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64화 (64/300)

[64화] 영지전 (3)

“와아아아아!”

“영주님이 승리하셨다!”

“자포리자!”

“자포리자!”

“알리사를 몰아내자!”

스탄다비아 군대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와 반대로 알리사 군대의 사기는 바닥을 기어 들어갔다.

그들의 얼굴엔 깊은 실망감이 어리고, 무거운 탄식은 침묵으로 변해 갔다.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한 싸움에서 최강의 기사 칼라일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너무나 허무하게 패배했다.

나바론은 얼이 빠졌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는 충격을 받은 눈길로 자신의 주의를 둘러보았다.

누군가가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주길 원했다.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분명 사기야… 사기라고! 자포리자가 금단의 수를 쓴 것이 틀림없어.’

그는 억울해 미칠 거 같았다.

영지전이고 나발이고 곧바로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어. 이렇게 허무하게 질 수는 없다고! 이런 허접한 놈들에게 지는 게 말이 되냐고! 내 대에서 스타테인 가문이 무너지는 건 절대 안 돼!’

자신이 매년 스탄다비아를 수탈하기 위해 영지전을 핑계로 들었지만, 영지전은 무엇보다 잔인한 전쟁이었다.

지는 쪽은 모든 것을 잃어야 했다.

가문이 풀뿌리 하나 남기지 못하고 뽑힐 수도 있었다.

이긴 쪽의 결정에 따라, 같은 성을 쓰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죽어 나갈 수도 있었다.

운 좋게 수장을 제외한 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을 빼앗긴 몰락 귀족의 삶은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편안한 삶일 수도 있었다.

그는 분노로 매몰되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도 한 지역을 운영하는 영주였다.

‘아직 승부의 추는 기울어지지 않았어. 나에게는 훈련받은 병사 300명이 있다. 저런 허접한 병사들에게 질 이유가 없어. 칼라일이 없다고 해도 기사단 역시 우리가 훨씬 강하다.’

흔들리던 그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어깨를 펴고 강렬한 시선으로 자신의 병사들을 둘러봤다.

“동요하지 마라. 비록 칼라일이 적의 비겁한 속임수에 죽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강하다. 간악한 스탄다비아를 응징해 칼라일의 복수를 하자!”

나바론이 자신감이 서려 있는 묵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와아아아아아!”

“나바론!”

“나바론!”

“알리사를 위하여!”

“알리사를 위하여!”

그에 목소리에 반응한 알리사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칼라일이 죽는 모습에 크게 당황했지만, 나바론의 말에 병사들은 정신을 되찾았다.

분명 적의 군대는 허름한 무장을 한 병사 100명과 농사짓다가 끌려온 듯한 영지민 200명이 다였다.

“자포리자가 무슨 비열한 수를 썼는지 몰라도, 그건 계속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러 유저 중급이 상급의 기사를 단 일격에 죽이는 힘을 끌어다 썼는데, 이 힘이 계속 이어질 수는 없다. 그도 타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다. 저 비겁한 놈들을 모두 죽이자!”

나바론은 자포리자를 매도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큰 힘을 끌어다 쓴 만큼 반작용이 그만큼, 아니, 몇 배로 되돌아가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칼라일이란 이 지역 최강의 기사를 이토록 허무하게 잃은 건 무척 뼈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질 이유는 전혀 없었다.

자신도 오러 유저 중급의 기사였고, 남아 있는 휘하의 기사단도 스탄다비아보다 강했다.

애초에 서로의 전력 차이가 너무 컸다.

“모두 공격하라!”

분노가 가득한, 복수의 의지가 담긴 나바론의 크나큰 외침이 스칸디아 평원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칼라일을 잃은 그의 분노는 알리사의 병사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와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은 망설이지 않고 커다란 함성과 함께 평야를 달려 나갔다.

첫 공격은 궁수들이었다.

약 서른 명의 궁수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댔다.

연속된 화살이 호선을 그리며 스탄다비아의 병사들을 노렸다.

“방패를 들어라!”

자포리자의 외침에 스탄다비아 병사들이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방패를 들어 올렸다.

팅팅팅팅팅!

나무에 강철을 덧씌운 방패에 화살이 튕겨 나갔다.

