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게이트라니
자신이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벌이 뛰어난 것도 아닌 이상, 그가 갈 만한 회사는 이미 취직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번 공장만 해도 몬스터의 피비린내를 맡아야 하는 더럽고 힘든 일이지만, 여기라도 들어오려고 서로 부탁을 할 정도였다.
이 시대에 돈을 벌 가장 좋은 방법은 헌터로 각성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요원한 일이었다.
자신의 나이가 벌써 스물여덟 살이다.
보통 헌터로 각성할 수 있는 나이는 스물두 살까지였다.
그 나이가 넘어가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됐다.
헌터들은 98%의 확률로 스물두 살이 되기 전에 각성했고, 2%만이 스물두 살이 넘어 각성했다.
경일은 2%에 들어갈 만큼 운이 좋은 인생을 살아오진 못했다.
샤워를 끝내고 작업복을 빨았다.
라면까지 먹었음에도 아직 다섯 시가 되지 않았다.
“아, 몰라. 잠이나 자자. 피곤해 죽겠는데, 계속 우울한 생각만 떠오르고.”
경일은 자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자는 동안은 현실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꿈이라는 멋진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쁜 꿈을 꿀 때도 있고, 무서운 꿈을 꿀 때도 있지만, 좋은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잠을 자는 것이 이 막막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오늘 같이 힘든 날은 경치 좋은 조용한 곳에서 힐링 하는 꿈을 꾸고 싶었다.
윈도우 배경 화면 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자연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지내고 싶었다.
무려 20년을 고아로 치열하게 살아온 경일은 꿈속에서라도 쉬고 싶었다.
아직 어두워지려면 시간이 남았으나, 경일은 허름한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천을 덧대어 깁은 흔적이 많은 낡은 이불이지만 따뜻했다.
배가 고팠지만, 지금은 잠이 더 고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일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환했던 낮이 지나고 저녁이 왔다.
많이 피곤했는지 그는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지 그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왔다.
어느 순간부터 장롱 문틈 사이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빛은 경일의 얼굴을 비추었다.
눈에서 느껴지는 눈부심에 조금씩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전등을 안 끄고 잔 거야? 한 푼이라도 아껴 할 판국에…….’
경일은 전기를 낭비했다는 것에 살짝 짜증이 일었다.
잠에 취해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반 정도 뜨고 일어나 전등 스위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얼른 전등을 끄고 다시 꿈속으로 갈 생각이었다.
딸깍!
분명 전등을 껐는데 눈앞이 더 밝아졌다.
전등이 켜진 탓이었다.
“뭐야?”
경일은 아무 생각 없이 다시 한번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어두워졌지만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다.
빛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딸깍, 딸깍!
여러 번 전등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 이게 뭐지? 왜 안 어두워지는 거지?’
반쯤 잠긴 눈을 완전히 뜨자, 방이 평소와 다르게 파란색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파란색? 웬 파란색? 누가 간판이라도 설치한 거야? 이런 산동네 끝자락에 가게를 여는 미친놈이 있다고? 그나저나 방에 간판 불빛이 다 들어오게 설치하면 어쩌자는 거야? 나 원 참.’
경일은 어쩔 수 없이 잠을 몰아냈다.
어느 정도 잠이 깨자 창밖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다르게 밖은 어두웠다.
‘어?’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일이 다시 방 안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그는 완벽히 잠에서 깨어났다.
장롱의 문틈 사이로 뻗어 나오는 파란빛을 이제야 인지한 것이다.
‘저게 뭐지? 왜 내 장롱에서 빛이 나는 거지? 장롱 안에 있는 건 기껏해야 이불하고 옷 몇 가지뿐인데…….’
그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장롱에서 가장 먼 곳의 벽에 등을 붙이고 섰다.
“저… 저… 저게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어느새 커진 눈으로 벽에 바짝 붙어 장롱에서 나오는 빛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여차하면 빠르게 도망갈 준비를 했다.
장롱을 집중해서 보고 있지만, 장롱은 그저 빛을 내고 있을 뿐 소리도, 움직임도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장롱에서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못하자, 두려움은 점점 호기심으로 바뀌어 갔다.
이 옥탑방은 그에게 몸이라도 누일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휴식처였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자신은 갈 곳이 없어졌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엉덩이를 잔뜩 뒤로 뺀 자세로 걸어갔다.
장롱의 문을 잡는 손이 덜덜 떨렸다.
‘쫄지 마, 쫄지 마. 여기서 쫓겨나면 갈 곳도 없어. 그러니 쫄지 마.’
덥석!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장롱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이제 열기만 하면 되는데, 이게 생각과 다르게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셋을 세고 여는 거야. 하나, 둘, 셋!’
