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스킬이 생기다
철저히 공략대가 지나간 길에서만 자원을 채취해야 그나마 안전했다.
헌터들이 몬스터를 죽이고 자원을 채취하고 가는 건 같았다.
하지만 D급 던전에서 활동할 정도의 헌터들은 굳이 주위를 샅샅이 뒤져 가며 자원을 채취하지는 않았다.
던전 자원이 돈이 되긴 해도 가장 돈이 되는 건 몬스터를 잡으면 나오는 마나석이었다.
마나석만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다 보니, 굳이 던전 자원 채취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에 몬스터를 잡는 게 이득이었다.
그 틈을 노리고 이길호 같은 스캐빈저들이 들어갔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셈이다.
“와이프가 몸이 좋아지니 수한이도 기뻐하고, 충분히 위험을 무릅쓴 보람이 있었어요. 오늘은 간만에 아들이랑 같이 술도 한잔하려고요.”
이길호의 말에 경일은 마음이 아팠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사장님, 오늘은 전 메뉴를 다 주십시오.”
이길호가 아들 앞에서 호기롭게 외쳤다.
“하하하, 이렇게 전 메뉴 주문도 할 수 있고, 여기는 우리 가족이 가장 사랑하는 가게입니다.”
“아저씨, 빨리 주세요.”
이수한이 포크를 손에 쥐고 재촉했다.
“알았어. 아저씨가 맛있게 만들어 줄게.”
경일은 먼저 어묵탕을 한 그릇 떠서 소주와 함께 냈다.
“캬~ 역시 사장님의 어묵탕 국물은 안주든, 해장이든 예술이라니까요.”
튀김을 준비하는 경일의 등 뒤에서 이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에는 멋진 한 상이 차려졌다.
떡볶이와 어묵탕, 튀김, 라면이 테이블에 가득 찼다.
경일은 막상 차려진 한 상을 보니, 이제야 자신의 가게가 분식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와~ 아저씨, 고구마튀김 너무 맛있어요! 얘들이 맛있다고 해서 빨리 오고 싶었는데, 아빠랑 같이 오려고 참았거든요. 아빠랑 오길 잘한 거 같아요. 맛있는 튀김이랑 떡볶이, 어묵을 마음껏 먹을 수 있잖아요.”
수한이가 포크를 튀김에 찍어 떡볶이 국물에 적셔 먹었다.
이길호는 아들이 잘 먹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좋은지 흐뭇하게 웃으며 소주를 한잔 마셨다.
“사장님, 이 고추튀김 너무 맛있는데요? 고추튀김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분명 튀김인데 하나도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게 맵네요. 튀김 안에 들어간 속 재료도 꽉 차 있고, 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이건 한 끼 식사로 먹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고기 맛도 나는데, 설마 이 가격에 돼지고기까지 넣으신 거예요? 대단하시다. 이렇게 팔아서 도리어 빚지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다 남으니 파는 거죠.”
“아빠, 나도 고추튀김 주세요.”
이길호는 아들이 먹기 좋게 잘라서 주었다.
“맵지 않아?”
“매운데 먹는 건 힘들지 않아요.”
“그래, 우리 아들 많이 먹어.”
경일은 아버지와 아들의 정다운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겨우 메뉴 하나 늘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니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간단한 음식을 파는 분식점이지만, 손님들과의 교감은 절대 작지 않았다.
여러 손님을 대하면서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경일에게 본보기가 되기도 했으며 반면교사로 삼기도 했다.
자신이 어렵게 커서 그런지, 이길호와 같이 힘들게 사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쓰였다.
경일의 인생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최소한 이길호처럼 목숨을 걸고 살아오지는 않았다.
이길호는 분명 두려웠을 테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걸고 D급 던전에 들어갔다.
경일은 그의 숭고한 희생에 마음속이나마 박수를 보냈다.
이길호는 아들과의 오래간만의 외식에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수한이도 아버지와 같이하는 자리가 좋은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문득 경일은 어릴 때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워졌다.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수한이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던전 사과를 먹었습니다. 몸의 활력이 높아집니다.]
[던전 고추를 먹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줍니다.]