“아아아악!”

“헉!”

“컥!”

운이 없는 몇 명의 병사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거리는 차근차근 좁혀져 갔다.

칼라일의 피로 양측 병사는 서로 다른 의미로 잔뜩 흥분했다.

스탄다비아는 자포리자의 용맹함에, 알리사는 그의 비겁함에 격앙되어 있었다.

알리사 병사들은 머리에 피가 쏠리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체온 때문인지,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꽤 많은 시간을 달려온 거 같았지만, 실제로는 몇 초 정도로 겨우 수십 미터를 나아갔을 뿐이었다.

점점 피아간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30m도 남지 않자, 햇볕에 그을린 새까만 스탄다비아 영지민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이들은 어제도 농사를 지었으리라.

“알리사를 위하여! 창병들은 돌진하라!”

백인대장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알리사를 위하여!”

“알리사를 위하여!”

“알리사를 위하여!”

알리사 창병이 스탄다비아 영지민을 향해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두 손에 단단히 거머쥔 창을 땅바닥과 수평으로 유지하고 함성과 함께 달려 나갔다.

치켜뜬 눈은 독기로 번들거렸다.

평온하기만 했던 스칸디아 평원은 인간의 살기와 광기로 물들어 갔다.

인세의 지옥이 펼쳐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적의 피를 갈망하며, 적의 심장을 찌르는 것만이 이곳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정의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에 흥분한 알리사의 병사들과는 대조적으로 스탄다비아 영지민은 침착하게 창을 앞세우고 달려오는 적을 기다렸다.

자포리자가 커다란 기둥처럼 굳건하게 서 있었다.

그의 등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의지에 스탄다비아 영지민의 사기는 끝없이 올라갔다.

거의 200m가 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온 알리사 병사들을 향해 스탄다비아 영지민이 침착하게 창을 내밀었다.

“죽어라!”

“이야야야야얍!”

“으아아아압!”

“와아아아아아아아!”

알리사 창병들이 공격하기 직전 내지른 함성이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이 스탄다비아 영지민에게 떨어졌다.

200명의 영지민이 마치 한 몸처럼 달려오는 적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알리사 창병들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이 정도는 매일 이어지는 훈련으로 충분히 겪어 본 상황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헉!”

“아악!”

“뭐야?”

“이런!”

“이런 개새끼들!”

알리사 창병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흥분으로 달아오른 정신이 싸늘하게 식었다.

적을 찌르기 바로 직전, 발밑이 꺼져 버린 것이다.

그들은 발밑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에 크게 당황했다.

“함정이다!”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리고, 몸이 허공에 뜨는 느낌 때문에 제대로 된 자세를 잡지 못했다.

허우적대며 앞으로 꼬꾸라지는 창병들이 대부분이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창은 적의 몸이 아닌 허공에서 춤을 추거나 땅에 박혔다.

“아아아아악!”

“살려 줘!”

“도망가!”

“커억!”

눈앞에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오는 창이 똑똑히 보였다.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휘청이는 몸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알리사 창병들의 몸을 강철 창이 거칠게 헤집고 들어갔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이!”

자신의 병사가 허무하게 죽어 가는 모습에 나바론의 몸이 분노로 벌벌 떨렸다.

스탄다비아가 설마 함정을 팠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포리자가 죽기 위해 나왔다고 생각한 게 그의 눈을 가렸다.

전장이 될 스칸디아 평원의 감시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은 것이다.

잠시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이미 시작된 영지전을 돌릴 방법은 없었다.

창병의 뒤를 이어 칼과 방패가 든 보병들이 뛰어들었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알리사 보병은 광분했다.

이미 드러난 함정은 함정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간단히 뛰어넘고, 누군가는 함정에 쓰러진 동료의 몸을 밟고 전진했다.

뻗어 오는 스탄다비아의 창을 방패로 막았다.

알리사 병사들은 자신들이 훈련한 대로 방패로 창을 흘리며 앞으로 뛰어들어 거리를 좁혔다.

보병이 창병과 상대할 때의 기본 전술이었다.

병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창 자루를 후려쳤다.

이 시대의 무기는 병사들의 강함에 비하면 오히려 약했다.

