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분명 무지렁이인데……
“선생님,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구청입니다. 목소리를 좀 낮추시고 얘기를 나누시죠.”
민원실의 공무원은 일단 경일을 달랬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왜 영업정지를 받아야 하냐고요?”
다시 한번 경일이 큰 소리로 물었다.
공무원이 행정처분 통지서를 보고 경일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희가 다시 한번 알아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럼 그동안 장사 못 한 손해는 구청이 질 겁니까? 그리고 동네에 반찬 재활용한다고 소문이 나서 손님이 떨어지면 책임을 구청에서 지는 겁니까?”
경일은 자신이 입게 될 손해를 조목조목 큰소리로 따져 물었다.
“선생님, 아무 증거도 없이 이런 행정처분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며칠 기다리시면 연락이 갈 겁니다. 그러니 소란을 그만 피우시죠. 계속 이러시면 경찰에 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원실 공무원은 이미 한 번 경일을 달랬고, 더는 참지 않겠다는 투로 말했다.
김 주임이 증거를 조작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미 그는 서류상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 놓았다.
경일이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 주임은 김만복에게 뇌물을 받아 이 수법을 몇 번 써먹은 적이 있었다.
경일의 자리에서 장사했던 이전의 사장들은 억울했지만, 결국에는 행정처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나중에는 행정처분을 풀어 달라고 김 주임에게 오히려 빌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 행정처분을 취소하지 않았다.
공무원의 단호한 말에 경일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화를 내던 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확 바뀌자 공무원은 조금 얼떨떨했다.
그는 절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고아가 된 여덟 살 때부터 사회의 쓴 물을 아주 배불리 먹고 자랐다.
경일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공무원에게 내밀었다.
공무원은 의아한 눈으로 그가 내민 것을 확인했다.
메모리 카드였다.
“여기 반찬 재활용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와 증언이 들어있습니다. 지금 당장 해결해 주지 않으면 이거 들고 곧바로 언론사로 가겠습니다.”
경일이 분명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는데, 조금 전에 큰소리칠 때보다 더 선명하게 들렸다.
민원실의 공무원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선생님,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조금 전까지 단호하게 말하던 공무원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졌다.
그로서는 일단 경일을 달래고 메모리 카드를 확인해야 했다.
경일이 자리에 앉자 그는 곧 메모리 카드의 내용을 재생했다.
화면에는 김 주임이 무작정 식당에 들어와서 경일의 동의도 없이 식당을 뒤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를 더 황당하게 만든 건 선명하게 녹음된 목소리였다.
‘도둑도 훔쳐 갈 게 없어서 가지도 않을 정도의 못 사는 동네의 작은 분식점에 고화질에 음성까지 녹음되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
공무원은 우선 CCTV의 존재에 대해 놀랐다.
나라에서도 돈이 없어 CCTV 설치는 주로 잘사는 동네 위주로 겨우 설치했다.
20년 전에 갑작스럽게 생긴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에 지구 인구의 3분의 1이 죽고, 많은 도시가 잿더미로 변했다.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게이트를 탐지하는 기술이 없었다.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게이트가 발생하는 경우, 던전 브레이크가 빈번히 발생했다.
힘들게 몬스터에게 파괴된 도시를 재건해 놓으면 또다시 무너지는 도시를 보고, 사람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인명 피해와 재산상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천재 과학자로 알려진 두브체코 박사가 게이트 탐지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덕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에 헌터들을 투입해 던전을 폐쇄할 수 있었다.
인류는 희망을 품은 지 겨우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CCTV를 개인적으로 설치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웬만한 고급 식당이 아닌 이상, 비싼 CCTV를 설치하지는 않았다.
이런 와중에 산동네의 작은 분식점에서 고화질에 음성까지 담기는 CCTV가 설치된 걸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단속반이 바보가 아닌 이상, CCTV 유무는 당연히 확인했다.
특히 비리 공무원일수록 이런 건 절대적으로 먼저 확인한다.
그런데도 CCTV를 있는 것을 몰랐다라.
그럼 결론은 하나였다.
단속반이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고가의 작은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영상의 말미에는 그날 있던 손님들의 인터뷰까지 실려 있었다.
단속 공무원이 얼마나 무례했는지 똑똑히 증언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중 한 명은 변호사였다.
변호사가 조목조목 단속 공무원의 행동을 따졌고, 이유도 없이 분식점 사장을 공무집행방해죄를 뒤집어씌워 협박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이건 빼도 박도 못 할 정도의 확실한 증거잖아. 김 주임도 이번에 아주 단단히 걸렸네. 저 못사는 동네에 뭐가 있다고. 무슨 거지새끼도 아니고 몇 푼이나 뜯어먹을 거라고 저런 작은 분식점까지 가는 거지? 그나저나, 이 사건으로 구청에 불똥 튀는 거 아냐? 그럼 곤란한데…….’
김만복과의 관계를 모르는 공무원의 눈에는 김 주임의 행동이 한심하다 못해 기가 막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민원실 공무원은 이 사건이 끼칠 여파가 걱정되었다.
빼도 박도 못 하는 증거가 있는 상황이면 자신들도 감싸기 힘들 것이었다.