[던전 민물 새우를 먹었습니다. 마음에 안정이 깃듭니다.]
[던전 고구마를 먹었습니다. 피부가 좋아집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금이나마 자신의 음식을 먹고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새 메뉴를 선보이자 오늘 하루 감사하게도 많은 단골이 찾아 주었다.
그들에게 감사를 보내며 보람찬 하루가 끝이 났다.
던전으로 돌아온 경일은 오래간만에 주변 탐색에 나섰다.
땅을 개간해 밭도 만들었으니 이제는 키울 식물을 찾아야 했다.
고추나 고구마가 있는 거로 봐선 주위를 잘 찾아보면 여러 가지 채소가 있을 거란 판단이 섰다.
던전의 자연을 만끽하며 산책하듯 느긋하게 걸었다.
향기로운 꽃 냄새가 산들바람을 타고 와 경일의 코를 간지럽혔다.
“향기롭다. 나중에는 집 앞에 작은 텃밭에 꽃만 따로 심어야겠어. 그럼 매일 싱그러운 꽃 냄새를 맡으며 잠에서 깨어날 수 있겠지.”
느긋하게 걷던 그의 눈에 처음 발견된 것은 버섯이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쓰러져 있는 죽은 나무에 몇 개의 버섯이 돋아나 있었다.
“먹을 수 있는 버섯인가? 일단 모양이 아주 익숙하긴 한데.”
경일은 등에 멘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농사를 지어 본 적도, 시골에서 살아 본 적도 없던 터라 식물을 공부하기 위해 산 책이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발견한 버섯과 비교했다.
한참 책장을 넘기다 드디어 똑같은 사진을 발견했다.
“아, 표고버섯이구나. 어쩐지 많이 봤더라.”
경일은 나무에서 표고버섯을 땄다.
그 순간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의 여러 식물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스킬, 식물 찾기가 생성되었습니다.]
“응? 스킬이 생겼다고? 식물 찾기?”
경일은 오래간만에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상태창>
레벨 ???
힘 (11/12)
민첩 (12/13)
체력 (10/12)
마나 (10/10)
[스킬]
식물 찾기 (Lv.1)
지금까지 없던 스킬 항목이 새롭게 생겼다.
“신기하네. 스킬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기는 것이었나? 근데 식물 찾기이란 스킬은 뭐지?”
경일이 스킬을 궁금해하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식물과의 유대가 생겼습니다. 당신이 찾고자 하는 식물을 찾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아하, 내가 고추나 고구마 이런 걸 찾아서 생긴 스킬이구나. 어쨌든 기분은 좋네. 스킬이란것도 생기고. 그러고 보니 내가 각성했다는 사실도 잊고 살았구나.”
헌터가 되었어도 신체 능력의 변화가 없다 보니 어느 날부터 자신이 헌터라는 걸 까먹었다.
경일은 스킬을 확인 후 상태창을 껐다.
표고버섯을 따려고 손을 뻗는 순간 생각을 바꾸었다.
‘표고가 난 나무를 통째로 들고 가서 키워 볼까? 이미 표고버섯이 나 있는 거로 봐서는 물만 뿌려지면 새로운 버섯이 자랄 수도 있잖아.’
경일은 족히 20㎏은 나갈 거 같은 나무를 등에 짊어졌다.
즉흥적으로 든 생각에 따라 한 행동이었는데, 30분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이거 갈수록 무겁잖아. 처음 들 때는 가능해 보였는데 괜한 짓을 했어. 지금 와서 버리고 가자니 여기까지 온 것이 너무 아깝고.’
결국, 경일은 그 무거운 나무를 집까지 메고 날랐다.
그는 그늘이 있는 곳에 나무를 적당히 세워 두었다.
경일은 집으로 들어가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뻗었다.
‘이럴 때 체력 포션 하나 먹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이렇게 아프지 않아도 될 건데. 에휴~ 내 주제에 그 비싼 체력 포션은 무슨. 그냥 파스라도 있으면 좋겠다.’
경일은 거의 하루를 끙끙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가 지난 뒤, 핼쑥해진 얼굴로 일어나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사과나무였다.
사과를 한입 베어 물자 달콤한 맛이 입안에 확 퍼졌다.
