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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34화 (34/300)

[34화] 내가 사과 장수를 봤지

그 순간, 다섯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곽마권은 흥분한 듯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그는 위협적인 눈길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사람들을 노려봤다.

“허! 저런 개 잡종의 새끼를 봤나? 사람을 치었으면 일단 사과부터 해야지. 오히려 화를 낸다고? 저런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인 걸 진즉 알았으면 신화 길드에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남자 한 명이 무슨 독백을 내뱉듯이 말을 했다.

하지만 워낙 주변이 조용했던지라, 그가 읊조리는 말은 모두 곽마권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런 개새끼가. 어디서 감히 장난질이야. 죽고 싶어? 네놈들은 누구야?”

곽마권은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다섯 명을 보고 윽박질렀다.

그들은 모두 던전에서 활동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갑옷을 입은 채 각자의 무기를 들고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씨발, 벌써 내 목소리 잊었어? 이 개자식아.”

악을 쓰는 남자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남자가 쓰고 있던 투구를 벗었다.

그는 놀랍게도 신화 길드를 구렁텅이로 집어넣은 2팀장 허태윤이었다.

그의 얼굴은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코가 S자로 심하게 삐뚤어져 있었고, 광대뼈의 높낮이가 맞지 않았다.

좌우대칭이 심하게 틀려 있는 게, 거인병 환자의 얼굴 같았다.

“아니, 네놈이 어떻게? 나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안 그래도 네놈 목숨을 살려 준 게 후회가 돼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오히려 잘됐다. 죽여 달라고 제 발로 찾아 왔으니, 이번에는 확실히 죽여주지. 멍청한 놈인 건 진즉 알았지만,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대가리에 똥만 든 놈이었네.”

곽마권은 허태윤임을 확인한 순간, 작은 긴장도 날아가 버렸다.

그에게 허태윤은 벌레 새끼나 다름없었다.

“입 닥쳐, 개새끼야. 넌 오늘 뒤졌어. 내가 당한 것 이상으로 네놈에게 돌려주마. 오늘이 네 인생에서 마지막 날이 될 거야. 내가 그 피날레를 아주 멋지게 장식해 주지.”

“아가리 닥쳐! 넌 내가 아주 제대로 밟아 줄 테니, 병신 새끼는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옆에 있는 네놈들은 또 누구냐?”

곽마권이 허태윤에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물었다.

“우리가 누굴까요? 궁금하지요? 크크크크크크!”

남자 한 명이 이 상황과 전혀 맞지 않게 가벼운 리듬을 타며 말했다.

어린아이를 상대하듯 말하는 남자의 비웃음이 곽마권의 속을 더욱 뒤집어 놓았다.

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씨발, 어디서 병신 같은 새끼들이 단체로 몰려와서는.”

곽마권은 대화를 할 생각을 버렸다.

상대의 정체를 모르니 대화를 할수록 자신의 약만 올랐다.

“숫자만 많으면 너희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너희는 상대를 잘 못 골랐어. 내가 직접 네놈들을 죽여 정체를 밝혀 주지. 허태윤이 말에 혹해서 따라온 거 같은데. 병신 된 놈 하나 믿고 온 것을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이런 개새끼가, 내가 오늘 네 모든 이빨을 뽑고 뼈란 뼈는 모두 으스러뜨려 주마.”

허태윤이 투구를 쓰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곽마권의 안색이 변했다.

자신이 반병신으로 만든 허태윤이 똑바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하하, 네놈이 똑바로 걷든 말든 그냥 넌 원래 상병신이었어. 다리를 절지 않으면 나를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곽마권은 곧바로 동요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허태윤에게 조소를 날렸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싸움은 기세였다.

싸우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는 건 상대에게 죽여 달라고 알아서 머리를 숙이는 것과 같았다.

맨손으로 신화 길드를 세운 만큼 그의 저력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허태윤은 그날 지옥을 산 채로 경험했다.

곽마권은 악마, 그 자체였다.

그는 자비심이란 게 결여된 사람이었다.

상대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처절하게 울부짖어도, 온몸에서 새빨간 피를 흘려도, 살려 달라고 그렇게 빌어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화가 풀리는 것만이 중요했다.

