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40화 (40/300)

[40화] 늘어난 신체 능력

고철을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옮기는 것이 문제였다.

사람들 앞에서 인벤토리에 바로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일은 고철로 가득 찬 리어카를 끌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인벤토리에 담았다.

“트럭 한 대만 있었어도 금방 끝날 일인데. 리어카를 끌고서 여러 고물상을 돌아다닌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아직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자.”

가벼워진 리어카를 끌고 또 다른 고물상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경일이었다.

* * *

자포리자에게 생긴 인벤토리는 양방향이 아닌 한쪽으로만 작용했다.

경일이 보낸 물건을 받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물건을 보내지는 못했다.

인벤토리에 경일이 보낸 물건이 들어온 게 느껴진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모든 사람이 외면한 자신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무척 감사했다.

그는 천천히 처음 게이트가 생겼던 곳으로 다가갔다.

참된 얼굴의 자포리자가 경건한 마음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머리를 숙였다.

기사 서임을 받을 때의 자세였다.

귀족은 일평생 단 한 사람에게만 충성을 맹세했다.

그 사람은 바로 베르아스의 국왕이었다.

그런 자포리자가 스스로 기사임을 자처하고 경일을 섬기고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

이 순간부터 자포리자에게 진정한 왕은 경일이었다.

베르아스의 국왕은 자신들의 것을 뺏어만 갔지, 도움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영지민들이 그의 눈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갈 때마다 그의 분노는 커져 갔다.

커져 버린 분노는 그의 큰마음에도 다 담기지 않고 넘쳐흘렀다.

어느 순간부터 국왕은 원망의 대상일 뿐, 그가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 아니었다.

대대로 함께 살아온 영지민들이 아니었으면, 그는 이미 다른 나라로 갔을 것이었다.

“선인이시여. 감사합니다.”

경일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그가 향한 곳은 대장간이었다.

자포리자가 나타나자 영지민들이 먼저 다가와 그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인사를 건넸다.

영지민들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하는지, 그들의 진심 어린 행동에서 충분히 보였다.

자포리자는 일일이 영지민들의 손을 한 번 잡아 주고는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영주님, 어서 오십시오”

대장장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자포리자의 눈이 대장간의 가마로 향했다.

영지에서 가장 바빠야 할 대장간이 재료가 없어 가마가 식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대장장이는 죄송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엔디미온, 자네가 미안해 일이 아니야. 내가 못나서 그런 거니,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네.”

“아닙니다, 영주님. 제 기술이 뛰어났으면 외지에서라도 저를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대장간이 놀고 있는 건 모두 제 탓입니다.”

“어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내 기분을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걸 잘 알고 있네.”

자포리자 성주는 대장장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앞으로 바빠질 테니, 나를 원망이나 하지 말게나.”

성주의 갑작스러운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대장장이가 얼굴을 들었다.

“영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포리자 성주는 대장장이의 질문을 무시하고 대장간 안의 한쪽 구석으로 갔다.

“이곳에 재료를 쌓으면 되겠는가?”

“네? 네.”

대장장이가 얼떨결에 영주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순간, 대장간의 한쪽 구석에 경일이 보내 준 고철로 가득 찼다.

“헉!”

대장장이의 놀란 눈이 소의 눈처럼 동그래졌다.

“어떤가? 이 정도면 한동안 일을 할 수 있겠지?”

“그, 그럼요, 성주님. 역시 성주님의 능력은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많은 철을 구해 오시다니.”

“아닐세. 내 능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은 선인의 능력이네. 우리 영지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선인을 드디어 만났지. 그분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약속을 하였네. 이제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 봐야 하지 않겠나.”

자포리자 성주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몬스터와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둘 것이네. 단 한 명의 소중한 목숨도 절대 허무하게 잃지 않게 하겠어.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엔디미온, 바로 자네로부터야. 이걸 이용해 모두 창날로 만들어 주게.”

대장장이는 성주의 굳건한 다짐을 듣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제, 제가 최선을 다해서 만들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해 주게.”

대장장이는 자포리자 성주가 대장간을 나갈 때까지 깊게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장간의 가마가 시뻘건 불꽃을 피워 냈다.

경일이 보내 준 고철이 영지민들의 목숨을 지킬 무기로 탈바꿈을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렇게 순도가 높은 철이 있다니!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군. 일평생 대장장이를 했지만 이런 철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도 없어. 이 정도의 철이라면 누가 만들어도 최고의 무기가 나올 수밖에 없겠어.”

대장장이는 처음 고철을 녹인 쇳물을 보고 매우 놀랐다.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순한 쇳물이 끓어오르며 뻘건 빛을 냈다.

뜨거운 쇳물을 창날을 본뜬 틀에 쇳물을 부어 식혔다.

투박하지만 창날의 형태를 갖춘 쇳덩이가 만들어졌다.

땅땅땅땅!

대장장이의 망치 소리가 조용했던 마을을 깨웠다.

리드미컬한 쇠를 때리는 소리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들리는 쇠를 때리는 망치질 소리에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엔디미온, 도대체 무엇을 만들고 있길래 이렇게 바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남자가 물었다.

“영주님이 주신 철로 창날을 만들고 있다네. 이 철은 굉장히 단단해서 고블린의 배때기 같은 건 가볍게 뚫고도 남을 걸세. 이 무기가 몬스터의 전투에서 우리의 목숨을 지켜 줄 거라고 장담을 하셨네. 그리고 우리가 승리할 거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

“역시 우리 영주님이야. 나는 대단하신 우리 영주님이 언젠가는 큰 뜻을 펼칠 거라고 굳게 믿었지.”

이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늘 어둡던 영지민들의 얼굴에 서서히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이 대장간을 들렀고, 완성된 창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이 창만 있으면 고블린 100마리와도 싸워 이길 수 있을 거 같았다.

