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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3화 (13/300)

[13화] 휴식

지금까지는 휘발유로 돌아가는 엔진 톱이 모든 일을 했다.

하지만 일일이 휘발유를 사서 가지고 오는 것도 힘들었고, 한창 작업 중인데 휘발유가 떨어져 일이 멈춰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역시 비싼 값을 하는구나.”

확실히 마나 엔진 톱은 소음도 적고 힘도 좋았다.

나무를 가공하는 일은 모두 마나 엔진 톱이 도맡았는데, 어느새 경일은 마나 엔진 톱을 다루는 장인이 되어 있었다.

물론 세세한 작업은 모두 손으로 해야만 했다.

경일은 나무의 거친 표면을 일일이 대패로 다듬었다.

“남 밑에서 일할 때는 노동이었는데, 내 일이라 생각하니 즐겁네. 나무 냄새도 너무 좋고.”

대패가 지나간 자리는 매끄럽게 정리되어 있었다.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나무 특유의 촉감이 너무 좋았다.

일하다 힘들면 경일은 충분한 휴식을 가졌다.

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당장 집이 없어 잠을 못 자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순수하게 집 만드는 일을 즐겼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자신이 생각한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느리더라도 집은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벽을 만들 곧은 나무를 골라 나무 껍질을 벗겼다.

가공이 끝난 곧은 나무를 세워 일일이 대못을 박아 벽을 만들어 갔다.

창은 문이 있는 방향을 제외한 세 군데 방향으로 냈다.

환기도 환기지만, 집 어느 방향에서도 바깥의 경치를 보고 싶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틈은 진흙을 발라 메꿨다.

이제 천장만 만들면 됐다.

발판을 만들고 천장에 쓸 나무를 올렸다.

우선 지붕의 기둥이 될 작은 나무를 세웠다.

두 기둥을 긴 나무로 연결하고, 벽과 비스듬히 나무를 이어 붙였다.

혼자서 작업하다 보니 시간이 몇 배로 들었지만, 던전에선 남는 게 시간이었다.

천천히 꾸준히 일을 하다 보니 드디어 작은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가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 온 튼튼한 비닐을 천장에 덮어 고정했다.

드디어 태어나서 처음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됐다.

모양은 볼품없었지만, 경일의 눈에는 어느 집보다 멋있게 보였다.

가구가 없어 썰렁한 느낌이 들었으나, 가구는 차차 만들어 채우면 되었다.

바닥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신경을 쓴 만큼 평평하게 잘 만들어졌다.

누워 보니 살짝살짝 높낮이가 맞지 않는 것이 느껴졌으나, 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깔 생각이라 문제 될 건 없었다.

던전에 밤이 찾아오자 이날 처음으로 내 집에서 잠을 잤다.

나무에서 나는 좋은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텐트에서 자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몸이 편했다.

다음으로 만들 건 음식을 할 수 있는 아궁이였다.

‘음, 불을 지피는 데라 나무로 틀을 짜는 것은 위험해 보이는데.’

그래서 생각한 게 황토 벽돌이었다.

나무로 벽돌을 만들 틀을 여러 개 만들었다.

흙을 모아 곱게 채를 쳤다.

입자가 고운 흙에 모래와 소금을 조금씩 섞었다.

황토 벽돌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흙에 물을 부어 진득하게 반죽을 해서 사각 틀에 넣었다.

틀에 넣은 반죽을 위에서 눌러 강하게 압력을 가했다.

나무 틀 안에 흙 반죽이 빈틈이 없이 단단하게 뭉쳐졌다.

틀 안에서 단단히 사각형으로 뭉쳐진 흙을 꺼내 서늘한 곳에서 말렸다.

경일은 이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이번에 아궁이가 잘 만들어지면 나중에 황토 벽돌로 집을 만들어도 좋을 거 같은데? 바닥에 온돌도 넣고 하면 뜨뜻한 게 아주 좋겠는 걸?’

