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튀김
“사실,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이 동네는 먹을 게 별로 없잖아요. 여기처럼 오픈 주방으로 청결하게 관리하는 곳도 없고. 전 맛보다 먼저여야 하는 게 청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안 쓰는 튀김 솥도 늘 깨끗하게 닦여져 있어서 믿음이 갔죠. 사장님 실력이면 당연히 맛있겠지만, 맛이 없어도 늘 먹으러 올게요. 아시죠? 저의 이 충성심?”
이미순이 살짝 윙크했다.
“메뉴를 늘인다고 했으니, 미용실 단골들에게 광고를 좀 해야겠다. 안 그래도 사장님 떡볶이 맛있다고 하는 언니들이 많았는데, 메뉴가 늘어나면 다들 좋아하실 거예요. 참, 사장님 가련한 이 소녀, 작은 부탁이 하나 있사옵니다.”
경일이 사극 말투를 흉내 내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 사극에 빠져 산다고 하더니.’
며칠 전에 들은 이미순의 말이 생각났다.
“저기 너무 비싸게 파실 거는 아니시죠? 다들 주머니 사정이 빤한지라. 우리 언니가 악덕 사장이라 월급을 쥐꼬리만 하게 줘서요. 헤헤헤.”
이미순이 말을 하면서 귀엽게 웃었다.
“물론 사장님이 파는 떡볶이랑 어묵, 라면만 봐도 얼마나 싸게 파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은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시죠? 역시 동네 분식 사장님의 인품은 누구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니까요. 동네 꼬마들도 평소보다 볼에 살이 오른 게, 전 모두 사장님의 은공이라고 이 소녀는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옵니다.”
“어휴~ 미순 씨, 부끄럽게 왜 그러세요. 어젯밤에 또 술 많이 마셨어요?”
이미순은 경일의 질문을 분명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경일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 보지만, 그뿐이었다.
“앞으로도 동네 사람들이 사장님의 성은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할 거 같아요. 동네 분식 전하께서 이 불쌍한 백성을 가련히 여기시옵소서.”
무슨 사극에 나오는 대신처럼 이미순이 머리를 조아리며 큰 소리로 연기를 했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웬 미친년 보듯 이미순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일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미순 씨,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뭐 어때요. 보든 말든. 내가 옷 벗고 춤을 춘 것도 아니고. 전 괜찮으니 신경을 안 쓰셔도 돼요.”
‘그게 아니라, 내가 부끄럽다고요.’
경일은 차마 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그녀는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공손한 얼굴로 반절을 하며 말했다.
“사장님께 소녀의 이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올 뿐입니다.”
그녀의 눈치 없음에 경일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장님, 분식점에 무슨 우환이 있어요?”
한숨을 들은 이미순이 물었다.
“아니요, 없는데요.”
“아닌데, 분명 조금 전과 다르게 얼굴색이 안 좋은데요.”
천진난만한 그녀의 표정에 왜 언니한테 매일 구박을 받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 튀김 가격 때문에 그러시구나. 그냥 해 본 이야기에요. 부담 안 느끼셔도 돼요. 저는 비싸도 무조건 사장님 분식을 이용할 거예요. 참, 저번에 라면 국물에 샤부샤부를 했는데, 친구들이 맛있다고 얼마나 좋아들 하는지.”
순간순간 그녀의 높은 텐션에 적응을 하지 못해 민망할 때가 있긴 하지만, 이미순의 행복 바이러스는 늘 사람을 기분 좋게 했다.
이미순처럼 귀여운 손님을 놓치기 싫어서라도 최대한 가격을 싸게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분식점으로 큰돈을 벌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돈을 벌고 싶으면 던전이 있으니 언제라도 벌 자신이 있었다.
“제가 최대한 싸게 가격을 책정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가게 2호 단골이신데, 그 정도 부탁은 당연히 들어 드려야죠.”
“감사해요, 사장님. 그리고, 제가 2호 단골이에요? 아깝다. 조금만 더 빨리 떡볶이를 먹으러 왔으면 1호 단골이 됐을 건데. 사장님 앞 접시 하나 주세요.”
경일은 이미순에게 앞 접시를 하나 건네주었다.
이미순은 작은 덩치에 비에 먹는 양이 많았다.
