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첫날
“저기, 저는 아르바이트생 뽑는데요.”
“네. 아르바이트 지원하는 손주아 맞습니다.”
“그런데 꼭 어디 중요한 곳에 면접 가시는 옷차림이라… 여기는 그냥 동네 분식점인데요.”
“제 옷차림이 별로인가요? 면접이라 신경을 썼는데…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손주아가 경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경일은 자신의 말을 엉뚱하게 이해하는 손주아에게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기, 미순 씨한테 듣긴 했는데, 식당 일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네. 저도 사장님처럼 대박집 사장이 되는 게 꿈입니다.”
“아니, 대박집까지는 아니고…….”
너무 과한 칭찬에 경일은 쑥스러웠다.
“죄송해요. 그냥 대박집이 아니라 초대박집인데. 제가 긴장해서 실수했습니다.”
“저기, 그런 뜻이 아닌데…….”
자신을 대단하게 바라보는 손주아의 말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식당에서 일은 해 보셨어요?”
“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공부는 많이 했으니 실전에도 자신이 있습니다.”
“공부라면 어떤?”
“식당에 관련된 법률이라든지, 점포 임대가 중요하니 부동산 공부도 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인테리어와 식자재에 관한 공부를 했습니다.”
손주아는 진지한 어조로 경일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말을 정확히 전달하려 애썼다.
“저기, 여기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는데요. 손주아 씨가 일하기에는 여기가 너무 부족해 보이는데…….”
경일은 그녀가 분식점에서 일하기엔 너무 과분해 보여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장님 눈에 안 찰 수도 있겠지만, 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모자라는 부분은 저의 성실성으로 채우겠습니다. 그러니 꼭 일하게 해 주세요.”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저,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이거 참…….”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으로 자신을 향해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바라보다 보니 면전에서 거절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본인이 저렇게 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지.’
마음을 굳힌 경일이 입을 열었다.
“그럼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한가요?”
“저 합격인가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출근은 내일부터라도 가능합니다.”
“그럼 이틀 뒤 열한 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손주아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아르바이트생도 구했고, 이제 장사만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뒷정리를 끝내고 경일은 곧바로 던전으로 갔다.
요즘 경일은 농사와 함께 열심히 삽질 중이었다.
경일이 안주로 생각한 건 생선 관련 요리였다.
개울에는 살이 통통하고 맛있는 물고기가 널려 있었다.
횟집에 어항이 있듯이 안정적인 재료 수급을 위해 물고기를 보관할 연못을 만들었다.
이미 민물 새우를 키울 연못을 한 번 만들어 본 터라, 작업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날이 신체 능력이 강해지고 있으니, 땅 파는 것쯤은 금방이었다.
민물 새우가 머무는 연못보다 거의 다섯 배의 크기로 만들었다.
민물 새우보다 몇십 배 큰 물고기가 살 곳이니 당연히 커야 했다.
연못을 파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낙차를 이용해 만든 대나무 파이프에서 나오는 물로는 새로운 연못까지 감당하기에는 모자랐다.
농작물에도 물을 줘야 하고, 민물 새우가 자라고 있는 연못에도 물을 공급해 꾸준히 물이 흐르게 해야 했다.
“이번 기회에 물고기가 살 연못 전용으로 물길을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
경일은 계곡물을 이곳까지 보내 줄 파이프를 하나 더 설치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굳이 대나무를 이용해 만들지 않았다.
인벤토리로 물건을 옮길 수 있는데, 굳이 불편하고 수명이 짧은 대나무를 쓸 이유가 없었다.
경일은 계곡에서부터 땅을 파 파이프를 묻어 집까지 연결했다.
파이프를 통해 계곡의 물이 연못으로 쏟아져 내렸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데?”
최대한 개울과 같은 자연환경을 조성한 연못에 물이 가득 찼다.
며칠 전 개울에 놓은 통발은 성공적이었다.
씨알이 좋은 메기, 쏘가리를 필두로 각종 피라미가 잡혔다.
