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45화 (45/300)

[45화] 힘을 주는 사람들 (1)

[힘이 3 올랐습니다.]

[민첩히 3 올랐습니다.]

[체력이 3 올랐습니다.]

[마나가 3 올랐습니다.]

[스킬 스탄다비아의 현황 관찰 레벨이 올라 기존의 시간보다 30분 더 공유할 수 있어집니다.]

경일이 한창 농사를 짓고 있을 때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태창>

레벨 7

힘 (53/65)

민첩 (60/67)

체력 (45/65)

마나 (60/60)

[스킬]

식물 찾기 (Lv. 2)

스탄다비아의 현황 관찰(Lv. 2)

인벤토리

[특성]

스탄다비아와의 동조가 이루어짐

오래간만에 열어 본 상태창에 레벨은 7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늬만 헌터로 살아갈 거라 생각했는데, 레벨이 잘도 올라가는구나.”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레벨이 오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더 많은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분식점 일도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간단한 아이디어였는데, 이렇게 반응이 빠르다니. 기분이 너무 좋은걸.”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드디어 분식점 매출이 최저점을 찍었다.

이미 퍼져 나갈 만큼 소문이 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문을 닫고 던전에서 농사일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는 절대 못 물러나지.”

경일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고아였던 그가 몬스터의 침공으로 거의 망가진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건 모두 깡과 악 때문이었다.

상대는 자신이 분식점을 닫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계속 장사하는 모습만 봐도 속이 쓰릴 게 분명했다.

“어서오세요.”

동네 분식에 손님이 들어왔다.

아무리 소문이 안 좋아도 지금 같이 찾아 주는 단골이 존재했다.

“사장님, 순두부 하나랑 소주도 한 병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손님의 주문에 경일은 빠르게 순두부를 만들어 내었다.

“역시 너무 맛있습니다.”

소주 한잔을 먹고서 순두부찌개를 떠먹은 손님은 흔쾌해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 맛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건 행복입니다. 매일 줄 서서 먹어야 했는데, 이제 먹고 싶은 시간에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이거 사장님한테는 죄송한 얘기지만 저는 좋네요. 이렇게 얼큰한 국물에 편하게 소주도 한잔할 수 있고. 손님이 많을 때는 엄두도 못 냈는데, 정말 순두부에 소주 한잔하고 싶었습니다. 사장님, 금방 이전처럼 손님이 늘어날 겁니다. 이렇게 깨끗한 식당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는 것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여기 음식은 마약과 같아서 안 먹고는 못 배깁니다. 이게 하루만 안 먹어도 계속 생각나거든요.”

“믿고 찾아와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단골의 응원에 경일의 코끝이 찡해졌다.

“아저씨, 아저씨, 떡볶이랑 튀김 주세요.”

“나는 어묵 꼬치랑 떡볶이요.”

“난 뭘 먹지?”

“다 먹으면 되지, 바보야.”

“돈이 없는데.”

“아하, 넌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구나. 여기는 1,000원짜리 세트 메뉴가 있어서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어.”

“진짜?”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

매대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꼬마 신사분들 왔어요? 아저씨가 얼른 담아 줄게.”

경일은 빠르게 아이들이 원하는 음식을 앞 접시에 담았다.

“우와! 맛있다. 지금까지 먹어 본 떡볶이 중에 제일 맛있어!”

새로 이사 온 아이가 허겁지겁 떡볶이를 먹었다.

“체할라, 천천히 먹어. 어묵 국물도 마시고.”

“네!”

경일의 말에 아이가 어묵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국물도 맛있어”

놀란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거봐,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잖아.”

아이를 데리고 온 선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경일은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선호야, 엄마가 여기서 떡볶이 먹으면 싫어하지 않아?”

혹시 아이들이 부모님 몰래 사 먹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자신 때문에 아이들이 혼이 나는 건 싫었다.

