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양아치
경일은 경찰서에서 간단한 조서를 쓰고 가게로 돌아왔다.
떡볶이와 어묵탕을 모두 버리고 찝찝한 기분에 매대를 다시 한번 싹 청소했다.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주신 손님들을 돌려보내야 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경일은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던전 민물 새우로 끓인 육수에 던전 고추를 넣어 끓인 육수를 섞어 물처럼 마셨다.
[던전 고추를 먹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줍니다.]
[던전 민물 새우를 먹었습니다. 마음에 안정이 깃듭니다.]
주폭 사건으로 하루를 망쳐 버렸다.
기분이 상한 여파는 오래갔다.
던전에서 보내는 동안 경일은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농사일을 하는 도중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애꿎은 나무를 때리기도 하면서 화난 마음을 가라앉혔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날 웃는 얼굴로 분식점을 열었다.
어제 손님을 그냥 돌려보낸 것이 마음에 걸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재료를 준비했다.
작은 서비스라도 같이 낼 생각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사장님, 잘 참으셨습니다. 장사하다 보면 별별 사람들이 다 있는 겁니다. 이번에 액땜했다 치시고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어제 식사도 하지 못하고 돌아간 손님들이 오히려 자신을 위로해 주었다.
그 덕에 마음속에 남아 있던 찌꺼기까지 모두 날려 보낼 수 있었다.
한창 손님들이 밀려드는 시간이었다.
한꺼번에 들이닥친 손님들로 인해 경일은 정신이 없었다.
서비스로 나갈 음식까지 조리하느라 그의 손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스레인지의 화구 위에는 손님이 주문한 각종 찌개가 맛있는 냄새를 피우며 끓고 있었다.
“어이, 아저씨. 이거 얼마야?”
손님에게 나갈 찌개에 마지막으로 채소를 한 움큼 넣고 끓이는데 매대 쪽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경일은 손님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하나 500원입니다.”
“씨발, 더럽게 비싸네. 딱 봐도 중국산 가짜 고춧가루에 유통기한 지난 떡으로 만든 거 같은데, 사장이란 놈이 더럽게 양심이 없네.”
한참 찌개를 끓이던 경일의 손이 멈췄다.
빠직!
머릿속에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 나올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최고의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자신에게 이건 최대의 모욕이었다.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경일이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매대로 다가갔다.
매대에는 세 명의 남자가 떡볶이와 어묵을 먹고 있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은 누가 봐도 동네 양아치였다.
후줄근한 추리닝에 싼 티 나게 염색한 머리며, 코에 한 피어싱까지.
앞 접시를 놓아두었건만, 그들은 한 번 베어 문 떡볶이를 팬에 다시 담가 양념을 묻혀 먹었다.
“이봐요. 먹던 음식을 다시 담그면 어쩌자는 겁니까?”
경일이 다급하게 말했다.
“뭐야? 내 돈 주고 사 먹는데, 무슨 잔소리야? 내가 이렇게 먹든 저렇게 먹든 네놈이 무슨 상관이야? 이 새끼가 지금 손님 알기를 개 같이 아네!”
금발로 염색한 남자가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씨발, 이거 봐봐. 머리카락이잖아. 혼자 깨끗한 척 다하더니 완전히 쓰레기네. 이런 비위생적으로 장사를 하면서 오히려 손님에게 큰소리를 치다니. 이런 좆같은 가게는 망해야 해.”
머리의 반만 염색한 남자가 머리카락을 들고 소리쳤다.
“이거 봐, 어묵탕에 흙이 들어가 있어. 와, 이거 완전히 미쳤네. 썩은 채소를 씻지도 않고 넣었나 봐. 그러니 맛이 좆같지.”
“푸하하하하하!”
양아치들은 이 상황이 재밌는지 서로의 말에 낄낄거리며 크게 웃었다.
경일의 눈에 그들의 입에서 튄 침이 떡볶이와 어묵탕에 들어가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이런 제기랄.”
