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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7화 (27/300)

[27화] 더러운 진흙 발자국

“음~ 김 사장님, 그 집이 메뉴도 별로 없고, 깨끗해서 트집 잡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무작정 꼬투리를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거죠.”

김 주임이 고개를 치켜들고 엄지와 검지로 턱을 만지며 거만하게 김 사장을 내려다봤다.

“그럼, 나도 장사하는 처지인데 잘 알지. 그러니 김 주임처럼 유능한 사람이 나서야 하는 거 아니겠나.”

김 사장은 굽신거리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김 주임이 누가 볼세라 얼른 봉투를 받아 챙겨 안주머니에 넣었다.

‘평소보다 두둑한데? 뭐, 이 정도면 부탁을 들어줘도 괜찮겠어. 저번에 당한 것도 있으니 이번에 확실히 돌려줘야지. 시민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교육을 해야 하는 게 우리 공무원의 의무 아니겠어? 껄껄껄.’

김 주임은 봉투를 집어 들어 안주머니에 넣는 그 짧은 시간에 봉투의 액수를 대충이나마 알아챘다.

뇌물을 꾸준히 받아 온 덕에 생긴 재주라면 재주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제가 동네 분식에 한 번 들리지요.”

“고맙네, 김 주임! 식사도 끝냈으니 술 한잔해야지. 내가 김 마담한테 이야기해 놓았네. 어서 가세나.”

김만복의 재촉에 김 주임이 거들먹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만복이 빠르게 일어나 그의 양복 상의를 들어 입기 편하게 펼쳤다.

그 모습을 보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여간, 이 사람도 보통 사람이 아니야. 필요 없을 때는 연락 한 번 안 하다가 자신이 필요하니까 간과 쓸개까지 다 빼 주는 것 좀 보게. 뭐, 나도 똑같은 인간이니 욕하면 안 되겠지. 하여간 맨날 내가 하는 짓을 남이 나에게 해 주니 기분은 좋네.’

김 주임은 매번 구청장의 양복 상의를 들어 그가 입기 좋게 옷을 펼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구청장은 옷에 팔을 집어넣기 전에 늘 그와 눈을 마주쳐 주었다.

아랫사람에 대한 작은 치하의 표시였다.

그는 구청장처럼 김만복을 한 번 흘겨보고는 그가 들고 있는 상의에 자연스럽게 팔을 끼웠다.

김만복은 재빨리 그의 상의를 입히고, 어깨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 주고는 비굴하게 웃었다.

그가 손수 열어 주는 택시를 타고 룸살롱으로 향했다.

김 주임은 온갖 진상을 떨어 가며 비싼 술을 물처럼 마셔 댔다.

2차까지 책임진 김만복 덕에 그는 살과 뼈가 녹는 밤을 보냈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접대에 두둑한 뒷돈까지.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다음 날.

김 주임은 기분 좋은 얼굴로 출근했다.

어젯밤 풀코스의 접대로 그는 우쭐해 있었다.

‘역시 식품위생과로 오기를 잘했어. 사회복지과라도 갔어 봐. 그랬으면 생기는 것도 없이 죽어라 일만 했겠지? 민원인들을 상대한다고 온갖 스트레스는 다 받고. 아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을 거야.’

김 주임은 자신이 사회복지과로 발령받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재빨리 구청장에게 뇌물을 먹였다.

구청장의 힘으로 그를 다른 과로 전근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는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동네 분식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인데도 동네 분식은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경일이 바쁘게 뛰어다닌 걸 보고 이제야 어제 김 사장의 이야기가 실감 났다.

“허~ 분명 망할 거라 봤는데, 장사가 이렇게 잘된다고? 그것도 겨우 슈퍼에 널린 라면을 팔아서?”

김 주임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사실에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동네 분식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경일의 친절한 인사가 들려왔다.

“위생과에서 나왔습니다.”

김 주임은 거만한 목소리로 경일에게 말했다.

