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이렇게 개운할 수가!!!!
손님이 다시 돌아온 만큼 이전의 매출을 거의 회복하는 중이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소문이라는 게 한 번 불이 붙으면 가지를 쳐서 더 크게 부풀어 오르거든.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으니 이제는 절대 못 뒤집어. 넌 그냥 음식 재활용을 하는 쓰레기보다 못한 놈으로 낙인이 찍혔어. 대중심리라는 게 원래 이렇게 무서운 법이야. 생각도 못 한 놈 때문에 도대체 얼마나 손해를 본 거야. 지긋지긋하게 재수 없는 새끼. 이번엔 네놈도 방법이 없을 거다. 얼마나 억울할까? 생각만 해도 통쾌해 죽겠다. 지금쯤 깡소주에 애꿎은 머리만 벽에 찧고 있겠지. 큭큭큭큭큭큭, 넌 내가 파놓은 함정에 제대로 빠졌어. 이번엔 절대 못 빠져나올 거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인생이 요즘만 같으면 바랄 것이 없었다.
그는 경일이 오래오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리 망하길 빌었다.
여유가 있었으면 이 상황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그도 마음이 급했다.
손님이 돌아온 건 좋으나, 아직 제대로 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좋은 재료를 쓴 덕에 매출이 올라도 수익이 거의 없었다.
지금 손님들은 동네 분식을 이용한 뒤로 맛에 대한 기준이 올라간 상황이었다.
옛날의 맛으로 돌아가면 마진은 올라갈지 모르지만, 기껏 돌린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돼.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동네 분식이 돌아오기 전의 옛날로 시계를 돌려야 해. 손님에게 음식에 대한 선택권을 아예 없애야 한다. 옛날처럼 배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는 분위기로 몰아넣어야 해. 이런 못 사는 동네에 무슨 맛이 필요해. 싼값에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해야지. 하여간 그놈의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 물을 흐려 놨어. 염병할 놈. 넌 이대로 피를 말리며 얼른 죽어 버려라.”
옛날의 수익이 좋은 다정 분식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동네 분식이 음식 재활용의 이슈에 함몰당해 아예 망해야 했다.
“흥! 내가 누군데. 난 너희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단 말이야. 돈도 없는 너희 같은 놈들에게 음식을 팔아 주는 나를 평생 고맙게 생각해야 해.”
그는 동네 분식이 망하고 나면 이전처럼 동네 사람들을 조련할 자신이 있었다.
옛날의 싼 재료로 서서히 바꿀 생각이었다.
분식은 맛으로 먹기보다 싸고 간단해서 먹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동네 분식 때문에 맛으로 대결하는 집이 되어 버렸지만, 동네 분식만 없어지면 옛날같이 분식점다운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재수 없게 강적을 만나 고생하는 중이지만, 대신 자신의 내공도 깊어지지 않았는가.
이제 어떤 놈이든 도전해 온다면 아주 확실히 형태도 남지 않게 잘근잘근 밟아 줄 자신이 생겼다.
“빨리 망해라. 이 지겨운 새끼야. 그럼 오늘도 게시판에 글을 올려 볼까? 아들이랑 아들 친구들이 잘하고 있나 모르겠네. 아빠가 어렵고 하면 아들이 자발적으로 발 벗고 나서고 하고 그럼 얼마나 좋아.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놈이 돈을 안 주면 아무것도 안 한다니, 쯧쯧쯧. 잘못 키웠나? 아니지. 분명 잘 키운 거지. 제 밥그릇은 확실히 챙기겠다는 건데, 오히려 잘 큰 거지. 역시 내 아들이야.”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꿈보다 해몽이 좋은 김만복이었다.
경일은 여전히 던전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손님이 계속 떨어져 나가 속이 쓰렸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시판에 자신의 입장을 남겨 볼까 생각도 해 봤지만, 왠지 구차해 보였다.
분위기로 봐선 자신이 글을 올리는 순간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거 같았다.
