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각성?
[당신은 각성에 성공하셨습니다. 지금의 상태를 확인하려면 상태창이라고 생각하거나, 외치세요.]
그리고 또 다른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던전 사과를 먹었습니다. 몸의 활력이 높아집니다.]
“가, 각성이라니? 이 나이에 내가 각성을 하다니… 우… 우와와와와와와!”
경일은 너무 좋아 이곳이 던전이라는 것을 잊고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활력을 높여 주는 던전 사과를 먹은 터라 몸이 가볍고 힘이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참을 방방 뛰며 기뻐하던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상태창을 불렀다.
<상태창>
레벨 ???
힘 (11/12)
민첩 (12/13)
체력 (10/12)
마나 (10/10)
“응? 이게 뭐지?”
너무도 간결한 내용의 상태창에 경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아는 상식으로는 상태창은 저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스킬, 특성, 또는 직업 등 여러 가지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신체에 대한 것만 나오는 상태창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가장 큰 문제는 수치였다.
힘 11, 민첩 12, 지능 10, 마나 10.
이건 일반적인 헌터의 신체 능력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반인의 신체 능력이었다.
보통의 헌터는 각성하는 순간, 최소 일반인의 다섯 배에 달하는 신체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훈련을 통해 자신의 신체 능력을 올리거나, 아이템이나 물약 등의 도움으로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각성했다고는 하지만, 헌터라고 말할 수 없는 수치인 것이다.
그냥 헌터라는 탈을 쓴 일반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게 뭐야?”
각성한 기쁨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의 마음에 실망감으로 가득 찰 무렵, 그의 눈에 이곳의 자연이 들어왔다.
그리고 각성 후에 보였던 메시지.
분명 사과를 먹고 활력이 높아졌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나무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래, 굳이 모든 헌터가 몬스터와 싸울 필요는 없지. 몬스터와 싸우는 이유가 다 돈을 벌기 위해서인데,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면 되는 거잖아.”
경일의 눈앞에 있는 사과들이 모두 돈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이건 일반 사과가 아니었다.
특별한 효능을 가진 던전 사과였다.
효능도 효능이지만, 맛이 너무나 뛰어났다.
누구라도 한 번 먹어 보면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의 맛이었다.
기존의 던전에서는 여러 가지 자원이 나왔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몬스터를 죽이면 얻을 수 있는 마나석이었다.
에너지원으로 쓰였고, 그 외 여러 가지 식물과 광석, 그리고 일부 몬스터에게서는 먹을 수 있는 고기까지 얻을 수 있었다.
던전의 자원은 지구의 자원과 다르게 특별한 효능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방금 전 사과와 같이.
“대박인데! 이것만 내다 팔아도 먹고 사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겠어. 갑질하는 새끼들을 안 봐도 되고. 인생이 쫙 핀다는 게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였구나.”
장롱 속의 게이트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악한 존재라 생각했다.
하루가 지난 지금은 자신의 비참한 인생을 바꾸어 준 최고의 선물, 그 자체가 되었다.
겁이 난다고 외면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던전에 들어온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한참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데, 무서운 생각이 훅 하고 머릿속에 밀려들었다.
‘게이트… 혹시 게이트가 사라진 건 아니겠지?’
게이트가 사라지면 영원히 이곳에 갇혀 살아야 했다.
이제야 돈을 벌 방법을 찾았는데, 게이트가 사라지면 이 모든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급하게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자,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게이트는 여전히 진한 파란빛을 내며 그 자리에 있었다.
“휴~ 다행이다. 사라지지 않아서 좋긴 한데… 근데 게이트가 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잖아…….”
이미 게이트가 한 번 사라진 걸 봤던 터라 걱정이 되었다.
영원히 이곳에 갇힐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옥탑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던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자신의 모든 것은 지구에 있었다.
게이트에 몸을 넣으려는 순간, 경일은 그대로 멈췄다.
