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마무리
행복했던 가정이 이렇게 된 건, 모두 그놈 때문이었다.
경일이란 존재는 같은 하늘을 등에 지고 살 수 없을 만큼 원한이 깊은 원수였다.
들끓는 증오심에 결국 복수를 다짐하고 주폭과 동네 양아치에게 돈을 주고 사주했다.
최소한 동네 분식이 망하는 꼴을 봐야 꽉 막힌 가슴이 조금이라도 뚫릴 거 같았다.
“개 같은 새끼, 얼른 망해라. 그놈들은 내가 봐도 인간이기를 거부한 인간 말종이더라고. 그런 놈들이 매일 같이 가게를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 다라… 크크크. 어휴, 내가 생각해도 끔찍하네. 지금쯤 아주 죽을 맛일 거다. 내 아픔의 백 분의 일이라도 한 번 느껴 봐라.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내가 아주 잘근잘근 씹어 버리겠다. 너 같은 놈은 하루하루 헤어날 수 없는 괴로움 속에 빠져 말라 죽어야 해. 내가 꼭 그렇게 만들고 말 테다, 아아아아악!”
김만복은 술에 취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비틀비틀 걸어갔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뭘 봐, 이 새끼들아. 확 눈을 파 버릴라. 이 더러운 놈의 세상, 확 망해 버려라. 캬~ 퉷!”
바닥에 더러운 가래침을 뱉고는 온갖 패악질을 다 부렸다.
멀리서 그런 김만복의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경일이었다.
그는 빠르게 김만복을 광산으로 보내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거리의 사람들이었다.
김만복이 사는 곳은 헌터들이 많이 거주하는 좋은 동네이다 보니, 군데군데 CCTV도 제법 보였다.
‘이러면 곤란한데.’
경일은 마음이 급했다.
이미 용의 그림을 다 그렸는데, 가장 중요한 용의 눈동자가 빠져 있었다.
마지막 퍼즐인 용의 눈동자를 얼른 채워 넣고 싶은데,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김만복은 요의를 느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방광이 터질 거 같았다.
집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그의 눈에 건물과 건물 사이의 작은 틈이 보였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김만복은 빠르게 건물의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급하게 바지 지퍼를 내렸다.
터질 듯한 방광에 힘을 주자 오줌 줄기가 벽을 때렸다.
“아~ 시원하다~”
그의 얼굴이 점점 편안해졌다.
양이 많아서 그런지 오줌이 끊어지지 않았다.
땅바닥이 흥건히 젖어 갔다.
경일은 땅바닥에 흐르는 오줌 줄기를 피해 그에게 은밀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줌을 누는 그의 엉덩이를 강하게 밀어 찼다.
“악!”
김만복은 짧은 비명과 함께 이마를 벽에 한 번 부딪히고는 그대로 땅바닥으로 널브러졌다.
그는 자신이 싼 오줌 위를 뒹굴었다.
벽에 부딪힌 그의 이마가 뻘겋게 부어올랐다.
“어떤 개새…….”
김만복의 고함은 이어지지 않았다.
경일은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들을까 봐 그의 목을 발로 강하게 찍어 눌렀다.
“컥!”
목이 막히는 강렬한 고통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살… 살려 주세요.”
김만복은 본능적으로 뒷주머니의 지갑을 꺼내 내밀었다.
이 동네가 다른 곳보다 안전하긴 했어도 아예 범죄가 없진 않았다.
힘든 시대인 만큼 범죄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었다.
“당연히 살려 드려야죠. 내가 살인자도 아니고.”
“감, 감사합니다.”
“어휴~ 감사하긴요. 사장님이 나에게 감사를 다하고 의외네요.”
친절한 강도의 목소리에 김만복은 의아해졌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익숙했다.
땅바닥에 고인 오줌에 파묻힌 얼굴을 가까스로 돌려 자신의 목을 밟고 있는 존재를 확인했다.
