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두 개의 눈물
김만복은 생각도 못 한 이미순의 글에 시선이 박제되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제기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동네 분식 음식 재활용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는데, 왜 내가 목표가 되어 있지? 도대체 이 여자 정체가 뭐야? 왜 다들 이 여자의 말을 믿어 주는 거지? 이런 게 가능한 거야? 내가 아들이랑 아들 친구들까지 며칠을 작업해서 만든 여론인데. 이 여자 한마디에 다정 분식이 음식 재활용하는 식당으로 의심을 받고 있잖아.”
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다.
의자의 등받이에 팔을 걸쳐 힘없이 미끄러지는 몸을 겨우 지탱했다.
김만복의 반응이 이렇게 심각한 건 그녀가 쓴 글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묵탕 국물을 데워 달라고 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기존의 뜨거운 육수 통에 부어서 데워 주었다.
따로 냄비에 부어 데우는 것도 귀찮기도 했고, 설거지 거리가 나오는 것도 싫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이 던진 칼이 돌아 자신을 겨누자, 김만복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을 자신이 꾸민 것인 만큼, 이 일의 결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자신이었다.
이 칼끝을 다시 돌리지 못한다면 다정 분식이 문을 닫을 수도 있을 만큼 큰 위기였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내가 음식 재활용을 한 것이 진실이 되어 버린다. 뭐든지 해야 해!”
김만복은 필생의 의지로 다시 한번 워드들 쳤다.
└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증거도 없이 혼자서 봤다고 하면 누가 믿어 줄 거 같아? 다정 분식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건 큰 죄야. 이 글을 다정 분식 사장님이 보시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당장 고소당하기 싫으면 사과해. 사과하라고.
└ 흥! 이미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그리고 계속 증거 이야기하시는데, 그쪽이야말로 동네 분식에서 음식 재활용했다는 증거 있으세요?
└ 아니,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하잖아. 나 말고도 동네 분식 음식 재활용하는 걸 본 사람이 몇 명인데.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증거도 없이 혼자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쓰고 있잖아. 지금까지 쓴 글 모두 지우고 사과하라고. 미용실 시다나 하는 년이 어디서 멀쩡한 식당에 누명을 씌워. 이딴 짓 하고 돌아다니는 거 네 부모도 알아, 아냐고? 못 배워 처먹은 거 티내는 것도 아니고. 나 원 참, 어디서 이런 거지 같은 게 기어 나와서는.
김만복은 잔뜩 흥분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갖 악담을 퍼부었다.
└ 지금 말 다했어요?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까지 욕한 거죠? 하~ 도저히 못 참겠네. 이건 웬만하면 안 올리려고 했는데. 이건 끝까지 사실을 인정 안 하고 오히려 나에게 욕까지 한 그쪽 잘못이에요. 두 눈 뜨고 잘 보세요.
이미순은 게시판에 짧은 동영상을 하나 올렸다.
그 동영상에는 김만복이 손님의 어묵탕을 들고 육수 통에 다시 붓는 장면이 또렷이 찍혀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육수를 다시 그릇에 옮겨 담아 손님에게 가져다주었다.
