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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2화 (22/300)

[22화] 금빛 동아줄 (1)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연습을 좀 더 하고 던전 재료를 섞어서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하겠는데?’

그동안 푹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니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희열이 있었다.

분식점을 오픈하고 오늘이 가장 바쁜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장사도 하면서 튀김을 만들다 보니 하루가 짧았다.

많은 사람이 튀김에 좋은 의견을 남겨 주었고, 덕분에 기분 좋게 장사를 끝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게이트를 보니 아침보다 색깔이 진해 보였다.

“다행히 내 생각이 맞았구나.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봐 온종일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게이트는 던전과 지구에서 열심히 활동하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분명 밝히고 있었다.

거점의 집으로 간 경일은 간만에 마음을 놓고 푹 잘 수 있었다.

* * *

“으으으.”

잠에서 깨어난 경일은 기지개를 켰다.

커튼을 젖히니 던전의 햇살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잠은 역시 던전에서 자는 게 제일이야.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몸이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니까.”

오늘 아침은 든든하게 식사를 했다.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미리 많이 먹어 두었다.

오늘도 적당한 대나무를 자르고, 대나무 속의 막을 모두 제거했다.

그다지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서 대나무를 다듬는 것은 빠르게 작업 할 수 있었다.

경일이 낙차를 이용해서 집까지 물을 끌고 오는 건 단지 생활용수로 쓰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먹고 씻는 용도로만 사용할 거면 조금 귀찮지만, 개울에서 해결해도 충분했다.

그는 집 근처의 땅을 개간해 여러 가지 작물을 키울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파 한 가지만 기르고 있지만, 종류를 차츰 늘여 갈 생각이었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물이었다.

개울의 물을 길어다 농사를 짓는 것은 힘만 들고 효율이 떨어지는 미련한 짓이었다.

경일은 여러 군데 물길을 만들어 좀 더 체계적으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계곡과 집의 거리는 거의 3㎞가 넘었다.

대나무를 준비하고 옮기는 데에만 꼬박 일주일이나 걸렸다.

이제부터가 진짜 일의 시작이었다.

계곡과 집까지 대나무를 심을 땅을 길게 파야 했다.

경일은 계곡부터 시작해서 괭이로 땅을 팠다.

던전의 비옥한 땅을 파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대나무와 대나무의 연결은 준비해 둔 고무판으로 감싸 단단하게 묶었다.

장장 3㎞ 떨어진 계곡의 물이 통과할 대나무를 연결하는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분식점에서는 꾸준히 튀김을 만드는 연습을 했고, 던전에서는 대나무를 연결해 나갔다.

던전 시간으로 거의 보름에 걸쳐 공사를 완성했다.

지구로 말하면 상수도관을 깐 거나 마찬가지였다.

집 근처까지 연결한 대나무에서 연신 계곡의 맑은 물이 뿜어져 나왔다.

물이 나오니 확실히 생활이 편해졌다.

물을 길어 나르러 개울까지 갈 필요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다음 할 일은 땅을 개간하는 것이었다.

던전은 식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라 어디든 나무와 식물들이 잘 자랐다.

일단 작물을 심을 곳은 삽으로 일일이 땅을 한 번 뒤집어야 했다.

풀뿌리가 깊게 땅에 박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삽이 안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일일이 손으로 풀을 뽑고 잔돌들을 치웠다.

땅을 한참 개간하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람 소리, 물이 흘러가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푹 빠져 일을 했다.

가슴속의 작은 스트레스도 모두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개간이 끝난 땅을 보면 기분이 뿌듯했다.

정리된 땅을 보고 있으면 묵은 청소를 한 듯이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땅이 점점 밭으로 탈바꿈을 했다.

아직 개간한 곳이 얼마 되지 않아 밭은 작았지만, 일단 고구마부터 심었다.

이번에 대나무를 땅에 묻으려고 땅을 파면서 고구마를 발견했다.

농사를 잘 모르는 경일은 고구마 줄기부터 뿌리까지 통째로 가지고 와서 심었다.

