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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5화 (15/300)

[15화] 누구지?

식당을 운영하는 모습이나, 한 번씩 자신이 가서 비꼬아도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할 만큼 미련한 인간으로 봤다.

김만복은 공무원에게 경일을 바보 같은 놈이라 이야기했고, 그 말을 듣고 온 공무원은 거칠 게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껏 수많은 식당을 다녀 봤지만, 장사에 이렇게 소질 없는 사람은 처음이다 보니 더 만만하게 보였다.

하지만 경일은 절대 만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해코지하는 인간에게는 꼭 복수하고야 마는 독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몬스터 부산물 공장에서도 자신을 괴롭히는 놈의 발에 대못을 꽂아 놓고 나오지 않았는가.

“구청 전화번호가 몇 번이지?”

경일이 인터넷을 뒤져 구청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하자 곤란해진 건 공무원이었다.

지금처럼 사회가 혼탁한 시대에는 공무원의 힘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이 준 권력인데, 이들은 이 권력이 자신의 것인 것마냥 휘둘러 댔다.

서로가 서로의 뒤를 봐주니 이들의 잘못을 적발하고 견제할 수단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끗발 있는 공무원이라 해도 지금은 자신이 불리했다.

식당 위생 점검 일정이 없는데도 멋대로 나온 것이다.

구청에서는 자신이 점검을 나온 사실도 몰랐다.

이건 일종의 직권남용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위생 점검에 걸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억지를 부려 일어난 일이니, 구청에 말이 들어가면 좋을 게 없었다.

“잠깐만!”

공무원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만? 지금 공무원이 시민에게 반말하는 겁니까?”

경일의 눈초리가 사납다.

‘이놈은 뭐지? 바보 멍청이 같은 놈이라더니, 저 살벌한 눈빛은 뭐냐고? 빌어먹을, 이거 아무래도 제대로 똥 밟은 거 같은데. 김 사장님은 잘 알아보지도 않고… 설마, 나를 엿 먹이려고 일부러 여기로 보낸 거 아냐?’

공무원은 자신이 곤란해지니 모든 원망이 자신을 보낸 김만복에게 돌아갔다.

“잠깐만요.”

공무원 입에서 ‘요’자가 붙어 나왔다.

결국, 공무원이 경일에게 굴복했다는 의미였다.

“아이고, 이거 실례했습니다. 식당이 아주 더럽다고 신고가 들어와서… 아니지, 신고가 아니… 그게 아니라… 제, 제가 식당 주소를 착각해서 엉, 엉뚱한 곳으로 왔습니다.”

공무원은 김만복의 부탁을 신고라고 말했다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거 같아서 횡설수설했다.

“억울하시겠지만, 시민을 위한 공무를 처리하다 보니 발생한 해프닝이라 생각하시고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공무원의 허리가 반으로 접히고, 넓은 이마가 땅으로 향했다.

경일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공무원의 뒤통수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공무원이 말한 내용 중에 신고라는 단어에 꽂혀 있었다.

이 동네에서 그를 신고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손님이라 해 봐야 꼬마 손님들, 그리고 나머지 손님들은 대부분 단골이었다.

많지도 않은 손님이 자신을 신고할 이유가 없는 이상, 생각나는 인간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경일은 며칠 전 자신의 가게에 왔던 김만복을 떠올렸다.

그날, 평소와 다르게 자신이 좋아하는 꼬마 손님들 때문에 김만복에게 정색한 것이 기억났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설마 겨우 그 정도로?’

강한 의심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었다.

“누가 신고한 거죠?”

경일이 공무원에게 물었다.

“아니, 그건 규정상 말씀을 못 드리게 되어… 아니, 신고가 아니라 제가 주소를 착각한 거라니까요. 분명 제가 착각한 것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공무원은 경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쩔쩔맸다.

“어쨌든 이 모든 게 저의 실수이니,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러고는 공손한 얼굴로 다시 한번 깊이 머리를 숙였다.

