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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6화 (26/300)

[26화] 김만복의 역습

이제 곧 어두워 질 거라 경일은 우선 불부터 피웠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가 지나갔구나!”

경일이 분식점을 운영했지만, 던전에서 그가 먹는 음식은 대부분 라면이었다.

제일 간편하기도 했고.

그가 가진 던전 재료로는 아직 음식을 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던전에 올 때마다 장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구에서 하루만 시간을 보내고 와도 여기서는 3일이 지나 있었다.

냉장고도 없는 곳이다 보니 기껏 가져온 재료도 금방 상하곤 했다.

“이거 다음부터는 물고기라도 잡아야겠어. 라면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오늘은 대파를 넣었더니 확실히 국물이 더 맛있네.”

오늘 가져온 대파를 넣고 라면을 끓였더니, 민물 새우가 들어간 육수와 만나 대파 특유의 시원한 감칠맛이 폭발했다.

“역시 던전 대파야. 대파 하나 넣었다고 이렇게 맛있어지다니. 이건 완전히 반칙인데? 수한이 아버지랑 미순 씨가 무척 좋아하겠는데.”

경일은 이제 완전히 분식점 주인이 되어 있었다.

라면이 맛있어지자 라면을 자주 먹는 단골들의 얼굴부터 떠오르는 것을 보니.

기분 좋게 라면을 먹고 대나무를 타고 흐르는 물에 설거지했다.

[던전 대파를 먹었습니다. 상처 회복에 도움을 줍니다.]

[던전 민물 새우를 먹었습니다. 마음에 안정이 깃듭니다.]

대파의 효능이 담긴 메시지를 확인하고, 경일은 잠자리에 들었다.

던전의 시간은 특히 빠르게 지나갔다.

경일은 던전과의 유대가 약해진다는 메시지를 받은 뒤로 여전히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분식점에 새롭게 추가할 메뉴도 고민하고, 밭일에 힘을 쏟았다.

개간한 밭에는 대파, 양파, 마늘뿐만 아니라 여러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시간이 남는 대로 필요한 채소를 찾아 나선 결과였다.

특히 모든 음식의 풍미를 책임지다시피 하는 마늘을 찾았을 때가 가장 기뻤다.

던전의 땅이 워낙 비옥해서 별다른 비료를 주지 않아도 쑥쑥 잘 자랐다.

지구에서 시간을 보내고 던전으로 돌아가면 눈으로 자란 상태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생각대로 대파가 들어간 라면은 인기 폭발이었다.

민물 새우로 육수를 낼 때부터 조금씩 퍼져 나가던 소문이 대파가 들어가면서 멀리에서도 일부러 라면을 먹기 위해 손님이 올 정도였다.

어디에서든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이라 반신반의하던 손님들도 막상 한 번 맛을 보면 크게 만족했다.

늘 조용하던 동네에 외지인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분식점에 손님이 늘자 가장 좋아한 사람은 동네 슈퍼 사장 오선주였다.

동네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슈퍼라 매상은 늘 그 자리였다.

그러다가 외지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매상이 올라갔다.

“호호호호! 김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선주가 간드러진 웃음을 지으며 경일에게 인사를 했다.

여전히 작게 말린 뽀글 파마를 하고 눈웃음을 치는 모습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어머, 사장님은 오늘도 바쁘시네. 이거 하나 드시고 하세요.”

오선주가 경일에게 시원한 캔커피를 하나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캔커피를 건네며 경일의 손을 슬쩍 터치하는 오선주였다.

“어머, 팔뚝에 힘줄이 선 것 봐. 힘이 얼마나 좋을까나?”

오선주자 혀로 입술을 살짝 핥으며 말했다.

“아, 네……”

대답하기가 곤란해서 경일은 대충 얼버무렸다.

“사장님네가 장사가 잘돼서 우리도 덕을 좀 봤어요. 여기 오는 손님들 덕에 슈퍼도 매상이 조금 올랐어요. 그래서 제가 술 한잔 사고 싶은데, 언제가 좋으세요?”

“요즘 제가 좀 바빠서. 조만간 한잔하시죠.”

경일은 오선주가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했다.

“하긴, 손님이 많아서 피곤하긴 하겠다. 나는 늘 괜찮으니 언제든지 말해요. 알았죠?”

