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0화 (10/300)

[10화] 첫 손님

“그래, 메뉴가 세 가지라~ 뭐, 나쁘지 않네. 분식점도 전문점처럼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역시 젊은 사람이라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장사도 안 되는데 나도 메뉴를 줄이고 전문점 형식으로 가 볼까?”

김만복은 겉으로는 칭찬하며 속으로는 경일을 비웃었다.

원래 분식이라는 업종은 메뉴가 많아야 하는 건 기본 상식이었다.

분식점의 특성상 대중적인 메뉴가 많은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특히 이 동네처럼 손님 대부분이 단골일 경우는 더욱 메뉴가 많아야 했다.

그래야 음식이 질리지 않을 테니까.

‘이 바보 같은 녀석은 장사의 기본도 모르는군. 그리고 최소한 시장조사는 하고 가게를 열어야지. 이 못사는 동네에 간식류의 음식이 통할 거 같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인 동네에서? 이놈은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망해서 나가겠구나.’

김만복은 시커먼 속내와 달리 이때부터 경일을 크게 칭찬하기 시작했다.

경일은 김만복이 행동이 너무 헷갈렸다.

그도 어려서부터 별별 사람들을 많이 겪은 터라 눈치가 빨랐다.

김만복의 행동에서는 분명 자신을 비웃고 만만하게 보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진심으로 경일을 응원해 주고 있었다.

김만복이 가고 난 뒤, 드디어 오픈을 했다.

겨우 메뉴 세 개인 분식점이지만, 꿈을 이뤘다는 기분에 행복했다.

이렇게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살고 싶었다.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왔던 터라 이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는 삶이 너무 좋았다.

사실 망할 수가 없는 장사라 그의 마음은 평온했다.

재료 대부분은 던전에서 가져오는 터라 얼마 되지 않는 가겟세만 벌면 됐다.

사각의 넓은 스텐 냄비에서 새빨간 양념이 묻어 있는 떡볶이가 준비되었고, 바로 옆 깊이가 깊은 사각 스텐 냄비에서는 어묵탕이 준비되었다.

가게 설비에 비해 초라한 구성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매우 좋았다.

오픈을 했지만 김만복의 예상대로 손님은 거의 없었다.

낮이라 그런지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이 동네는 사무실이 없는 주거지라 퇴근 시간이 지나야 동네가 살아났다.

몇몇 동네 꼬마들이 입맛을 다시며 지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아저씨, 떡볶이 얼마에요?”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경일에게 물었다.

“한 개 500원이에요. 꼬마 손님.”

경일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떡볶이 가격은 비싸지 않았다.

다른 곳보다 훨씬 싼 가격이었다.

이 동네에서 비싼 가격은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굳이 비싸게 팔고 싶지도 않았다.

원래 잘되는 집은 박리다매가 최고였다.

“음~”

남자아이가 고민했다.

‘어묵 꼬치랑 떡볶이를 하나씩 먹을까? 아니면 떡볶이를 두 개를 먹을까?’

고민이 끝났는지 남자아이는 작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1,000원짜리를 하나 꺼내어 경일에게 주었다.

“아저씨, 여기요. 떡볶이 한 개랑 어묵 꼬치 한 개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꼬마 손님.”

생애 첫 손님이었다.

경일의 마음속에서 감격이 차올랐다.

지금 눈앞의 남자아이는 그의 뇌리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었다.

“꼬마 손님, 여기 앞 접시.”

“아저씨, 나 꼬마가 아니에요. 내 이름은 이수한이에요.”

앞머리가 삐쭉삐쭉 튀어나온 남자아이가 당차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경일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그는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가득 담아 내밀었다.

“그래, 수한아. 여기, 많이 먹어.”

“네, 감사합니다.”

수한이 떡볶이를 입에 넣자 경일은 긴장이 되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의 첫 평가를 받는 날이었다.

아이가 떡볶이를 우물거리며 씹는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수한아, 맛이 어때?”