“잠깐만, 내가 걱정할 이유가 없잖아. 게이트가 사라지면 또 어때. 지구보다 이곳이 훨씬 나을 수도 있는데. 온종일 힘들게 일해도 매일 끼니 걱정이나 해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온갖 무시나 당하고. 눈 뜨면 일하고 집에 와서 잠자기 바쁘고. 라면이나 먹고 사는 인생이 뭐가 즐겁다고. 아까 먹은 사과는 정말 맛있었잖아.”
경일은 힘들기만 한 자신의 삶이 떠오르자 다시 돌아가기 싫어졌다.
게이트를 발견한 순간, 쉽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던 이유도 삶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던전에 들어온 지금은 그런 초라한 삶을 다시 이어 가기가 싫었다.
사과만 먹고 살아도 한평생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먹은 음식이 부실하다 보니, 그는 늘 피곤했다.
라면을 주식으로 먹고살았으니 영양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워낙 피곤에 절은 몸이라 그런지, 사과가 주는 활력에 몸이 새롭게 깨어나는 기분을 느꼈다.
신체 능력이 형편없긴 했지만, 분명 각성을 한 것도 맞았다.
“혹시 장롱에 게이트 생긴 게 각성한 것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경일은 이곳이 꼭 자신을 위한 공간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게이트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한편으론 강하게 자신을 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았는가.
아무리 막가는 인생이라도 포악한 몬스터가 존재할 수도 있는 던전에 들어가는 결정을 무척이나 쉽게 내린 듯했다.
20년간 보아 온 던전은 각성한 헌터만 들어갔다.
일반인이 던전에 들어가는 일은 게이트가 생기던 아주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던전에서 헌터가 몬스터에게 물어 뜯겨 죽었다는 뉴스는 매우 흔했다.
살아남은 헌터들이 생생하게 증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던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 우울증, 불안 장애 등 여러 가지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많은 헌터가 몬스터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헌터 일을 포기하곤 했다.
일반인은 그런 이유로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던전을 너무 쉽게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곳에 들어와서 적응하는 시간이 너무 빨랐다.
자신이 두려움을 느낀 시간은 고작해야 한 시간 정도였던 거 같았다.
높은 레벨의 헌터도 던전에서 긴장을 놓지 못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자신은 이곳이 너무 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각성과 던전은 큰 관련이 있는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경일은 옥탑방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버렸다.
다시 몸을 돌려 숲속으로 걸었다.
두려움을 버리고 순수한 눈으로 숲을 바라보자 이 이상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정말 이쁘다. 자연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거였나?”
여기저기를 산책하듯 걸어 다니는데,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간 곳에는 넓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얼마나 물이 맑은지 물속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여러 물고기가 평화롭게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경일이 물가로 다가가자 물고기가 오히려 다가왔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어 보였다.
[던전 사과가 주는 활력 일부분이 몸에 흡수되고 나머지는 사라졌습니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르자, 몸이 살짝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평소 자신의 몸 상태였다.
“신기하네. 이게 말로만 듣던 던전 과일의 효능이구나. 일정 부분이 흡수된다고 하니 꾸준히 먹으면 몸에 좋겠네.”
긴장이 풀리자 배가 고파 왔다.
“사과를 하나 더 먹을까?”
경일이 사과나무로 발을 돌리려는데 개울 속에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였다.
“내가 물고기를 먹어 본 지가 얼마나 됐지?”
물속에 넣은 손을 오므려 물고기를 조심히 들어 올렸다.
사람에게 경계심이 전혀 없는지 물고기는 너무 쉽게 잡혔다.
“와, 이게 되네. 물고기를 손으로 잡다니.”
경일은 입고 있는 티를 벗어 잡은 물고기를 담았다.
한 끼 먹기에 충분한 양의 물고기가 잡혔다.
“싱싱할 때 먹어야지.”
경일은 물고기를 챙겨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사라지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곧 그 생각을 날려 버렸다.
