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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4화 (14/300)

[14화] 내가 교훈을 주지

‘저 새끼가 애들 코 묻은 돈 몇 푼 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장사를 병신 같이 하는 놈이라 지금껏 내버려 뒀는데, 이거 안 되겠는걸? 어디서 감히 나에게 정색을 하고 말을 해. 버릇없는 새끼가. 너무 심하게 해서 망하면 안 되니 적당한 수준으로 교훈을 줘야겠어.’

김만복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가만있어 보자, 어떤 방법이 좋을까? 이거 조금만 때려도 금방 망할 거 같으니 괜찮은 방법이 생각이 안 나네. 그냥 확 망하게 해 버려? 아니야. 저런 바보 같은 놈이 여길 지키는 게 내 입장에서 훨씬 좋지. 다른 놈이 들어오면 훨씬 귀찮아질 거야. 나 참, 상대가 너무 병신 같아서 아무 짓도 못 하다니.’

경일이 하는 자리의 전 식당 사장들은 질겼다.

없는 살림에 마지막 기회로 식당을 열어서 그런지, 처음부터 각오가 대단했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원가가 높은 음식 등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메뉴들을 내놓았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매일같이 늦은 밤까지 일했다.

그들의 노력이 통한 듯 손님은 빠르게 몰려들었고, 몰린 만큼 김만배의 수익이 줄어들었다.

이 동네의 손님의 수는 빤했다.

외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라 한쪽에 손님이 몰리면 다른 쪽의 손님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피자 한 판을 두고 서로 나누어 먹는 구조인 것이다.

김만배는 욕심이 커서 피자 한 판을 무조건 자신이 다 먹어야 했다.

한쪽이라도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휴~ 그때 그 질긴 놈들 때문에 나도 고생 많이 했지.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잖아. 참자 참어. 어린놈의 새끼가 못 배워 처먹어서 실수했다고 생각하자. 뭐, 사람이 살다 보면 재수가 없어 똥도 밟고 하는 거잖아.’

동네 분식이 들어왔어도 다정 분식의 매출 변화는 거의 없었다.

겨우 떡볶이와 어묵탕, 라면으로는 손님들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김만복은 가끔 동네 분식으로 가서 자본금만 까먹고 있을 게 빤한 경일을 교묘한 말로 무시하며 놀렸다.

앞에서는 걱정스러운 듯 말을 했으나, 속마음은 경일이 더 힘들어지기를 바랐다.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말라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특히나 경일은 놀리는 맛이 있었다.

장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니 마음껏 입을 털어도 그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오픈 할 때와 달리 요즘은 늘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어린놈이 저리 끈기가 없어서야. 우리 아들이 저런 놈처럼 될까 봐 겁이 날 정도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김만복은 벌써 경일의 장사 의욕이 꺾였다고 생각했다.

행동도 느리고 모든 걸 귀찮아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승리감과 우월감을 느꼈다.

경일은 늘 멍청하게 웃고 있으니, 김만복은 그를 더욱 만만하게 봤다.

그러다 오늘 처음 경일이 정색을 하니 기분이 더 나빴다.

하찮게 그지없는 놈이 감히 자신에게 함부로 하다니.

“흠~ 그래. 장사도 안 되는데, 코 묻은 돈이라도 벌어야지. 그래, 열심히 팔게나.”

김만복은 경일을 향해 비꼬는 투로 말하며 돌아갔다.

경일은 김만복이 돌아가든지 말든지 아예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기도 바빴다.

“아저씨, 잘 먹었습니다.”

“아저씨, 다음에 봐요.”

“안녕이 계세요.”

“우리 놀이터 가서 놀자.”

한창 재잘거리며 배를 채운 아이들은 놀이터를 향해 달려갔다.

귀여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이 끝나 아쉬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만날 수 있으니 상관없었다.

김만복은 불퉁거리는 얼굴로 자신의 분식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바닥에 돌이 보이는 대로 걷어차는 것이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그는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해도 조금 전 경일이 정색하던 모습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어린놈의 새끼가 싸가지도 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함부로 까불다니. 이거 생각할수록 열이 뻗치는걸? 도저히 안 되겠어. 이 새끼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놔야지.”

김만복은 분이 풀리지가 않았다.

그냥 넘어가려던 생각을 접고 작은 교훈을 하나 내려 주기로 했다.

그는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경일의 가게에 예고도 없이 구청에서 식당 위생 점검을 나왔다.

“동네 분식 사장 김경일 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 누구시죠?”

“구청 식품 위생과에서 나왔습니다.”

머리가 반쯤 벗겨 진 남자가 공무원증을 내밀었다.

경일이 자세히 보려고 하자, 남자는 곧바로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식품위생과에서 무슨 일로…….”

경일의 말을 끊으며 남자가 대답했다.

“식품위생과에서 무슨 일로 나왔겠습니까? 당연히 식당 위생 점검차 나왔겠지요. 걸리적거리니 저리 비키세요.”

공무원의 고압적인 말투에 경일은 기분이 상했다.

남자는 분식점 입구 매대에 놓인 떡볶이와 어묵탕을 흘깃 보고는 인상을 썼다.

“이거 뚜껑이라도 덮어 놓고 하세요. 길거리의 온갖 먼지가 다 들어갈 건데. 하여간 음식 장사를 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위생에 대한 인식이 낮아서야, 쯧.”

공무원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혀를 차며 말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없었지만, 장사하는 처지에 떡볶이와 어묵탕의 스텐 냄비에 뚜껑을 덮어 놓을 수는 없었다.

맛있는 냄새와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이끌려서 손님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키세요.”

공무원은 분식점 안으로 들어오며 당황해하며 서 있는 경일의 몸을 밀었다.