곽마권은 헌터로 각성하고 신화 길드가 발전의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싸워 왔다.

몬스터든 사람이든 계속 싸웠다.

기득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절대 도전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싹을 자르기로 마음먹었으면 다시는 자라지 못하게 확실히 밟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이들과의 싸움은 치열하고 잔인했다.

이들은 사람의 탈을 쓴 몬스터와 다름없었다.

그런 전장을 딛고 올라온 그로서는 사람을 파괴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자연히 사람에게 최악의 고통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여러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곽마권은 허태윤을 끝없이 때렸다.

절대 죽지 않는 선에서 최고의 고통이 느껴지도록 오랜 시간 야금야금 그를 때렸다.

기절하면 더 큰 고통으로 그를 깨웠다.

허태윤과 2팀원들은 그의 잔인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했다.

결국, 모두 병신이 되어 봉고차에 짐짝처럼 실려 사람이 없는 외지에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허태윤은 그날 피의 복수를 맹세했다.

자신을 믿고 따르던 팀원들이 한 명씩 병신이 되어 갈 때마다 그는 피눈물을 흘렸다.

그는 무척이나 억울했다.

실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팀원들과 술을 먹고 던전 폐쇄에 참여하지 못한 건 그냥 사소한 실수였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2팀의 헌터들이 빠진 것도 아니었다.

절반은 참석해 던전 폐쇄를 하지 않았는가.

지금껏 자신과 2팀의 헌터들이 길드에서 세운 공이 얼만데, 이런 취급을 받다니.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헌터를 하면서 모아 둔 돈과 부모님의 재산까지 모두 털어 최고의 힐러에게 치료를 받았다.

그 덕분에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조각조각 으스러진 발목이 믿을 수 없게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최고급 힐링 포션을 물 마시듯 마셔 가며 결국에는 다친 발목을 치료해 냈다.

그는 복수를 위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신화 길드의 헌터들에게 접근했다.

헌터들은 그의 접근을 처음에는 곤란해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들였다.

그들은 허태윤처럼 심해와 같은 깊은 원한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곽마권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1팀을 제외한 헌터들은 모두 길드를 떠나고 싶어 했다.

특히 말도 안 되는 4대6의 계약서에 사인한 날, 모든 헌터가 곽마권에게 이를 갈았다.

그런 그들을 섭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 명을 동료로 만들자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동료가 된 헌터가 가장 불만이 많은 또 다른 헌터를 알아 왔다.

허태윤이 그를 찾아가 곽마권을 죽이는데 함께하자고 꼬드겼다.

지금 곽마권의 앞을 막고 있는 헌터들은 모두 신화 길드의 헌터들이었다.

네 명의 헌터들이 투구를 벗어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냈다.

어두운 밤이지만 곽마권이 그들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이런 개새끼들이!”

곽마권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들이 정체를 밝힌 건 곽마권을 확실히 죽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고,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너는 3팀의 최준서, 하지호, 4팀의 이건우, 5팀의 이다은. 은혜도 모르는 이런 개 같은 것들.”

곽마권의 입에서 분노를 삼키는 듯한 꾹 억누른 음성이 새어 나왔다.

“아주 쓰레기들만 잘도 모아서 데려왔구나.”

지옥의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눈길로 이들을 쏘아보았다.

핏발이 가득한 눈에 싸늘한 귀기까지 덧입혀졌다.

그의 멸시가 담긴 말에 최준서가 발끈해 소리쳤다.

“씨발, 우리가 쓰레기면 넌 거머리다. 그것도 대왕 거머리. 남의 피나 빨아 대는 놈이 어디서 개소리를 씨불이는 거야. 은혜? 좆 까고 있네. 우리 덕에 큰소리 뻥뻥 치고 산 놈이 은혜란다. 네놈이야말로 은혜를 모르는 개돼지보다 못한 놈이야. 지금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려. 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네놈 욕을 하는지 모르지? 다들 지금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여기 2팀장님은 전혀 은밀하게 움직이지 않았어. 대놓고 너를 같이 칠 헌터들을 모았지. 그런데도 네놈의 귀에 한마디도 안 들어간 이유가 뭘까? 네놈이 거머리라 그래. 남의 피나 빠는 대 왕.거.머.리.”

