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46화 (46/300)

[46화] 힘을 주는 사람들 (2)

└ 내가 분명히 반찬 재활용하는 것을 봤습니다. 위에 글 쓴 사람, 내가 보기에는 동네 분식 사장이거나 시켜서 쓴 것이 틀림없어요.

└ 나도 재활용하는 거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우와, 이제 사람까지 사서 언론 플레이를 하네. 대단하다.

└ 나도 봤어요. 떡볶이랑 어묵탕 재활용하던 거. 아침에 오픈할 때 지나가다가 봤는데, 어제 팔던 거 그대로 새로 만든 거랑 섞는 것 봤어요.

└ 남은 찌개 버리지 않고 다른 통에 모으는 것도 봤어요. 사실 찌개류는 색깔이 진해서 다른 사람이 남긴 거 섞어도 전혀 티가 안 남.

└ 우웩!!!

└ 이런 사람은 아예 장사가 아니라 동네에서 쫓아 보내야 해. 어떻게 이런 사기까지 치냐?

└ 대애박. 난 절대 안 먹어야지. 다른 사람들 침이 다 섞였을 텐데, 절대 안 먹어야지.

└ 나 같으면 그냥 장사 접겠다. 쪽팔리지도 않나? 남자 새끼가 말이야.

└ 휴~ 그럴 사람으로 안 보였는데 안타깝네요. 이제 마음을 비워야겠어요. 혹시나 하는 한 가닥 기대가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 좋은 식당이 생겨 좋았었는데 아쉽네요.

└ 나도 아쉬움.

└ 미 투

└ 우리 아들이 그 집 떡볶이 정말 좋아하거든요. 어휴~ 요즘 떡볶이 안 사 준다고 매일 징징대는 거 말리는 것도 힘들어요. 정말 화가 나네요. 어떻게 얘들이 먹는 음식을 가지고 이럴 수가 있어요.

김만복의 연락을 받은 아들과 그의 친구들이 빠르게 그를 지원하고 나섰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김만복을 동조하는 댓글에 분위기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의 의도대로 자신에게 호응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여론을 자신의 쪽으로 다시 돌려 안심하고 있는 순간, 누군가의 댓글이 달렸다.

└ 이거 수상한데요. 전 동네 분식 단골입니다. 분식점 열자마자 가는 경우가 많아서 사장님이 가게 청소하는 거라 떡볶이랑 어묵탕 만드는 거 갈 때마다 보거든요. 매일 새로 만드는데 재활용이라니 말이 안 돼요. 더군다나 부정적인 댓글 다시는 분들 우리 동네 사람 맞아요? 지금까지 올리신 글을 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전부 동네 분식 음식 재활용 글만 계속 쓰시는데. 이거 수상한 냄새가 많이 나요. 혹시 다정 분식 사장님 아닌가요? 내가 이전에 다정 분식 사장님이 동네 분식 사장님한테 저런 식으로 음식 재활용하라고 말하는 거 들은 적 있거든요. 그때 내가 옆에 있는 걸 모르고 이야기하다가 나를 보고 놀란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거든요. 그리고 동네 분식이 찌개를 재활용한다고요? 이 글 쓰신 분 먹어 보기는 했어요? 얼마나 맛있는데. 손님 중에 지금까지 음식 남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다들 없어서 못 먹지. 한 번이라도 동네 분식에서 먹어 본 사람은 알 거예요. 그 집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이건 또 뭐야?”

김만복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동네 분식 옹호 글에 짜증이 확 났다.

관자놀이의 핏줄이 튀어나오며 씰룩거렸다.

겨우 편안해진 그의 얼굴이 다시금 험상궂게 변해 갔다.

“오늘 무슨 날이야? 갑자기 이런 것들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혹시 그 새끼도 나처럼 사람을 산 건가? 이미 늦었어. 대응을 하려면 처음부터 해야지. 멍청한 새끼.”

김만복은 경일을 비웃으며 독수리 타법으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겼다.

└ 무슨 소리하는 겁니까? 내가 분명히 봤다니까요. 사람을 뭘로 보고, 지금 거짓말쟁이로 몰아갑니까? 당신이야말로 이 동네 사람 아니죠? 분명 동네 분식 사장에게 몇 푼 받고 이러는 거 같은데, 이러면 큰일 납니다. 다정 분식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고소당해요.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하고 말이야. 좋은 말할 때 얼른 댓글 지우세요.

김만복은 고소 운운하면서 글쓴이를 압박해 나갔다.

하지만 상대는 그의 압박에 눌릴 생각이 전혀 없는지 곧바로 댓글이 달렸다.