“뭐, 게이트가 없어지면 여기서 살면 되지. 사과에 물고기에 지천에 먹을 것이 깔렸는데, 뭐가 걱정이야.”
던전 사과가 정말 맛있었는데, 그럼 이 던전 물고기는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게이트로 걸어갔다.
게이트는 여전히 존재감을 풍기며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었다.
“계속 보다 보니 게이트도 자연의 한 부분처럼 보이는구나.”
이곳의 자연에 게이트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느낌이었다.
경일은 물고기를 챙겨 게이트를 넘어갔다.
그러자 익숙한 자신의 옥탑방이 나왔다.
작은 물고기를 다듬는 데에는 굳이 칼이 필요가 없었다.
비늘을 벗긴 뒤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냈다.
그러고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뒤, 밀가루를 묻혀 기름을 부은 프라이팬에 올렸다.
기름에 튀겨지며 나는 소리에 입안에 침이 고였다.
“맛있겠다.”
경일은 잡아 온 물고기를 모두 프라이팬에 올렸다.
약간의 소금만으로 간을 한 물고기가 노릇노릇 맛있게 익어 갔다.
기름의 고소한 냄새와 물고기 특유의 냄새가 섞여 코끝을 간지럽혔다.
급한 마음에 가장 잘 익어 보이는 것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아, 뜨거.”
급하게 입에 넣은 물고기 튀김은 너무 뜨거웠다.
후후 입김을 불어 가며 물고기를 씹었다.
튀김옷이 바싹하고 씹히고 그다음 물고기의 맛이 느껴졌다.
비린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풍부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그의 기대대로 물고기는 너무 맛있었다.
물고기를 먹고 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 버들개를 먹었습니다. 비타민 D를 공급합니다. 면역력이 높아져 병에 걸린 확률이 감소합니다.]
“와, 물고기가 무슨 영양제야? 대단하네. 맛까지 끝내주고.”
오래간만에 먹는 튀김은 너무 맛있었다.
팔아도 충분히 먹힐 만큼 맛이 좋았는데, 어느새 프라이팬 위의 물고기가 모두 경일의 입으로 사라졌다.
“와, 정말 잘 먹었다. 이 맛있는 걸 혼자 먹는 게 미안할 정돈데.”
배가 부르자 근심 걱정이 없어졌다.
경일은 한숨 자려다 생각을 바꿨다.
게이트 안의 세상이 궁금했다.
이왕 집으로 온 김에 경일은 가방을 꺼내 옷과 라이터, 칼 등 야영에 필요한 것들을 담았다.
워낙 가난한 동네라 도둑이 들 걱정은 없었지만, 문단속을 단단히 했다.
자신의 최고의 보물, 게이트가 있는 곳이니 이전처럼 대충 문을 닫고 다닐 수는 없었다.
게이트를 타고 들어가는 느낌이 이제는 익숙했다.
여러 번 해 본 것처럼 자연스럽게 던전으로 들어갔다.
숲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경일을 환영해 주었다.
“일단 잘 곳을 먼저 마련해야겠지.”
경일은 캠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우선 거점부터 정하기로 했다.
게이트를 계속 오가면서 생활을 해야 할 텐데, 탐험가처럼 무작정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이 가장 중요하니, 개울을 끼고 있는 곳으로 정하자.”
그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로 향했다.
경일은 개울로 가서 적당한 곳을 물색했다.
개울을 따라 내려가니 적당한 공터가 나왔다.
땅도 고르고 적당히 넓어 거점으로 삼기에 아주 좋아 보였다.
“좋아, 여기로 결정했어. 이제부터 이곳은 내 땅이야.”
돈을 모아 땅과 집을 사는 게 경일의 소원이었다.
아니, 서민 대부분의 소원이기도 했다.
경일은 비록 지구에서 소원을 이루지 못했지만, 여기에서 땅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