물고기가 잘 잡히니 통발을 놓는 재미가 쏠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못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가 헤엄쳐 다녔다.
이제 새로운 분식점을 열 준비가 모두 끝났다.
일하다 쉬고 싶으면 언제든지 정자에 가서 누웠다.
선선한 바람에 따뜻한 태양, 맑은 공기.
정자에 누워 가만히 자연을 즐기고 있으면 가슴에 충만함이 차올랐다.
던전에 오면 입가에 자연히 미소가 지어졌다.
세상에서 이곳보다 안전하고 자신을 위해 주는 곳은 없었다.
경일의 얼굴은 던전을 만난 뒤 많이 달라졌다.
이전 얼굴에는 날카로운 느낌이 존재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편하게 말을 붙일 수 있는 호감 가는 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저녁이 되자 밥을 짓고 잡은 가물치 한 마리를 구웠다.
보통은 양념을 발라 굽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생선 자체의 맛을 즐기려 소금만 살짝 뿌려 구워 냈다.
인벤토리에서 분식점에서 챙겨 온 밑반찬도 꺼냈다.
곧이어 근사한 한 상이 차려졌다.
잘 익은 가물치 살을 입안에 넣었다.
“역시 맛있어. 민물고기인데 흙냄새도 하나도 안 나고.”
힘이 좋은 물고기답게 살이 단단하고 약간 삼치 같은 맛이 났다.
“안주로 소금구이랑 양념구이를 해야겠다. 소주를 마시면 국물 요리가 딱 이니, 매운탕도 메뉴에 넣어야겠어.”
경일은 맛있게 한 끼 식사를 끝냈다.
[던전 가물치를 먹었습니다. 기력 회복에 도움을 줍니다.]
던전 가물치의 효능은 기력이었다.
“보양식으로 알려진 가물치니까 동네 사람들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
가물치는 기력 회복뿐만 아니라 산후조리에도 먹을 만큼 영양분이 뛰어난 물고기였다.
완성된 연못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뿌듯하구나!”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건 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드디어 이사하고 여는 첫 오픈 날의 아침이 밝았다.
처음 분식점을 열 때도 기뻤지만, 오늘은 좀 더 색다른 기분이었다.
“처음 오픈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 거라 그저 망하지 말자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넓어진 분식점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 만발이구나. 이번에 만든 다찌도 다들 좋아해 주겠지?”
경일은 열 시에 분식점으로 갔다.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빼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말려서 곱게 가루를 낸 민물 새우와 표고버섯을 통에 담았다.
이 두 가지 가루는 동네 분식의 육수를 책임지는 귀중한 재료였다.
각종 채소도 꺼내어 놓았다.
손질해 온 생선들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본격적인 장사 준비를 했다.
얼마 뒤, 분식점의 문이 열리고 손주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출근 시간보다 30분 먼저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 주아 씨, 빨리 오셨네요.”
“첫 출근이라 조금 일찍 왔습니다. 저 무슨 일부터 하면 돼요?”
“음~ 일단 채소부터 씻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손주아가 씩씩하게 채소를 씻기 시작했다.
세제를 듬뿍 짠 수세미로 일일이 채소를 닦았다.
“저기, 주아 씨? 채소는 세제로 씻는 게 아니라 물에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씻으면 됩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금방 배울 거라 생각했다.
분식점 일이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었고.
손주아가 채소를 씻는 동안, 경일은 매대에서 떡볶이와 어묵탕을 만들었다.
튀김 솥에 기름을 붓고 튀김 만들 준비도 끝냈다.
넓은 사각 팬에 떡볶이와 어묵탕이 맛있게 익어 갔다.
떡볶이가 맛있게 익어 갈 때쯤,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수한이가 아이들 앞에서 크게 손을 흔들었다.
새롭게 오픈 한 분식점의 첫 손님도 수한이었다.
행운의 마스코트가 품속에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아이들이 참새가 짹짹거리듯이 경일을 불러 댔다.
“우리 귀염둥이들, 어서 와.”
경일의 입에 기분 좋은 웃음이 걸렸다.