몸속에 마나를 지닌 병사들이 휘두르는 검에는 강맹함이 서려 있었다.

이것으로 적의 무기는 봉쇄될 것이다.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깡!

전장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가 났다.

나무가 부서지거나 잘리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알리사 보병들은 칼라일 기사의 목이 잘렸을 때처럼 불길한 예감에 등 뒤에서 소름이 돋았다.

창은 알리사 보병들의 칼을 맞고도 멀쩡했다.

보병들은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했다.

찰나지만 몸이 굳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전장에서 적을 무력화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철 창이 알리사 보병들의 몸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으아아악!”

“크아아아아!”

“아악악악악!”

“엌!”

“살려 줘!”

“컥!”

창에 찔린 보병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경일이 아침마다 부지런히 고물상을 돌며 모은 고철이 스탄다비아에겐 축복을, 알리사에겐 악몽을 선사했다.

“이런 개새끼들이!”

“모두 죽여주마!”

하지만 알리사 병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아직은 창에 질린 병사보다 피한 병사가 훨씬 많았다.

그들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들은 아직 자신들이 열세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벌레보다 못한 스탄다비아에게 진다는 건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삐뚤어진 자존심은 이들을 광기로 몰아넣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인간의 피를 탐하는 몬스터와 같아 보였다.

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적들의 창이 나무창이 아닌 걸 알았으니, 그것에 맞게 대비만 하면 됐다.

강철 창이라고 해도 전투 훈련을 받지 않은 영지민들과의 싸움에서 자신들이 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일부 병사가 죽어 나갔지만, 그들은 여전히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방패를 앞세우고 강하게 칼을 휘두르며 창을 튕겨 내며 달려들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지만, 충분히 실행할 가치가 있었다.

거리가 줄어든 이상, 이제 자신들의 차례였다.

그 순간이었다.

“뭐야?”

“이런 제기랄!”

“씨발!”

알리사 보병들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창병들 사이로 100명의 스탄다비아 보병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반 보병보다 더 큰 방패를 앞세우고 자신들의 앞길을 막았다.

“씨발, 보병의 숫자는 우리가 훨씬 더 많아! 모두 죽여 버려!”

백인대장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텅! 텅! 텅! 텅!

알리사 보병의 공격은 허무하리만큼 쉽게 방패에 막혔다.

“씨발!”

“개새끼들아!”

“죽어!”

그들은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스탄다비아 보병은 공격할 생각이 없는지 방어에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답답했다.

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겨우 공격의 기회를 잡았는데, 또 다른 방해가 나타났다.

그 순간, 스탄다비아 보병의 옆에서 날카로운 창끝이 뻗어져 나왔다.

적의 몸에 가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창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끄으아아악!”

병사 한 명의 비명을 시작으로 200개의 창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알리사 병사들의 몸을 노렸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개개인의 전투력은 분명 자신들이 더 강했다.

하지만 스탄다비아 병사들이 서로 협력하며 방진을 짜자, 이를 돌파하는 게 쉽지 않았다.

거리를 좁혀 적을 베고 싶었지만, 그들의 의도는 커다란 방패를 든 스탄다비아 보병에게 막혔다.

아무리 노력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마치 성벽이 눈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각에서 적의 창이 자신들의 몸을 노리고 찔러 왔다.

순식간에 찔러 오는 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알리사 병사들의 몸에 상처가 늘어날수록 얼굴에 절망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스탄다비아 영지민들은 처음 참가하는 전장임에도 누구보다 침착했다.

영지민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농사나 짓는 무지렁이가 아니었다.

이들은 새로 지급받은 강철 창을 들고 병사들과 함께 꾸준히 몬스터와 싸워 왔다.

매일 같이 실전을 경험한 그들은 누구보다 강한 강군이었다.

알리사 병사들이 흰자위를 번뜩이며 피를 탐하는 몬스터처럼 살기를 피우며 공격해 왔다.

몬스터 특유의 호전적인 공격성은 인간이 아무리 미쳐도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몬스터의 살의를 경험한 그들에게 인간의 살의는 대수롭지 않았다.

피식.

영지민들의 입에서 가벼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건 자신감의 발로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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