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분식점을 열다
인테리어 공사까지 끝났고, 이제 장사를 시작하면 되었다.
주방은 식당의 입구에 만들었다.
주 종목이 분식이라 사람들이 거리에서 서서 먹을 수 있게 매대도 만들었다.
가게 내부가 훤히 보여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오다니. 믿을 수가 없네.”
불과 두 달 전까지 경일의 삶은 어두웠다.
얼굴엔 늘 그늘이 져 있었고,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아우라를 진하게 풍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던전에서 나는 음식으로 잘 먹고 잘 잔 덕에 그의 분위기는 밝아져 있었다.
식당의 비품이 들어오고, 드디어 장사 준비를 끝냈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식당의 대형 냉장고 안에는 각종 음식 재료가 들어 있었다.
산동네 특성상 비싼 음식이 통할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 본 것도 아니고 해서 그가 생각한 건 떡볶이와 어묵 그리고 라면이었다.
라면이야 그가 태어나서 지겹게 끓여 본 터라 눈 감고도 끓일 자신이 있었다.
떡볶이 레시피는 인터넷만 쳐도 수백 개가 나왔고, 어묵탕 육수를 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각각의 요리에 들어갈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떡볶이의 비장의 한 수는 고춧가루였다.
던전을 탐험하면서 발견한 던전 고추는 거의 오이만 했다.
반짝반짝 빛을 내는 새빨간 색깔의 던전 고추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경일은 맛이 궁금해 던전 고추의 끝을 약간 깨물었는데, 입속에 퍼지는 쨍한 매운맛에 놀랐다.
지금까지 먹어 보지 못한 독특한 매운맛이 났다.
끝에 살짝 단맛이 도는 것까지 아주 좋았다.
입이 매운데도 은근히 다시 댕기는 게 묘한 중독성까지 있었다.
[던전 고추를 먹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줍니다.]
“스트레스 해소라, 좋구나!”
매운맛에 딱 어울리는 효능이었다.
“이걸 말려서 고춧가루로 만들어야겠다. 음식에 넣으면 엄청 맛있겠지?”
그 길로 경일은 던전 고추를 따서 햇빛에 말렸다.
바싹 마른 던전 고추를 절구에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경일은 설탕, 물엿, 고추장, 그리고 비장의 한 수인 고춧가루를 넣어 떡볶이를 만들었다.
지구의 평범한 재료에 던전 고춧가루가 들어갔을 뿐인데, 그 맛은 아주 특별했다.
매운맛이 치고 들어오면서 단맛이 나는 평범한 떡볶이인데 묘한 풍미가 올라왔다.
던전 고춧가루가 내는 맛이었다.
특이한 점은 매우면서도 입 안에 고통이 약했다.
매운 걸 못 먹는 사람도 매운맛을 즐기면서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정도면 아이들도 잘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일단 단맛을 조금 더 넣어 아이들의 입맛에 맞추자. 이 정도 맛이면 5점 만점에 4점은 되지 않겠어? 하하하!”
연습 삼아 만든 떡볶이의 맛이 경일의 입맛에 꼭 맞았다.
아직 손님들의 반응을 보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통할 것 같았다.
별다른 조미료를 넣지도 않았는데 기존의 떡볶이와 다른 풍미가 있었다.
약간의 차이인데 그 차이가 경일의 자신감을 드높였다.
어묵의 비장의 한 수는 던전 민물 새우였다.
개울에는 물고기뿐만 아니라 많은 생물이 살고 있었다.
물고기를 잡다가 우연히 민물 새우를 보게 되었다.
경일은 인터넷을 뒤져 민물 새우에 대한 것을 찾아보았다.
잡는 법은 간단했다.
수초가 많은 곳에 족대를 가져다 대고 발로 수초를 밟으면 놀란 새우가 튀어나와 족대 속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을 잡으니 제법 많은 양의 새우가 잡혔다.
던전 민물 새우로 낸 육수는 감칠맛의 끝판왕이었다.
몇 가지 채소와 함께 끓인 육수는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간단한 재료로 끓인 건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끝내주는데? 새우는 모든 국물 요리에 사용해야겠어.”
던전 민물 새우에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까지 있었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어묵 국물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육수에 떡과 어묵을 넣어 몇 가지 조미료를 넣으니 맛있는 어묵탕이 완성되었다.
찍어 먹을 간장 소스까지 완벽했다.
맑은 어묵탕에 던전 민물 새우가 보였다.
경일은 어묵탕에 민물 새우가 보이는 것이 조금 찝찝했다.
작은 분식점에 비싼 민물 새우가 들어간 모습이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았다.
저번 사과 장사에서 느꼈듯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좋을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육수에서 민물 새우를 뺄 수는 없었다.
모든 감칠맛이 민물 새우에서 나왔는데 새우를 뺀 어묵탕은 의미가 없었다.
“음~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해결책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주방에 널린 가루 양념을 보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경일은 던전에서 민물 새우를 말려 가루로 만들었다.
가루로 만드니 보관도 쉽고 사용도 편리했다.
생으로 넣었을 때보다 더 진한 맛이 나는 게 아주 좋았다.
라면의 비장의 한 수는 파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파 기름이었다.
경일은 던전에서 파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러다 생각한 게 모종을 사서 직접 키우는 것이었다.
파는 모든 음식에 들어갈 만큼 쓰임새가 많은 채소였다.
음식의 비린내를 잡아 주는 몇 안 되는 채소이자, 항산화 효과까지 있었다.
경일은 작은 텃밭을 만들어 파 모종을 심었다.
