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금빛 동아줄 (2)
곽마권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이번 사고로 길드가 앞으로 입을 손해라든지 이런 건 일절 말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별거 아니라는 투로 그에게 말해 주었다.
허태윤 별생각 없이 길드장실을 들어갔다.
‘이게 뭐지?’
들어온 길드장실은 분위기가 이상했다.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은 게, 꼭 옛날에 엄청나게 강한 몬스터를 만났을 때의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죽을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개새끼야!”
곽마권의 입에서 엄청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허태윤은 길드장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길드장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피부는 전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든 눈자위는 섬찟했고, 그의 이마에는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꽉 쥔 주먹에서 느껴지는 투기에 몸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
“헉!”
하태윤은 자신도 모르게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침을 삼켰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길드장의 모습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퍼억!
곽마권이 득달처럼 달려가 멍청하게 서 있는 허태윤의 명치에 기습적인 주먹을 박아 넣었다.
“커억!”
강렬한 통증이 명치에서 일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몸이 새우처럼 말리고, 다물지 못한 입에서 침이 질질 새어 나왔다.
곽마권은 머리채를 휘어잡고, 우악스러운 힘으로 굽혀진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드드드드득!
머리카락이 뜯기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그의 섬찟한 목소리가 허태윤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씨발놈아, 어금니 꽉 깨물어. 넌 오늘 내가 죽여 버릴 거니까 단단히 각오해라.”
곽마권이 혼이 나간 듯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허태윤의 뺨을 힘껏 때렸다.
쫘악!
거대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빠르게 왼쪽으로 돌아갔다.
“아아아아아악!”
엄청난 고통에 허태윤의 입이 벌어지며 새하얀 이빨 몇 개가 공기 중으로 튀어 올랐다.
“하, 이 새끼야, 내가 이빨 꽉 깨물라고 했지. 평소에 더럽게 뺀질거리더니 쳐 맞으면서도 말을 안 듣네.”
“잠… 잠깐… 잠깐만…….”
허태윤이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허우적거렸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때리지 말라는 의사를 몸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곽마권은 여기서 그만둘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뻑!
허태윤의 코에서 피가 터졌다.
오뚝하던 코가 짜부라지며 휘어선 안 될 방향으로 돌아갔다.
가만히 보니 코의 높이도 많이 낮아진 듯 보였다.
찌잉!
찌릿한 고통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뇌를 직격하는 벼락을 맞으면 나는 아픔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태윤이 종이처럼 나풀거리며 힘없이 쓰러졌다.
몇 대 맞지도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입술이 터져 벌어진 입에서는 이빨이 몇 개 보이지 않았다.
코는 삐뚤어져 부러져 있었고, 두 개의 콧구멍에서는 새빨간 피가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다.
걸레짝처럼 널브러진 허태윤을 보고도 곽마권은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로 분한 마음이 가라앉을 거라 생각했으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숫제 쓰러진 허태윤의 몸을 깔아뭉개고 앉았다.
두 팔을 무릎으로 눌러 구속하고,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퍽퍽퍽퍽퍽!
섬찟한 타격음이 들렸다.
모든 감정을 담은 주먹은 허태윤의 얼굴을 짓뭉개 버렸다.
문밖에서 듣고 있던 이성호가 오줌을 지릴 지경이었다.
“이 새끼야. 감히 너 같은 놈이 일생을 노력해 만든 길드를 망하게 만들어? 어디 그 뻔뻔한 얼굴을 치켜들고 들어오는 거야. 내가 한동안 다른 일로 바빠서 신경을 좀 안 썼더니, 내가 만만해 보이디? 하여간 이런 좆같은 새끼는 내가 아무리 바빠도 3일에 한 번씩은 밟아 줬어야 하는데. 이건 전부 내 실수다.”
곽마권은 말을 하면서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었으면 벌써 죽고도 남았을 리라.