경일은 셋을 세는 동시에 장롱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에 눈에 들어온 것은 믿을 수 없게도 게이트였다.
분명 게이트였다.
어릴 때 실제로 본 적도 있었고, TV를 틀면 늘 나오는 그 게이트가 맞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게이트에 비해 그 크기가 무척이나 작고 뿜어져 나오는 빛의 색깔이 다르긴 했지만, 그런 걸 알아차릴 만큼의 정신은 없었다.
그저 게이트가 주는 원초적인 공포에 휩싸였을 뿐이었다.
빠르게 도망을 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경일은 허겁지겁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와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그에게 게이트는 죽음, 그 자체였다.
게이트가 열리고, 열린 게이트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온 몬스터가 부모님의 목숨을 앗아 갔다.
어릴 때의 일이지만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살리려고 몬스터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은 그에게 씻지 못할 아픔으로 남아 있었다.
“아악!”
너무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순간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목을 몸 안으로 넣어 공처럼 계단을 굴렀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계단 끝까지 구르는 바람에 벽에 머리를 처박았다.
경일은 기절했고, 그는 눈이 뒤집힌 채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얼마 후.
“헉!”
크게 숨을 들이쉬며 정신을 차렸다.
“뭐지?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는 거지? 머리는 또 왜 이리 아파?”
경일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장롱 속의 게이트가 조금씩 떠올랐다.
“허억!”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자 입이 쩍 벌어지며 숨이 턱 하고 막혀 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얏!”
급하게 일어서는데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렸다.
아까 계단을 헛디디는 바람에 접지른 듯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경일은 아픈 발목을 질질 끌며 계단을 내려갔다.
마음은 급한데 발목 때문에 빠르게 내려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경일은 맨발이었다.
너무 놀라 미처 신발을 신지도 못하고 방에서 뛰어나왔다.
힘들게 계단을 내려와 건물 입구에 도착하니,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게이트가 바로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도망은 불가능해 보였다.
몬스터에게서 각성도 안 한 자신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다리로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은 없다시피 했다.
“하하하, 여자 손도 한 번 못 잡아 보고 죽는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경일은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의 깊은 무의식에서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자신도 부모님과 같이 운이 없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삶을 포기해 버리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인생의 마지막을 이런 식으로 맞이할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아등바등하게 살지 말 걸.’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했던 노력이 허무해졌다.
고개를 들어 옥상을 올려다봤다.
이제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
경일의 복잡한 감정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평소와 같이 흘렀다.
벌써 몬스터가 나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제야 경일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경보도 없이 게이트가 열린 거지? 요 몇 년간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잖아?”
게이트 탐지 기술로 헌터 협회는 게이트가 열리기 일주일 전부터 시민들에게 이 사실을 공표했다.
분명 자신의 집에서 게이트가 열린다는 발표는 없었다.
동네가 허름하긴 해도 분명 많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간혹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속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도시에서 이런 식으로 무방비로 열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은 헌터 협회의 게이트 탐지부에서 철저하게 탐지했다.
그러니 여기에 게이트가 열릴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자는 동안 게이트가 열렸으니, 게이트가 열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중간에 기절까지 했다.
자신이 기절했을 때 분명 주위는 깊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새벽의 여명이 밝아 오는 중이었다.
게이트의 빛을 인지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면 충분히 몬스터가 나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럼 게이트가 아닌 건가? 근데 게이트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지?”
일어서려다 발목이 시큰거려 다시 계단에 앉았다.
게이트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막상 다시 올라가려니 겁이 났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자신이 본 것이 게이트라 생각했다.
발목 때문에 도망도 못 가고, 그렇다고 올라갈 수도 없었기에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날이 점점 밝아졌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이 밝아 오자 저 멀리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평상시와 같은 일상의 모습들이 펼쳐지자 두려움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게이트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경일은 다시 한번 자신의 옥탑방이 있는 옥상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발목이 아프긴 했으나, 처음보다 고통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계단 손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재촉해 가며 한참을 오르고 나서야 옥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옥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고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옥탑방의 문을 조심히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장롱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냥 돌아갈까?’
장롱을 보자 두려움이 일었다.
하지만 자신이 나올 때와 똑같은 방을 보니 약간은 안심이 됐다.
조심히 걸어 장롱의 정면에 섰다.
드디어 그의 눈에 게이트가 들어왔다.
장롱 속에 게이트를 닮은 무언가는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옥탑방이 연한 파란빛으로 빛난다는 것 외에는 여느 때와 같이 모든 것이 똑같았다.
여전히 무섭기는 했으나, 처음과 같은 깊은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마음에 조금씩 호기심이 스며들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