└ 봤죠? 증거. 내가 이 사건 이후로 다정 분식에 발을 끊은 거예요. 난 오늘도 동네 분식에서 맛있는 순두부에 김밥을 먹었어요. 반찬까지 얼마나 맛있던지. 이건 완전히 천상의 맛이야. 먹고 있는데도 먹고 싶어지는 음식인데, 재활용은 무슨. 애초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리고 수녀님 글까지 거짓말로 몰지 마세요. 그 수녀님은 일생을 바쳐 봉사하는 분인데, 어디서 그런 망발을 하는 거예요? 최소한 도와 드리지는 못해도 당연히 존중받아야 될 분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죠. 그런 분을 공경해야 하는 건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도리 아닌가요? 그리고 동네 분식 음식 안 보셨어요? 그 가격에 돼지고기까지 듬뿍 들어간 순두부며 김치찌개 본 적 있으세요? 그렇게 풍성하게 고기를 넣은 집이 돈 몇 푼 아끼려고 재활용한다는 게 말이 돼요? 오픈 주방이라 깨끗하고, 동네 아이들에게 편의점도 아닌데 떡볶이랑 어묵, 튀김을 1+1을로 주는 사장님이에요. 그런 분이 뭐가 아쉬워서 음식 재활용을 해요. 수녀님 말씀대로 매일 음식을 싸서 얘들에게 주시는 고마운 분인데. 이런 각박한 세상에 그런 좋은 분들이 있으면 감사해야지. 지켜 주지는 못할망정 모함이나 하고. 얘들도 보는 게시판에서 어른이 돼서 이게 뭐 하는 거예요. 내가 요즘 저녁마다 술을 먹는 바람에 게시판을 못 본 새 이런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네요. 어머! 술 때문이 아니라 미용 자격증 공부한다고 바빴던 거예요.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어쨌든 동네 분식에 손님이 적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우리 동네에 이런 사장님이 들어온 걸 축복이라고 생각해야지. 사람들이 정말 잔인하네요. 여기서 동네 분식 사장님한테 한 번이라도 욕한 사람들은 그 집에서 음식 먹을 자격이 없어요. 내가 더 자주 가서 먹을 거니까 욕한 사람들은 오지 마세요.
이미순은 게시판에서 일장 연설을 했다.
└ 와~ 우리 미순 양 멋있네.
└ 미순 양을 국회로 보냅시다.
└ 언니 너무 멋있어요. 귀여운 건 알고 있었는데, 이런 카리스마까지. 조만간 머리하러 갈게요.
└ 미순이 말 너무 잘하네. 오늘 뽀글 파마 너무 잘됐더라. 다음에도 잘해죠.
└ 다정 분식은 이제 안 가야겠다. 살다 살다 저렇게 더러운 식당도 있다니.
└ 손님 많아지기 전에 동네 분식 가서 많이 먹어 놔야지.
└ 어라! 동네 분식 음식 재활용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이네. 다들 어딜 갔지?
└ 증거도 있으니 구청에 신고합시다. 저런 식당은 망해야 해.
└ 이제는 절대 안 가겠음.
└ 이 동네 들어와서 돈 많이 벌었을 건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 큭큭큭, 동네 분식 모함하다 오히려 다정 분식이 끝났네. 어휴, 웃겨라. 그 집 사장님, 안 그래도 인상이 안 좋은데, 지금쯤 열폭하고 있겠지?
└ 정의는 승리한다. 썬더 스톰.
└ 아~ 이 귀여운 초딩은 뉘 집 자식이야. 한 번만 안아 보고 싶다.
└ 동네 분식 사장님 난 한 번도 의심 안 했어요. 그러니 난 먹을 자격이 있어요.
└ 나도.
└ 당신 동네 분식 욕하는 거 봤는데.
└ 헉, 죄송합니다.
└ 정의는 승리한다. 썬더 스톰.
└ 정의는 승리한다.
└ 정의는 승리한다.
김만복은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덜덜 떨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몸이 유리처럼 깨져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다.
자신이 날린 칼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심장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심장에 박힌 칼이 아파 미치겠는데 뺄 수도 없다.
피가 흘러 온몸을 적시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계속 증거를 요구했던 자신이 밉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무리 현실을 부정해 보려고 해도 현실이 맞다는 양 다정 분식을 성토하는 글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아, 안 돼. 이대로 끝이 나면 안 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해. 안 그럼 난 끝장이라고.’
그의 마음과 달리 이 상황을 돌릴 방법이 없었다.
이해인 수녀의 말과 동네 토박인 이미순의 말은 자신의 말보다 훨씬 큰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미순이 올린 동영상은 빼도 박도 못 할 증거였다.
지금 당장 무슨 글이라도 써야 했다.
자신이 입을 닫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동네 분식에 씌운 올가미가 벗겨지고, 그 올가미가 자신의 목을 쪼아 올 것이었다.
컥컥컥!
