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다가오는 위험
던전에서 자신이 본 사과나무만 해도 열 그루가 넘었다.
한 그루당 대충 봐도 100개 이상의 사과가 열려 있었다.
그것만 다 팔아도 천만 원이 넘었다.
다른 과일도 있으니 이제부터 먹고 사는 문제는 사라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경일의 발걸음이 춤을 추었다.
* * *
“이게 뭐야? 이게 뭔데, 이렇게 맛있는 거야?”
곽마권은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는 눈이 커졌다.
그는 신화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그는, 작은 파티로 시작해 중소 길드로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나타난 지가 벌써 20년 전이었다.
이미 사회는 개편되었고, 기득권자들은 모두 자리를 잡은 상황.
기득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도전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싹이 보일 때에는 가차 없이 그 싹을 잘라 버렸다.
곽마권은 단단하게 굳어진 기득권자들의 카르텔을 뚫고 작은 파티에 불과하던 것을 중소 길드까지 성장시켰다.
지금까지 맨땅에서 하나의 일가를 이룬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수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곽마권이 그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는 확실히 인정받을 만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법치라는 기본적인 개념이 희박한 사람이었다.
곽마권은 게이트가 열리기 전 세상과 게이트가 열린 후의 세상 모두를 경험해 봤다.
그는 게이트가 열린 후의 세상이 더 좋았다.
강력한 공권력과 법치가 살아 숨 쉬는 사회는 자신과 전혀 맞지 않았다.
아마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으면 그는 인생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냈을 것이다.
그런 그가 길드를 키워 낸 과정이 깨끗할 리가 없었다.
몬스터로 인해 사회의 기본 질서가 무너졌다.
빈부의 격차는 커졌으며, 온갖 불법이 판이 치는 사회가 됐다.
한마디로 돈이 최고인 세상이었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이런 사회는 곽마권의 성정에 꼭 맞았다.
그는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의 악랄함이 퍼져 나갈 수록 일은 더욱 쉬워졌다.
곽마권이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생겨날 정도였으니까.
그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는 철저히 고개를 숙였다.
이득을 혼자 독차지하지 않고 자신이 뒤를 봐주는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런 그를 권력자 중의 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 했다.
곽마권은 자신이 바라 마지않던 든든한 동아줄을 잡았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큰 이득이 있는 일에 발을 담글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시절이 힘들었지, 권력을 등에 업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돈 버는 것이 이렇게도 쉬운 거였는지 그도 의아할 지경이었다.
길드는 나날이 성장했다.
그 결과, 그의 길드는 중소 길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았다.
곽마권은 길드를 중형 길드까지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 세계는 감히 자신이 도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높은 레벨의 헌터이긴 했지만, 그 위의 세계로 올라가면 자신과 같은 레벨의 헌터는 많았다.
딱 여기까지가 자신의 한계이자, 마음껏 큰소리치고 살 수 있는 세계였다.
이 동네에서 누구도 건들지 못할 만큼 자리를 잡았고, 매달 쏠쏠한 수익이 들어왔다.
길드를 키우는 것에만 노력하고 살던 그는 그것을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가 새롭게 눈을 뜬 세계는 미식이었다.
가난하게 자란 그는 유난히 식탐이 강했다.
맛있는 음식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는데, 남들보다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맛도 맛이지만 그는 기분 좋은 우월감을 느꼈다.
자신 정도 되는 사람이 한 끼를 먹어도 최고급으로 먹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미식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그는 ‘섬세한 혀’와 동시에 ‘섬세한 미각’ 스킬까지 생겼다.
그런 그가 사과의 맛에 감동하였다.
좋은 것을 많이 먹어 본 자신이기에, 이 사과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이걸 누가 가져온 거라고?”
곽마권의 물음에 부길드장 이성호가 답했다.
“5팀장이 가지고 왔습니다. 사과가 너무 맛있어서 길드장님 드린다고 가져온 겁니다.”
사과는 5팀장의 부인이 하루 전 경일에게 산 것이었다.
5팀장은 퇴근 후 부인이 깎아 준 사과의 맛에 깜작 놀랐다.
길드장이 미식가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점수를 딸 생각으로 사과를 바친 것이었다.
곽마권은 사과 하나를 더 먹었다.
[던전 사과를 먹었습니다. 몸의 활력이 높아집니다.]
곽마권의 머리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그저 사과가 너무 맛있어 그런지,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높은 레벨인 그의 몸은 아주 예민했고, 분명 지금껏 먹어 왔던 사과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낌으로 구분해 냈다.
‘설마?’
곽마권은 사과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부길드장. 5팀장 좀 불러 봐. 그리고 이거, 던전 식물 전문가에게 맡겨 봐.”
“네, 알겠습니다.”
부길드장 이성호는 사과를 먹고 달라진 길드장의 분위기에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그의 성질을 알기에 곧바로 대답했다.
똑똑똑!
“들어와.”
노크 소리에 곽마권이 말했다.
길드장실에 들어온 건 5팀장이었다.
‘겨우 사과 따위를 바쳤다고 화가 난 건 아니겠지? 워낙 미식가로 알려져서 혹시나 해서 바친 건데, 괜한 짓을 한 건가? 이거 쓸데없는 짓을 해서 괜히 욕만 먹는 거 아냐? 아니야, 혹시 사과가 너무 맛있어서 칭찬하려고 부른 것일 수도 있잖아.’
5팀장은 사과를 바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장이 자신을 부르자, 기대감과 걱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길드장님.”
