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음식 재활용
마음 같아서는 여기 있는 떡볶이를 모두 주고 싶을 정도였다.
“와~ 국물도 맛있어! 엄마가 한 거보다 훨씬 맛있어!”
수한의 친구가 어묵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얼굴이 밝아졌다.
“나도 나도!”
친구의 반응에 맛이 궁금했는지 또 다른 친구가 국물을 마셨다.
“정말 맛있네? 난 국물 싫어하는데 매일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맛있다고 했잖아.”
“와, 수한이는 역시 대단해!”
“우리 내일도 먹으러 오는 거야?”
“엄마한테 사 달라고 졸라야겠다.”
아이들은 뭐가 재밌는지 서로 한참을 재잘거렸다.
이미 앞 접시는 비어 있었다.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에 경일은 떡볶이를 하나씩 더 주었다.
종이컵에 어묵 국물도 새로 담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이들은 배가 부른지 만족한 모습이었다.
머리 위로 던전 작물의 효능이 담긴 여러 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배도 부르고, 놀이터에 놀러 가자!”
던전 사과의 효과인지 한층 활기차 보였다.
“아저씨, 잘 먹었습니다.”
수한이가 귀엽게 배꼽 인사를 하고 뛰어갔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경일이의 얼굴에 흐뭇함이 걸렸다.
생애 첫 손님인 수한이가 친구들에게 자신의 음식을 칭찬할 때마다 힘이 났다.
장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좋은 사람들과 더 많은 인연을 맺으며 오랫동안 장사를 하고 싶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하루하루가 즐거우니 시간이 더 잘 가는 듯했다.
벌써 장사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였다.
던전에서는 하루하루가 바빴지만, 분식점은 손님이 없어 늘 한가했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다정 분식 사장 김만복이 나타났다.
“김 사장, 장사는 어때? 오픈 빨 좀 받았어?”
김만복은 말을 끝내자마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는 음식이 조리된 매대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인 담배를 빨아 당기니 담배 끝에서 빨갛게 불이 일었다.
그러고는 훅 하고 담배 연기를 공기 중에 내뿜었다.
담배 연기가 떡볶이랑 어묵탕에 내려앉았다.
경일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그저 그렇습니다. 동네가 조용해서 그런지 오픈 빨을 받고 말고 할 게 없네요.”
경일은 기분이 상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이 동네가 다른 곳과 다르게 좀 느려. 동네 사람들은 아직 여기 오픈 한 것도 모를 거야.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처음의 생각대로 쭉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해. 승리는 원래 빠른 토끼가 아니라 꾸준한 거북이가 가져가는 거잖아. 공부든 장사든 결국, 꾸준한 사람이 이기는 거야. 그러니 처음 마음먹은 데로 계속하다 보면 잘되게 돼 있어.”
김만복은 경일을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눈은 음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크크크, 역시 내 예상대로 이 정도면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망하겠군. 장사한 지 한 일주일 정도 되지 않았나? 그런데도 아무런 발전이 없는 거 보면 저놈도 참 멍청하군. 아무리 장사 초보긴 해도 매대의 반을 비워 놓으면 안 되지. 누가 봐도 준비가 부족해 보이잖아. 튀김도 할 생각이었으면 오픈할 때 같이했어야지. 튀김 자리는 비워 놓고 떡볶이랑 어묵탕이 전부라니. 보아하니 오래 못 가겠네, 흐흐흐.’
김만복은 경일의 분식점의 문제점을 생각하며 속으로 비웃었다.
‘이제 장사가 안 돼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저놈 모습을 편안하게 즐길 일만 남았군. 잠깐만, 내가 너무 좋아할 때가 아니지. 이놈이 나가면 또 다른 놈이 들어올 수도 있잖아. 이 자리에서 식당 하던 놈들이 계속 망하는 바람에 가겟세도 싸졌으니 분명 덤비는 놈이 또 나올지 몰라. 하여간 쓸데없이 가겟세는 내려가지고. 다른 놈이 들어올 바에는 차라리 이놈 같은 바보가 계속 장사를 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그는 경일을 걱정하는 표정과 달리 속으로는 그를 깔보고 있었다.
