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던전 속에?????
지금까지 분식점을 쉬는 날 없이 열었지만, 던전의 깊은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분식점을 닫아야만 했다.
그 덕에 동네 분식에 일주일에 한 번 정기 휴일이 생겼다.
지구 시간으로는 2일은 던전 시간으로는 6일이었고, 던전의 더 깊은 곳까지 탐험할 수 있었다.
오늘도 던전을 탐험 중이었다.
던전은 어딜 가도 좋았다.
자연은 늘 새로웠고, 늘 맑은 기운으로 충만했다.
복잡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혼자서 걷는 시간이 좋았다.
조용히 걷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영혼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등산할 때 마시는 시원한 던전의 물은 짜릿한 쾌감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던전을 발견한 뒤로는 음료수를 사 먹은 기억이 없네. 던전은 물도 맛있다니까.”
산의 오르막길을 한참 걷다 보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잡념이 빠져나가고,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올라 기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올라올 때의 힘들었던 고통은 싹 잊은 채 눈앞의 그저 뻥 뚫린 풍경에 빠져들었다.
제법 높은 산을 정복한 터라 성취감 또한 적지 않았다.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했다.
그 순간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신의 바로 앞 한곳의 공기가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경일은 놀라 뒷걸음질 쳤다.
“도망가야 하나?”
말과 다르게 경일은 도망가지 않았다.
정말 도망갈 생각이었으면 공기가 일렁일 때 곧바로 도망갔을 것이다.
그의 발을 잡은 건 호기심이었다.
그렇다고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공기가 움직이는 모습은 신비했다.
분명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데, 막상 손을 뻗어 만져 보면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게 도대체 뭘까?”
신기한 듯 보고 있는데, 공기가 순식간에 원을 그리며 빛을 내뿜었다.
지금껏 투명하게 보이던 곳이 마치 블랙홀처럼 이글거렸다.
“이럴 수가!”
바로 눈앞에서 게이트가 생성됐다.
경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에 쥐고 있던 물통을 놓치자 경사를 따라 밑으로 굴러갔다.
물통에서 차가운 물이 경일의 손에 튀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물의 촉감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손으로 누르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이트는 다른 세계와의 연결 통로이다.
던전에 새로운 게이트가 생겼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와 연결이 됐다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자신만의 던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와장창 깨져 내렸다
게이트를 통해 어떤 것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과 같은 누군가가 이곳의 던전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몬스터가 나올 확률이 몇십만 배는 컸다.
지구에서 열린 모든 게이트는 몬스터를 뿜어냈다.
그런 게이트를 보고 자란 경일에게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은 깊은 절망이었다.
조금이라도 살 확률을 높이려면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몬스터는 인간을 강하게 증오했고, 먹이로 삼았다.
몬스터가 한 마리라도 게이트에서 나오는 순간, 경일은 산 채로 몬스터의 한 끼 식사가 될 뿐이었다.
헌터이긴 하지만 일반인의 신체 능력만을 가지고 있으니, 몬스터의 눈에 띄는 순간 죽었다고 봐야 했다.
부모님을 몬스터에게 잃은 경일은 누구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도망을 가지 않고 있는 것은 던전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인생에 찬란한 빛을 비춰 준 것이 바로 던전이었다.
이제 자신의 삶에서 던전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예전의 암담한 삶으로 돌아갈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거 같았다.
마음속에 던전에 대한 원망이 차올랐다.
던전과의 유대를 위해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런 점을 인정해 얼마 전 던전과의 유대가 더 깊어졌다는 메시지를 보여 주지 않았는가.
그런데 게이트라니.
경일은 이 순간 강한 모멸을 느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이런 절망을 안겨 주다니.
번지점프를 한 순간 누군가에게 생명 줄을 잘린 기분이었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런 기막힌 우연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자신은 어떤 거대한 존재의 장난감이었을 뿐이다.
이 상황을 보고 즐기고 있겠지.
팝콘을 씹으면서.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가슴속에서 울분이 치밀었다.
“그래, 내 인생이 그렇지. 내가 살아오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이런 복이 내게 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어. 누군지 몰라도 아주 제대로 뒤통수를 쳤어. 얼마나 얼얼한지 혼이 다 나갈 지경이야. 사람을 이렇게 가지고 놀면 안 되는 거 아냐? 힘이 정의가 아니잖아. 힘이 있다고 이런 짓을 하는 건 너무 하잖아. 제기랄. 그래, 마음껏 웃어라. 마음껏 웃으라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천년만년 네놈을 저주해 주마!”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경일은 분식점을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동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좋은 재료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다.
분식점을 하기 전, 자신의 모습은 물에 젖은 고양이와 같았다.
날카롭고, 늘 화가 나 있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분식점을 하면서 그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자신의 본성이 깨어났다.