그는 공무원증을 경일의 얼굴에 붙이다시피 내밀고는 곧바로 옷 안에 넣어 버렸다.

경일은 김 주임에 행동에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김 주임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자, 그가 두어 달 전에 왔던 공무원임이 기억났다.

경일은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김 주임은 경일이 자신을 보고 짜증을 내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

저번에 왔을 때의 빚을 단단히 갚아 줄 요량으로 왔는데, 이놈은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놈에겐 아주 강력한 징계로 자신의 힘을 확실히 보여 주는 게 가장 좋은 복수였다.

“무슨 일이죠?”

경일의 목소리에서 시린 듯한 찬바람이 묻어 나왔다.

“무슨 일이라니요? 위생과에서 나왔다는 말 못 들었습니까? 신고가 들어왔으니 협조하세요.”

“무슨 신고가 들어왔다는 겁니까?”

“위생에 관해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김 주임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입구에 서 있는 경일을 밀어내고 분식점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오는 길에 진흙을 밟았는지 깨끗한 분식점 바닥에 김 주임의 구두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그가 처음 한 일은 냉장고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냉장고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가만히 냉장고 안의 내용물을 살폈다.

냉장고의 냉기가 빠져나가자 얼른 문을 닫으라는 경고음이 들렸다.

김 주임은 냉장고 경고음이 들리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분식점 안의 손님들이 눈살을 찡그렸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공무원이면 남의 냉장고를 마음대로 열어도 되는 겁니까?”

경일이 냉장고의 경보음에 화가 나서 따졌다.

“허~ 지금 이 사람이, 지금 단속 나온 공무원을 뭐로 보는 거야? 식당 단속 나왔는데, 냉장고를 안 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괜히 시간 뺐지 마시고 뒤로 물러서세요. 전 공무 집행 중입니다. 이런 태도면 행정처분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경일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팔짱을 끼고 가소롭게 쳐다봤다.

“이 사람 이거 안 되겠네. 당신은 지금 공무 집행 중인 공무원을 협박했습니다. 이건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합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따로 연락이 갈 겁니다.”

순식간에 김 주임은 경일에게 죄를 하나 뒤집어씌웠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는 경일에게 단단히 엄포를 놓고서는 냉장고 안의 식자재를 꺼내 확인했다.

‘씨발, 여전히 꼬투리 잡을 게 없네. 보관된 식자재가 저번보다야 확실히 늘었지만, 다른 식당에 비하면 여전히 양도 얼마 안 되네. 아직 유통기한도 많이 남았고. 채소는 또 왜 이리 싱싱한 거야.’

채소를 확인하는데 채소에서 나는 냄새가 김 주임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무슨 냄새가 이렇게 싱그럽지. 채소에서 나는 향이 왜 이리 좋아? 이건 자연의 향기를 응축해 놓은 거 같잖아.’

김 주임은 순간 오래전에 갔던 연수원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곳으로, 그곳에서 했던 산림욕이 너무 좋아 그의 뇌리에 단단히 남아 있었다.

가만히 산에 온 정신을 맡기고 나뭇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도 듣고, 나무의 촉감, 맑은 공기, 오감으로 느끼던 그때의 좋았던 추억 속에 빠져들었다.

‘하~ 그때는 너무 좋았는데. 지금이라도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달려가고 싶다. 그곳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싶구나. 헉!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딴생각에 빠진 김 주임이 화들짝 놀라며 현실로 돌아왔다.

‘정신 차리자. 공무 수행 중에 딴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이런 건 정상적인 공무원의 자세가 아니라고. 그나저나 오픈 주방이라 위생 상태도 깨끗하고 걸릴 만한 게 없는데… 흥! 꼬투리 잡을 게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지. 내가 이 짓을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고.’

확인한 식자재를 대충 바닥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일부 식자재에 김 주임의 구두에서 떨어진 흙이 묻었다.

그 모습에 경일의 목 핏대에 힘이 들어갔다.

