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광부
경일은 너무 놀라 주폭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주폭은 곧바로 손에서 팔을 빼내고는 곧바로 줄행랑을 쳤다.
“아차!”
다시 주폭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도로로 뛰어나간 뒤였다.
제대로 겁을 먹었으니 더는 행패를 부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행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방금 뜬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이건 광산에 대한 실마리가 담겨 있는 메시지였다.
지금까지 던전에서 광산을 찾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워낙 넓어서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복수도 복수지만, 광산을 찾을 수 있는 힌트도 매우 소중했다.
그런 중요한 인물이 도망가 버렸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경일이 그를 찾아야 했다.
“하~ 머리 아프네. 놈을 어디서 찾지? 한번 도망가 버리면 찾을 방법이 없잖아. 내가 이대로 당하고는 절대 못 넘어가지. 꼭 찾아서 복수도 하고, 메시지에 관한 내용도 확인하고야 말 테다.”
경일은 오늘 장사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격렬하게 주폭을 찾고 싶었다.
[당신의 강렬한 바람이 스킬로 구현됩니다. 사람 찾기(Lv. 1) 스킬이 생겨납니다.]
떠오른 메시지와 함께 도망간 주폭이 어디에 있는지 느낌이 왔다.
경일은 스킬의 이용 방법이 곧바로 떠올랐다.
식물 찾기 스킬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거 대박인데?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고. 이건 마치 던전의 신이 나를 보우하는 거 같잖아. 감사합니다. 이런 스킬까지 주시는 거 보니 제대로 갚아 주라는 뜻이겠죠.”
우주의 모든 기운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느낌에 어깨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기분이 좋았다.
“나를 엄청나게 괴롭혔으니, 이제는 몇 배로 돌려줘야지.”
경일이 활활 불타오르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주폭이 만약 이 모습을 봤으면 앞으로 벌어질 자신의 운명이 원망스러웠으리라.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장사를 시작했다.
점심때 양아치들이 나타나 손님을 내쫓고, 온갖 행패를 부렸으나, 오늘만큼은 화가 나지 않았다.
“저 새끼 미쳤나 봐. 우리를 보고 실실 쪼개는데.”
“맞네. 애새끼가 맛이 갔네. 푸하하하하, 대에박.”
“완전히 돌았네. 욕먹고 웃는 새끼 처음 본다. 으~ 재수 없어.”
금발은 어떤 행패를 부려도 미소를 띠고 있는 경일의 모습에 즐거워하는 동료와 달리 못 볼 것을 봤다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실컷 즐겨라.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 오늘 분식점 마치고 한 번 보자. 아주 세트로 피똥을 싸게 만들어 주지. 흐흐흐흐.’
경일은 하루 장사를 끝내고 분식점을 정리했다.
“시간이 안 가서 혼났네.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설레는 마음이 오늘처럼 확실히 이해되기는 처음이야.”
살아오면서 한 번도 소풍을 가 본 적은 없지만, 기대감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동네 뒷산의 산기슭이었다.
그곳에는 작은 움막이 하나 지어져 있었다.
경일의 눈에 이채가 번뜩이고, 비릿한 웃음이 입에 걸렸다.
움막의 입구에는 여기저기 버려진 소주병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분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폭은 술에 절어 잠들어 있었다.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자는 모습을 보자 또다시 살심이 치솟았다.
‘이 개새끼가 사람 속을 뒤집어 놓고 자기는 아주 편하게 자고 있네. 이렇게 편한 잠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다.’
경일은 주폭의 목을 지그시 밟았다.
조금씩 힘이 들어가자 주폭은 호흡이 힘든지 꺽꺽거렸다.
“헉!”
숨쉬기가 힘들어진 주폭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어떤 개새끼야?”
주폭은 자신의 목을 밟고 있는 사람을 확인하지 못한 채 거칠게 몸부림치며 소리부터 질렀다.
“나다, 이 개새끼야. 내가 오늘 죽여준다고 했지?”