오선주가 경일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네, 사장님.”

그녀는 바람에도 굳건한 뽀글뽀글 파마의 뒤통수를 보이며 돌아갔다.

경일이 보라는 듯 몸빼 바지를 입은 커다란 엉덩이를 더 크게 씰룩거렸다.

“에휴~”

열 명의 손님을 한꺼번에 상대한 듯한 피곤함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그런 오선주와 다르게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다정 분식 사장 김만복이었다.

그는 매출을 기록한 노트를 보며 화를 냈다.

“이거 봐라. 저번 달부터 매출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네. 이 동네에서 장사하는 최고의 장점이 늘 꾸준한 매출인데. 동네 사람들이 집에서 밥을 해 먹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늘 같은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다 보니 다정 분식의 매출은 매달 거의 비슷했다.

김만복은 매출이 떨어진 이유를 찾다 혹시 하는 기분에 오래간만에 동네 분식을 가 보고 놀랐다.

저번 김 주임 사건 이후 동네 분식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가서 보니 손님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매대를 가득 채운 음식을 보니, 이전 같은 초보 장사꾼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이게 다 동네 분식 때문이었네. 초보라 생각하고 그동안 신경을 안 썼더니 그새 호랑이 새끼가 됐어. 오늘 안 와 봤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이제라도 가만히 놔두면 안 되겠어. 싹이 더 크기 전에 밟아 놔야지.”

김만복은 바쁘게 음식을 만드는 경일을 보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구청 위생과의 김 주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김 주임, 나 김만복이야.”

“아~ 김 사장님, 오래간만입니다. 이거 하도 연락이 없어서 사장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김 주임이 섭섭한 티를 냈다.

그에게는 김만복의 전화는 돈이었다.

그런 그가 오래간만에 연락하자 반가우면서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김 주임, 미안해. 가끔 연락해서 술도 한잔하고 해야 했는데 말이지. 그동안 집안에 일이 있어서 연락을 못 한 거야. 대신 오늘 내가 거하게 한잔 사지.”

김만복은 저번에 동네 분식에 김 주임을 보냈다가 오히려 욕만 잔뜩 얻어먹었다.

화가 난 김 주임을 풀어 주느라 술값이며 용돈까지 많은 돈이 들어간 터라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늘 제가 좀 바쁜데…….”

김 주임이 말꼬리를 흐렸다.

김만복의 전화가 반갑기는 했으나, 자신은 곧바로 미끼를 덥석 물 만큼 성급한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당한 밀당은 필수였다.

“그러지 말고 한잔하세. 내가 오늘은 풀코스로 제대로 쏠 테니. 김 주임이 좋아하는 노블타운 룸살롱 어때?”

김 주임은 노블타운 룸살롱을 듣자 회가 동했다.

비싼 만큼 아가씨들의 수준이 다른 곳과 달랐다.

자기 돈 주고는 가기 힘든 곳이었다.

“흠흠흠, 그럼 김 사장님의 성의를 봐서 오늘 약속을 취소해야겠군요.”

김 주임은 헛기침을 하며 거만한 듯 말했다.

김만복은 억지로 김 주임의 비위를 맞추려니 오장육부가 배배 꼬였다.

‘씨발, 비리 공무원 새끼가 돈맛만 알아서. 매상도 많이 떨어졌는데 오늘은 또 얼마나 생돈을 써야 하는 거야.’

속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일차는 대궁 한우 전문점에서 시작하지. 어떤가?”

김 주임은 비싼 한우라는 말에 흡족했다.

거기다 오래간만에 아랫도리까지 쓸 생각을 하니 벌써 뻐근해졌다.

“그럼 일곱 시까지 가겠습니다.”

“알았네. 그때 보세나.”

그날 저녁, 김 주임은 한우를 걸신들린 것처럼 먹었다.

김 주임의 입에 고기가 들어갈 때마다 김만복은 속이 쓰렸다.

“사장님도 좀 드십시오.”

“나는 가게에서 늦게 점심을 먹었더니 아직 배가 안 고프네. 자네라도 많이 들게나.”

김만복은 자신도 먹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오늘 들어갈 돈이 만만치 않은데, 자신의 입이라도 줄여야 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먹겠습니다.”