“사장님은 장사 많이 하셨어요?”
경일은 말을 섞고 싶지 않았으나 예의상 물었다.
“뭐, 그럭저럭 겨우 먹고 살 만큼 팔았지. 자네도 이 동네 시장조사를 해 봐서 알겠지만, 워낙 가난한 동네라 장사로 큰돈을 만지기는 힘들어. 나 같이 나이가 있는 사람을 써 주는 데도 없고 해서 밥값이라도 벌려고 하는 거지.”
김만복은 장사가 잘되는 걸 숨겼다.
자신의 장사가 잘된다고 하면 경일이 열심히 할 수도 있었다.
희망을 품지 못하도록 하는 교묘한 말솜씨였다.
아무리 그가 초보라고 해도 엄밀히 말해 경쟁자였다.
그런 경일의 장사가 잘되는 건 죽어도 보기 싫었다.
이 동네에서 장사를 시작한 거 보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겨우 분식점을 차렸을 공산이 컸다.
이대로 쭉 장사도 안 되는 분식점이 오랫동안 천천히 말라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라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더욱 처참하게 죽어갈 것이었다.
김만복은 욕심 많고 심보가 못된 인간이었다.
실제로 그의 분식점이 한창 바쁜 와중에도 경일을 찾아온 건 취미 생활을 위해서였다.
경일이 들어오기 전, 이 자리에서 식당을 하다 망한 이는 두 명이었다.
그들은 이 동네에서의 장사가 어려운 걸 알지만, 자신들의 예산으로는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없는 형편에 살아 보려고 들어온 사람인 걸 알면서도 김만복은 자신의 장사에 피해가 올까 봐 애초에 싹을 잘라 버렸다.
온갖 더러운 방법으로 장사를 방해한 것이다.
그들이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말라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어느새 그의 취미가 되었다.
앞에서는 호인인 척 그들을 위로하면서 마음속으로 힘들어하는 그들의 모습을 즐겼다.
“참, 김 사장. 장사가 안 되면 남은 음식은 어떻게 처리했나? 보니까 파는 것보다 남는 게 더 많은 거 같은데.”
“일부는 먹고 나머지는 버렸죠.”
“어허, 김 사장, 장사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럼 손해가 커져서 오래 못 버텨.”
김만복은 그냥 모른 척하려다가 이대로라면 경일이 너무 빨리 망해 사라질까 봐 작은 노하우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경일이 너무 빨리 사라지면 자신에게도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장사가 안 되는 자리라고 소문이 나서 아무도 안 들어오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다음에 들어온 사람이 실력자일 수도 있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차라리 눈앞에 있는 확실한 바보가 있는 게 더 나을 거 같았다.
그는 진심으로 경일을 위한다는 분위기를 풍기며 입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오래 버티려면 비용을 줄여야 해. 음식점이니까 음식 재료만 아껴도 장사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경일은 분명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걸 눈치로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노하우라고 알려 주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 떡볶이랑 어묵탕은 버리지 말고 새로 만든 거랑 섞어서 팔아. 그럼 재료비가 많이 줄어들 거야. 김 사장이 초보라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어. 어떤 식당은 말이야, 손님이 먹던 어묵탕을 데워 달라고 하면 기존의 어묵탕에 부어서 데워 주는 경우도 있어. 설거지 거리를 줄이려고 말이야.”
“정말요? 정말 먹던 걸 새 음식에 붓는다고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황당해하며 되물었다.
“그럼~ 이거 기사에도 났었어. 그 덕에 한동안 어묵이 안 나갈 정도였지.”
“어머, 정말 너무하네요. 먹던 걸 새 음식에 부어 버리다니.”
김만복은 갑자기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대화에 끼어든 사람은 다름 아닌 미용실 직원 이미순이었다.
이 내용을 다른 사람이 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더군다나 이미순인 걸 확인하고 얼굴이 굳었다.