파가 자라는 걸 보면 고구마도 잘 자랄 것으로 보였다.

점심은 고구마를 쪄 먹었다.

입안에 깊은 단맛이 확 퍼졌다.

“무슨 이런 맛이 나지? 정말 맛있잖아. 섬유질도 거의 없고. 푸슬거리는 식감까지, 너무 맛있어!”

[던전 고구마를 먹었습니다. 피부가 좋아집니다.]

고구마의 효능이 적인 메시지를 보자 단골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들 피부가 고와지겠지.’

새로운 던전 식물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뿌듯했다.

‘정말 대단하지 않아?’

하며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그걸 할 수 없는 게 던전에서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경일은 열심히 땅을 개간해 나갔다.

그렇게 거의 200평 정도의 땅을 개간해 밭으로 만들었다.

일일이 풀을 뽑고 잔돌을 골라내고 가끔은 나무를 뽑아내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밭을 자랑스럽게 한번 바라보고는 분식점으로 향했다.

* * *

― 오늘 아홉 시 뉴스는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뻔한 위험한 상황의 보도로 시작합니다.

취재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김효원 기자.

― 네. 김효원 기자입니다. 오늘 신화 길드가 공략하기로 했던 삼락동 E급 던전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뻔한 아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 어떻게 된 일이죠?

앵커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 오늘 던전 브레이크는 신화 길드의 안일한 대응으로 일어난 일로 보입니다. 신화 길드 헌터들은 게이트 입장 시간이 다 됐음에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헌터 협회 직원이 급하게 신화 길드와 오늘 공략하기로 한 헌터들에게 연락을 취해 봤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게이트가 열리고 거의 두 시간이 지나 신화 길드의 헌터들이 도착했지만, 원래 인원의 반도 오지 않았습니다. 게이트의 파동이 점점 강해졌고,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직전 급하게 연락받은 헌터들과 함께 게이트로 진입했습니다. 다행히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고 던전 폐쇄에 성공하긴 했지만, 자칫하다가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습니다.

기자는 숨을 고르려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 나갔다.

― 이번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기라도 했으면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을 만큼, 이번 사태의 정확한 분석과 재발 방지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걸로 보여집니다. 이상으로 김효원 기자였습니다.’

퍽!

TV에 기다란 명패가 박혔다.

파지지직!

전기가 튀는 소리와 함께 TV의 모든 활동이 멈췄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신화 길드의 길드장 곽마권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이 적인 명패를 던진 것이다.

“부길드장, 부길드장!”

곽마권의 찢어지는 목소리에 이성호가 쭈뼛거리고 들어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번 던전 공략하기로 한 놈들이 왜 게이트로 가지 않은 거야.”

그의 눈에 핏발이 가득 찼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말을 하면서 침이 흐르다시피 튀었다.

“저, 그게…….”

이성호가 그런 곽마권의 모습에 겁을 먹고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씨발 새끼야. 똑바로 대답 안 해!”

“그게… 2팀이 들어가기로 했는데, 게이트 들어가기 전날 과음을 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술 마시다가 뻗었다고? 이 새끼들이 미쳤나. 부길드장은 도대체 얘들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 모양이야! 이게 길드야? 이게 길드 맞냐고? 세상에 얼마나 정신머리가 빠졌으면 던전 공략을 술 먹고 안 갈 수가 있어? 어디 말을 해 봐.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라고!”

이성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할 말이 없어 입을 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곽마권의 시퍼런 서슬에 주눅이 들어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씨발,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길드에 신경 안 쓰고 맨날 그 사과 장수 찾는다고 소속 헌터들을 말도 안 되는 일에 투입해서 그런 거잖아. 길드 업무는 모두 뒷전이고, 그놈한테 미쳐서 매일 돌아다니니, 길드가 제대로 돌아가겠냐고. 내가 부길드장이긴 해도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잖아. 길드 내 헌터들이 어디 내 말을 들어먹기는 하냐? 당신이 나를 허수아비 취급해 놓고, 이제 와서 나에게 왜 성질을 내고 그래. 길드의 모든 권력은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서 나보고 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성호는 속에서 치밀어 오는 울분을 참으며 묵묵히 곽마권의 욕을 듣고 있었다.