경일이 참지 못하고 한창 먹고 있는 수한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 끝이 살짝 떨린 건 착각이 아니었다.

“음~”

수한이 마치 감평하듯 나지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맛있어요. 다른 곳보다 매운 거 같은데 먹기가 편해요.”

“어묵 국물도 한 번 먹어 봐.”

“네.”

수한은 종이컵을 들어 어묵 국물을 마셨다.

“와, 아저씨 국물이 맛있어요!”

경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한이는 아직 어려서 맛을 표현하는 여러 단어를 몰랐다.

맛있다는 말은 아이가 맛을 표현하는 최고의 단어였다.

경일은 수한이가 말한 맛있다는 단어 하나에 온몸이 녹아내렸다.

던전 재료가 좋기도 했지만, 경일도 좀 더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니었다.

괜히 가슴이 뿌듯했다.

아직 요리가 익숙하지 않은 요리 초보의 수준으로도 맛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앞으로 요리가 익숙해지면 더욱 맛있게 만들 자신이 생겼다.

감탄사가 어묵 국물에서 더 크게 나온 걸 보니 수한이의 입맛에는 어묵탕 쪽이 더 맛있는 듯했다.

‘단맛을 많이 넣는다고 넣었는데, 아이들 입맛에는 아직 약한 거 같네. 오늘 가게 마치고 다른 집 떡볶이를 먹으러 돌아다녀 봐야겠어.’

떡볶이와 어묵 국물을 다 먹은 수한이의 머리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 사과를 먹었습니다. 몸의 활력이 높아집니다.]

경일은 고급스러운 단맛을 내기 위해 떡볶이에 던전 사과 즙을 넣은 효과였다.

[던전 고추를 먹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줍니다.]

[던전 민물 새우를 먹었습니다. 마음에 안정이 깃듭니다.]

수한이의 얼굴이 조금 더 밝게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아저씨, 잘 먹었습니다.”

“그래. 다음에 또 와, 수한아.”

“네!”

돌아서는 수한이의 얼굴에 만족의 웃음이 걸려 있었다.

경일은 그런 수한이를 향해 말했다.

“좋은 하루 보내~”

경일은 수한이가 먹은 자리를 행주로 닦고 앞 접시를 설거지했다.

“손님이 만족한 얼굴을 보는 게 생각보다 더 기분이 좋은데? 역시 분식점을 차리길 잘했어.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잖아. 토막 난 몬스터 사체나 보고 살다가 어린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은데? 세상이 막 밝아진 기분이잖아, 하하하하하!”

수한이가 온 뒤 한 시간이 지나도록 다른 손님은 오지 않았다.

나름 첫 오픈을 한 가게인데도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경일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빚도 다 갚았고, 이전처럼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느긋하게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 지금이 너무 좋았다.

오픈 전 식당 청소도 깨끗이 해 둔 상태라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손님을 기다리며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요리책이었다.

책을 산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요리책을 여러 번 볼 수 있던 이유는 다 던전 덕분이었다.

지구의 한 시간이 던전에서는 세 시간이었다.

던전에서 3일을 지내고 와도 지구에서는 하루만 지났을 뿐이었다.

경일은 잠도 던전에서 잤다.

남들보다 3배의 시간을 얻은 경일은 요즘 누구보다 배가 불렀다.

예전의 경계심 많고 날카롭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많이 부드러워졌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경일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어서 오세요.”

경일이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오픈하셨나 봐요. 전 조~기 보이는 미자 미용실 직원이에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귀여운 아가씨였다.

작은 키에 살짝 통통한 몸매, 그리고 미용실 직원답게 멋진 파마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네,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내일 인사할 겸 떡을 돌리려고 했는데, 먼저 오셨네요.”

“호호호호, 제가 호기심이 좀 많아서요. 여기 앞 접시 하나 주세요.”

이미순은 선해 보이는 큰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네.”

경일은 앞 접시와 나무젓가락을 건넸다.

이미순은 우선 어묵탕 국물을 종이컵에 떠서 맛을 보았다.

