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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4화 (4/300)

[4화] 던전으로 들어가다

“이게 뭘까? 아무리 봐도 생긴 건 게이트인데.”

조심히 장롱 문을 닫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현상을 알아보려 아무리 검색해 봐도 이런 경우를 찾을 수는 없었다.

분명 이와 같은 현상이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면, 뉴스에서 대서특필됐을 만큼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어… 그럼 이런 현상이 생긴 건 처음이란 이야기인데. 신고할까? 신고하면 보상금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경일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고한다고 해도 현상금이 걸린 것도 아닌데 별다른 보상이 나올 리가 없었다.

도리어 많은 사람이 몰려와 자신만 귀찮아질 것이었다.

만약 신고한다고 해도 곧바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혹시 이 신기한 현상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히 이게 뭔지 모르지만, 이건 대단한 현상이었다.

이런 걸 아무런 보상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은 조금 전에 죽음까지 각오했는데, 이대로 넘기기에는 왠지 억울했다.

이미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기존의 게이트 크기는 몬스터의 크기에 따라 정해졌다.

게이트가 크면 그만큼 큰 몬스터가 던전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겨우 가로세로 1m도 되지 않는 게이트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몬스터 중 가로세로 1m도 되지 않은 몬스터는 게이트가 열린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아는 몬스터 중 가장 작은 고블린도 키가 1m는 훌쩍 넘었다.

1m가 되지 않는 새로운 몬스터에 죽은 최초의 사람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확률은 낮아 보였다.

“작지만, 분명 게이트가 맞는 거 같은데. 그럼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경일은 호기심이 치솟았다.

이미 게이트 안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은 초창기 게이트가 열렸을 때부터 알려진 사실.

새로운 세계는 던전이라 불렸다.

헌터들이 던전으로 진입을 했고, 던전의 핵을 깨면 일정 시간 이후 게이트가 닫혔다.

던전에는 몬스터뿐만 아니라 여러 자원도 있었는데, 몬스터의 몸에서 나온 마나석과 여러 자원은 비싼 가격으로 거래가 되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다친 발목의 통증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

장롱 문 사이로 뻗어 나오는 파란빛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신고하는 건 보류하자. 위험한 거 같지는 않으니까. 이게 일생일대의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는데, 남들에게 좋은 일만 시켜 줄 필요는 없지. 일단 생각부터 해 보자. 이 게이트를 팔 수는 없을까? …아냐. 던전에 어떤 게 존재하는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팔 수는 없지. 만약 이대로 신고를 한다면 기껏 보상이라고 해 봐야 여기보다 조금 나은 곳에 방이나 구해 주고 말겠지. 만약… 던전에 엄청난 자원들이 있다면 죽 쒀서 개 주는 것밖에 안 돼.”

경일은 일단 신고를 하지 않기로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그러고는 장롱을 열고 게이트를 살폈다.

게이트가 자신을 강하게 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손을 뻗어 게이트 안에 넣었다.

게이트에 들어간 손 일부분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손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으나, 확실한 정보가 없는 이상 모두 쓸모없었다.

경일은 장롱 앞으로 가져온 의자에 앉아 게이트만 바라봤다.

아침이 밝아 오고 전등을 켠 방보다 밖이 더 밝아 질 무렵, 게이트가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냥 사라져 버렸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무리 장롱을 살펴봐도 게이트는 온데간데없었다.

이불 몇 개와 몇 가지 옷만 남아 있을 뿐.

갑자기 사라진 게이트에 경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을 뻗어 장롱 안 구석구석을 모두 만져 봤지만, 게이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게이트의 핵을 파괴한 것도 아닌데 사라지다니…….”

믿을 수 없는 일에 경일은 얼이 빠졌다.

한참을 생각해도 답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마치 팔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일확천금을 날린 기분이었다.

팔을 뻗을 용기가 없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찬스를 허망하게 보내 버렸다.

“이런 병신 같은 놈.”

자신에게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고아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판단이 빨라야 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빠르게 분석하고, 한 박자 빠르게 행동해야 남들보다 떡이라도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그가 이런 소중한 기회를 눈 뜬 채로 멍청하게 날려 버렸다.

“바보 같이 아무것도 안 하고 게이트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면서도 왠지 모르게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막상 사라지자 살점이 뜯겨 나간 거처럼 마음이 아팠다.

옥탑방에 다시 올라온 지 겨우 세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게이트에 들어가 볼 걸. 어차피 거지 같은 인생인데, 뭐가 무섭다고 안 들어간 거야. 아까워, 아까워 미치겠네! 멍청하게 사진도 한 장 안 찍어 놓고, 도대체 난 뭘 한 거야?”

경일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자신을 원망해 보지만, 속만 더 쓰릴 뿐이었다.

어제는 회사에서 잘리고, 오늘은 엄청난 기회를 날리고.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놓친 물고기가 더 커 보이는 법이었다.

마음이 답답해 계속 이불킥만 날리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그건 뭐였을까?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으니, 게이트가 아닌 건가? 그럼 도대체 뭐냔 말이야? 내가 귀신에 씌어 헛것을 본 건 아닐까? 맞아, 내가 워낙 꿈꾸는 걸 좋아해서 실감 나게 꿈을 꾼 거야.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어.”