조금 전 고압적이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지? 두 얼굴의 사나인가?’

공무원은 연신 사과를 하고 돌아갔다.

사과를 받아 냈지만, 경일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김만복이든 아니든 누군가가 분명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건 공무원의 태도로 확인했다.

‘누굴까? 아마 김 사장님이 맞겠지. 하~ 이거 증거가 없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네. 그나저나 이거 기분이 되게 나쁜데…….’

굳은 그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펴지지 않았다.

동네 분식을 나온 공무원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머리를 숙여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아주 크나큰 모욕이었다.

그는 곧바로 김만복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주임, 내 안 그래도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래, 어떻게 제대로 겁을 줬습니까?]

“아니, 김 사장님! 지금 장난합니까? 지금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랑 척지고 얼마나 잘될지 한 번 두고 봅시다!”

[아니, 김 주임? 지금 무슨 말을…….]

김만복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화가 난 공무원이 자신의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다.

김만복은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어 봤지만, 김 주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대체 김 주임이 왜 이러는 거지? 동네 분식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니, 그런 허접한 초보가 하는 가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어? 기본적인 식당 매뉴얼도 모르는 놈인데… 김 주임은 무슨 말이라도 해 줘야 할 거 아냐. 이런 식으로 전화를 끊어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비싼 술도 자주 사 주고, 용돈은 또 얼마나 찔러 줬는데, 나한테 이럼 안 되지. 이러면 안 되고 말고.”

김만복은 다시 한번 김 주임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수신 거부를 했는지 곧바로 신호가 넘어가 버렸다.

“이런 제기랄! 도대체 무슨 일이야? 궁금해 미쳐 버리겠네. 그렇다고 동네 분식에 가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김만복은 갈팡질팡하며 답답한 가슴을 연신 주먹으로 내려쳤다.

요즘 동네 분식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인기 메뉴는 라면이었다.

떡볶이와 어묵탕은 여전히 인기가 좋았지만, 라면을 한 번 먹어 본 사람들은 그다음부터는 자주 라면을 찾았다.

어묵탕이 시원하긴 했지만, 매운맛은 없었다.

얼큰한 라면 국물에 반해 버린 사람들은 이 맛에 푹 빠져 버렸다.

역시 오늘의 첫 라면 손님도 미용실 직원 이미순이었다.

“분명 라면 국물이긴 한데, 라면 국물이라고 말하기 미안한 이 라면 국물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니야~ 이건 라면 국물일 수가 없어. 라면 스프에서 절대 이런 맛이 나올 수가 없어. 이건 누군가가 술에 지친 나의 위를 직접 마사지하는 기분이잖아. 라면 국물의 탈을 쓴 당신은 해장계의 천사인가, 아님 악마인가? 난 이제 이 국물에서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하리라~”

이미순은 라면이 나오자마자 국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감동한 얼굴로 오늘도 찬사를 보냈다.

그녀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말했다.

말은 이미순이 했으나, 민망함은 모두 경일의 몫이었다.

“사장님, 무슨 라면 국물에서 이런 맛이 나죠? 진작 알았으면 어묵 안 먹고 라면만 먹었을 거예요! 이렇게 맛있으면 진즉 이야기를 해 줬어야죠! 어휴~ 어묵탕 국물이 최곤지 알았는데, 국물의 끝판왕은 라면이었네. 아이, 억울해. 오픈 첫날부터 먹었으면 적어도 서른 그릇은 더 먹을 수 있었는데.”

이미순은 오늘도 역시 수다스럽고 발랄했다.

표정이 풍부한 얼굴인데다가 큰 눈에 여러 감정을 담아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히 집중이 되었다.

그녀의 하이 텐션에 옆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사장님, 내가 어디 가서 절대 얘기 안 할 테니까, 이 국물에 뭘 넣었는지 살짝만 얘기해 주면 안 돼요오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혀 짧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애교에 마음이 녹아내릴 거 같았다.