경일의 목소리를 들은 주폭의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설마? 아닐 거야. 이 새끼가 여기를 어떻게 알고. 온종일 사람 한 명 안 다니는 곳인데, 이건 꿈일 거야.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지금 헛소리가 들리는 걸 거야.’
경일이 목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살짝 빼자 주폭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경일을 확인하자 오히려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도저히 이 상황을 인정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에서 느껴지는 압력은 이것이 현실이라고 확실히 말하고 있었다.
몸부림을 멈추고,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얼굴에는 체념의 빛이 역력했다.
경일에 발에서 다시금 강한 압력이 느껴지자, 주폭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떨었다.
“뭐야? 그동안 온갖 행패는 다 부리던 놈이 겨우 이 정도로 쫄아? 이거 완전 실망인데. 왜, 다른 사람들이 없으니 힘을 못 쓰겠어? 동네 사람들이라도 불러 줄까?”
경일이 목을 밟은 발에 조금씩 힘을 줬다.
“컥컥,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세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소리치며 온갖 행패를 부리는 주폭은 더 이상 없었다.
늘 쌍욕을 내뱉고, 고아인 경일이 가장 듣기 싫은 호로 새끼라는 욕을 시도 때도 없이 내뱉던 자신만만한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키지도 않는 존댓말을 쓰며 벌벌 떠는 한 마리의 벌레가 있을 뿐이었다.
“네놈이 나를 괴롭힌 게 얼만데, 겨우 이 정도로 용서가 될 거 같아? 사회에 일도 도움이 안 되는 이 밥버러지야. 밖에 소주병이 널렸더라. 나에게 행패를 부리라고 받은 돈으로 아주 즐겁게 지낸 모양이야?”
“컥컥컥, 살… 살려 주세요.”
“살고 싶어?”
“네! 살려만 주시면 앞으로는 남에게 절대 해코지 부리지 않겠습니다. 술… 술도 끊겠습니다.”
“차라리 개가 똥을 끊겠다고 해라.”
주폭은 어떻게든 경일의 발에서 벗어나 보려 했지만, 마치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듯 꼼짝하지 못했다.
목이 떨어져 나갈 거 같았다.
숨구멍까지 막히자 머리가 터져 나갈 거 같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입도 뻥긋하기 힘들었다.
빌고 싶었지만, 삼복더위의 개의 혀처럼 축 늘어진 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제… 제…발.”
눈알이 터질 거 같은 고통에 주폭은 죽을힘을 다해 빌었다.
목을 누르는 경일의 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실핏줄이 터져 나가 벌게진 눈에는 후회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광산으로 어떻게 보내는 거지?’
경일이 궁금해하자.
[상대가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광산으로 이동을 원하십니까? (Y / N)]
하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하하하하!”
경일은 메시지를 보고 기쁜 듯 웃으며 발에서 힘을 살짝 뺐다.
“방금 술을 끊겠다고 했지?”
“네, 네. 끊겠습니다. 확실히 끊겠습니다.”
경일의 말에 주폭은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그러면 상관없겠다. 거긴 아마 술이 없을 거 같거든. 술을 끊는다고 했으니 억울할 건 없겠다.”
“그게 무슨…….”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못 마신다는 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그에게는 끔찍한 금단 현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주폭은 경일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곳? 술이 없어?’
멍한 시선으로 그저 눈꺼풀만 깜박였다.
자신에게 벌어질 앞으로의 미래를 모르는 건 당연했다.
질문하는 주폭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YES를 외치자, 주폭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광산에 광부가 들어왔습니다. 스킬 광산 관리(Lv. 1)가 생겼습니다.]
경일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하고, 냄새나는 움막에서 나왔다.
“이거구나.”
궁금했던 광산에 대한 비밀이 모두 풀렸다.
가장 좋았던 건 직접 일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넘치는데, 광산에서까지 일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했다.
그 길로 던전으로 갔다.
던전으로 들어가 광산 관리 스킬을 발동하자, 머릿속에 광산의 위치와 주위 경관이 떠올랐다.