“아니요. 엄마가 오늘 여기서 떡볶이 사 먹으라고 아침에 용돈도 줬어요.”

“나도요!”

“우리 엄마도 여기서 먹으라고 했어요.”

“그래, 많이 먹어. 오늘은 아저씨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돈 안 받을 테니, 먹고 싶은 만큼 먹어.”

“진짜요?”

“그럼~”

“우와, 신난다. 아저씨, 그럼 야채튀김 해 주세요.”

“나는 고구마튀김.”

“나는 고추튀김요”

“그래, 아저씨가 금방 만들어 줄게.”

튀김을 만드는 두 손이 살짝 떨려 왔다.

가슴이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찼다.

끝까지 자신을 믿어 주는 몇몇 소중한 단골 때문에라도 더더욱 분식점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이 모습을 멀리서 숨어 훔쳐보는 이가 있었다.

김만복이었다.

“저 바퀴벌레 같은 새끼. 고래 심줄보다 더 질긴 새끼. 으아아아아, 약 올라. 약 올라 미치겠다. 그만큼 했으면 문 닫고 꺼져, 좀! 이 새끼야, 제발 좀 꺼지라고.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욕을 퍼붓고 있는데, 넌 심장이 돌로 됐냐? 아니면 철면피냐? 내가 너희 얼굴 전부 다 봤다. 동네 분식 망하고 나면 우리 식당에서 밥 못 먹을 줄 알아라. 오늘부터 더 열심히 게시판에 글을 올려야겠어. 두고 보자.”

일그러진 얼굴로 동네 분식뿐만 아니라 손님에게까지 저주를 퍼붓는 김만복이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갔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동네 분식은 몇몇 단골들의 성원에 꾸준히 장사를 이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예고 없이 손님이 확 늘어났다.

어제와 너무 다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손님이 한순간에 이렇게 늘어날 수도 있는 건가?”

오래간만에 밀려드는 주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음식을 만들었다.

신체 능력이 향상된 이후로 그는 더 정교하게 재료를 썰었고, 음식이 가장 맛있게 익은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레벨이 오를수록 음식은 더욱 맛있어졌다.

“역시 맛있어. 그동안 이 맛이 얼마나 생각나던지. 오래간만에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네. 사장님, 여기 공깃밥 하나 더 주세요.”

“네.”

“더 맛있어졌어. 이걸 한동안 못 먹고 있었다니. 사장님, 김밥도 한 줄 주세요. 어묵 국물 많이요.”

“네, 손님.”

“사장님, 김치찌개 두 개요.”

“네,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어휴~ 더부룩했던 속이 다 풀리네. 분명 자극적인 맛인데, 먹고 나면 속도 더 편해지고 힘도 나는 게 희한하단 말이야.”

“그렇지? 나도 한동안 이 집 음식을 안 먹었더니 몸이 더 허해진 거 같더라고.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구나!”

오래간만에 온 손님들은 크게 만족해하며 식사를 했다.

돼지고기를 갈아 넣어 만든 순두부찌개와 던전의 배추로 만든 김치찌개의 주문이 특히 많았다.

날씨가 조금 쌀쌀한 탓에 얼큰한 국물이 잘 나갔다.

“전 사장님이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굳게 믿고 있었어요. 많이 파세요.”

몇몇 손님들은 경일에게 믿음과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손님이 많아진 이유를 궁금해하며 바쁜 하루를 보냈다.