숨이 막혀 왔다.
너무나 고통스러운데 목에 씐 올가미는 자신의 힘으로 벗겨 낼 수가 없었다.
올가미를 벗겨 보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목에 상처만 늘어나고 오히려 더 조여 왔다.
결국, 김만복은 아무런 글도 올리지 못했다.
그 순간, 진짜로 하늘이 무너졌다.
쿵!
그는 자판에 손을 올린 채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이 눈물에 담긴 복잡한 감정은 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세 그대로 김만복은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경일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고였다.
차가웠던 마음에 따뜻한 훈풍이 불어왔다.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아 그동안 서운한 마음이 많았었다.
하지만 서운했던 감정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환희가 찾아들었다.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맛을 이웃과 나누면서 서로 어울리고 살아가고 싶은 자신의 본심이 통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자 너무 기뻤다.
자신이 한 일보다 너무 큰 선물을 받은 거 같아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믿고 응원해 준 사람들이 새롭게 생긴 가족처럼 느껴졌다.
가족을 위해서는 뭐든지 해 주고 싶었다.
일상이 돌아왔다.
분식점이 다시 손님으로 넘쳤다.
보육원의 일이 알려지면서 경일을 칭찬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민망하고 쑥스러웠다.
빨개지려는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김만복의 다정 분식은 결국 문을 닫았다.
그날만 했던 실수였다고 아무리 하소연을 해 본들 돌아서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동네 분식을 모함한 괘씸죄까지 추가돼서 다정 분식은 모래성처럼 허물어 내렸다.
스탄다비아도 꾸준히 발전하고 더없이 평온한 일상이었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뒤라 그런지, 이런 평화로운 나날이 더 소중히 다가왔다.
동네 아이들이 정의가 승리한다, 라고 외치는 게 유행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과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걱정 없이 흘러가는 일상이 행복했다.
어린 나이로 고아가 된 경일이 맞이한 세상은 온통 두렵기만 했다.
늘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했고, 약하다는 이유로 모진 폭력을 견뎌야 할 때도 많았다.
마음의 상처는 점점 커졌고, 결국에는 입을 닫아 버렸다.
실어증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신경 써 주지 않았다.
몬스터로 무너진 사회에는 그와 같은 고아는 넘쳐났다.
당장 인류의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 고아 한 명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외로웠다.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고, 사회를 겉도는 느낌이었다.
스스로 두려움이란 껍데기를 깨고 나오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말을 잃었을 때, 그는 늘 행복이 넘치는 작은 식당의 주인을 꿈꿨다.
누구든 와서 걱정 없이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갈 수 있는 그런 식당을.
여기서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찬.
그런 걸 매일 상상했다.
자신과 같이 외롭고 힘든 사람에게 정이 담긴 밥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조금이나 덜어 주고 싶었다.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만족한 표정을 지을 때면 자신도 늘 힘이 났다.
꿈을 향해 한발을 크게 내디딘 거 같아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행복한 나날이 보내고 있는 그에게 작은 걱정거리가 생겼다.
어느 날부턴가 누구보다 먼저 떡볶이를 사랑해 준 동네 분식의 1호 단골인 수한이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맛있다며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힘을 준 그 아이가 분식점에 오지 않아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동네 분식의 라면을 사랑하는 수한이의 아버지 이길호까지 요즈음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음식을 만들면서도 괜히 한 번씩 분식점 밖을 살피곤 했다.
“수한이 아버지 일이 잘 안 풀리나?”
이길호는 일명 스캐빈저라고 불리는 헌터였다.
첫 번째 마의 구간인 10레벨을 넘지 못해 공략이 끝난 던전에서 자원을 채취해 생활했다.
아내는 던전병이었다.
이길호는 그런 아내와 자식을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랑했다.
자신이 아무리 힘들지언정 수한이의 앞에서는 웃음으로 대했다.
그런 덕에 아이는 해맑게 자라고 있었다.
늘 동네 아이들을 우르르 끌고 다니며 웃는 모습이 누구보다 매력적인 수한이였는데…….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