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붕어빵
“하하하하, 이제 네놈이 처한 상황을 잘 알겠지. 난 네놈이 말한 고통 없는 죽음을 스스로 실행할 능력이 있어. 그러니 내가 만족할 만한 다른 조건을 내밀어 봐.”
“이런, 영악한 새끼.”
곽마권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건우에게 다가가려 했다.
“이 새끼야, 한 걸음만 더 움직여도 이대로 죽어 버릴 테다.”
순간, 곽마권의 발걸음이 멈췄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흥정하는 꼴이 같잖았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좋아. 그래야지. 이제 네놈의 처지를 이해하겠지.”
“내가 사과 장수를 찾을 방법은 꼭 너만이 아냐. 잘 생각해. 단지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 싫어 네놈에게 기회를 준 거뿐이야.”
“개소리 작작 해. 내가 방금 말했지. 남의 것을 뺏기만 했던 개 같은 새끼 주제에 베푼다는 듯이 말하지 말라고. 일평생 좋은 일 한 번 해 본 적 없는 놈이 감히 어디서 그따위 말을 해.”
이건우가 신랄하게 빈정거렸다.
“죽고 싶어, 이 새끼야? 그 입 찢어 버린다.”
곽마권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머리에서 김이 일었다.
“워, 워, 워, 진정하라고.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사과 장수가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사과 장수란 말에 곽마권은 화를 억지로 눌렀다.
자신이 주도하던 분위기가 이건우에게 넘어가 버리자, 그는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권위적이고 성질 급한 그에게 이런 상황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하룻강아지가 감히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있는데, 이걸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건 괴로웠다.
사과 장수가 아닌 다른 건이었다면 상대의 목을 백번도 더 베었을 것이다.
이건우가 웃으며 비아냥거릴 때마다 이를 악물어 가며 참았다.
분위기를 잘 읽는 이건우는 곽마권의 성질이 임계점에 닿은 걸 알았다.
“좋아, 내 질문에 답을 해 주면 나도 당신이 알고 싶은 걸 가르쳐 주지.”
곽마권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승낙의 의사를 표현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팔 하나와 바꾸자고 해도 수락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과 장수를 왜 그렇게 찾는 거지? 길드가 개판이 되는 걸 묵인하면서까지.”
이건우는 곽마권이 어렵게 대답할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말해 주었다.
“그놈은 던전을 가지고 있다.”
곽마권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들은 후 가장 고통스럽게 이건우를 죽일 생각이었다.
죽을 놈에게 자신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하! 어쩐지. 길드의 일까지 내팽개칠 정도면 최소 지금의 길드보다 값어치가 높다는 이야기일 테고. 그런 던전이 있다니, 굉장하다. 미칠 만도 하네.”
이건우가 이해한다는 듯이 쾌활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곽마권은 기대감에 휩싸였다.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고 자신의 눈에 이건우의 얼굴만이 들어왔다.
“사과 장수는…….”
자신을 그렇게나 놀리고 비아냥거리던 이건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과 장수의 행방이 실토되기 일보 직전이다.
곽마권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는 긴장한 듯 입술을 혀로 핥았다.
‘힘들었지만, 결국 난 성공했어. 이제 힘들었던 과정의 몇 배나 되는 보상을 받을 일만 남았다. 이제 제2의 인생이 펼쳐지는 거지.’
그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몸에서 열이 났다.
“사과 장수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려 줄 거 같아? 미친 개새끼야. 넌 평생 사과 장수가 가진 던전은 구경조차 하지 못할 거야. 커억!”
지금 자신의 귀에 들린 소리는 그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곽마권의 얼굴이 지옥의 야차처럼 붉게 타올랐다.
순식간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화가 나 본 적도, 이렇게 심하게 조롱당한 적도 없었다.
치욕도,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었다.
뜨거워진 살갗 위로 땀방울이 맺히는 순간, 그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야!”
“크크크크!”
자신의 목을 찌른 이건우는 이 상황에서도 곽마권이 흥분한 모습을 보고 즐겁게 웃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그의 화난 모습이 더욱 속 시원했다.
곽마권은 재빨리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힐링 포션을 이건우의 상처에 들이부었다.
상처가 아무는 것이 보였지만, 이건우가 죽어 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힐링 포션으로 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연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으아아아아악!”
곽마권은 죽은 이건우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이건우의 얼굴이 그의 주먹을 맞을 때마다 좌우로 돌아갔다.
곽마권이 아무리 이건우의 얼굴을 때리고 짓이겨 놔도 그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없애지는 못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곽마권은 헌터들의 시체를 자신의 차에 실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긴 했지만, 아예 없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헌터 협회에 신고했을 수도 있었다.
이 시대에 헌터들의 싸움은 매우 흔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인에게 전치 몇 주니 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한 번 싸움이 일어나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초인이 공격해 오는데 가만히 있겠다는 건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았다.
죽지 않으려면 당연히 맞상대를 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정당방위의 개념이 넓게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도 정당방위로 처리될 일이지만, 곽마권은 사건을 묻는 쪽으로 결정했다.
괜히 신화 길드가 구설에 오르는 건 피하고 싶었다.
길드원들이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게 소문 나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였다.
이기긴 했으나 상처뿐인 영광이나 다름없었다.
곽마권은 헌터 협회에서 나오기 전에 빠르게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현장의 핏자국만을 보고 자신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헌터간의 싸움은 암암리에 워낙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헌터 협회도 수사에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새끼, 야밤에 또 무슨 전화질이야?”