이미순은 동네에 먹을 만한 식당이 별로 없어 다정 분식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다.
김만복도 그녀가 이 동네 사람인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어디부터 들은 거지? 음식 재활용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거 아냐? 그럼 우리 식당을 의심할 텐데.’
“사장님, 진짜 기사에 난 거 맞아요? 하여간 먹는 거로 장난치는 것들은 모두 크게 혼이 나 봐야 정신을 차리지.”
“어, 어~ 분명 기사에 났었어.”
다행히 이미순은 먹던 어묵탕을 데우는 이야기만 들은 듯했다.
‘휴~ 내가 음식 재활용하라고 한 이야기는 못 들었구나. 저 새끼가 너무 초보라 나도 모르게 오지랖을 부렸네.’
김만복은 바쁜 일이 있다며 급히 자리를 떴다.
그런 그의 모습을 이미순이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사장님, 앞 접시 하나 주세요.”
이미순이 경일에게 받은 앞 접시에 떡볶이를 덜었다.
경일이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따라 담아 주었다.
“캬~ 역시 사장님 어묵 국물은 예술이라니까요. 어떻게 날이 갈수록 맛이 더 깊어지네요. 어제 제가 어묵탕 포장해 갔잖아요? 역시 해장하기 좋은 국물은 소주 안주로도 너무 좋더라고요. 소주랑 같이 먹으면 술도 잘 안 취하고. 신기한 게 술 마시면서 해장도 같이 된다니까요! 친구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어묵 국물이 맛있어서 그런지 분위기도 좋아지고. 둘이 만나면 맨날 티격태격하던 것들이 어제는 안 싸우더라고요. 어묵은 기존 제품인 거 같은데, 국물은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지 먹을 때마다 정말 신기해요. 여긴 오픈 주방이라 다른 곳과 다르게 믿음이 가고. 오래간만에 우리 동네에 맛있는 분식점이 생겼는데, 사장님이 오래 장사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한테도 여기 소개해 줬으니 조만간에 사 먹으러 올 거예요!”
이미순은 평소와 같이 수다를 떨면서 떡볶이와 어묵까지 맛있게 먹었다.
‘이 맛에 장사하는 거지. 단골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는 것도 정말 신나고. 단골이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고. 이러다가 금방 손님으로 넘치겠는 걸?’
손님이 자신의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을 할 때마다 어깨가 으쓱하고 보람을 느꼈다.
“근데 사장님, 분식점 안에 테이블도 있는데 다른 음식은 안 하시는 거예요? 어묵탕만 봐도 다른 음식도 맛있을 거 같은데. 메뉴가 늘어나면 제가 매일 먹으러 올게요!”
“미순 씨 봐서라도 메뉴를 늘려야겠네요. 조만간에 하나씩 늘어날 거예요.”
경일은 지금은 요리책을 보고 이론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조만간 실제로 여러 요리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던전에 맛있는 재료가 넘쳐나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겨우 떡볶이, 어묵, 라면밖에 못 만드는 자신이 한심할 정도였으니까.
“사장님, 계산요~”
계산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미순의 머리 위로 던전 식물의 효능이 담긴 여러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마 티격태격하던 친구들이 안 싸운 건 모두 던전 민물 새우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깊고 시원한 국물 맛에 반해서일 수도 있고.
* * *
분식점과 달리 던전에서는 늘 바빴다.
그는 지금 집을 짓고 있었다.
기본 틀을 잡았으니 벽과 바닥, 지붕을 만들어야 했다.
원목을 다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보라 안 그래도 일이 서툰데, 공구마저 열악했다.
일을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하려면 여러 가지 공구는 필수였다.
하지만 전기를 쓸 수 없는 이곳의 환경에서 쓸 수 있는 공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던전의 시대가 열리고 휘발유의 사용은 줄어들고 몬스터를 잡으면 나오는 마나석의 에너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경일은 큰맘 먹고 끔찍하게 비싼 마나 엔진 톱을 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