“잘… 잘…못했…습…니…다. 제…발 …그…만…….”
허태윤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곽마권에게 빌었다.
“잘못할 짓을 왜 해? 아무리 대가리가 멍청하다 해도 술 먹고 던전 폐쇄에 가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팀원들이 네놈 눈치나 보고, 무조건 잘했다고 띄워 주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지? 하여간 멍청한 놈들이 자신이 똑똑하다고 착각하면 꼭 이런 큰 사고를 치더라고. 넌 지금 네가 한 짓으로 길드에 얼마나 큰 손해를 입힌 건지 잘 모르지? 아냐, 몰라도 돼. 내가 네놈 몸에다가 직접 그 잘못을 새겨 줄 테니.”
곽마권은 이를 갈며 이야기했지만, 허태윤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두 눈이 까뒤집힌 채로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바지의 갈라지는 부분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똥 냄새가 올라왔다.
“씨발, 기절했네. 부길드장, 부길드장!”
길드장의 부름에 이성호가 곧바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널브러진 허태윤을 보고서는 섬찟하고 순간 몸이 굳었다.
조금 전에 봤던 그의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이 정도면 그의 부모도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짓이겨져 있었다.
곽마권은 처음 한 방을 빼고는 전부 허태윤의 얼굴만 때렸다.
“이놈, 대충 씻겨서 지하 창고에 가져다 놔라. 난 물 한잔하고 내려가서 이놈하고 마저 볼일을 볼 테니. 그리고 2팀 팀원들 오면 전부 지하 창고로 데려와. 혹시 그놈들이 눈치라도 채고 도망가면 네놈이 대신 맞을 테니, 일 처리 똑바로 하고.”
그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리며 콧등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알…알겠습니다.”
이성호는 그의 이글거리는 눈을 보고 겁을 먹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날 허태윤을 비롯한 2팀원들은 모두 병신이 되었다.
곽마권이 직접 한 명 한 명 뼈를 밟아 으스러뜨렸다.
E급 던전 폐쇄에 참여하기로 했던 모든 헌터들은 이날 모두 강제로 은퇴를 해야만 했다.
다음 날.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은 곽마권은 우선 길드에 당장 처한 위기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부길드장, 여론은 어때?”
“아주 안 좋습니다. 도심지에 나타난 게이트라 사람들의 흥분이 쉽게 가라앉을 거 같진 않습니다.”
곽마권의 이마를 지나는 핏줄이 평소보다 훨씬 도드라져 보였다.
찌푸린 얼굴에서는 누가 살짝 건들기만 해도 독설이 튀어나올 거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전국의 모든 언론이 우리를 지목하고 있을 텐데. 언론에 돈을 먹여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니미럴, 내가 피땀 흘려 키운 길드를 이 개새끼들이 말아먹었어. 휴~”
곽마권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 사태가 일어난 첫 번째 이유가 자신이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달이 벌어진 건 모두 그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던전 사과를 먹고 난 뒤, 그는 경일을 포기하지 못했다.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큰 권력을 원하던 그에게 경일은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 동아줄이었다.
경일만 잡으면 그는 지금의 좁은 물에서 떠나, 더 높은 세계에서 더욱 화려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 같은 길드를 중형 길드로 보내 줄 프리패스권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특히, 5팀장의 와이프가 다시 경일을 찾아냈고, 눈앞에서 놓쳐 버리는 바람에 그의 미련은 더욱 커졌다.
그 뒤로 곽마권은 경일을 찾기 위해 직접 뛰었다.
길드의 모든 헌터를 경일을 찾는 일에 동원했다.
길드원들은 이런 하찮은 일에 자신들이 동원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돈도 되지 않는 일에 강제로 동원되니, 당연한 결과였다.
곽마권은 경일의 비밀을 길드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 사실을 무조건 숨겨야 했다.
소속 길드원이라고 할지라도 이 사실을 알면 당연히 욕심이 날 것이다.