“어? 여기는 내가 가 본 곳 같은데. 집에서 얼마 안 멀잖아. 아하! 광부가 생기면서 땅속의 광산이 모습을 드러냈구나!”
경일은 광산의 존재만 확인하고, 평소와 달리 곧바로 던전을 나왔다.
아직 중요한 할 일이 남아서였다.
애피타이저를 먹었으니 이제 메인 요리가 남았다.
“내가 온몸이 아주 연체동물처럼 말랑말랑하게 해 주지!”
이를 갈며 양아치들을 생각하자 그들이 있는 곳이 대충 느껴졌다.
이들이 있는 곳은 버려진 건물이었다.
몬스터의 습격으로 오래전에 망가진 건물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경일은 건물 안으로 곧장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에 눈이 기쁜 듯 반짝였고, 입에는 악마가 웃음 짓는 듯한 살벌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양아치들은 어디에서 주워 온 다 떨어진 소파와 바닥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주위에는 각종 본드와 술병, 그리고 가스통이 굴러다녔다.
‘인생 참 한심하네. 뭐, 내가 상관할 봐는 아니니까. 어쨌든 다들 뭉쳐서 자고 있으니 잘됐다. 한 놈이라도 도망가면 골치 아파질 뻔했는데.’
경일은 은밀하게 움직였다.
퍽퍽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악!”
“컥, 뭐야? 어떤 놈이야?”
“컥!”
양아치들은 하나같이 배를 감싸 안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경일이 자는 양아치들의 명치를 빠르게 걷어찬 것이다.
“어이, 씨발놈들아. 아주 반가워. 아주 이 갈리는 새끼들아.”
경일이 십 년 만에 만난 지기에게 하듯 반가운 투로 말하다 마지막 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이 개새끼가 돌았나?”
경일을 확인한 금발이 고통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악랄하게 굴던 놈답게 제법 깡다구가 있었다.
“오, 제법이네. 그래, 그 정도는 돼야 나도 때리는 맛이 나지.”
“개새끼야. 너 오늘 죽어 봐라.”
금발이 잭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잭나이프가 펴지며 날카로운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몰라 주위를 둘러봤지만, 분명 경일은 혼자였다.
그는 경일이 맛탱이가 간 거라 생각했다.
“너는 특별히 가중처벌이다. 내가 아주 정신머리를 바꾸어 주지. 네 인생에 나를 만난 걸 평생 생각나게 해 주마. 이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1분 1초도 안 잊힐 거야. 푸하하하하!”
경일이 선물을 받아 기뻐하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어 댔다.
“씨발, 좆만 한 분식점 새끼가 지랄을 해요. 네가 아주 완벽히 미쳐 버렸구나. 너는 죽었어!”
금발이 이를 드러내고, 경일을 향해 칼을 찌르는 행동을 하며 겁박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다르게 경일은 여유가 넘쳤다.
칼을 보고도 아무런 동요가 없는 모습에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저 새끼가 뭘 믿고 저렇게 여유롭지? 칼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은 놈은 처음인데. 씨발, 허세겠지. 칼침 한 방이면 지가 어쩔 거야. 기고 싶지 않아도 알아서 설설 기겠지.’
금발이 시간을 끄는 동안 그의 동료들이 일어났다.
“썅, 개 같은 새끼가 자는 사람을 걷어차? 넌 오늘 죽었다. 여기는 사람 하나 죽어도 아무도 몰라. 이 건물 지하실에 묻어 주지.”
머리의 반만 염색한 남자는 아직 배가 아픈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코에 피어싱을 한 놈이 쇠파이프 두 개를 가지고 와서 하나는 머리를 반만 염색한 남자에게 건넸다.
“이제 준비가 다 끝났냐? 내가 네놈들이 잘 때 조질 수도 있었는데, 그런 짓을 하면 내가 너희 같은 양아치가 되는 거잖아. 양아치를 잡으러 왔는데, 양아치 짓을 하면 안 되지. 안 그래? 흐흐흐흐.”
경일은 앞으로 벌어질 일이 생각만으로도 기쁜 듯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