└ 어머, 그쪽이야말로 수상하네요. 다정 분식 관계자세요? 왜 이렇게 발끈하시죠? 그리고 전 미자 미용실 마스코트 이미순이에요. 내가 웬만한 동네 분들은 모두 알고 있거든요. 내 신분을 이야기했으니 그쪽도 이야기해 보세요. 동네 사람 맞다면 한 번 이야기해 보세요.

└ 맞아, 정말 이상해. 나는 요 밑 사거리 슈퍼집 사장이에요. 동네 분식 사장님이 오픈 때부터 우리 집에서 매일매일 라면을 사가거든요. 내가 한 번에 사놓고 쓰라고 했더니, 조금이라도 유통기간이 길게 남은 걸 쓰고 싶다고 매일 사러 오는 사람인데. 그 덕에 내가 잘생긴 사장님 매일 봐서 좋긴 하지만. 이런, 내 사심이 살짝 들어갔네. 호호호, 어쨌든 그런 사람이 음식을 재활용을 한다고요? 말이 안 되잖아요. 나도 웬만한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아니까 누군지 한번 이야기해 봐요.

└ 슈퍼집 사장님. 지금 슈퍼집 매출 떨어져서 동네 분식 편들고 있죠? 동네 분식 이용하는 손님이 줄어드니까 덩달아 슈퍼 집 매출이 떨어진다고 이렇게 편들고 하면 안 되죠.

└ 어머어머,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어휴, 팔목부터 어깨까지 온 근육이 다 아프네.”

김만복은 잘 치지도 못하는 키보드를 필사적으로 두들겨 댔다.

상대 글을 반박하면서 분위기를 자신의 쪽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 난 동네 분식 단골인 수한이 아빠예요. 한동안 동네 분식 손님이 없어서 의아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네요. 이거 진즉 알았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건데. 분명 말하지만, 동네 분식 사장님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 동네 아이들에게 공짜로 주다시피 떡볶이랑 어묵을 주시는 분이 뭐가 아쉬워서 음식 재활용을 합니까? 제값 받고 팔면 더 많이 남는데. 이거 분명히 말하지만, 모함입니다.

└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우리 딸도 천원 가지고 가서 배불리 먹고 오거든요. 돈 벌려고 했으면 아이들에게 그렇게 잘해 줄 이유가 없지 싶어요.

└ 우리 아들은 어제도 가서 먹고 왔어요. 게시판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난 애초에 안 믿었어요. 그리고 그 집 음식 먹고 우리 아들 피부가 더 좋아졌다니까요.

└ 아~ 손님이 빠져서 편하게 반주를 할 수 있었는데, 나의 즐거움이 사라져 가는구나. 뭐, 어쩔 수 없지.

└ 우리 떡볶이 아저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욧. 떡볶이 얼마나 맛있는데.

└ 정의는 승리한다. 악당은 물러가라!

└ 정의? 푸하하하하하하! 어디 초딩인지 귀엽다, 귀여워.

└ 내가 누군지 밝혔으니 그쪽도 누군지 말해 보세요. 엄한 슈퍼 사장님한테 이상한 말 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으니 못 밝히는 거잖아요.

김만복은 워드를 치려는 손을 순간 멈췄다.

이미순?

그녀는 자신도 아는 아가씨였다.

한때 단골이었고, 자신도 오다가다 많이 본 사람이다.

생각도 못 한 수녀가 나타나 반전되려는 분위기를 겨우 진정시켰는데.

그녀는 만만치가 않았다.

자신의 정체까지 짐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경일에게 음식 재활용하라고 했던 말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익명 게시판에 자신의 신분까지 밝히며 글을 쓰자, 많은 사람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등 뒤가 축축하게 젖어 왔다.

지금 있는 공간이 비틀어지면서 자신의 몸 또한 뭉크의 절규와 같은 모습으로 휘어지는 느낌이었다.

└ 이것 봐, 내가 신분을 밝히니까 아무 말도 못 하네. 이거 분명히 동네 분식을 일부러 모함하는 사람들이 맞네. 가만히 보면 아이디는 다 다른데, 글이 비슷한 거 봐서는 몇 사람이 돌아가면서 쓰는 거 같은데. 이봐요. 내가 누군지 얘기했으니 얼른 그쪽도 이야기해 봐요.

김만복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돌파해야 했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지금까지 했던 공작이 다 날아가게 생겼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다정 분식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애써 잡은 손님들이 다시 돌아설 건 빤했다.

내친걸음이었다.