그런데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이 수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장님, 튀김도 주세요. 처음 나온 거니 먹어 봐야지.”
“튀김은 미완성작이라 아직 파는 건 아니에요. 대신 시식 좀 부탁드릴게요.”
“어머, 그래요. 그런 건 제가 또 잘하잖아요. 이래 보여도 제가 어릴 때 별명이 꼬마 대장금이었잖아요.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아시죠? 이 유명한 대사. 그리고 혹시 들어 보셨어요? 절대 미각이라고? 제가 그 유명한 절대 미각 미소녀 이미순입니다. 푸하하하하하! 제가 제대로 맛에 대해 평가해 드릴게요.”
경일은 이미순의 귀여운 허세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그녀는 앞 접시에 고구마튀김을 하나 올려놓았다.
“사장님, 튀김옷이 얇은 게 분식점 튀김 같지 않고 고급 일식집 튀김 같아요. 이거, 먹기 전인데도 벌써 맛이 기대되는데요?”
이미순이 큼직하게 고구마튀김을 베어 먹었다.
오물거리고 먹는 모습에 경일은 살짝 긴장되었다.
“사장님… 맛있어요! 특히 튀김옷이 좋은데요. 두껍지도 않고 바삭하고. 다른 곳에 가면 내용물은 작은데 튀김옷만 두껍게 해서 팔잖아요. 그런 튀김은 느끼하기만 한데, 사장님 튀김은 고소하니 괜찮네요. 역시 사장님!”
분명 칭찬이긴한데 그녀의 얼굴에 물음표가 보였다.
그건 당연했다.
이미 던전 재료가 섞인 음식으로 기대치가 높았을 건데, 지금 먹은 튀김은 아무래도 기대에 한참 못 미칠 것이었다.
이미순은 떡볶이 양념을 퍼서 튀김에 찍어 먹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경일은 튀김에만 신경 쓴다고 찍어 먹을 간장 소스를 만들지 않은 걸 깨달았다.
“이것도 드셔 보세요.”
경일은 고추튀김과 야채튀김을 하나씩 앞 접시에 올려놓았다.
“어머, 야채튀김도 하시게요? 이거 재료 다듬는데 손 많이 간다고 요즘 하는 곳이 없던데. 제가 또 야채튀김을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고~ 훗,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사장님도 제 팬이시구나.”
이미순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허세를 부렸다.
미자 미용실이 잘되는 게 아마 이미순의 매력이 큰 몫을 하고 있으리라.
“어휴, 배불러.”
이미순은 튀김을 하나씩 먹고도 떡볶이에 어묵까지 먹고서는 배를 두드렸다.
“역시 음식은 정성이네요. 딱 봐도 얼마나 정성껏 만들었는지 티가 나요. 이 정도만 해도 웬만한 곳보다 맛있습니다.”
그녀가 열심히 칭찬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니에요. 오늘 처음 만들어 본 거라 많이 부족해요. 아직 손님에게 내놓을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한참 멀었어요. 손에 익지도 않아서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미순 씨가 착해서 좋은 말만 해 주시는 거 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생각보다는 반응이 괜찮아서 조금은 희망이 보이네요.”
“어머 아니에요, 사장님. 제가 미식가라니까요. 이 정도면 다른 분식점 튀김보다 훨씬 나아요. 사장님이 다정 분식 튀김을 안 먹어 봐서 그래요. 거긴 진짜 최악이거든요. 기름 온도도 안 맞아서 한 번 씹으면 무슨 입안이 식용유로 가득 찰 정도예요. 더군다나 튀김옷은 얼마나 두꺼운지. 분명 튀김인데, 떡을 먹는 식감이 난다니까요. 바싹하게 튀겨 달라고 하면 이건 바삭한 게 아니라 무슨 벽돌을 씹는 기분이 들 정도로 딱딱하고. 사장님 튀김처럼 재료도 풍성하고 튀김옷도 얇고, 바삭하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봐요. 아마 사장님 튀김의 적은 여기 떡볶이랑 어묵이 될 거 같아요. 이 두 개는 전국을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어서. 헤~”
이미순은 마지막 말은 원래 할 생각이 없었는데, 흥분해서 말하다가 그냥 나오고 말았다.
민망했던지 귀여운 웃음을 지었다.