죽어 가던 스탄다비아에 새로운 바람이 일었다.

* * *

경일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분식점을 열기 전에 고물상을 들릴 생각이었다.

분식점 정기 휴일에 한 번에 몰아서 가는 것보다, 잠을 조금 줄이고 출근 전에 매일 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지구에서의 하루는 던전의 3일이었다.

3일을 날릴 바에는 잠을 조금 줄이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경일은 오늘도 리어카를 끌고 경사진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에고~ 빨리 돈 벌어서 트럭을 한 대 사든지 해야지. 이게 보통 일이 아니네.”

경일은 리어카의 무게에 밀리지 않으려 몸에 힘을 주고 힘들게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리어카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던 몸이 순간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어라, 이게 무슨 일이지? 리어카가 조금 가벼워진 느낌인데.”

[스탄다비아가 발전했습니다. 힘, 민첩, 체력, 마나가 올랐습니다.]

“신체 능력이 올라갔다고? 상태창.”

경일은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레벨 0

힘 (11/13)

민첩 (12/14)

체력 (9/13)

마나 (11/11)

[스킬]

식물 찾기 (Lv,2)

스탄다비아의 현황 관찰(Lv.1)

인벤토리

[특성]

스탄다비아와의 동조가 이루어짐

신체 능력의 한계가 모두 1씩 늘어나 있었다.

[스탄다비아의 발전을 확인하시겠습니까? (Y / N)]

어떤 이유로 신체 능력이 올랐는지 궁금했는데, 시기적절하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연히 확인해야지. Yes.”

Yes를 말하자 처음 보는 경치가 펼쳐졌다.

경일은 스탄다비아의 영지민 중 한 명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가 시야를 공유하는 상대는 열다섯 살의 아투였다.

아투는 성벽 위에 서 있었다.

이제 막 고블린과의 전투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 소년이지만, 그에게서는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찰병의 보고로는 고블린의 수는 약 200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숫자이지만, 오늘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용납하지 않겠다. 선인께서 우리를 어여삐 여겨 엄청난 선물을 하셨다. 기사들의 철검보다도 몇십 배 강한 철을 보내 주셨다. 그대들이 들고 있는 창날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강철이다. 지금까지 고블린에게 당한 가족들의 복수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어제의 약한 우리는 이제 없다. 우리는 오늘을 기점으로 몬스터에게 빼앗긴 우리의 비옥한 토지를 모두 되찾아 올 것이다. 이 땅에서 몬스터를 몰아내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날이 바로 오늘임을 명심하라! 모두 선인을 믿고 따르자! 그 끝에는 오로지 승리만이 있을 것이다!”

자포리자 영주가 성벽의 가장 높은 곳에서 영지민들을 향해 결의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드높은 기개에 영지민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쳤다

“역시 우리 영주님이야. 난 영주님이 언젠가는 날개를 펼치고 훨훨 날아오를 거라고 믿고 있었다고!”

아투는 이번이 몬스터와의 첫 전투인데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의 시야는 전혀 떨리지 않았으며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창을 봤다.

검은색 창날이 햇빛을 받아 묵직한 빛을 내고 있었다.

창을 단단히 거머쥐고 오른발을 힘 있게 앞으로 내디디며 허공을 향해 힘차게 뻗었다.

창이 공기를 가로지르며 묵직하게 나아갔다.

“멋진데? 난 역시 운이 좋아. 고블린과의 첫 전투에 이런 대단한 무기를 지급받고.”

손에서 느껴지는 창날의 무게감이 아투는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고블린을 향해 창을 내지르고 싶었다.

이런 감정은 그만이 아니었다.

아투에 눈에 새롭게 지급받은 창을 들고 휘두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영지민 모두 창을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펼치며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불같이 뜨거운 투지가 뿜어져 나왔다.

저 멀리 고블린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새까맣게 보이던 것이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고블린의 생김새가 또렷이 보일 만큼 가까워졌다.

엄청난 숫자의 고블린이 달리자 바닥이 살짝 떨렸다.

“캬아아아아아악!”

선두에 선 고블린이 칠판을 긁는 듯한 끔찍한 소리를 내질렀다.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불쾌한 눈초리로 고블린을 노려봤다.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이며 몽둥이로 고블린과 싸울 때는 다들 이렇게 침착하지 못했다.

고블린이 다가와 끔찍한 함성을 내지를 때면 모두 긴장으로 온몸이 뻣뻣이 굳었다.

조금 있으면 목숨을 건 전투가 시작될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무창은 고블린을 몇 번 찌르고 나면 그 끝이 망가져 무기의 기능이 상실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묵직한 몽둥이는 고블린의 머리를 터뜨리긴 좋았으나, 체력이 빠져 금방 지쳤다.

또한 나무를 만든 무기는 쉽게 부러지기 일쑤였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맨몸으로 고블린과 맞서야 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싸움은 처절하게 변해 갔다.

고블린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으면 뼈가 부러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운이 좋아 뼈가 부러지지 않아도 맞는 순간 엄청난 격통을 겪어야 했다.

최악은 녹슨 칼이었다.

고블린의 칼은 원시적인 수준의 철기였다.

칼날은 뭉뚝했고, 이가 나가 있었으며, 강도가 약해 잘 휘어졌다.

고블린의 칼에 맞으면 살이 베어지는 것이 아니라 뜯겨 나갔다.

뜯겨 나간 상처는 잘 낫지도 않았으며 지네가 기어가는 듯한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작은 상처에도 파상풍에 걸려 살이 썩어 가는 고통을 겪으며 죽은 사람도 많았다.

영지민들은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이런 지독하게 어려운 싸움을 해 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히려 고블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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