던전의 날씨가 좋아 그런지 황토 벽돌이 잘 말랐다.

인터넷을 보고 배운 지식으로 처음 만든 벽돌이지만, 생각보다 잘 나왔다.

강도도 단단하고, 일반 벽돌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경일은 황토 벽돌을 동그랗게 쌓아 올렸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곱게 채를 낸 흙을 물과 섞어 치댄 후 꼼꼼히 붙였다.

그렇게 솥을 두 개를 올릴 수 있는 아궁이가 완성됐다.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 아궁이 위에 비가림막도 같이 만들었다.

“이야, 멋진데? 하나는 무쇠 솥을 올리고, 하나는 철판을 올리면 되겠다. 솥에서는 밥을 하고 철판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딱 이겠는걸.”

집과 아궁이가 생겼다.

이제 기본적인 생활공간은 모두 완성했다.

경일은 집을 지은 이후, 휴가에 들어갔다.

“열심히 일한 당신은 쉬어야지, 하하하!”

그동안 먹고 싶던 고기도 구워 먹고, 책도 읽고, 모든 걸 내려놓고 편하게 쉬었다.

“아~ 좋구나. 이게 천국이지. 인생 별거 있나.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만이지.”

나무에 연결한 해먹에 누워 자연의 바람을 즐겼다.

적당한 햇빛과 바람을 맞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고는 했다.

던전은 정말 쉬기 좋은 곳이었다.

쾌적한 날씨에 어디를 둘러 봐도 멋진 경치를 뽐내고 있었다.

늘 공장의 소음에 시달리던 경일은 이곳의 고요함이 좋았다.

고요함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 속에서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숲이 내뿜는 좋은 기운과 자연의 소리는 오래되어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해 주었다.

쉬기로 자신과 약속한 날이 끝났지만, 경일은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반작용이 나타난 결과였다.

처음에는 며칠만 쉬고 나서 가구도 만들고, 새로운 음식도 개발하고, 뭐든지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귀찮았다.

지금 이대로가 너무 좋았다.

그는 휴식을 넘어 나태해지기 시작했다.

분식점의 메뉴는 늘어나지 않았다.

처음 분식점을 열 때는 며칠 안으로 튀김을 할 생각이었으나, 입구 매대의 한 곳은 늘 비어 있었다.

튀김 솥이 뻘쭘한 듯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떡볶이와 어묵탕으로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가게 임대료와 집세, 생활비를 쓰고도 남을 정도의 돈은 벌었다.

분식점에 들어가는 식자재 중 많은 부분을 던전에서 조달하니, 다른 식당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마진율이 높았다.

지금까지의 경일의 삶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격렬했다.

먹고 살기 위한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늘 타인이 지시를 들어야 했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눈치를 봐야 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았다.

던전은 그런 경일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 주었다.

지금의 삶은 행복 그 자체였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평화로운 삶에 평온을 느꼈다.

특히 인생의 주인이 나라는 것이 가장 좋았다.

분식점을 찾아 준 손님들이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는 모습에 늘 기분이 좋았다.

특히 꼬마 손님들과의 대화는 늘 행복했다.

수한이로부터 시작된 꼬마 손님들은 이제 분식점 매상의 반을 차지할 정도의 큰손님이 되어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저 왔어요.”

오늘도 수한이를 중심으로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아저씨, 난 떡볶이 하나랑 꼬지 어묵 하나요.”

“난 떡볶이 두 개! 하나는 어묵으로 주세요.”

“아저씨, 아저씨, 오늘은 저부터 주세요. 저번에 꼴찌로 줬으니까 오늘은 저부터 주세요.”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야. 호진이는 두 번째로 먹어.”

“안 돼! 오늘은 내가 일등으로 먹을 거야.”

“야, 시끄러워. 그냥 먹어. 순서가 뭐가 중요해.”

조용하던 분식점이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로 살아났다.

