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제길! 너무 맛있잖아
어이가 없어 그대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포장이 원래 안 되는 곳인데, 어머니가 아프시다 하니 어쩔 수가 없네. 어떤 거로 포장해 줄까?”
김만복의 아들은 웃으며 메뉴를 말했다.
아이가 말한 건 거의 모든 메뉴였다.
“어머니가 대식가인가 보네. 그런데 몸이 안 좋으시다는데,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냐?”
“아, 아니, 그게, 그게 말이에요…….”
경일의 질문에 곤란한 듯 김만복의 아들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하하, 어머니가 다 맛보고 싶은가 보구나. 그럼 다 포장해 줘야지.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괜찮아?”
“네, 괜찮아요.”
남자아이는 당황한 표정을 지우며 대답했다.
경일은 요리를 시작했다.
두 개의 뚝배기에 동네 분식의 시그니처인 민물 새우 가루가 들어간 육수를 넣어 불에 올렸다.
물이 끓는 동안 재빨리 김밥을 쌌다.
뚝배기의 육수가 끓어오르자 각각에 들어가는 재료를 넣어 조금 더 끓였다.
미리 튀겨 놓은 튀김을 기름에 넣고, 떡볶이와 어묵을 포장했다.
아직 음식을 조리할 때 서툰 모습이 이따금 보였지만, 그동안 노력한 흔적은 확실히 보였다.
마치 짜여진 동선을 움직이는 것처럼 그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찌개류가 익는 시간에 최대한 맞춰 주문받은 음식을 완성했다.
아이가 가져온 각각의 냄비에 국물 요리를 담고 나머지는 따로 포장해 주었다.
“손님 다 됐습니다. 23,500원입니다.”
“여기요.”
김만복의 아들은 인사도 없이 돈을 던지듯이 계산하고서는 음식을 챙겨 곧바로 나가 버렸다.
“쯧쯧, 목적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게 제 아버지를 꼭 닮았네. 확 달려가서 도로 음식을 내놓으라고 하고 싶네. 그나저나 내 음식을 먹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경일은 이미 다정 분식의 어려움을 들어 알고 있었다.
워낙 동네 사람들과 살갑게 지내다 보니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정보가 알아서 들어왔다.
최근 맛 또한 좋아진 것도 알고 있었다.
“내 음식을 먹어 보면 맛으로 안 된다는 걸 알 테니, 앞으로 또 어떤 수작을 보일지 기대가 됩니다. 김만복 사장님.”
경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밀려드는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조리했다.
* * *
“이럴 수가!”
경일의 음식을 맛본 김만복은 경악으로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맛이 가능한 건가? 들어간 재료나 양념은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조미료? 아니야. 이런 맛을 내는 조미료는 들어 본 적도 없어. 음식에 들어간 채소의 크기도 제각각이고, 간도 조금씩 달라. 어떤 건 조금 짜고, 어떤 건 조금 싱겁기도 하고. 간을 한 거나 채소를 썬 걸 보면 분명 초보가 맞는데, 왜 이리 맛있지? 이게 말이 돼? 어디서 비장의 레시피라도? 아무리 좋은 레시피라도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나?”
코에서 연신 더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점점 빨라지는 호흡에 신경질이 잔득 묻어 있었다.
모든 정신을 집중했더니 머리가 점점 아파 왔다.
“아니야, 이건 아니아. 조리법이 뻔한 이런 음식으로는 레시피가 아무리 좋아도 불가능해. 이건 레시피로 낼 수 있는 맛을 넘어섰어. 분명 들어간 재료나 양념은 모두 아는 건데,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이 풍미는 도대체 뭐냐고. 이런 맛은 먹어 본 적이 없어. 아니, 먹어 봤나? 맛을 종잡을 수가 없잖아. 분명 겉모습은 평범한, 아니, 오히려 못 만든 티가 나는 음식인데, 왜 이리 맛있냐고!”
그는 이 상황이 누구보다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
지금까지의 요리 인생이 처참히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김만복은 음식 분석에 집중하느라고 몰랐지만, 근래에 들어 지금의 컨디션이 가장 좋았다.
그의 머리는 평소와 다르게 빠르게 돌아갔다.
답을 낼 수가 없어 그렇지, 집중력은 최고조로 올라가 있었다.
김만복의 머리 위에 여러 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 고추를 먹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줍니다.]
[던전 민물 새우를 먹었습니다. 마음에 안정이 깃듭니다.]
[던전 고구마를 먹었습니다. 피부가 좋아집니다.]
[던전 표고버섯을 먹었습니다. 숙면에 도움을 줍니다.]
[던전 콩을 먹었습니다.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줍니다.]
[던전 배추를 먹었습니다. 다이어트에 도움을 줍니다.]
…….
김만복은 던전 식물의 효능 덕에 맑아진 머리로 동네 분식을 망하게 할 방법을 생각했다.
“맛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돼. 내가 마진을 아예 포기하고, 아니, 최고급 재료를 써도 이런 맛은 이길 수는 없어. 정공법으로 안되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공무원을 이용하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야. 식당이라는 것이 맛이 좋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거든.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김만복의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걸렸다.
“우와~ 아빠, 이 떡볶이 너무 맛있는데? 우와~ 어묵 국물은 왜 이리 시원해. 우와~ 김밥은 또 왜 이리 맛있어?”
평소 분식점 음식은 싸구려라고 입에도 안 대는 아들이 동네 분식 음식을 걸신들린 듯이 먹고 있었다.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에 머리를 한 대 쥐어 박고 싶었지만, 겨우 화를 가라앉혔다.
아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내는 아버지는 없었다.
* * *
경일은 던전에서 한 마리 소가 되어 있었다.