이미 뒤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발만 뒤로 삐끗거리는 순간, 떨어지고 마는 절벽에 서 있었다.

이제는 물러날 수가 없었다.

└ 아니, 누가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까? 지금 거짓말은 그쪽이 하고 있잖아요. 그쪽이야말로 다정 분식이 음식 재활용을 한다는 증거 있어요? 딱 보니 동네 분식 사장한테 몇 푼 받아 이 짓 하는 거 같은데.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

└ 흥! 거짓말이라니요. 증거라고 말했어요? 증거 있으면 어쩔 건데요?

김만복은 이미순이 세게 나오자 순간 당황했으나, 곧바로 댓글을 달았다.

└ 증거가 있다고요? 그럼 봅시다. 자신 있으면 한 번 올려 봐요.

김만복은 기죽지 않고 소리쳤다.

그는 이미순이 지기 싫어 우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순이 자신의 가게에 오지 않은 지가 몇 달이 넘었다.

그런 그녀에게 증거가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 지금 글 쓰시는 분, 대충 누군지 느낌이 오는데. 증거를 올려도 후회하지 않겠어요? 그냥 여기서 사과하고 끝내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 내가 무슨 사과를 해. 내 눈으로 본 것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당신이야말로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요. 더 강하게 나오면 내가 넘어갈 거라 생각했어? 난 그런 말도 안 되는 블러핑에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산 인생이 얼만데. 그쪽이야말로 다정 분식에 사과하라고.

다다다다닥!

김만복은 독수리 타법으로 거칠게 키보드를 쳤다.

자판을 부슬 듯이 치는 그의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고, 입가에 하얗게 튼 자국이 보였다.

그에게서 약간의 여유도 느껴지지 않았다.

└ 흥! 난 분명히 경고했어요. 올릴 생각이 없었는데, 그쪽이 올리라고 해서 올리는 거예요. 저번에 음식 재활용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했거든요.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밥 먹으러 가서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어요.

이미순은 원래 성격답게 게시판에서도 수다를 떨었다.

└ 남자 손님 두 명이 어묵탕에 소주를 한잔하셨는데, 국물이 식자 데워 달라고 했거든요. 다정 분식 사장님이 손님이 먹던 어묵탕을 들고 가더니, 기존의 어묵탕 육수 통에 그걸 부어 버리더라고요. 그러고는 다시 국물을 떠서 가져다주는 거예요. 내가 국밥을 토렴하는 건 봤지만, 세상에 먹던 어묵탕을 토렴하는 건 처음 봤잖아요. 입에 물고 빨던 숟가락을 넣다 뺏다 한 국물을 말이죠.

└ 에이, 설마?

└ 이거 안 믿기는데. 글 쓰신 분 너무 나간 거 아니에요? 반찬 재활용은 들어봤어도 먹던 국물을 멀쩡한 국물에 토렴한다는 건 들어 본 적도 없는데.

└ 진짜면 바로 신고해야죠.

└ 못 믿겠는걸.

└ 우리 미순 씨는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그 미용실 단골인데. 말이 많아서 그렇지, 사람이 얼마나 착한데요. 남을 해코지하고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 맞아요. 나도 그 미용실 다녀요. 얼마나 싹싹하고 착한데요. 언니 도와서 궂은일도 웃으면서 하는 사람입니다. 이 동네 여자들은 전부 알걸요.

└ 그 언니 되게 착해요. 그건 확실해요.

└ 그럼 진짜란 이야기인가? 동네 분식 음식 재활용 이야기 듣고 다정 분식으로 갔는데. 요즘 음식 맛도 괜찮아지고 해서 믿었는데. 이게 사실이면 완전 배신인데.

└그러게요. 내가 그 사장님 조금 아는데, 얼마나 욕심이 많은데요. 떨어진 반찬 좀 더 달라고 하면 인상 쓰던 사람인데. 음식 맛이 좋아진 거 보고 정신 차렸나 싶었더니 아니었군요. 같은 가격인데 좋은 재료가 들어가 있어 기대했는데… 이런 식으로 음식 코스트를 맞추다니. 사장님 실망이에요. 차라리 음식값을 더 올리지.

└ 그래, 좀 이상하긴 했어. 그 집이 손님에게 잘하고 하는 집이 아니었어. 먹을 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었지. 최근에 반찬도 많아지고 맛있어지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건이 터지네. 에이! 그럼 이때까지 남들 먹던 걸 먹었다는 거잖아. 아 놔, 나 비위 엄청 약한데.

이미순의 댓글에 여론이 들끓었다.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믿어 주는 걸 보면 그녀의 평판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