경일이 뒤로 밀려나며 휘청거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 겪는 일에 경일은 정신이 없었다.

특히 공무원의 거친 언사와 행동은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공무원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분명 이곳의 주인은 자신인데, 그가 진짜 주인인 양 더 당당하게 행동했다.

“가게도 조그마하네. 이런 작은 가게로 먹고 살 수나 있나 몰라? 보아하니 나이도 얼마 안 먹었는데, 건전하게 열심히 일할 생각이나 하지. 얘들 코 묻은 돈이나 노리고 말이야, 쯧쯧쯧.”

공무원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지만, 그의 경멸에 가득 찬 말은 경일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그는 분식점 안을 한 번 보고서는 거침없이 냉장고를 열었다.

그러고는 냉장고 안에 든 모든 식자재를 꺼내어 바닥에 놓았다.

바닥에 대충 늘어놓은 뒤, 식자재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포장지의 적힌 글자를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한참을 집중해서 보는 그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냉장고에서 꺼낸 식자재의 점검이 끝이 났는지 그대로 돌아서서 다른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꺼내 놓은 일부 식자재가 녹으며 물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냉동 보관할 식자재들을 저렇게 다 꺼내 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경일은 식자재를 챙겨 냉장고로 넣으려는데, 공무원의 고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직 조사도 안 끝났는데, 함부로 손대지 마세요. 위생 점검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거부 시 상당한 불이익이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재료가 상할까 봐…….”

경일은 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당황했다.

공무원은 경일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말만 했다.

“보건증이랑 사업자등록증 제시하세요.”

“네.”

경일은 공무원이 시키는 대로 보건증과 사업자등록증을 내밀었다.

공무원은 보건증과 사업자등록증을 확인하고는 대충 휙 던져 버렸다.

경일의 인상이 굳어졌다.

하지만 공무원은 경일의 표정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분식점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뭐야? 여기 식당 맞아? 무슨 가정집보다 재료가 더 없어. 꼬투리를 잡으려 해도 잡을 게 없잖아.’

공무원은 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가 곤란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떡볶이와 어묵탕, 단 두 개를 만드는데 재료가 많이 있을 리가 없었다.

떡볶이 떡과 어묵 모두 유통기한이 한참 남아 있었고, 그 외 채소들은 눈으로 봐도 싱싱했다.

도저히 꼬투리 잡을 것이 없었다.

식당 안은 깨끗했고,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얼마 사용하지 않은 설비들은 아직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공무원은 마치 수술실의 의사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꺼낸 흰 장갑을 손에 꼈다.

싱크대며 후드, 입구에 설치된 매대까지 샅샅이 훑었다.

아무리 깨끗한 식당이라고 해도 흰 장갑을 끼고 훑으면 먼지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경일의 분식점은 그가 단속 나갔던 식당 중 처음으로 아무런 먼지가 묻어나지 않았다.

‘이게 뭐야? 장사는 안 하고 하루 종일 청소만 하는 거야? 무슨 결벽증 환자야?’

애초에 분식점 평수가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손님은 매대에 서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분식점 안이 더럽혀질 일이 잘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꿈과 같은 분식점인데, 관리를 소홀히 할 리가 없었다.

‘김 사장님은 날 왜 보낸 거야? 이건 점검을 하려고 해도 할 게 있어야 하지. 내 살다 살다 리어카보다 적은 메뉴로 장사를 하는 집은 또 처음 보네.’

그랬다.

이 사람은 김만복 사장이 보낸 공무원이었다.

경일이 자신에게 정색한 게 풀리지 않아 빅 엿을 먹이기 위해 보낸 사람이었다.

공무원은 평소 김만복 사장에게 비싼 술을 얻어먹거나 용돈을 받았다.

받은 게 있으니 뭔가를 보여 줘야 하는데, 여기는 단속할 거리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김만복이 한 번씩 이런 부탁을 해 오면 그는 곧바로 들어주었다.

본인 입장에서도 단속 건수를 올릴 수 있으니 나쁠 게 없었다.

경일은 점점 화가 났다.

냉장고에서 꺼내 놓은 재료가 상온에 방치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경일은 참지 못하고 냉장고에 재료를 다시 넣었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검사 안 끝났습니다. 지금 위생 점검 방해하시는 겁니까?”

공무원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큰소리를 냈다.

“음식 재료 넣습니다.”

경일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 이러면 곤란해집니다. 업무 방해로 행정 처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공무원은 경일에게 겁을 주었다.

식당 입장에서는 단속 공무원이 갑일 수밖에 없었다.

가끔 주제 파악 못 하고 덤비는 식당 주인도 행정 처분이란 말에 전부 꼬리를 말았다.

식당의 처지에서는 장사를 접을 게 아닌 이상은 더러워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위생과 직원과 척을 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공무원은 꼬투리도 안 잡히는 마당에 잘됐다 싶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다르게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마음대로 하세요.”

“뭐라고?”

공무원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놀라 되물었다.

“행정 처분이든 뭐든 마음대로 해보라고.”

경일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당신 뭐 하자는 거야? 나랑 지금 해보자는 거지?”

공무원은 목도리도마뱀처럼 가슴을 펼치며 경일을 향해 삿대질했다.

“말 한번 더럽게 많네. 한번 해보라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 상온에 다 꺼내 놓고 재료 넣었다는 거로 행정 처분을 내린다고? 그래, 까짓것 한 번 해봅시다. 아니, 내가 지금 구청에다가 직접 신고하지.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볼까요?”

경일이 핸드폰을 들었다.

김만복은 경일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경일이라는 인물은 한마디로 머저리로 인식되어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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