화를 내려던 경일이 순간 멈칫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어제의 주폭에 이어 오늘은 양아치까지.
어제 경찰서에 가서 들은 대로 일단 신고부터 했다.
양아치들은 신고하든 말든 크게 떠들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양아치들은 사람들의 그런 시선을 오히려 즐기는 듯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씨발, 여기 머리카락 안 보이냐고. 음식을 얼마나 더럽게 하기에, 이거 봐! 머리카락이 몇 개나 나오는 거야. 어묵탕에 흙먼지가 둥둥 떠다니고. 우리 동네가 못 산다고 좆같은 분식점 새끼가 사람들을 무시하네.”
분식점의 손님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발길을 멈추고 양아치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양아치들에 대한 짙은 혐오감이 묻어 있었지만, 나서지는 않았다.
더러운 똥이 묻을 걸 알면서 나서는 건 쉽지 않았다.
금발의 남자가 경일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썩은 듯한 입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씨발, 표정 봐라. 거지같은 음식이나 파는 새끼가. 어라? 너 잘하면 한 대 치겠다? 그래, 쳐라, 쳐. 인생 뭐 있냐? 지 꼴리는 대로 사는 거지. 이런 거지같은 음식 팔아서 돈도 많이 벌었을 거 같은데 쳐라, 쳐. 나도 오늘 돈 좀 벌어 보자. 쳐, 치라고. 병신 새끼가 치라고 대 줘도 쫄아서 아무것도 못 하네. 여기 딱 쳐 봐. 남자 새끼면 멋있게 턱주가리 한 번 날려 보라고.”
금발의 남자가 경일의 가슴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경일이 뒤로 밀리지 않으려고 힘을 주자 남자도 머리에 힘을 주며 계속해서 가슴을 쳤다.
금발의 남자가 가슴을 때릴 때마다 경일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턱주가리를 한 방만 날릴 수 있으면 속이 시원해질 거 같았다.
크게 호흡하며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억지로 삼켰다.
끝까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금발의 남자가 삐딱하게 고개를 들고서는 경일을 정면에서 야리며 한껏 비웃었다.
그러고는 쳐 보란 듯이 다시 한번 턱을 내밀며 손으로 탁탁 쳤다.
“여기 쳐 보라고. 쳐 봐! 병신아, 쫄았냐? 어휴 쪽팔려. 나 같으면 벌써 한 방 날렸겠다. 병신 같은 새가슴 새끼. 하여간 개 쫄보 새끼가 음식도 좆같이 만든다니까.”
양아치들의 행패는 끝이 나지 않았다.
신고한 지 30분이 다 되어 가지만, 경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20년 전 인류의 3분의 1이 희생되고 사회가 한번 무너졌다.
사람들이 다시 노력해 사회를 재건했지만, 아직 많은 부분이 부족했다.
국가의 재정은 늘 부족했고, 돈을 쓸 곳은 많았다.
공권력은 자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크고 작은 범죄는 늘 일어났고, 교도소가 수용 인원을 초과한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지금 같이 이런 행패는 아주 자잘한 범죄였다.
경찰은 더 중한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출동했는지, 어제와 달리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일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눌렀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양아치들을 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때려도 증거가 남지 않게 때려야 귀찮은 일이 없었다.
괜히 서로 고소하고, 재판까지 가면 판결이 나오기까지 몇 년을 시달려야 했다.
사람들은 소란에 더 많이 모여들었고, 양아치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온갖 욕을 퍼부으며 행패를 부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경찰이 왔다.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어제 주폭 사건으로 출동했던 경찰이었다.
“음식에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온갖 행패를 부리더군요.”
“뭐, 트집? 미친 새끼가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여기 머리카락 나오고, 어묵탕에 흙 나온 거 모든 사람이 다 봤어. 못사는 동네라고 무시하는 거지? 너희 같은 것들은 머리카락이 나오든 흙이 나오든 입 닥치고 처먹으라는 거야?”
“하아~”
피로가 급속도로 밀려들었다.
요즘 일진이 왜 이런지.
