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김만복의 웃음
자포리자는 인벤토리에 흙이 담겨 있어 의아했다.
경일이 보낸 메모에는 이 흙을 농지에 뿌리라고 적혀 있었다.
경일은 이 흙을 뿌리면 작물들이 더 잘 자랄 것이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아직 확실한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어 그냥 뿌리라고만 적었다.
자포리자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곧 머리를 비웠다.
경일은 그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저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는 곧바로 농지로 달려가 인벤토리에서 흙을 꺼내어 놓았다.
“영주님 여기까지 무슨 일로…….”
한참 밭에서 일하고 있는 마을 장로가 달려와 자포리자를 맞았다.
“사피에르 장로, 이 흙을 골고루 농지에 뿌리시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피에르 장로의 궁금증에 답을 해 주고 싶은데, 그도 아는 게 없었다.
“이 흙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오.”
자포리자는 사피에르 장로의 답으로 경일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했다.
그가 하는 일은 무조건 자신들을 이롭게 하는 것임을 굳게 믿었다.
“알겠습니다.”
사피에르 장로는 자포리자의 말에 공손히 대답했다.
이날부터 자포리자의 기행이 시작되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며칠에 한 번 농지에 나타나서 흙을 놓고 갔다.
영지민들은 궁금해하면서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만 봤다.
* * *
경일은 오늘도 분식점에서 한창 장사 중이었다.
“사장님,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앞으로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거 같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그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홀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만드는 동안에도 매대에 있는 떡볶이와 어묵탕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는 기계 같이 움직였다.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대에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계속해서 만들었다.
중간중간 음식 값을 받았고, 손님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혼이 나갈 정도로 바빴다.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선 손님들은 지루해하지 않았다.
기계 같이 움직이는 경일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방 갔기 때문이다.
다음 날도 바빴고, 그 다음 날도 여전히 바빴다.
장사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 희열이 차올랐다.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매우 바쁘게 보냈다.
여느 날과 같이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뭐지? 무언가가 이상한데. 가스 밸브를 안 잠그고 온 건가?”
기분이 이상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분식점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가스 밸브는 잘 잠겨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분식점을 다시 한번 점검했지만,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이상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경일은 뭐가 이상한지 알아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바쁜 건 맞는데, 분명 손님이 줄어들고 있음을 감지했다.
점심시간에는 늘 긴 대기 줄이 있었는데, 그 줄이 눈에 띄게 짧아져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바쁜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손님이 줄어들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뭐, 손님이 많은 날이 있으면 적은 날도 있는 거지.”
애써 위안을 해 보지만, 말과 다르게 그의 눈은 바쁘게 거리를 살피고 있었다.
이제는 대기하는 손님도 없었다.
하루에 몇 번씩 만들던 매대의 음식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아침에 만들었던 그대로였다.
늘 경일을 웃음 짓게 했던 동네 아이들의 방문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 속도로 손님이 줄어가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만 날리게 될지도 몰랐다.
손님이 빠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음식 맛이 이상한가?”
경일은 요리할 때마다 일일이 맛을 봤다.
평소와 맛의 차이는 없었다.
여전히 맛있었다.
음식의 간도 적당했고, 던전에서 가져온 작물들은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맛은 아닌 거 같고, 위생에 문제가 있나?”
주방을 둘러봤으나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었다.
후드 속까지도 깨끗했다.
혹시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나 싶어 장사를 마치고 대청소까지 했다.
음식 맛과 위생까지 점검했지만, 손님은 계속 빠졌다.
‘도대체 이유가 뭐지? 분명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텐데.’
경일은 매일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을 했지만,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탄다비아를 만나면서 분식점의 장사는 매우 중요해졌다.
이제는 한 푼의 돈이 아쉬울 판이었다.
스탄다비아 뿐만 아니라 던전에도 살 물건이 많았다.
한창 걱정의 바다에 빠져 고민 중인 경일을 누군가 불렀다.
“저기, 사장님.”
“네, 손님. 뭐 부족한 게 있으신가요?”
경일은 자신을 찾는 손님의 목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손님은 머뭇머뭇하며 경일의 눈치를 봤다.
분명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경일은 손님의 반응에 직감했다.
자신이 고민하는 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괜찮습니다. 부담 없이 말씀하셔도 됩니다.”
경일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기 사장님. 제가 여기 음식을 너무 사랑하는 거 아시죠?”
“그럼요. 동네 분식의 소중한 단골이신데요.”
“그래서 말인데, 이 반찬 먹어도 괜찮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손님의 뜬금없는 말에 경일의 눈이 커졌다.
“아니 그게, 사랑방 게시판에 여기 분식점 관련 내용이 계속해서 올라와서…….”
손님은 막상 자세히 말을 하려니 곤란한지 말끝을 흐렸다.
사랑방 게시판은 이 동네 주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고 거래 웹의 게시판이었다.
경일은 장사를 마치고, 게시판에 들어가 확인을 했다.
“이런 제기랄!”
옥탑방에 게이트가 생긴 이유로 이렇게 화가 난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는 얼굴에 핏기가 순식간에 가신 듯 창백해진 얼굴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게시판에는 동네 분식에 관한 이야기로 한참 시끄러웠다.
― 이상한데요. 그 집은 음식 재활용하는 거 같지는 않던데.
└ 내가 분명히 봤다니까요.
└ 아니, 증거도 없이 이런 말을 막 해도 되나요?
