욱 추웠다.
몸이 찬 물에 적응되자 씻을 만했다.
때 타월로 온몸을 박박 문질러 몬스터의 피비린내를 없앴다.
샤워를 끝내고 라면을 끓이고 밥상 앞에 앉으니 여덟 시였다.
다섯 시에 퇴근했는데 시간이 금방 지났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TV를 틀었다.
TV에서는 옛날 게이트가 열리기 전 풍족했던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를 방영하고 있었다.
방송국 역시 사정이 좋지 않아 옛날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 기억난다. 저 때가 좋았는데…….”
TV를 보자 어릴 적 행복했던 시절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이제는 희미해져서 부모님이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그 따뜻했던 느낌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함”
TV를 본 지 겨우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눈꺼풀이 무거워져 왔다.
이불을 덮고 자려고 했는데, 오늘 밤은 어제보다 기온이 내려간는지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이불을 하나 더 꺼내기 위해 장롱을 열었다.
헤진 이불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일은 이불을 두 개를 겹쳐 덮고는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었다.
밤이 깊어 가고, 다음 날로 넘어가는 정각 열두 시.
장롱 안에서 영롱한 빛이 일렁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