경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한바탕 꿈을 꾼 거라 생각했다.

꿈이라고 생각해야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하지,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었다.

일종의 정신 승리였다.

꿈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 어느 순간 진짜 꿈이 아니었을까 하고 반신반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멍한 채로 하루가 지나갔다.

밤이 됐지만, 경일은 잠들지 못했다.

혹시 다시 게이트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에 장롱만 보고 있었다.

어둠이 깊어지고 드디어 경일이 그토록 원하던 일이 일어났다.

게이트가 다시 열린 것이다.

장롱의 벽에서 서서히 열리는 게이트를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경일은 온종일 다시 한번 게이트가 열리면 들어가 보리라고 굳게 다짐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게이트가 열리자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이야. 정신 차려!”

경일은 마음속에 스며든 두려움을 억지로 밀어냈다.

“거지 같은 인생, 지금 죽어도 하나도 아쉬울 것 없다. 오히려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또다시 기회를 놓쳤다가는 제정신으로 살지 못할 거야.”

그는 옥상에 굴러다니는 것 중 단단해 보이는 나무 작대기 하나를 들고 게이트로 몸을 밀어 넣었다.

점성이 있는 물을 통과하듯 경일의 몸은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순식간에 게이트 안의 세계, 던전으로 들어왔다.

슬라이딩하듯 통과한 뒤, 얼른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가지고 온 나무 작대기를 단단히 쥐고 위로 들어 올렸다.

무엇이든 다가오기만 하면 후려칠 거라는 분위기를 진하게 피웠다.

한참이 지났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 작대기를 들고 있던 팔에서 조금씩 힘이 빠졌다.

그제야 주위의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숲이었다.

적당한 햇살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평화로워 보였다.

두려움을 밀어내고 주위를 경계하며 숲을 걸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숲인지,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가 걸어가는 길이 작은 길이 되었고, 그가 쉬었던 곳이 휴식처가 되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풀들이 싱그러운 빛을 냈고, 온갖 종류의 꽃들이 노랑, 빨강, 보라 등 각각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고 있지만, 눈앞에 넓게 펼쳐진 들판에 위험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공기에는 상큼한 향기가 났고, 숨을 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게이트 안의 던전이라니…….”

던전 안에는 여러 형태의 자연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경일은 몸을 숙여 흙과 식물을 만졌다.

생생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이 분명 꿈이 아니었다.

늘 치열하게 살아왔던 경일은 이런 평화로운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치유가 되었다.

경일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며 주위를 걸었다.

눈앞의 풍경이 아름답고, 보기에는 위험이 없을 거 같아도 그는 여전히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아는 던전은 몬스터의 서식처였으니까.

인간을 한입에 씹어 삼키는 몬스터가 살아가는 곳이었다.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죽는 게 억울할 정도로 내 인생이 아름다운 건 아니었잖아.’

이런 생각은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계속해서 던전을 탐색할 힘을 주었다.

걸어가는 그의 눈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보였다.

분명 사과로 보였다.

아니, 사과가 맞았다.

단지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생각에 사과라고 말하는 것이 애매했을 뿐이다.

손을 뻗어 조심이 사과를 쓰다듬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사과의 촉감과 똑같았다.

경일은 자신이 과일을 먹어 본 지가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던전 브레이크로 무너진 사회를 복구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사회를 복구하는 것에 모든 역량이 동원되었다.

그 이외의 것들은 자연히 무시됐다.

아니, 무시됐다기보다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혼탁해진 세상을 몇몇 강자가 모든 권력을 거머쥐었다.

자연히 인간이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은 무너졌다.

어느 정도 사회가 복구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한 번 권력을 쥔 세력들은 자신이 누리던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두 세력이 맞서며 어느 정도 사회의 합의점을 찾기는 했으나, 그런 과정을 거치며 중산층의 대부분은 몰락해 버렸다.

일부 사람들에게 사회의 모든 부가 집중됐고, 나머지는 가난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헌터가 되지 않는 이상은 밑바닥의 삶에서 벗어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몬스터에게 잠식당한 땅이 늘어나자,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이 비싸졌다.

경일과 같은 사람들에게 과일은 그림의 떡이었다.

우리 선조들이 명절에나 고깃국을 먹을 수 있었듯이, 지금의 과일이 그런 존재였다.

경일은 사과에서 나는 상큼한 냄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입 베어 먹었다.

직장에서 잘리고, 하루 하고 반나절 동안 먹은 것은 물밖에 없었다.

경일은 우적우적 사과를 씹었다.

사과가 맞았다.

분명 사과가 맞았는데, 이상했다.

사과란 게 이렇게나 맛있는 건지 처음 알았다.

사각거리며 씹히는 식감에 달콤한 과즙이 입속에서 터졌다.

사과의 청량함과 상큼함, 그리고 고급스러운 단맛까지.

순식간에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의 사과를 모두 먹어 치웠다.

그 순간,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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