자신의 목을 밟고 있는 상대가 강도가 아닌 경일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안심되는가 동시에 그를 향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조금 전까지 살려 달라고 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도리어 경일을 향해 욕을 하며 명령했다.
“너, 너, 너, 이 새끼. 이런 미친 새끼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내 목에서 발을 떼지 못해!”
그는 험악한 눈빛으로 경일을 노려봤다.
‘염병, 깜짝 놀랐잖아. 이런 멍청한 놈 때문에 벌벌 떨다니. 이 새끼한테 이런 쪽팔리는 모습을 다 보이고. 젠장 할.’
조금 전에 느꼈던 공포가 억울해졌다.
경일에게 살려 달라고 빌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자 수치심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대신 깊었던 공포와 수치심은 온전히 경일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멀쩡한 사람을 폭행하고, 위협하고, 강도질에, 살인 미수까지. 넌 끝장난 거야.”
김만복은 지금 생각나는 모든 죄목을 경일에게 붙였다.
“내가 이대로 넘어갈 거 같아? 이번에 제대로 콩밥을 먹여 주지. 내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오랫동안 사회와 격리시켜 줄 거야! 병신 같은 놈, 안 그래도 죽여 버리고 싶었는데,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오다니. 멍청한 놈인 건 알았지만, 아주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지금의 상황을 인지한 김만복은 오히려 경일을 협박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때문에 분식점을 닫았다니… 근데 동네 분식이 문을 닫아도 온 동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니 다시 열 수도 없잖아. 제기랄!’
복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고취됐지만, 이미 날려 버린 분식점 생각에 속이 쓰려 왔다.
그로서는 당연히 경일이 경찰에게 끌려갈 거라 생각했다.
경일은 자신의 발에 밟혀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연기하는 김만복을 한껏 비웃고 있었다.
“이 새끼야, 당장 발 치워. 어디서 감히! 발 치우라고, 개새끼야!”
김만복은 여전히 자신의 목을 누르고 있는 발에 기분이 나빴다.
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칠수록 그의 얼굴에 더 많은 오줌이 묻었다.
지린내가 심해질수록 그의 기분은 최악으로 물들어 갔다.
“사장님은 끝까지 사람을 잘 못 보시네. 멍청하다니요. 지금 분위기 파악이 안 되세요? 내 발밑에 벌레처럼 밟혀 있으면서 그렇게 큰소리를 치면 내 기분이 상하잖아요.”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야, 당장 발 치우지 못해? 어디서 감히 이런 흉악한 짓을 저지르는 거야!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지만, 넌 어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냐? 이런 빌어먹을 개새끼 같으니라고.”
김만복은 기죽지 않고 경일에게 욕을 쏟아 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주폭이랑 양아치 새끼들을 보낸 놈이 지금 나에게 예의를 따지는 거야? 이 해충 같은 새끼야?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든 게 누군데. 넌 반성이라는 게 없냐? 이번에 주폭이랑 양아치 새끼들 덕에 스트레스 정말 많이 받았다. 저번에 음식 재활용으로 모함당할 때보다 최소 천 배는 더 열 받았어. 공무원부터 시작해서 양아치 새끼까지. 그 좋은 머리로 장사에 최선을 다했으면 지금 같은 처지가 되지는 않았겠지. 자신의 허물은 볼 줄 모르면 모든 게 남 탓이냐? 오픈 첫날부터 와서 개소리를 씨불이더니. 내가 없는 돈에 왜 비싼 CCTV까지 설치했는지 알아? 그건 바로 너 때문이야. 네가 워낙 음흉해서 마음이 불안했거든. 내가 어릴 때부터 고생을 좀 많이 해서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어. 꼭 너 같은 인간들이 사람을 이용하고 나중에 뒤통수를 치더라고. 다정 분식이 망한 거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주 죽고 싶어서 제대로 용을 쓰는구나. 난 당하면 최소 열 배로 갚아 줘야 밤에 잠이 오거든.”
조금 전까지 존댓말을 하는 경일은 없었다.