이미 마녀사냥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동네 분식이 음식을 재활용했다는 사실보다는 익명성 뒤에 숨어서 하나의 놀이처럼 즐기고 있었다.
김만복과 그의 아들과 친구들은 열기가 식지 않게 매일 살짝 내용만 바꾸어 계속해서 글을 올리고 있었다.
조용한 동네에서 동네 분식의 사건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상대의 상처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더 자극적인 글을 올려 주목을 받으려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글이 허위든 사실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저 관심만 끌면 그만이었다.
동네 분식이 장사가 잘되는 모습에 배가 아파 글을 올리는 이도 있었다.
이제는 누군가 동네 분식의 편을 들어 글을 올리면 피라냐처럼 몰려들어 그 사람을 물어뜯었다.
그 모습을 보고 경일은 게시판에 아예 신경을 꺼 버렸다.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이렇게 된 거 농사나 열심히 짓자. 수입이 떨어져 아쉽긴 하지만, 그만큼 던전에서 더 노력하면 될 거야.”
꾸준히 신체 능력이 오른 덕에 농경지는 기존보다 두 배 정도 늘어나 있었다.
그중 3분의 1가량에 고구마를 키우고 있었다.
식사 대용으로 충분하고 생육 기간이 짧아 선택한 것이었는데, 의외로 스탄다비아에서 고구마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기뻤다.
스탄다비아에도 고구마와 비슷한 작물은 존재했다.
작물의 이름은 카사바였다.
거의 무맛에 가까운 맛이었다.
영지민들에겐 척박한 땅에서 다른 작물들보다 더 잘 자라서 키우는 작물이었다.
단지 살기 위해 먹는 음식에 가까웠다.
카사바는 지구의 고구마보다도 훨씬 맛이 없었는데, 경일이 보낸 건 던전에 비옥한 땅에서 자란 고구마였다.
당연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아 대부분의 영지민들은 하루 한 끼를 먹었다.
자포리자 성주가 영지민들에게 고구마를 나누어 주자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부터 챙겼다.
경일은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분식점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한참 일을 하는 중에 날이 어두워졌다.
던전의 하늘에 누군가가 일부러 뿌린 듯한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밤이 온 이상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경일은 흙이 묻은 손을 지구에서 가져온 비누로 깨끗이 씻었다.
손의 물기를 닦으려는 순간, 비누란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비누? 그래, 비누면 가능할 거 같은데?”
스탄다비아에서 유일하게 풍부한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블린의 사체였다.
고블린의 가죽은 약해서 방어구로 쓸 수 없었고, 고기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블린도 생명체인 이상 지방을 가지고 있었다.
내장 비만처럼 보이는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에는 많은 기름이 있을 것이다.
경일은 이 점에 착안했다.
비누는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존재했다.
만드는 법도 간단했고, 스탄다비아의 경제뿐만 아니라 영지민들의 위생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사람들이 대소변을 거리에 버릴 정도로 위생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사회였다.
비위생적인 환경은 세균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전염병 발병의 원인이었다.
경일은 자포리자에게 위생에 관한 교육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자포리자는 영지민들에게 꾸준하게 위생에 관해 설명했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의 귀에는 세균이니, 위생에 관한 말은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로 들릴 뿐이었다.
하지만 비누로 씻기 시작하면 그들의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씻고 나서의 개운한 느낌은 절대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위생에 신경 쓰는 이는 귀족뿐이었다.
비누를 그들에게 팔면 스탄다비아의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경일은 비누를 만드는 법과 이용 방법을 적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자포리자는 비누의 값어치를 충분히 알 거라 생각했다.
경일이 보아 온 자포리자 성주는 결코 머리가 나쁜 인물이 아니었기에 세세한 간섭은 하지 않았다.
인벤토리에서 경일이 써 준 메모를 보는 순간, 자포리자는 곧바로 뛰어나갔다.
그의 지시는 무조건 따르고 보는 영주였다.