“민물 새우를 끓인 육수 베이스에 고춧가루랑 라면 스프 넣고 끓인 거예요. 마지막에 파랑 계란 넣고.”

경일은 숨김없이 얘기해 주었다.

“음~ 민물 새우라… 민물 새우를 베이스로 육수를 내고, 그런데 민물 새우를 어디서 구하지? 에이, 귀찮아. 사장님, 전 그냥 여기서 사 먹는 거로 할게요. 미자 언니의 구박을 버티며 미용실 일하는 것도 피곤한데, 재료 구하고 육수 내고 이런 건 도저히 불가능할 거 같아요. 대신! 어디 가지 말고 오래오래 여기서 장사해 주세요. 아 참, 그리고 사장님, 라면 국물만 따로 포장이 가능할까요? 면은 집에 가지고 가면 퍼질 것 같으니 국물만요. 친구들이랑 이 국물에 소주 한잔하면 난리가 날 거 같은데… 굳이 면 말고 고기랑 채소를 샤부샤부처럼 해서 먹어도 너무 맛있을 거 같아요. 그럼 저녁에 국물로 한잔하고 다음 날은 라면으로 해장하고, 그럼 딱 이네. 히히.”

“그럼요, 단골이신데. 제가 맛있게 포장해 놓을게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저녁에 퇴근하고 가지러 올게요.”

“네.”

미순은 오늘 저녁 던전 민물 새우와 던전 고춧가루가 들어간 라면 국물로 소주 한잔을 기대하며 미용실로 갔다.

그녀는 희한하게도 동네 분식을 갔다 오면 기분이 풀렸다.

언니에게 구박을 받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히 동네 분식으로 발길이 향하곤 했다.

라면을 주문한 두 번째 손님은 수한이의 아버지 이길호였다.

30대 초반의 남자답게 서글서글하게 생긴 게 인상이 좋았다.

누가 봐도 수한이의 아버지인 걸 알 수 있을 만큼 아들과 붕어빵인 부자였다.

처음 이길호가 동네 분식에 온 건, 순전히 분식점 입구에 적혀 있는 가격 때문이었다.

라면 가격이 겨우 2500원인 걸 보고 들어왔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치고 사연 없고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길호의 사정은 장롱에 게이트가 열리기 전의 경일과 같이 매우 안 좋았다.

이길호의 직업은 헌터였다.

게이트가 열린 지 20년이나 된 지금의 세상에서 헌터면 누구보다 괜찮은 직업이지만, 헌터들 안에서도 명암은 분명 존재했다.

헌터들은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자신의 레벨을 올렸다.

헌터가 되는 순간 일반인의 신체 능력의 다섯 배 이상의 힘을 가졌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최하급 던전의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모자랐다.

초보 헌터들은 하급 던전에서 사냥이 가능할 만큼의 레벨까지 올리는 데에는 기존 헌터들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길드에 들어가 길드원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가장 무난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길드도 무조건 초보 헌터들을 받아 주는 건 아니었다.

헌터들에게 레벨이 오르지 않는 마의 구간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마의 구간은 레벨 10이었다.

이 말은 누구든 각성만 하면 10레벨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반대로 10레벨이 한계인 헌터는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11레벨로 올라갈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다음 마의 구간이 누구는 11레벨이 될 수도 있었고, 누구는 35레벨이 될 수도 있었다.

이건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의 한계였다.

평균적으로 10레벨 다음으로 만날 확률이 높은 마의 구간은 17, 30, 50레벨로 알려져 있었다.

50레벨 이상의 헌터들의 마의 구간은 여러 설이 있을 뿐,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길드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잠재력이 큰 사람을 뽑고 싶어 하는 건 당연했다.

초보 헌터들과 계약을 하고 길드의 자원을 지원해서 레벨 업을 시켰는데, 마의 구간에서 멈춰 버리면 길드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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