“아저씨, 난 튀김 주세요.”
“나도요. 튀김에 떡볶이 양념 발라 주세요.”
“만두는 없어요? 만두 먹고 싶은데…….”
“만두?”
경일이 물었다.
“네, 만두요. 다른 곳에서는 만두도 하던데.”
그러고 보니 만두를 메뉴에 넣을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 그러고 보니 내가 왜 만두를 생각하지 못했지? 만두까지 있어야 진정한 분식점이지. 그래, 만두도 하자. 밀가루 치대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거고, 재료 다듬는 건 이제 껌이지. 기계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다지는 게 식감 면에서도 훨씬 나을 거야. 다진 돼지고기도 듬뿍 넣어야지.’
경일의 머릿속에 만두를 만드는 과정이 지나갔다.
신체 능력이 올라갈수록 칼질이 쉬워졌다.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채소를 잘게 자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만두 속을 쉽게 만들 자신이 있으니, 만두 만드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두라~ 영빈이, 만두 먹고 싶어?”
“네. 아저씨, 만두도 해 주세요. 고기 많이 들어간 만두요.”
“그래, 아저씨가 다음에 해 줄게. 대신 오늘은 떡볶이랑 어묵 먹어.”
“진짜요? 그럼 다음에 오면 만두가 있어요?”
“그럼~ 아저씨가 맛있게 해 놓을게.”
“아저씨, 감사합니다.”
만두를 이야기했던 영빈이가 배꼽 인사를 했다.
‘어휴, 귀여워. 이러니 내가 안 해 줄 수가 없잖아.’
경일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저씨, 이거 봐요. 아빠가 사 준 칼이에요.”
호준이가 장난감 칼을 내밀며 자랑을 했다.
손잡이가 금색으로 된 칼은 만화에서 많이 봤던 디자인이었다.
“오, 멋있다. 호준이는 누구를 무찌를 거야?”
“누구를 무찌를 게 아니에요. 누구를 지킬 거냐고 물어봐야지요.”
아이는 칼을 칼집에 넣으며 제법 멋진 대사를 했다.
“하하하하!”
경일이 얼굴이 살짝 화끈거렸다.
가끔 아이들의 순수한 말에 때 묻은 자신이 부끄러워지곤 했다.
“아저씨, 여기요.”
아이 한 명이 천 원을 내밀었다.
한 명이 돈을 내밀자, 나머지 아이들도 돈을 건넸다.
경일은 아이들의 돈을 소중히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새로 오픈한 분식점에서의 첫 매상이었다.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앞 접시를 나누어 주었다.
어묵을 원하는 아이에게는 나무젓가락에 꽂아 주고,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주었다.
“아저씨, 오늘 저녁에 아빠가 인사하러 온데요.”
수한이 떡볶이를 먹으며 말했다.
“수한아, 아빠가 온다고?”
“네. 오늘 저녁에 오기로 했어요.”
그러고 보니 수한이의 옷차림이 얼마 전과 다르게 깨끗했다.
아마 집안의 힘든 일이 끝이 난듯했다.
“그래, 수한이 아빠가 오면 특별히 맛있는 거 준비해야겠네.”
“정말요?”
수한이는 아빠와의 외식이 좋은지 벌써 설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떠들면서도 잘도 먹었다.
혹시나 떡볶이 양념이 옷에 튀기라도 하면 얼른 가서 닦아 주었다.
양껏 먹은 아이들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귀중한 첫 매상을 올려 준 아이들의 머리 위로 던전 음식의 효능이 담긴 메시지가 떠올랐다.
‘많이 먹고, 건강하게 자라라.’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건강하고 활기찬 웃음소리를 듣고 나면 자신도 모르는 힘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이 동네의 아이들이 언제든지 행복했으면 했다.
손주아는 생각보다 훨씬 성실한 일꾼이었다.
“어서 오세요.”
첫날부터 많은 손님이 동네 분식을 찾았다.
지칠 만도 한데, 그녀의 밝고 씩씩한 인사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