던전의 땅이 비옥해서 그런지 파는 정말 잘 자랐다.
말 그대로 쑥쑥 자라났다.
지구에서 가져온 식물이라 그런지 별다른 효능은 없었지만, 기존의 파와 다르게 파 향이 두 배 이상 진했다.
경일은 라면에 자신만의 특별한 맛을 넣고 싶었고, 그 연구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파 기름이었다.
라면을 끓인 뒤 약간의 파 기름을 첨가한 것만으로 라면에서 풍기는 향이 기가 막혔다.
파 특유의 맛이 스며든 국물은 해장하러 왔다가 다시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음식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청결이었다.
경일은 가게 청소를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청소했지만, 더 깨끗이 하고 싶었다.
자신의 꿈이 실현된 곳이라 그런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가게의 비품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다루었다.
작은 먼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깨끗이 쓸고 닦았다.
“음음음~”
신이 나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청소하는 그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한참 청소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찾아 왔다.
“여기 분식집 사장인가 봐?”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남자가 경일을 보고 말했다.
40대로 보이는 남자는 매부리코에 벗겨진 이마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눈꼬리가 살짝 쳐져 웃는 상의 인상은 언뜻 보기에는 호감을 주었으나, 자세히 보면 눈빛이 음흉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네. 제가 여기 주인인데요.”
경일이 살짝 경계하며 말하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거~ 뭐, 인사나 하려고 들렸어. 나는 저기 밑에서 다정 분식점을 운영하는 김만복일세. 같은 동네이기도 하고, 보아하니 분식점 같은데 서로 잘해 보자고.”
김만복은 잘해 보자는 말과 달리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경일을 아래위로 쳐다보고는 슬쩍슬쩍 분식점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음흉한 눈빛으로 경일과 분식점을 염탐하는 그의 행동은 다정이라는 분식점 이름과 상당한 괴리감이 들었다.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곳 동네 분식 사장 김경일입니다.”
“동네 분식? 거 참, 이름 한번 성의 없이 지었구먼, 그래. 아무리 분식 장사라 해도 너무 쉽게 보고 덤비다 오히려 큰코다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김만복은 걱정해 주는 듯 말했지만, 풍기는 뉘앙스는 경일을 깔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여기 대표 메뉴는 뭔가?”
경일은 경쟁 관계인 김만복이 대놓고 묻는 것에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어차피 알려질 거라 곧바로 대답했다.
“대표 메뉴라 할 건 없고 떡볶이, 어묵, 라면을 파는 집입니다.”
김만복은 경일의 말을 듣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떡볶이, 어묵, 라면이 메뉴의 전부라는 거야?”
김만복은 한 번 더 확인하며 물었다.
“네. 나중에 튀김도 하고 싶기는 한데, 장사가 처음이라 우선 세 가지만 가지고 시작할 생각입니다.”
경일이 말을 들은 김만복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그는 동네에 새로 생기는 식당이 궁금했다.
자신도 분식점을 하는 터라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인테리어를 할 때부터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입구에 떡볶이와 어묵 전용 기구가 설치되는 것을 보고 분식점이라는 걸 알았다.
“이 좁은 동네에 무슨 분식점이 또 들어오고 그래. 나 참, 하여간 이것들은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그렇게 쫓아내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지랄이야. 또 귀찮게 됐네.”
김만복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번에는 어떻게 망하게 하지?”
경일이 괜찮은 가격에 가게를 구할 수 있던 이유가 김만복 때문이었다.
이 지역은 워낙 못 산다고 소문이 나 있어서 식당을 하려고 들어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았다.
김만복은 누군가가 자신과 비슷한 류의 식당을 여는 꼴은 절대 보지 못했다.
그는 이 동네 토박이라 이곳을 잘 알았다.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동네로 보여도 식당을 하기에 절대 나쁜 동네는 아니었다.
돈을 아끼려고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집도 많았지만, 밥을 밖에서 해결하는 집도 많았다.
굳이 장을 보고 집에서 만들어 먹는 비용이나, 식당에서 사 먹는 비용이나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품을 생각하면 오히려 식당이 더 쌀 수도 있었다.
특히 이 동네에는 맞벌이하는 부부들이 많았다.
그들이 일하는 곳은 거의 몸을 움직이는 직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먹는데 쓸 에너지가 부족했다.
다정 분식이 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김복만은 이 동네 사람들의 성향을 분석했고, 선택한 것이 바로 분식이었다.
싸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분식은 이 동네 주민들이 이용하기에 딱 좋았다.
다정 분식의 음식이 특별히 맛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많은 메뉴가 있어 음식을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었다.
동네에 식당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가족끼리 외식으로 가는 곳이었다.
한 끼 적당히 때우기에 다정 분식같이 만만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김만복은 이 동네 사람답지 않게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즉시 이 동네를 떠나 좋은 곳에 새로 집을 마련했다.
그가 새로 이사한 곳은 헌터들이 모여 산다는 부자 동네였다.
하지만 분식점에 출근할 때는 늘 후줄근한 옷을 입고, 차도 경차를 끌고 다녔다.
이곳은 그에게는 금광과 같은 곳이었다.
날파리가 꼬이는 걸 절대 용납하지 못했다.
자신의 장사가 방해되는 곳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부 망하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 같은 업종인 분식이 들어오자 김만복의 신경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경일의 분식점이 아직 오픈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쫓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도 정보 수집을 위해 분식점을 염탐하러 갔는데, 마침 경일이 있었다.
얼굴을 철판을 깔고 당연한 듯 경일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봤다.
참으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경일은 장사가 처음이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그가 묻는 건 모두 대답해 주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