“사장님, 그럼 소녀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이미순이 단정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경일이 매대를 정리하고, 튀김 준비를 했다.
조금 있으면 동네 아이들이 올 시간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나타나자 매대 앞이 시끌벅적해졌다.
“어서 와요. 우리 귀염둥이들.”
경일이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와~ 튀김이다, 튀김.”
“진짜 튀김이네? 난 떡볶이도 좋지만 튀김도 좋아.”
“아저씨, 튀김은 얼마에요?”
“앞 접시 주세요! 빨리요!”
다섯 명의 아이가 제각기 떠들어 대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튀김은 파는 게 아니에요. 공짜에요. 대신 먹어 보고 맛있는지 맛없는지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데, 전부 잘할 수 있죠?”
경일은 마치 유치원 교사처럼 아이들에게 말했다.
지금 온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닐 정도로 어렸다.
원래라면 이 정도의 나이의 아이들은 어른들과 같이 다녀야 하지만, 이 동네에서는 아이들끼리 모여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들은 먹고살기 위해 오랜 시간 일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와아아아아~”
공짜라는 말에 아이들이 함성을 찔렀다.
“아저씨, 나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얼른 주세요!”
“저도요.”
“나도, 나도.”
아이들이 매대에 서서 서로 먼저 달라고 재촉했다.
“잠시만 기다려요.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부터 먼저 줄 거예요.”
경일은 능숙하게 아이들을 다루고 미리 튀겨 둔 튀김을 넣었다.
‘익숙해지면 미리 튀겨 놓지 말고 주문을 받자마자 튀기는 방식으로 해야겠어. 번거롭겠지만 그게 훨씬 더 맛있으니.’
경일은 튀김이 튀겨지는 동안 각자 앞으로 앞 접시를 하나씩 놓았다.
그러고는 튀김을 건져 튀김에 묻은 식용유를 한 번 털어 내고, 먹기 좋게 잘라 골고루 앞 접시에 놓았다.
“튀김은 여기 간장 소스에 찍어 먹어.”
깜빡했던 튀김에 어울리는 간장 소스까지 꺼내 놓자 아이들이 튀김을 포크로 찍어 빠르게 먹었다.
“뜨거우니 천천히 먹어야 해요. 후후~ 불어 가면서. 아직 많으니까 천천히, 알았지?”
“네에~”
아이들은 먹으면서도 입을 맞추어 대답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경일의 입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야채튀김과 고추튀김까지 작게 잘라 아이들의 앞 접시에 놓았다.
“고추튀김은 매울 수도 있으니, 매운 거 못 먹는 친구는 안 먹어도 돼요.”
“많이 매워요? 먹고 싶은데…….”
아이 한 명이 아쉬운 듯 고추튀김을 쳐다봤다.
“그럼 조금만 먹어 보고, 먹을 수 있을 거 같으면 먹어. 절대 무리해서 먹으면 안 돼요.”
경일은 맛만 볼 수 있게 고추튀김을 작게 잘라서 앞 접시에 놓았다.
아이가 얼른 포크로 찍어 고추튀김을 먹었다.
“조금 매운데, 안에 들어간 야채 때문에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이의 말에 경일이 고추튀김을 조금 더 잘라 주었다.
공짜라 그런지 아이들이 평소보다 더 신이 나서 튀김을 먹었다.
“아저씨!”
한참 튀김을 먹든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응, 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안 돼요?”
“안 되긴~ 당연히 먹어도 되지!”
경일이 질문을 한 아이의 앞 접시에 떡볶이 국물을 조금 덜어 주자,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손을 들었다.
“저도 주세요!”
“아저씨, 나도 주세요.”
“그래, 알았어.”
경일은 얼른 아이들의 앞 접시에 떡볶이 국물을 덜어 주었다.
“와, 맛있다. 역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니 훨씬 더 맛있어.”
“아저씨, 저는 튀김도 맛있지만, 역시 떡볶이가 제일 맛있어요!”
“나도요. 떡볶이가 제일 맛있어요.”
아이들의 이구동성에 경일은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아무리 튀김을 맛있게 만들어도 떡볶이와 어묵탕을 이기긴 힘들 걸 알고 있었다.
던전 재료가 들어간 이상, 그건 당연했다.
그러면서도 경일이 웃음을 지은 건, 처음 만들어 본 튀김이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 때문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