“중국산 가짜 고춧가루라고 온갖 생떼를 부리고, 먹던 음식을 떡볶이 통에 다시 넣지를 않나. 머리카락을 넣고, 그것도 모자라 흙까지 뿌리는 바람에 음식을 모두 버리게 생겼습니다.”\
“이 새끼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어디서 누명을 씌워.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금발 머리가 오히려 큰 소리로 경일에게 따졌다.
이런 짓을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고, 머리카락과 흙을 넣을 때 이미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모두 확인했다.
그러자 경찰이 곤란해했다.
분명 누가 봐도 양아치들이 수작을 부렸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당장 증거가 없으니 자신들도 해 줄 게 없었다.
경일은 가게에 들어가서 CCTV 메모리를 뽑아 왔다.
“어, 이거 CCTV 메모리인가요?”
“네. 옛날에 이 일과 비슷한 일이 있어서 설치해 놨죠. 아무래도 있어야겠더라고요. 최상급 화질에 목소리까지 녹음되어 있습니다.”
경찰은 작은 분식점에 비싼 CCTV가 설치된 걸 보고 살짝 놀랐다.
“그렇죠. 있으면 좋죠. 이 동네도 도로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면 범죄도 줄고 할 건데… 이건 뭐, 맨날 예산 타령이니.”
경찰은 자신도 모르게 CCTV가 부족한 현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양아치들은 생각도 못 한 증거에 짜증이 났다.
CCTV에는 머리카락을 넣은 장면과 어묵탕에 바닥의 흙을 뿌리는 등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들은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와 화가 나 그랬다고 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증거가 나온 이상 빼도 박도 못 하게 됐다.
아무리 막가는 인생이라 해도 범죄가 쌓여 좋을 건 없었다.
“요즘 조용하다 싶었더니 제대로 사고를 치는구나. 조용히 가자. 얼른 타라.”
경찰이 양아치들에게 말했다.
“씨발, 민중의 지팡이가 시민에게 반말해도 됩니까?”
코에 피어싱 한 남자가 경찰에게 버럭 소리쳤다.
“야, 병신아, 아가리 닥쳐.”
금발 머리가 곧바로 큰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야, 가자. 얼른 타라.”
경찰에게 개겨서 좋을 게 없는 것을 잘 아는 금발 머리가 동료들을 앞세우고 경찰차에 탔다.
“진술서 작성하러 한 번 오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경찰차 뒷좌석에 찬 양아치들의 표정은 썩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행패를 부려 봐야 대부분 벌금형이 다였다.
벌금은 안 내면 그만이었다.
지금까지 내야 할 벌금이 쌓여 제법 큰 액수가 됐다.
신용불량자에 직업도 없고, 재산도 없는 그들에게 벌금을 받아 낼 방법은 없었다.
재수 없으면 기껏해야 구류로 끝이 났다.
대부분은 행패를 부려도 그날로 훈방됐고, 집으로 벌금 통지서가 날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자신들이 한 짓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혹시 구속까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겁이 났다.
진술서를 작성하고 돌아가는 길에 경찰이 위로를 건넸다.
“미친개한테 한 번 물렸다고 생각하세요. 살다 보면 재수 없는 일도 일어나고 하니까요.”
“저들은 어떤 벌을 받게 되나요?
“아마 며칠 구류 살고 벌금형으로 마무리될 거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경찰서를 나오는 경일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구속될 사항까지는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한 짓에 비해 받는 벌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지? 우연인가?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경일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를 위로하려는지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과의 유대가 강해졌습니다. 던전에 광산이 생성되었습니다.]
“응? 광산? 광산이라고? 설마 던전 금속을 캘 수 있는 그 광산?”
조금 전까지 우울했던 기분이 확 날아가고, 입가에 큰 웃음이 걸렸다.
얼마 전 던전 고유 식물에 이어 이번엔 광산까지.
최고의 선물이었다.
누구도 이같이 풍부한 자원을 가진 던전을 소유한 이는 없을 터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