그의 말에는 섬찟함이 녹아 있었다.
“무슨 개소리야?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당장 콩밥이나 먹을 준비나 해. 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지금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안 돼? 내가 고함을 지르는 순간, 넌 끝이야, 끝.”
김만복은 기죽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그의 말대로 이곳이 시끄러워지는 순간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하~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 하네. 오줌 위에서 뒹구는 새끼가 입만 살아서는.”
경일이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내려다봤다.
김만복은 그런 그의 눈초리가 황당하면서도 너무나도 기분이 나빴다.
“이 새끼야, 발 치우라고! 이거 완전 쓰레기잖아? 어디서 이런 개 같은 놈이 나타나서.”
김만복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용을 썼다.
목을 밟고 있는 경일의 발을 한 손으로 잡아 힘을 주고 밀었다.
그러나 무슨 땅에 단단히 박힌 나무를 미는 듯이 한 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몸을 틀어 두 손으로 발을 거머쥐고 힘을 주었다.
자세를 바꾸자 몸의 더 많은 부분에 지린내 나는 오줌이 묻어 축축해졌다.
“끄으응!”
꽉 깨문 이빨 사이로 신음이 삐져나왔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경일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까지 파닥거리면서 힘을 써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저 얼굴만 붉게 달아오를 뿐이었다.
“개새끼야, 발을 안 치운다 이거지.”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자 김만복은 생각을 달리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그의 바람과 다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했다.
김만복이 소리치려는 것을 알아챈 경일이 그의 목을 강하게 누른 것이다.
무섭게 눌러 오는 목의 압력에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컥, 컥, 개… 개새끼야. 미… 미쳤어? 사… 사람을 죽… 죽일 셈이야?”
김만복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쥐어짜듯이 말했다.
“아직 기가 살았네.”
경일이 가볍게 대꾸했다.
가벼운 말투와 다르게 그의 얼굴은 지옥에서 막 올라온 악귀 같이 섬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본 김만복은 순간 등줄기에 오한이 밀려들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압력과 그의 얼굴을 보자 잘못하다가는 진짜 죽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이 새끼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주폭과 양아치에 온갖 시달림을 받다가 그들을 보낸 것이 나라는 걸 알아차리고, 악에 받쳐 나를 죽이려고 온 게 틀림없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 젖 먹던 힘까지 내며 온몸을 버둥거리면서 다시 한번 소리쳤다.
“사…람…살…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입속을 벗어나지 못했다.
경일이 김만복의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 순간, 망설이지 않고 더 강하게 목을 짓밟았다.
“컥컥컥컥! 살… 살려 줘.”
경일의 발에서 느껴지는 압력이 커질수록 그의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이 새끼는 진짜 나를 죽이려고 한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공기는 폐로 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이 커져 갔다.
뇌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젠장! 내가 살귀를 건들인 거야?’
스멀스멀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에 마음이 잠식되어 갔다.
겁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지금까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후회가 물밑 듯이 밀려들었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 갔다.
죽음의 공포에 삼켜진 그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은 듯 중구난방으로 날뛰었다.
혼이 나간 듯 커진 동공은 텅 비어 있었다.
경일이 목을 누르던 발에 힘을 뺐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한 공포의 늪에 머리끝까지 잠식되었다.
너무나 무서운데 손끝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광산으로 이동을 원하십니까? (Y / N)]
경일이 작은 목소리로 Yes라고 말하자, 김만복의 몸은 점점 엷어져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는 죽음이 주는 공포에 빠진 채로 광산으로 끌려갔다.
김만복을 밟고 있는 발에서 저항이 사라졌다.
경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발에 힘을 줘 얼른 멈췄다.
“큰일 날 뻔했네. 오줌을 밟을 뻔하다니. 아휴, 지린내. 더럽게도 많이 쌌네.”
경일은 코밑의 공기를 손짓으로 밀어내고 곧바로 벗어났다.
그 길로 던전으로 들어가 광산으로 직행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