지치지도 않는지 고블린의 침공은 끝이 없었다.
전투가 끝나면 고블린의 시체는 늘 처치 곤란한 지경이었다.
다른 몬스터는 가죽이나, 피, 뼈 등을 팔아 수입을 올릴 수 있었지만, 고블린은 민폐 그 자체였다.
그런 고블린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자포리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오늘도 고블린의 침공이 있었고, 성벽 위와 아래에는 고블린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자포리자 영주가 나타나자 휘하 기사가 일제히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대충 인사에 화답하고 고블린의 사체를 치우는 병사에게 다가갔다.
“충!”
병사가 주먹을 쥔 손으로 가슴을 두 번 가볍게 때리며 경례했다.
자포리자는 병사가 막 치우려는 고블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블린의 배를 갈라 보아라.”
영주의 말을 들은 병사가 즉시 단검으로 고블린의 배를 갈랐다.
경일이 준 철로 만든 단검이라 가벼운 힘으로도 고블린의 배가 쉽게 갈라졌다.
가죽의 밑에 붙은 하얀 지방이 보였다.
“지금부터 고블린의 배를 갈라 지방만 따로 분리한다. 그러고 남은 시체는 모두 소각하도록.”
큰 소리로 고블린의 시체를 치우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병사들에서 작은 동요가 일어났다.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블린을 치우는 일도 힘든데, 일이 하나 더 늘어나니 좋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배를 갈라 지방을 따로 모으려면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 자체의 악취도 심한데, 배를 가르면 더 심한 악취를 맡으며 일을 해야만 했다.
자포리자는 병사들의 불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가장 많은 지방을 모아 온 병사 다섯 명에게 각각 고구마 한 포대를 주겠다. 모두 열심히 하도록.”
“와아아아아아아!”
고구마란 이야기에 병사들의 함성이 일어났다.
그들에게 고구마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자포리자 성주는 경일이 보낸 메모대로 잿물을 만들어 고블린의 지방을 넣어 저으며 끓였다.
고블린의 지방과 잿물이 섞인 물이 식어 가면서 굳어졌다.
적당한 크기로 자르자 하나의 비누가 완성되었다.
“선인은 이번에 또 어떤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까?”
비누가 완성되자 기대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경일이 보낸 메모지에 적혀 있는 대로 손에 물을 묻혀 비누를 비볐다.
그러자 매끄러운 감촉과 함께 거품이 일었다.
“미끌미끌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느낌은 참 좋구나!”
손에 묻은 비누를 헹구고 나자 처음 느껴 보는 감촉이 손에 남았다.
믿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손이 얼마나 깨끗하고 개운한지, 오늘 아침에도 샤워를 했건만 비누로 씻은 손만 빼고는 온몸이 더러운 느낌이었다.
자포리자는 아예 옷을 벗어 던지고, 다시 샤워를 했다.
손으로 문지른 비누에 고운 거품이 일어났다.
거품을 온몸에 바르고 물을 끼얹으니 새까만 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예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비누보다 동물성 기름으로 만든 비누가 거품이 풍부하고, 세정력이 더 뛰어났다.
물로만 씻던 사람이 최고급 비누로 몸을 씻었으니 그 기분이 이해될 정도였다.
“역시 선인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구나.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이런 엄청난 물건을 만드시다니! 이것의 이름이 비누라고 했던가? 그분이 철을 주어 우리의 목숨을 구해 주시고, 손수 지은 작물로 굶어 죽는 우리 영지민을 살려 주시더니, 이제는 우리의 앞길까지 열어 주시는구나!”
자포리자는 믿을 수 있는 몇 명을 뽑아 내성의 깊숙한 곳에 비누 공장을 만들었다.
만드는 법이 간단한 만큼 절대 제조법을 외부로 노출하면 안 됐다.
작업이 쉬운 만큼 많은 인원은 필요치 않았다.
자포리자가 기쁨에 겨워하자 경일의 신체 능력이 올랐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