그는 열심히 땅을 개간했다.
어느새 처음보다 훨씬 더 넓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다.
누구도 혼자서 했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넓이였다.
경일은 스탄다비아에 지원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돈이 없었다.
아무리 장사가 잘돼도 겨우 테이블 네 개짜리 분식점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건 바로 농사였다.
던전의 비옥한 땅은 무엇을 심어도 잘 자랐다.
만약 지구에서 농사를 지었다면 혼자서는 이 평수의 농사는 절대 불가능했다.
농사를 짓는 것은 힘들었지만, 심는 족족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었다.
“바로 이 맛에 농사를 짓는 거지. 쑥쑥 자라라~”
새로운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논과 밭에 물을 대고 농사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경일은 농사일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지구의 식물에 관한 공부뿐만 아니라 던전에서만 자라는 식물도 공부 중이었다.
헌터들이 던전에서 채집해 나오는 식물들을 이용해 연금술사가 포션을 만들어 냈다.
포션의 효과에 따라 고가로 거래되다 보니, 혹시 이 던전에도 그런 식물이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던전의 고유 식물은 식물 찾기 스킬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던전에 존재하지 않거나, 아직 자신이 가 보지 못한 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던전에 없는 것보다는 자신이 안 가 본 곳에서 자라기를 바랐지만, 사실 두 번째 이유라고 해도 던전 고유 식물을 채집할 확률은 제로였다.
이전처럼 던전 탐험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탐험 이외에도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만약 시간을 낸다면 분식점 정기 휴일에 마쳐 최대 6일간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돌아오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3일 동안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능했다.
경일은 3일 동안 갈 수 있는 곳은 스탄다비아 지방과 동조가 이루어지기 전에도 이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스탄다비아와 통하는 게이트도 분식점 정기휴일에 맞추어 탐험하다가 발견했다.
안 가본 곳도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불확실한 것에 시간을 낼 바에는 확실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확실한 일이 바로 농사였다.
그동안 스탄다비아 관찰 스킬을 통해 스탄다비아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스탄다비아는 인구 2만 명 정도의 작은 영지로, 베르아스 왕국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지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몬스터의 숲과 맞닿아 있었다.
대대로 스탄다비아를 다스려 온 가문은 보일가였다.
경일과 만난 자포리자 보일은 보일가의 13대 영주였다.
보일가의 주된 임무는 몬스터의 침공을 막는 것이었다.
빈번한 몬스터의 습격으로 안전하게 농사를 지을 땅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늘 식량 사정이 나빴다.
영지의 수입은 대부분 몬스터에게 나왔다.
특정 몬스터의 피나, 가죽, 뿔 등의 부산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지방에서 가장 많은 몬스터는 고블린이었다.
고블린은 단 1%도 쓸모가 없는 몬스터였다.
가죽은 방어구로 쓰기에는 너무 약했고, 피에는 독성이 있었다.
돈이 되는 몬스터의 개체 수가 너무 적었다.
스탄다비아 영지민들이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영지민의 대부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몬스터와 싸웠다.
하늘이 내려 준 수명을 다 살고 가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몬스터에게 죽었다.
겨우 몬스터에게서 살아남았어도 그들에겐 또 다른 시련이 남아 있었다.
굶주림과 병이었다.
매 순간 목숨을 걸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평생을 싸워 왔지만, 이들의 삶은 아주 형편없었다.
경일은 스탄다비아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 왔다.
이들에게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스탄다비아의 영지민들의 희생으로 베르아스 왕국은 몬스터의 침입에서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베르아스 왕국에서의 지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매년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자포리자 영주를 비롯한 모든 영지민들은 허리가 휠 정도로 일을 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보다 이들의 삶은 힘들었다.
자신이라면 하루도 버티지 못할 거 같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삶이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했는데, 스탄다비아 영지민과 비교하는 거 자체가 큰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얼마 되지 않은 양이지만, 처음으로 인벤토리를 통해 수확한 작물을 보냈다.
너무 적은 양이라 보내고도 미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작물을 받은 자포리자 영주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과묵한 성격의 그가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에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자포리자 영주는 가문의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모든 작물을 영지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훌륭했다.
매우 훌륭해 절로 존경심을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경일은 이들이 잘살았으면 했다.
오늘도 잠을 줄여 가며 열심히 던전의 땅을 개간하고, 여러 작물을 심는 이유였다.
던전의 땅은 경일의 노력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눈앞에 펼쳐진 논과 밭에 자라고 있는 여러 작물을 보고 있노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경일은 약 축구장 네 배 크기의 땅을 개간해 논과 밭으로 만들었다.
농기계의 도움 없이 손수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낸 대단한 성과였다.
처음에 심은 작물들이 영글어 가고 있었다.
이 이상 땅을 개간하고 더 많은 식물을 심고 싶었지만, 그건 욕심이었다.
경일의 능력으로는 지금의 논과 밭이 한계였다.
던전의 땅이 비옥해 작물이 알아서 잘 자란다고 해도 농사를 짓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던전에서 수확한 작물을 비싼 값에 팔고 그 돈으로 지구의 작물을 사서 보내고 싶은 욕망이 문득문득 치밀어 올랐다.
대단히 위험한 욕망인 걸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경일은 마음을 비우고. 오늘도 건강한 노동으로 하루를 보냈다.
지구에서도 할 일이 늘어났다.
분식점이 장사가 잘되면서 수익이 꾸준히 늘었다.
그 돈을 가지고 처음 간 곳은 고물상이었다.
스탄다비아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식량보다 더 급한 게 바로 무기였다.
지구의 단단한 철이라면 수많은 죽음을 막을 수 있으리라.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