신화 길드 부길드장 이성호는 욕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네, 길드장님.”
전화를 받은 그의 목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손하게 변해 있었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방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이런 개새끼가 이제 하다 하다 시체 처리까지 시키냐? 뭐? 세차까지 해 놓으라고? 으아악, 개씨발, 잡놈의, 쌍놈의 쳐 죽일 놈의 새끼!”
이성호는 자신이 아는 욕을 총동원하며 욕을 해 댔다.
하지만 이를 빠드득 갈면서도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곽마권은 자신의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이건우, 이 개새끼야. 넌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기 싫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나에게 알려 줬지. 분명 사과 장수가 시장에 나타난다는 것을. 그동안 혹시 그놈이 장사를 접은 게 아닐까 해서 늘 마음 졸였거든. 네놈 덕에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았어. 지금은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어. 언제가 되든 사과 장수가 가진 던전은 반드시 내 손에 들어온다. 단지 시기의 차이일 뿐이야.”
손에 쥐고 있던 술잔이 깨지면서 붉은색의 와인이 손을 타고 흘렀다.
그의 눈빛이 집착과 탐욕으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 * *
김만복은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의 비장의 카드였던 김 주임이 제대로 힘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꺾여 버린 것에 분통이 터졌다.
그 와중에 김 주임에게 많은 돈을 뜯기자,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열불이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다정 분식이 건재한 상태라 여유는 잃지 않았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믿을 수 없게도 동네 분식의 메뉴가 추가되며 손님이 늘었다.
그 여파가 그대로 김만복을 덮쳤다.
동네 분식의 영향으로 다정 분식의 매출이 확 꺾여 버렸다.
“씨발, 이게 뭐야? 미꾸라지 한 마리가 제대로 분탕질을 치네. 도대체 그놈의 정체가 뭐야? 겨우 떡볶이와 어묵탕이나 만들던 놈이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발전할 수가 있는 거지?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이러다가 내가 먼저 문을 닫을 수도 있어.”
그는 식당의 홀을 보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 시간이면 늘 가득 차던 홀이 이제는 겨우 반 정도가 찰 뿐이었다.
계속해서 손님이 빠지는 중이라 지금의 손님도 유지하기 힘든 날이 올 건 빤했다.
시간이 갈수록 위기감은 고조되었다.
김만복도 분식점 사장이었다.
그도 손님을 잡을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금의 음식 맛으로 손님을 잡기 힘들다면 음식 맛을 올리면 됐다.
그는 오래간만에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밤잠을 줄여 가며 여러 시도를 했다.
“이 나이에 밤잠을 설쳐 가며 요리를 연구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는 노력 끝에 기존의 음식보다 한 단계 높은 맛을 내는 데에 성공했다.
좋은 재료를 쓰다 보니 마진율이 낮아졌지만, 지금 당장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강력한 경쟁자를 꺾는 데에만 신경 써야 했다.
업그레이드된 음식으로 새롭게 장사를 시작한 날, 김만복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도 벌써 요식업 경력이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이 업계에서 많은 일을 겪어 온 만큼 그의 내공은 절대 작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다르게 손님은 늘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줄어만 갔다.
분식점 음식이란 것이 싸고 간단하게 먹기 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요리사의 실력이 좋아도 낼 수 있는 맛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김만복도 오랜 경력을 가진 요리인답게 지금의 맛이면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도대체 이유가 뭐지? 내가 마진을 포기하다시피 만든 요리가 밀린다고?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이 가격에 이 정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절대 존재할 수가 없어. 땅 파서 장사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고.”
김만복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놈도 나를 몰아내려고 마진을 포기하고 음식을 만든 건가? 그렇다고 해도 경력이 긴 내 요리가 훨씬 맛있는 게 당연한 상식이잖아. 도대체 이유가 뭐지? 설마 진짜 내가 만든 것보다 맛있다는 거야?”
그동안 동네 분식의 새로운 메뉴들을 먹어 보려고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일은 포장과 배달 판매를 하지 않았다.
매대와 홀 손님의 주문을 쳐내는 것도 힘든 판에 포장과 배달 판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김만복이 아무리 얼굴이 두꺼워도 동네 분식에 직접 가서 음식을 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김 주임을 보낸 것이 자신이라고 알음알음 소문이 난 상태였다.
구청의 공무원이 경일의 눈치를 보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가 이 일의 내막을 묻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궁금해 미치겠네. 칼질하는 것만 봐도 어설프기 짝이 없던 놈인데. 그런 요리 초보가 만든 것이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다는 거야.”
김만복은 동네 분식의 음식 맛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의 말대로 사실 경일의 음식 솜씨로는 그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갈 실력이었다.
그동안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다고 해도 20년 경력의 김만복을 이길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이건 당연히 던전 식물의 효과였다.
던전의 존재를 모르는 김만복으로서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건 당연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자기 아들을 동네 분식으로 보냈다.
허름한 옷을 입히고, 냄비를 든 김만복의 아들이 동네 분식으로 갔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교육받은 대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경일에게 말했다.
“아저씨, 죄송한데, 음식 포장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엄마가 여기 단골인데 아프셔서요. 여기 음식이 너무 먹고 싶다고 하시는데, 제발 한 번만 포장해 주세요.”
한창 바쁘게 음식을 조리하는데 십 대로 보이는 손님이 포장을 부탁했다.
경일은 손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피식하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얼굴이 김만복이랑 붕어빵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