└ 나도 봤어요. 재활용하는 거.
└ 나도 봄.
└ 본 사람이 엄청 많네. 진짜 음식 재활용하는 거 맞나 보네.
└ 이상한데요. 그 집 사장님이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던데…….
└ 장사하는 사람이 손님 앞에서 친절한 것은 당연한 거고. 아무리 장사라지만 사람이 기본적인 양심은 가져야지, 이게 뭐야? 기분이 무지무지 나쁘네. 음식 재활용이 말이 되냐고? 앞에서는 싸게 파는 척하면서 남은 음식 재활용이나 하고. 그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가격을 올리든가. 사람은 애초에 장사하면 안 돼. 음식으로 장난치는 놈은 완전 쓰레기야, 쓰레기. 그것도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우리 동네가 못 산다고 무시하는 게 분명해.
└ 맞아요. 무시하는 게 분명해요.
└ 아니에요. 그 집 사장님이 얼마나 양심적인데,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전부 말뿐이고, 증거는 하나도 없잖아요.
└ 아니, 본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닌데, 무슨 소리예요? 지금 이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까? 분식점 마칠 때 가 봤어요? 떡볶이랑 어묵탕이 매일 남아 있던데. 그거 어떻게 처리하겠어요. 전부 다 버릴 거 같아요? 나도 옛날에 식당 하는 친구에게 들어서 아는데, 저건 다음 날 새로 만드는 음식에 전부 다시 섞어요.
└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 사장님 손이 큰 건지, 마칠 때 보니 남은 양이 장난이 아니던데. 제가 떡볶이 좋아해서 자주 먹거든요.
└ 이런, 그동안 줄까지 서서 먹었는데 이제 안 가야겠네.
└ 나도 그만 갈랍니다.
└ 진짜 양심 없네. 얼마나 돈독이 올랐으면
└ 맛은 진짜 좋았는데. 너무 안타깝다.
└ 요즘 손님도 많이 늘었던데 몇 푼이나 더 벌려고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 젊은 사람이 참 세상을 더럽게 배웠네.
└ 그러게요. 그 좋은 실력을 가지고 왜 그런 짓을 하죠? 정말, 이해 안 되는 사람이네. 실력이 좋은 사람이 그런 짓을 하니 오히려 더 열이 받네. 사람이 왜 그런데요.
└ 아닌데. 그런 짓을 할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
└ 님아, 관상가세요? 아니면 무당? 보는 것만으로 어떻게 알아요?
└ 무당이래, 푸하하하하하하
└ 혹시 본인?
└ 맞네! 본인.
└ 이 사람아,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야. 손님 덕에 먹고 살면서. 손님을 개돼지 취급하는 건 아니지. 이 죄가 나중에 다 당신에게 돌아가. 그게 인생이야. 쯧쯧, 몽매한 인생이로고.
└ 진짜 무당 나왔다.
└ 할할할할할.
└ 아~ 그 집 정말 맛있었는데 아쉽긴 하다. 음식 재활용하는 걸 알면서 먹자니 찝찝하고.
└ 내 시간 물어내라. 내가 밥 먹으려고 기다린 시간 모두 물어내라.
게시판에는 동네 분식의 성토로 난리였다.
처음에는 자신을 옹호해 주는 글도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 봤다는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옹호해 주는 글은 힘을 잃어 갔다.
“하~ 내가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기분이 너무너무 나빴다.
경일의 얼굴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하~ 이번 거는 좀 아픈데. 이 아저씨, 이번엔 머리를 제대로 굴렸네.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분식점에 음식 재활용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써서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쓰레기들이 왜 이리 많은 거야?”
경일은 누구의 짓인지 금방 눈치챘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을 보면 김만복이 한 짓이 틀림없었다.
다만, 이건 손 쓸 방법이 없었다.
다음 날도 손님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한 번 붙은 불은 활활 타올랐다.
마치 마른 들판에 붙은 불처럼 맹렬하게 모든 것을 태우고 빠르게 번져 갔다.
동네 장사다 보니 큰 타격을 받았다.
지금 일에 비하면 공무원 때의 사건은 양반이었다.
한 푼의 돈이라도 아쉬운 판에 이번 사건은 제대로 뼈를 때렸다.
던전의 작물이 아무리 잘 자라도 작물이 자라는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했다.
스탄다비아가 던전보다 시간이 몇 배 더 빠르게 흘러가는 곳이라 수확한 작물을 몇 달에 한 번 보내는 셈이었다.
분명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경일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서 지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스탄다비아의 현실을 알게 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그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신체 능력이 올라가는 것도 단지 농사를 수월하게 지을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주는 영지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가장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습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영주를 제외한 영지민들은 경일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경일은 이미 영지민들에 정이 들었다.
이제는 그냥 그 사람들이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어휴~ 이거 죽겠네.”
경일의 한숨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깊어졌다.
깊어지는 한숨만큼 손님은 더욱 줄어 갔다.
늘 바쁘게 보내다가 한가해지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한가해질수록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이 들끓었다.
괜히 반짝반짝 빛이 나는 냉장고도 한 번 더 광을 내 보기도 하고, 조금 전에 닦은 매대도 깨끗한 행주로 다시 한번 더 닦았다.
동네 분식에게 실망한 손님 대부분은 다정 분식이 흡수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김만복은 요즘 입이 찢어질 만큼 웃고 다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