무려 4인분을 먹은 김 주임이 만족한 듯 활짝 웃었다.

“이제 식사는 했고. 김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말이지. 혹시 저번에 갔던 동네 분식 기억나나?”

동네 분식이라는 말에 김 주임이 인상을 확 찡그렸다.

경일에게 된통 당한 것이 기억난 것이다.

“그 코딱지 같은 분식점에 또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거긴 제 힘으로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거 모르십니까?”

김 주임이 불쾌한 듯 그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묻어 있었다.

“그럼, 잘 알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왜 모를까. 내가 김 주임 만나고 그 새끼를 한 번 보러 갔잖아.”

“아니, 김 사장님. 내가 저번에 그렇게나 말했는데, 내 말을 못 믿어서 확인하러 간 겁니까?”

김 주임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김만복을 노려봤다.

김만복은 김 주임의 생각도 못한 반응에 속이 뜨끔해졌다.

“아니, 내가 김 주임 말을 왜 못 믿어. 내가 간 ,건 그놈이 뭘 믿고 김 주임에게 큰소리쳤는지 궁금해서 간 거야.”

김 주임 말을 믿지 못해서 경일에게 확인하러 간 거지만, 교묘하게 말을 바꿨다.

‘설마 오늘 만나자고 한 게 그때 일을 따지려고 한 거야?’

김 주임은 김 주임대로 속이 뜨끔했다.

그때 경일이 화를 낸 건 순전히 자신의 잘못이 컸다.

그는 그 일은 쏙 빼고 김 사장에게 말했었다.

‘어라~ 좀 이상한데? 그럼 그때 바로 만나자고 연락이 왔었어야지. 한참 지난 지금, 그것도 비싼 한우까지 사 주면서 그 일을 따진다고? 김 사장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김 주임은 먼저 나서지 않고 김만복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때는 그 새끼가 장사가 안 돼 언제든지 장사를 접을 수 있으니, 김 주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던 거야. 수틀리면 가게 문 닫을 거라고 큰 소리를 뻥뻥 치더라고. 그 새끼가 멍청한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 장사가 무슨 장난도 아니고 말이야.”

김 주임은 김만복의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 지금은 그 집이 장사가 아주 잘되. 손님이 미어터지더라고.”

“허~ 그런 보잘것없는 분식점이 장사가 잘된다고요? 저도 위생과에 있으면서 여기저기 단속이나 점검하러 나가는 일이 많으니 어느 정도 잘되는 식당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분식점은 장사가 잘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이던데… 진짜 장사가 잘된다고요?”

김 주임은 의외의 사실에 놀라며 물었다.

“그렇다니까. 우리 가게 매출이 점점 떨어지기에 혹시나 해서 가 봤더니 손님이 바글바글 한 거야. 혹시 오늘만 그런 거 아닐까 하고 주변 슈퍼에 가서 물어보니, 요즘 그 집 덕에 자신들도 매출이 올랐다고 좋아하더라고.”

“허~ 대단한 놈이네. 그때 봤을 때는 멍청하고 깡다구만 센 놈으로 봤는데.”

“그러게 말이야. 이번에는 저번처럼 함부로 나오지 못할 거야. 저번에야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막 들이댔지만, 이제는 장사가 잘되니 자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식당을 계속할 거면 위생과 공무원 눈치를 안 볼 수는 없지. 그러니 이전 식당처럼 해 주게나.”

김만복의 말에 김 주임이 생각에 잠겼다.

조금 찝찝하기는 했으나, 김 사장의 말대로 장사가 잘된다고 하니 이전처럼 자신에게 함부로 대들지는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선배 중에는 뒷돈을 받고 식중독균 검사 결과를 조작해 식당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적도 있었다.

나중에 식당 측이 조작인 걸 알아내고 따지자 구청 측이 사과했지만, 식중독균 검출이라는 낙인이 찍힌 식당은 직원이 떠나고 손님이 줄어들어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전 재산을 들여 오픈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문을 닫아야 하는 사장의 심정이야 이로 말할 수 없었다.

가장 황당한 건 검사 결과를 조작한 공무원은 징계를 받기는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구청에 출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당 입장에서야 자신과 같은 단속 공무원이 가장 무서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김 주임은 저번에 호되게 경일에게 당한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에 제대로 복수도 할 겸, 김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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