더군다나 경일은 언론에 알리겠다고 방방 뛰고 있었다.
일단 언론에 나가는 것부터 무조건 막아 야만 했다.
“저기 선생님,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민원실 공무원의 목소리가 더없이 공손해졌다.
경일이 안내된 곳은 소파가 있는 면담실이었다.
그는 경일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윗분에게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일에게 공손히 부탁하고, 그는 곧바로 보고하러 나갔다.
사실 경일은 처음 김 주임이 찾아왔을 때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 당시, 단속이 나올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단속도 정기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닌 불시 단속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신고를 했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동네에서 그럴 인물은 다정 분식 사장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잘 넘어갔지만, 지금까지 본 김만복이라면 또다시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대로 당하지 않으려면 무슨 수라도 써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CCTV였다.
비싸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뛰지 않는 초소형으로 음성까지 담기는 것으로 구매했다.
덕분에 그동안 분식점에서 번 돈을 모두 밀어 넣어야 했다.
뭐, 돈은 별로 아깝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자신을 건든 놈은 무조건 두 배로 갚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경일은 오히려 김 주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김 주임은 범의 아가리로 제 발로 기어 들어온 것이다.
구청이 발칵 뒤집혔다.
“이게 도대체 뭐야? 당장 김 주임 불러와!”
구청장이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려쳤다.
너무나 선명한 고화질 영상에 충격을 받았다.
이건 언론이 아주 좋아할 만한 소스였다.
보통의 경우와 다르게 선명한 화질과 음성, 그리고 손님들의 인터뷰까지.
이건 국민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관심이 이곳으로 향하는 순간, 그는 끝장이었다.
이 시대에 털면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이가 어디 있냐만은, 중요한 건 자신이 털리지 않는 것이었다.
괜히 자신이 본보기가 될 이유가 없었다.
김 주임이 숨을 헐떡이며 구청장실로 들어왔다.
“헉헉, 구청장님, 부르셨습니까?”
“야 이 새끼야, 너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늘 점잔을 떨던 구청장의 입에서 욕이 나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거 큰일이 벌어졌구나.’
아직 사건 내용을 전달받지 못한 김 주임은 밀려오는 불안감에 호흡이 가빠지고 손에 땀이 맺혔다.
“이 새끼가 대답 안 해? 대답 안 하냐고?”
구청장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김 주임의 귀를 파고들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무슨 말이라도 할 거 아닌가.
“저기… 제가 급하게 오느라고 아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이 없습니다.”
김 주임은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분명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 확실하지만, 더욱 걱정스러운 건 구청장의 태도였다.
평소 온갖 점잔을 떨던 구청장이 산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고 있다.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이 새끼야, 너 이거 봐봐. 이거 보라고!”
구청장이 자신의 노트북을 김 주임에게 돌려 화면을 재생시켰다.
“헉!”
김 주임은 고화질의 화면에서 자신의 얼굴이 나오자마자 이 사태를 알아챘다.
더구나 목소리까지 선명하게 나올 때는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몸을 구겨서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새끼야. 설명해 봐, 설명해 보라고!”
구청장이 길길이 날뛰었다.
“아니, 그게… 그게… 그게… 말… 말…입…….”
김 주임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네놈은 두고 보자. 내가 네놈을 가만히 두나 봐라. 민원인부터 달래야 하니 당장 따라와. 그리고 위생과 책임자도 불러와.”
김 주임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구청장을 따라나섰다.
경일이 있는 면담실 앞에서는 이미 식품위생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흡흡.”
구청장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곤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공손히 면담실을 노크했다.
똑똑똑.
“네.”
경일의 목소리에 구청장이 구부정한 자세로 면담실에 들어갔다.
“누구……?”
경일이 처음 보는 인물이 들어오는 걸 보고 물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구청장 이진수입니다. 이쪽은 식품위생과 과장입니다.”
경일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구청장은 지금쯤이면 분명 들려야 할 목소리가 없자 뒤를 돌아보았다.
김 주임이 없었다.
“당장 이놈 잡아 와!”
과장이 재빨리 면담실을 나갔다.
복도에는 김 주임이 사색이 된 얼굴로 서 있었다.
“김 주임, 뭐 하는 거야? 왜 안 들어와? 이 사태가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데, 왜 안 들어오고 있어?”
과장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말에 담긴 감정은 절대 작지 않았다.
김 주임은 경일에게 막상 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떠올랐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당한 모욕은 한동안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분했다.
산동네의 조그마한 분식점 사장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도 모멸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모멸감을 빠져들 바에는 차라리 빌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한테 이렇게 당하다니…….’
경일을 얕잡아 볼수록 그의 가슴속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김만복에게 화풀이하고 나서야 겨우 그 일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황금 같은 기회.
15일 영업정지를 때린 날,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만큼 시원했다.
복수하고, 돈도 벌고, 접대도 받고, 최고의 상황이었는데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자신의 처지가 너무 처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지막 자존심이 경일이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가는 걸 막았다.
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과장의 성난 얼굴에 마지막 자존심은 여지없이 깨져 나갔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그는 억지로 발을 끌면서 면담실 안에 들어갔다.
괜히 눈물이 나왔다.
구청장이 비굴한 얼굴로 경일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에.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