5팀장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어, 그래, 왔어? 자리에 앉지.”
곽마권이 자리를 권하자, 5팀장은 소파에 앉았다.
길드장의 목소리가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다.
“별건 아니고. 혹시 이 사과 어디서 구한 건지 알 수 있을까?”
“아, 네. 와이프가 얼마 전 시장에서 사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5팀장은 길드장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사과가 입맛에 맞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권위적인 길드장의 성격상 괜한 질문을 해서 화를 자초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몇 개나 샀지? 가격은?”
곽마권은 급하게 질문을 이어 갔다.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5팀장은 자신이 본 사과가 몇 갠지 생각했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하나에 만 원 정도에 샀다고 들은 거 같습니다. 사과 개수는 한 40개는 넘어 보였습니다.”
“40개가 넘어? 그것도 하나에 만 원?”
길드장의 무표정했던 얼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전문가에게 확인 차 사과를 보내긴 했지만, 자신의 섬세한 미각으로 판단하면 이 사과는 분명 던전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던전에서 나온 먹거리는 맛도 맛이지만, 그중 일부는 장복하면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되는 거로 알려져 있다.
헌터인 5팀장도 사과를 먹고 분명 몸이 가벼워졌을 것이다.
단지 비싼 던전 과일을 먹어 본 경험이 없고, 자신만큼 감각이 섬세하지 않아 느끼질 못 했을 뿐.
‘40개가 넘는 던전 사과를 한 명이 팔았다고? 그것도 일반 시장에서? 믿을 수가 없군. 아무리 급해도 하나에 20만 원이 넘는 걸 겨우 1만 원에 팔다니. 이렇게 귀한 걸 일반 시장에서, 그것도 헐값에 팔아넘겨? 파는 놈은 분명 던전 사과인 줄 알고 판 게 틀림없어. 몰랐다면 일반 사과 값으로 팔았겠지. 사과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인 만 원으로 판 걸 보면 분명 알고 있던 게 틀림없어. 던전 사과를 제값을 못 받고 헐값에 파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야. 아니면 만 원에 팔아도 상관없을 만큼 많은 던전 사과를 구할 수 있다는 건가? 아니면 자신이 던전 사과를 팔고 있다는 걸 숨기고 싶어 하는 건가? 던전 사과란 게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닌데… 도대체 놈의 정체가 뭐지?’
곽마권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심각해진 길드장의 표정에 덩달아 5팀장도 불안해졌다
‘그래, 길드장이 어떤 사람인데, 기껏해야 사과로 칭찬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남들은 비싸고 좋은 걸 바쳤을 텐데, 사과라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안일했어.’
5팀장은 길드장에게 잘 보이려고 한 행동이지만, 너무 하찮은 것을 바쳐서 길드장이 화가 난 거라 생각했다.
5팀장이 한창 걱정 중일 때, 길드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그래? 결과가 나왔다고? 그래, 알았어.”
자신의 생각대로 사과는 던전 사과가 맞았다.
심각해진 길드장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지금 당장 부길드장이랑 같이 가서 사과 판 놈을 데리고 와.”
“네? 무슨 말씀이신지?”
5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부길드장이 다 알려 줄 테니, 이만 나가 봐.”
5팀장이 나가자 곽마권의 얼굴에 커다란 웃음이 걸렸다.
“이건 기회야, 기회. 그것도 엄청난 기회. 어마어마한 돈 냄새가 나. 내 생각이 맞다면 이놈은 분명 던전 사과를 쉽게 딸 수 있는 던전을 알고 있을 거야. 시장에서 단돈 만 원에 파는 걸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확실해. 그런 무지렁이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이 귀한 던전 사과가 열리는 던전이라… 분명 던전에 있는 건 사과만이 아닐 거야. 만약 다른 자원도 풍부하다면 이건 엄청난 기회야.”
게이트는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었다.
던전 협회의 게이트 관리부의 사람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게이트의 생성을 탐지한다고 해도 100%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깊은 산속이나, 가끔 사람들이 발길이 닿지 않는 건물의 지하실이나, 이런 곳에서 생긴 게이트는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이 시대의 던전은 기본적으로 폐쇄가 정부 방침이었다.
저등급의 던전은 충분한 이용 가치가 있었으나, 무조건 폐쇄를 해야 했다.
그 이유는 던전 체인지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주 작은 확률로 낮은 등급의 던전이 고등급의 던전으로 체인지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체인지 된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다면 엄청난 피해가 일어난다.
고등급의 몬스터가 던전을 벗어나는 순간,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어느 길드가 던전을 폐쇄하지 않고 사적으로 이용하다 던전 체인지가 일어난 일이 있었다.
길드의 힘으로 고등급의 몬스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 결과는 작은 도시의 멸망이었다.
몇만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고, 도시의 기반 시설이 붕괴됐다.
하지만 그런 사건을 겪고서도 일부의 누군가와 길드는 던전을 폐쇄하지 않고 사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던전의 자원을 지속해서 캔다든지, 헌터를 육성한다든지 던전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했으니까.
곽마권은 사과를 판 사람이 그런 던전을 하나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만약 던전을 자신의 손안에 넣을 수 있다면 멈춰 버린 자신의 야망을 다시 한번 펼칠 수 있을 듯했다.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두었던 야망이 꿈틀꿈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기대감에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신화 길드는 전력을 다해 경일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금방 잡을 수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시장을 옮겨 다니는 경일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경일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오늘도 기분 좋게 사과를 팔러 시장으로 가고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