분식점이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경일은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아저씨가 얼른 떡볶이랑 어묵 담아 줄 테니, 잠깐만 기다려.”

“네~”

아이들이 합창하듯 말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아저씨, 여기요.”

수한이 천원을 내밀자 아이들이 돈을 내밀었다.

경일은 마음 같아서는 받고 싶지 않았지만, 그건 아이들한테도 실례였다.

대신 분식점은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에게는 뷔페가 되어 있었다.

천 원만 내면 양껏 먹을 수 있었다.

자신이 힘든 어린 시절을 겪어서 그런지, 눈앞의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컸으면 했다.

돈이 부족해 배불리 못 먹는 고통을 절대 이 아이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수한이, 호진이, 이한이, 대한이, 하준이 많이 먹어.”

경일은 일일이 아이들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 주었다.

아이들 앞으로 앞 접시를 하나씩 놓고, 포크도 올려 두었다.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담아 앞 접시 옆에 놓고, 던전 사과즙을 떡볶이에 더 넣어 비볐다.

단 걸 좋아하는 아이들의 입맛을 고려한 것이다.

던전 사과의 고급스러운 단맛은 아이들의 입맛을 끌기에 충분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먹었으면 질릴 만도 한데, 아직 질린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경일은 빠르게 떡볶이를 앞 접시에 올렸다.

어묵을 주문한 꼬마 손님에게는 따로 나무젓가락에 어묵을 끼워 주었다.

한 손엔 포크를 들고 한 손에는 어묵 꼬치를 들고 먹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아저씨, 아저씨. 수한이랑 민아랑 둘이 사귄대요. 난 여자친구가 없는데 너무 부러워요. 어떻게 하면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요?”

떡볶이를 먹으며 한 번씩 털어놓는 고민이 귀여웠다.

“음…….”

경일은 잠시 무슨 말을 해 줄까 고민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여자친구가 생기면 다른 아이들이 놀린다고 바빴는데. 이제는 부럽다고 말하는 걸보니 확실히 세상이 바뀌긴 했구나. 벌써, 내가 이 나이라니. 세월 한번 빠르네.’

경일은 추억을 뒤로 한 채 이한이에게 해 줄 말을 생각했다.

“우리 이한인 잘 생겼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여자들한테 친절하게 행동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양보하는 마음을 가지면 금방 생길 거야.”

경일이는 다정하게 웃으며 이한이의 입에 묻은 떡볶이 양념을 닦아 주었다.

“이한이는 저번에 숙제 안 했는데 했다고 선생님께 거짓말을 했어요.”

“맞아요. 거짓말했어요.”

떡볶이를 먹던 이한이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

“그럼 난 이제 여자친구가 안 생기는 거예요?”

“아니야~ 이제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돼요. 지나간 일은 안 중요해. 앞으로 안 하는 게 중요하지. 그러니깐 이한이는 걱정 안 해도 돼. 지금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금방 여자친구가 생길 거야.”

“네!”

이한은 경일의 말을 듣고 금방 얼굴에 웃음을 되찾았다.

경일은 앞 접시가 비면 늘 물었다.

“대훈이는 뭘 더 먹을래? 떡볶이? 어묵 꼬치?”

“음~ 그럼 저는 떡볶이 하나 더 먹을게요.”

경일은 늘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겼다.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만 봐도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김 사장, 오늘은 장사 잘되네!”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만복이었다.

평소에도 가끔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김만복은 경일이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김만복에 대한 느낌이 좋지 않았다.

몇 번 겪어 보니 그의 비열한 인성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김만복은 경일을 애송이로 봤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장사는 분명 초보였지만, 그가 겪어 온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경일이 김만복보다 훨씬 더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경일은 아이들의 수다를 들으며 한창 힐링을 하고 있는데,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끼어드는 김만복에게 짜증이 확 났다.

“사장님, 지금 바쁜데요.”

아이들의 눈을 피해 김만복에게 정색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보여 준 적이 없던 무례한 모습에 김만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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