장사를 마친 뒤,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게시판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 저는 행복 보육원 수녀입니다.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동네 분식에 대한 소문을 너무 늦게 알았네요. 여기서 떡볶이와 어묵탕 등의 음식을 재활용한다는 글이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동네 분식과 전혀 상관없는 제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고 말씀하시겠지요. 제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동네 분식의 사장님은 오픈 한 첫날부터 팔고 남은 떡볶이와 어묵탕은 늘 보육원에 가져다주셨습니다.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에 그분은 장사하는 날이면 지금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 주셨습니다. 그분이 가져온 떡볶이와 어묵탕의 양은 늘 일정했습니다. 장사하시는 분이니 어떤 날은 음식이 많이 팔린 날도 있을 텐데도 아이들을 위해 늘 같은 양을 기부하셨습니다. 남은 음식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사장님이 아이들을 위해 새로 만든 음식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저희 같이 영세한 보육원은 세끼 밥을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식은 꿈도 못 꾸는 아이들을 보고 늘 마음이 아팠는데,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와 어묵탕, 그리고 튀김까지 매일 손수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분이 나타난 이후로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렇게 악의적인 글을 올려 천사 같은 그분의 분식점을 망하게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녀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한마디 하겠습니다. 이런 헛소문을 퍼뜨려 동네 분식을 망하게 하려는 사람은 분명 천벌을 받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 사장님. 제가 너무 늦게 이 일을 알아 송구스럽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 오해를 풀어 드려야 했는데,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그동안 장사가 힘드셨다고 들었는데,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아이들 간식을 가져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 보육원은 경일이 사는 곳 근처에 있는 보육원이었다.

그가 몬스터 부산물 처리 공장에 다녔을 때 퇴근길에 늘 거쳐 가는 곳이었다.

분식점을 연 첫날 떡볶이와 어묵탕이 많이 남자, 행복 보육원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해 준 떡볶이는 늘 기억이 났다.

특히 마음이 힘들 때는 더욱 생각이 나곤 했다.

그가 보육원에 있을 때 가장 먹고 싶던 게 떡볶이였다.

하지만 고아가 된 이후로 떡볶이를 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로 인해 전 세계가 힘들 때라 더더욱 먹을 수 없었다.

경일에게 떡볶이는 부모님을 떠올리는 추억의 음식이자 귀한 음식이었다.

첫날 의욕에 가득 차 분식점을 열었지만, 장사는 신통치 못했다.

그날 그의 마음을 달래 준 것은 떡볶이와 어묵탕의 기부였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힘든 마음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도리어 장사가 안돼서 떡볶이랑 어묵을 가져다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만복은 생각지도 못한 이해인 수녀의 글을 보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게 기름을 바르고 달걀을 튀겨도 익을 거 같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동네 분식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 그는 더욱 애가 탔다.

“으아아아아아! 이년은 뭐지? 왜 다된 밥에 재를 뿌려! 지금껏 깨진 돈이 얼만데. 내가 이대로 물러설 거 같아? 어디 누가 죽어 나갈지 끝까지 가 보자고.”

김만복은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경일이 버틸수록 그의 손해는 커져 갔다.

분식점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워낙 적은 터라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헌터들이 모여 사는 비싼 동네에 살다 보니, 생활비가 웬만한 대기업 직원의 월급만큼 깨졌다.

지금까지 해 온 생활이 있는데, 생활비를 줄이려 노력해도 기존의 생활비와 몇 푼 차이 나지도 않았다.

좋은 동네에 사는 만큼 기본적으로 나가야 하는 돈이 많았다.

관리비도 물론이거니와 주변 물가도 비쌌다.

잘사는 사람일수록 허례허식이 강했다.

남들의 시선에 늘 신경 썼고, 체면이 깎이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만약 약한 모습을 보이면 뒤에서 자신들을 비웃을 건 빤했다.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을 씹어 가며 자신의 격을 높이려 하는 이들이 있었다.

헌터로 졸부가 된 이가 많은 동네라 그런지, 특히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

김만복은 그동안 돈을 잘 벌긴 했지만, 김 주임에게 제법 큰돈을 뜯겼고, 몇 달 동안 거의 수익이 없던 터라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식비 정도를 줄였지만 그건 얼마 되지도 않았다.

철없는 아들의 반찬 투정만 늘었을 뿐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김만복은 곧바로 댓글을 달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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