어제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배고플 때 먹는 사과는 평소보다 몇 배 더 맛있었다.
순식간에 어른 주먹보다 더 큰 사과 두 개를 먹어 치웠다.
[던전 사과를 먹었습니다. 몸의 활력이 높아집니다.]
“이제 좀 살 거 같네.”
축 처진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경일은 힘들게 들고 온 나무를 보러 갔다.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표고버섯이 좀 더 자란 듯했다.
“느낌에 새로운 표고버섯이 나온 거 같기도 하고. 근데 버섯이란 게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거였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아마 여기가 던전이라서 그런 거겠지.”
경일은 잘 자란 표고버섯을 하나 따서 입에 넣었다.
버섯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함께 진한 향이 올라왔다.
“버섯이란 게 이렇게 향이 좋은 거였나? 이거 내가 아는 버섯 향이 아닌 거 같은데… 송이버섯 정도는 돼야 이렇게 향이 진하지 않을까?”
경일이 송이버섯을 생각하자 머릿속에서 뒷산이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뒷산으로 눈이 돌아갔다.
“왜 갑자기 뒷산이 생각나는 거지?”
경일은 표고버섯이 핀 나무를 너무 힘들게 들고 와서 그런지, 한동안 산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그런데도 뒷산이 생각나자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다.
[던전 표고버섯을 먹었습니다. 숙면에 도움을 줍니다.]
표고버섯을 먹고 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숙면이라… 나는 머리만 대면 잠이 오는 타입이라 별 도움은 되지 않겠어.”
이번 던전 탐사는 음식의 기본이 되는 재료인 대파와 양파, 마늘을 찾으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과 다르게 엉뚱한 표고버섯을 구해 왔다.
대파와 양파, 마늘을 생각하자 언제가 한 번 가 본 적이 있던 들판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설마? 이거?”
경일은 그제야 조금 전 뒷산이 떠오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거 좋은데? 스킬이란 게 이렇게 쓰는 거였어. 이러면 내가 원하는 채소들은 쉽게 구할 수 있겠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오늘은 식물도감이나 보고 쉴 생각이었는데, 궁금증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에 떠오른 장소에 정말 자신이 원하는 채소가 있는지 확인을 해 봐야 했다.
경일은 가장 먼저 파를 강하게 떠올렸다.
그러자 아까와 다르게 조금 더 강한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가방을 메고 낫을 챙겨 길을 나섰다.
무성히 자란 풀을 베어 가며 느낌이 오는 장소에 도착했다.
“분명 이곳인 거 같은데…….”
막상 대파를 찾으니 보이지가 않았다.
경일은 배낭을 내려놓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이 없는 곳이다 보니,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서 대파를 찾는 것이 싶지 않았다.
결국, 벼를 수확하듯 풀의 밑동을 잘라 가며 대파를 찾았다.
“아이고, 허리야. 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또 일하려니 힘들어 죽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몸이 다 났고 오는 건데. 그놈의 궁금증 때문에.”
경일은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낫질하는 그의 콧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 시간을 넘게 낫질했더니, 제법 넓은 구역이 정비되어 있었다.
“이렇게 고생했는데, 수확 없이 돌아가긴 너무 억울하지!”
경일은 다시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풀을 베어 나갔다.
“찾았다!”
다시 낫질을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대파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러니 찾기가 힘들지. 그래도 더 힘들어지기 전에 찾아서 다행이라 생각하자.”
대파는 큰 풀들 사이에 꼭꼭 숨어 있었다.
대충 봐도 스무 개는 넘어 보였다.
그중 몇 개의 대파는 꽃대가 올라와 대파꽃이 피어 있었다.
“이게 사진으로만 보던 대파 꽃이구나. 대파꽃이 있으니 씨앗을 받을 수 있겠네. 제법 고생하긴 했으니, 이제 대파는 원 없이 먹을 수 있겠다.”
허리가 땅기고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노력의 결과가 눈앞에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스무 개의 대파를 뿌리째 채취해 가방에 넣었다.
특히 대파꽃이 핀 대파는 좀 더 세심하게 채취했다.
대파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해가 산에 걸려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