냉장고의 식자재를 모두 확인한 김 주임은 본격적으로 실내를 뒤지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정리해 둔 비품들과 상온에 보관 중이던 식자재가 어지럽혀졌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공무원이면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한참 여기 저기 뒤지고 있는데, 자신에게 따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주임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자신에게 대드는 경일에게 다시 한번 엄포를 놓으려 물건을 뒤지던 손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당신 내가 분명 경고했을 텐데. 공무집행방해죄라고. 이럴수록 죄가 무거워지는 거 몰라?”

김 주임이 경일을 쏘아붙이는데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공무집행방해죄? 무슨 공무 집행 방해! 내가 지금까지 쭉 보니 지금 당신이 분식점 영업을 방해하는 거 같은데? 공무원이면 멀쩡한 가게를 이렇게 난장판으로 만들어도 되는 거야?”

김 주임은 그러고 보니 조금 전의 목소리가 경일의 목소리가 아님을 눈치챘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왠 남자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분식점 손님이었다.

멀리서 라면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이곳에 왔다.

거의 한 시간을 줄을 서고 나서야 겨우 자리에 앉았다.

이제야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끓었는데, 웬 쥐새끼 같은 공무원이 들어와 분식점을 뒤집어 놓는 바람에 기다리다 짜증이 폭발한 것이었다.

“당신이 뭔데, 내 식사를 방해하는 거야? 내가 바쁜 시간을 쪼개서 겨우 왔는데, 공무원 나부랭이가 지금 무슨 행패야? 당신 소속이 어디야? 공무원증 한 번 봅시다.”

김 주임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했다.

자신이 분식점 사장인 경일에게는 확실한 갑이긴 했지만, 일반 시민에게까지 갑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공무원인 자신에게 큰소리를 치는 거로 봐서 남자의 배경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입은 옷이나 팔목에 번쩍이는 시계, 비싸 보이는 안경테까지 이런 못 사는 동네에 어울리는 차림이 아니었다.

김 주임은 울컥했지만, 곧바로 화를 삭였다.

정상적인 공무 수행이 아닌데, 여기서 일을 더 키워 경찰이라도 오면 자신이 불리했다.

“단속 결과는 며칠 안으로 통보될 겁니다.”

김 주임은 경일에게 협박 비슷하게 말을 하곤 곧바로 분식점을 나왔다.

경일은 일단 냉장고에 나와 있는 재료들을 먼저 정리했다.

깨끗하게 손질해 놓은 채소에 김만복의 구두에서 떨어진 더러운 흙이 묻어 있는 모습에 짜증이 일었다.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 화를 참으며 빠르게 주문한 음식을 만들었다.

화가 얼마나 나는지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특히 김주임이 남긴 더러운 진흙 발자국을 닦을 때는 화를 주체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영업시간이 끝나자 그는 분식점의 문을 닫고 혼자 의자에 앉아 한참을 씩씩거렸다.

요동치던 심장이 정상적인 리듬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 *

며칠 후.

경일에게 구청에서 행정처분이 떨어졌다.

반찬 재활용으로 인한 15일간의 영업정지였다.

“하~ 이런 거지 같은.”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반찬 재활용? 이런 어이없는 새끼.’

동네 분식은 오픈 주방이라 애초에 반찬 재활용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손님들이 두 눈 뜨고 있는 판국에 무슨 반찬을 재활용한다는 말인가.

이게 김 주임이 식당을 괴롭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분식점에서 꼬투리를 잡지 못해도 장사를 방해할 방법은 많았다.

‘절대 이번 한 번으로 끝낼 놈들이 아니야. 분명 내가 문을 닫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히겠지.’

경일은 분식점을 열지 않고 곧바로 구청 민원실로 달려갔다.

그는 행정처분이 적인 서류를 들이밀고 따졌다.

“반찬 재활용을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왜 영업정지를 받아야 합니까? 그것도 15일이나 말이죠? 이게 말이 됩니까?”

얼마나 분한지 말을 하면서 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더니 고함에 가까워졌다.

경일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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