“어머, 사장님 무슨 국물이 이렇게 시원해요? 와~ 지금껏 먹어 본 어묵탕 국물 중에 제일 시원한 거 같아요.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MSG 맛은 아닌 거 같은데…….”

“하하하, 나름 신경 좀 썼습니다. 어묵 국물은 공짜니까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이거 완전 새로운 해장국인데요? 안 그래도 어제 친구들과 좀 달렸더니 속이 부대꼈는데, 국물을 마시니 속이 다 풀려요! 여기에 밥 말아 먹어도 좋겠는걸요.”

이미순의 얼굴에 여러 가지 표정이 떠올랐다.

말을 하는 도중 여러 가지 감정이 큰 눈에 담기고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는 게 한편의 모노드라마 같았다.

늘 우중충한 표정으로 살아왔던 경일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약간 푼수기도 보이는 게 사람이 선해 보였다.

“어머, 떡볶이도 맛있네. 분명 매운데 안 매운 거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이상하네. 어묵 국물도 그렇고, 떡볶이도 그렇고.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이 맛은 뭘까요?”

이미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떡볶이를 먹었다.

“사장님, 이 떡볶이 양념도 비법 양념이에요? 제가 맵찔인데, 이상하게 이 떡볶이는 술술 들어가요. 분명 매운 게 맞는데…….”

“하하하, 입맛에 맞으시니 다행이네요.”

“우리 동네에 드디어 맛집이 하나 생겼네요. 지금까지 이 동네 식당들은 다들 맛보다는 가격이랑 양을 위주로 장사를 해서 맛있는 식당이 없었거든요. 튀김 솥도 있는 거 보니, 앞으로 튀김도 하실 건가 봐요?”

“네. 명색이 분식점인데 튀김은 필수죠. 급하게 오픈한다고 아직은 못 만들지만, 조만간 시작할 생각입니다.”

“맛있는 떡볶이를 먹었더니 튀김도 자연히 기대되는걸요.”

이미순은 쫑알쫑알 말을 하면서도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것을 쉬지 않았다.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어휴, 잘 먹었다. 사장님 떡볶이 세 개랑 어묵 세 개 먹었어요. 얼마에요?”

“3,000원입니다.”

“어머 한 개에 500원이에요? 와, 맛도 좋은데 가격도 싸네요. 사장님이 오래오래 여기에서 장사하시면 좋겠어요.”

이미순은 방긋 웃으며 3,000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네, 많이 파세요.”

이미순은 기분 좋은 얼굴로 돌아섰다.

그녀의 머리 위에 여러 메시지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음, 해장에 도움되는 던전 채소도 있을까?”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그녀를 위해 새로운 재료를 찾고 싶었다.

저녁이 되자 길에 사람들이 보였다.

퇴근하고 돌아오는지 지쳐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오늘도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거리에 사람들이 늘었지만, 경일의 분식점에 특별히 눈길을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떡볶이랑 어묵탕은 아무래도 간식이라 그런 듯했다.

저 멀리 특히 힘들어 보이는 한 사람이 길을 걸어왔다.

허름한 옷에 날이 서 있는 얼굴, 축 처진 어깨, 앞을 보기보다 땅을 더 많이 보며 걷는 게 얼마 전 자신의 모습 같았다.

“장롱에 게이트가 생기지 않았다면, 나도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경일은 힘내라고 어묵 국물이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상대방이 기분 나빠 할까 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저녁이 지나고 거리에 사람들의 모습이 띄엄띄엄 보일 때쯤, 오늘의 장사를 정리했다.

오늘 매출은 겨우 2만 원이었다.

온종일 가게에 매달려 올린 매출로는 형편없이 적은 돈이었지만, 별로 실망스럽진 않았다.

경일이 실망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매출에 대한 기대치가 없었다.

자신의 꿈이 작은 식당을 차리는 것이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준비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시장 조사도 부족했고, 아직 음식에 대한 기본 이해도 모자랐다.

던전에서 채취한 음식 재료 덕에 망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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