자신은 남을 위하거나,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양심적으로 인간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퍼주는 호구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여덟 살 이후로 사회의 거친 파도에서 살아남은 만큼, 남들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깡도 가지고 있었다.
경일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폭발했다.
어릴 때부터 겪어 왔던 고생과 믿었던 친구의 배신, 그리고 또다시 힘겹게 걸어온 인생.
마지막으로 제2의 인생을 열어 준 던전.
그동안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나지 않던 부모님의 얼굴을 잠시나마 본 거 같았다.
“그래, 던전이 나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 준 게 얼만데. 그걸 거두어 가겠다고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이야. 내가 그동안 아주 오만했구나. 내가 던전의 주인인 양 주제 파악도 못 하고 함부로 행동하다니. 던전의 은혜를 당연한 거처럼 받아들이고, 그걸 넘어서 오히려 주인 행세까지 했으니 할 말이 없네. 그동안의 방자한 나의 모습이면 던전이 화가 날만도 하다.”
경일은 체념해 버렸다.
그리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건 자신이 어떻게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다.
수용하는 것 이외에는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조금 전까지 미칠 듯이 화를 내던 모습은 이제 없었다.
오히려 이 모든 일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던전에게 느꼈던 섭섭한 마음을 날려 버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인생 마지막에 이런 행복을 준 던전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죽을 준비를 했다.
지금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 던전에서 나가면 살아날 수도 있을 테지만, 던전이 없는 삶은 굳이 살고 싶지 않았다.
경일은 감사함을 담아 던전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 아름다운 던전이 몬스터에게 밟힌다는 것이 안타깝긴 했지만, 반쪽 헌터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각성하고 무늬만 헌터인 것을 억울하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은 좀 억울했다.
‘내가 다른 헌터들과 같이 힘이 있다면 한 번 싸워 보기라도 할 건데…….’
게이트가 좀 더 밝게 빛이 났다.
이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때 생기는 현상이었다.
경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죽을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게이트에서 뭔가가 보였다.
경일은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바로 앞에서 무언가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한번 싸워 보기라도 해야 했나?’
몬스터가 얼마나 흉포하고 강한지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 쉽게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아무리 죽음을 다짐했다지만, 막상 닥치니 온갖 후회가 밀려들었다.
머릿속에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한 번 떠오른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졌다.
“뭐지? 계속해서 이어진다고? 뭔가 이상한데?”
경일은 분명 몇 번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인데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질끈 감은 눈을 살짝 떴다.
“엇!”
이상했다.
분명 눈앞에 게이트가 있긴 한데…….
게이트만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게이트에서 뭔가가 나오는 것을 느꼈는데. 왜 아무것도 없지?”
경일이 이상하게 생각한 순간, 발밑에서 무언가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놀라 고개를 숙이는 순간.
“헉!”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뒤로 물러나니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었다.
분명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사람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바닥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넓은 등판이 보였다.
아름다운 금발이 어깨를 덮고 있었다.
금가루를 뿌리면 저런 색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거친 옷감에 색이 바랜 옷을 입고, 허리에는 큰 검을 차고 있었다.
풍기는 이미지로 봐서는 쉽게 머리를 조아리거나 할 거 같지는 않았다.
남자는 엎드려 있는데도 큰 덩치를 가진 사람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컸다.
그의 근육질의 등은 누구와 싸워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박력을 내뿜고 있었다.
경일은 반쯤 얼이 나가 있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것이 몬스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나오자 당황했다.
더군다나 나온 사람은 자신보다 훨씬 큰 덩치에 무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복종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던전과의 유대가 깊어지면서 스탄다비아 지역과의 연결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던전의 유대가 깊은 당신과 스탄다비아와 동조가 일어납니다. 스탄다비아의 언어와 기본 정보가 입력됩니다.]
그 순간 경일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정보였다.
정확하게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언어의 정보였다.
정보임을 인지한 순간 고통이 시작되었다.
정보가 노도처럼 밀어닥쳤다.
한 번 입력되기 시작한 정보는 경일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경일의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정보는 억지로 그의 머릿속을 뚫고 들어왔다.
좁은 입구의 구멍을 억지로 벌리고 쑤셔 넣는 고통이 일었다.
뇌가 찢어지는 듯했다.
경일은 머리를 쥐어 잡고 바닥을 굴렀다.
방대한 양의 정보는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왔다.
기절하고도 남을 고통인데, 이상하게 정신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차라리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거 같은데…….
비명은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몸과의 괴리감이 느껴졌다.
몸속의 영혼이 빠져나가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 같았다.
억겁의 시간 동안 고통받을 거 같았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뇌가 달아올라 터질 거 같은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고통이 사라지면서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경일은 어마어마한 고통의 대가로 한 나라의 언어와 기본 정보를 습득했다.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듯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자신의 발밑에 조아리고 있던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스탄다비아 지방의 영주 자포리자 보일이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