소문이라도 나서 더 큰 세력이 붙으면 자신은 힘없이 밀려날 수도 있었다.
‘죽 쒀서 개 줄 수는 없지.’
곽마권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더욱 헌터들을 조였다.
길드를 유지하려면 던전 공략은 필수였다.
하지만 경일을 찾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 덕에 헌터들의 기강이 무너진 지 오래였다.
결국, 이 사달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헌터 협회의 반응은 어때?”
“그게… 좀 많이 안 좋습니다. 길드 라이선스를 회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간간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떻게 될 거 같아?”
“분위기로 봐서는 길드 폐쇄까지는 가지 않을 테지만, 던전 입찰이 많이 힘들어질 건 기정사실입니다.”
“하긴, 한 번 큰 사고를 쳤는데 이들이 쉽사리 우리에게 일을 주진 않겠지. 개새끼들. F급 던전도 아니고, 하필 E급 던전으로 이런 사고를 쳐?”
곽마권은 답답한지 상의의 단추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그는 긴 장고에 들어갔다.
‘목숨과 같은 길드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길드의 존폐가 위험해진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새끼가 가진 던전을 뺏어 오는 수밖에 없어. 그동안 고개를 바짝 숙이고 길드의 명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경일이었다.
곽마권은 길드의 간부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이제부터라도 길드의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 새로 생기는 게이트에는 무조건 입찰을 한다. 되든 안 되든 무조건 입찰을 하는 거야. 그리고 부길드장이 헌터 협회 직원을 만나서 최대한 로비를 해 봐. 사건이 잠잠해지면 E급 던전은 몰라도 F급 던전은 수주할 수 있을 거야. 길드원들의 동요도 최대한 가라앉혀야 해. 2팀 얘들 병신 된 거, 은밀히 소문을 내. 앞으로 조그마한 실수도 내가 직접 나서서 아주 박살을 내놓을 거니, 절대 조심하라고 전해. 길드를 나간다는 뭐, 이딴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면 그놈은 앞으로 헌터 할 생각은 버려야 할 거야. 내 말이 거짓말인지 궁금하면 한 번 시도해 보라 그래. 뭐든지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야 그다음부터는 일이 잘 돌아가거든.”
곽마권은 아주 이를 갈았다.
이 방법이 길드원들의 불만을 누를 임시방편밖에 되지 않겠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착실하게 힘을 합쳐 길드의 위기를 넘기자고 한다면, 소속 헌터들은 모두 비웃고 떠날 게 분명했다.
침몰하는 배에서는 쥐새끼들이 가장 먼저 탈출하는 법이다.
차라리 길드를 해체하고 새로운 길드를 세워 발전시키는 것이 더 빠를 거란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쥐고 있는 자들이면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모두 신생 길드를 물어뜯으려고 할 것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다시 길드를 세워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 아예 시도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젊었을 때야 멋모르고 죽을 둥 살 둥 노력했으니 가능했다.
이미 쓴맛 단맛 다 알아 버렸는데 그 짓을 다시 하라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지금의 상황이 비록 최악이지만, 곽마권은 이대로 자신의 피땀으로 세운 길드를 포기할 생각이 절대 없었다.
그는 어떡해서든 경일을 잡아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 * *
분식점에 출근한 경일은 가장 먼저 기름 솥에 식용유를 부었다.
던전 고구마튀김의 맛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쪄서 먹었을 때도 천상의 맛이었는데, 튀김으로 만들면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감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기름이 끓는 동안, 고구마를 깨끗이 씻어 일정한 크기로 잘라 물에 담가 두었다.
전분을 빼준 뒤, 물기를 빼기 위해 체에 밭쳤다.
튀김 반죽을 고구마에 묻혀 기름 온도가 170도가 넘어갈 때, 기름 솥에 넣었다.
고구마가 튀겨지며 내는 맛있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으로 변해 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