최준서의 한마디 한마디에 곽마권의 뇌가 부글부글 끓었다.

얼마나 약이 오르는지 당장 달려가 곤죽을 만들고 싶었다.

“호호호호, 아이 통쾌해.”

5팀의 이다은이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했다.

“미친놈아, 네가 뭔데 내 등에 빨대를 꽂아. 제비 새끼가 빨대를 꽂으면 이해라도 하지. 생긴 건 꼭 오크처럼 생긴 늙다리 새끼가 어디서 그딴 짓을 하고 있어. 네놈 때문에 내가 제대로 쇼핑을 못 하고 있잖아. 내가 왜 이런 거지 삶을 살아야 하는 거지? 네까짓 게 뭔데. 길드는 또 왜 못 나가게 하는 거야. 사람이 장난감이야? 네가 먼데 병신을 만들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네까지 게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거야. 이 늙다리 오크 새끼야.”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의 이다은이 삼촌뻘인 곽마권을 신랄하게 씹어 제겼다.

“이런 개 같은 년이. 어디 싸가지 없게.”

곽마권이 이빨을 으드득 갈았다.

평소 눈도 못 마주치던 이다은이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롱하자, 그 충격이 상당했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하하하! 저거 봐봐. 다은이 말에 얼굴이 불타오른다. 불타오르네~ 파이어~ 파이어~”

이건우가 가요의 한 소절을 따라 불렀다.

곽마권은 가벼운 말투로 자신의 속을 뒤집은 놈이 이건우라는 걸 알았다.

“넌 특별히 입을 찢고 나서 죽여주마.”

한 자 한 자 씹어 말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시장 바닥이나 훑고 다니는 거지새끼가 꼴에 자존심은 있나 보네. 도대체 뭐를 얻어먹으려고 그렇게 기를 써 가면서 전국의 시장을 다니는 거야? 이왕 죽을 거 이유라도 털어놓고 가는 게 어때? 길드 소문으로는 몽타주의 주인공이 아들이라면서? 젊었을 때 워낙 개차반이어서 여자가 데리고 도망갔다면서? 그 여자가 시장에서 장사라도 했나 봐? 어쨌든 네 아들 찾는 일을 왜 나를 시켜. 왜 쉬는 날에 사람 쉬지도 못하게 더러운 시장을 헤매게 만들어. 내가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려 줄까? 사실 내가 몽타주의 인물을 봤어.”

한껏 일그러진 곽마권의 얼굴이 순식간에 확 펴졌다.

순간, 그의 분위기가 달라졌을 정도였다.

“하하하하, 졸라 궁금하지? 내가 어디서 봤는지 궁금해 미치겠지? 조금 전까지 죽일 듯이 쳐다보더니 눈빛 달라진 것 좀 봐봐. 이야기해 주까? 해 줘? 제발 가르쳐 주세요 라고 해 봐. 그럼 내가 가르쳐 줄지 누가 알아. 내가 그놈을 본 날 얘기 안 해 줘서 분해 죽겠지?”

밉살스럽게 깐죽대는 모습에 곽마권의 눈에 다시금 살기가 맺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얄미운지 피부가 파르르 떨리고 목의 핏대가 터져 나갈 거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과 장수를 어디서 봤는지 묻고 싶었다.

입이 달싹거렸다.

묻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얼마나 그놈을 찾아 헤맸던가.

지금의 신화 길드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그놈 탓이었다.

지금 이 상황도 그놈이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새파란 것들에게 이런 모욕을 당할 일도 없었다.

죽어도 찾아야 할 놈이다.

묻고 싶은데 너무나 묻고 싶은데, 물어보자니 자존심이 죽을 만큼 상했다.

그에 반해 마음 한구석에서는 물어보라고 얼른 물어보라고 계속 외치고 있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저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 좀 봐봐. 진짜 아들이 맞나 봐. 저런 인간 말종도 부자의 정이라는 것이 있구나. 씨발, 제 아들이 그리 귀하면 남의 집 아들도 귀한 줄 알아야지. 이 이기적인 개새끼야!”

이건우가 웃으면서 말을 하다 마지막에는 화를 내며 곽마권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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