그는 이 지긋지긋한 신화 길드를 진즉부터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신화 길드는 자신이 관두고 싶다고 해서 나갈 수 있는 길드가 아니었다.

길드장의 허락이 없는데 길드 탈퇴를 하면, 이들은 린치를 가해 몸 한군데를 못 쓰게 만들었다.

헌터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길드에 묶여 있어야만 했다.

말이 길드지, 조폭 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신화 길드처럼 말만 길드고 조폭 조직인 길드는 수없이 많았다.

힘을 가진 이들이 순순히 사회의 제도 안에서 얌전하게 살아간다는 게 어떻게 보면 말이 되지 않았다.

이들을 강제할 정부의 강력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독버섯처럼 계속해서 자라났다.

“당장 2팀 모두 잡아 와. 당장 잡아 오라고! 내 이 새끼들을 작살내 버리고 만다.”

그의 눈가가 분노로 가늘게 떨렸다.

부길드장의 연락을 받은 2팀장 허태윤은 제 발로 길드 본부로 갔다.

사고를 치고 한동안 잠수를 탈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

그냥 오늘 혼나고 말자는 생각을 했다.

“오늘 간만에 혼 좀 나겠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네. 그 정도 마시고 뻗어 버리다니. 앞으로 건강 생각해서 술을 좀 줄이던가 해야겠다.”

그는 곽마권이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크게 긴장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지옥 불에 제 발로 들어가는 두려움이 엄습했겠지만, 지금의 길드장은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요즘 하는 짓을 보면 길드를 유지할 생각이 있는 건지 한심할 정도였다.

“멀쩡하던 사람이 미치는 것도 한순간이네. 뭣 같은 몽타주 하나 주면서 사과 장수를 찾으라고 하질 않나. 우리 같은 고급 인력에게 냄새나는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라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냐고. 최소한 이유라도 알려주고 일을 시키든가. 아니면 돈이라도 주든지 해야지. 요즘 같은 세상에 공짜로 일을 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뭐, 이번 사고가 좀 크긴 해도 길드장도 적당히 경고하고 말 거야. 내가 지금까지 길드에 세운 공이 얼만데. 거기다가 별말 없이 시장바닥도 돌아 줬잖아. 길드 문 닫을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내 덕에 더 빨리 닫으니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하는 거 아냐? 하하하하. 만약 나한테 지랄을 하면 나도 진지하게 생각 좀 해 봐야겠어. 미래도 안 보이는 길든데, 여기 더 있어 봤자 좋을 것도 없잖아. 나도 이번에 수틀리면 얘들 데리고 독립을 하든지, 다른 곳으로 옮기든지 해야겠다. 뭐, 길드장도 아무 말 하지 못하겠지.”

그는 크게 사고를 치긴 했으나, 별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미 곽마권은 길드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길드원들 사이에는 조만간 신화 길드가 문을 닫을 거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모르는 건 오직 길드장 혼자였다.

허태윤은 곧바로 길드장실로 향했다.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부길드장의 얼굴색이 안 좋았다.

“어이, 부길드장. 무슨 일 있어? 얼굴이 많이 안 좋은데? 길드장님 화 많이 나셨어?”

허태윤은 이성호를 아랫사람 대하듯 말했다.

“일단 들어가 봐.”

자신이 아무리 힘없는 부길드장이라고 해도 2팀장의 태도에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그를 가장 무시하는 게 허태윤이었다.

그나마 다른 팀장들은 존대라도 했지만, 허태윤은 어느 순간부터 숫제 반말을 했다.

헌터 레벨은 그가 더 높았지만, 나이는 자신이 훨씬 많았다.

더군다나 직책도 높았고.

그에게 반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곤 했다.

그래서 이성호는 일부러 사태의 심각성을 허태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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