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오늘의 안주
경일은 주방과 홀을 오가며 손주아를 슬쩍 관찰했다.
첫날부터 많은 손님이 몰려들어 살짝 걱정됐다.
처음 하는 일이라 많이 힘들 만도 할 텐데, 그녀는 들어오는 손님 자리도 잘 안내하고 항시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자신이 혼자 할 때와 다르게 손님들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아 좋은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못 보던 분인데.”
“네,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손님은 손주아의 깍듯한 인사에 당황하며 자리에 앉았다.
“저기 된장찌개 두 개 주세요.”
“네. 금방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 된장찌개 두 개요.”
“네.”
경일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장님, 순두부찌개 세 개요.”
“사장님, 비빔밥 하나랑 김치찌개 두 개요.”
“사장님, 순두부찌개 두 개 추가요.”
“사장님, 김밥 두 줄에 라면 하나요.”
저번 가게보다 훨씬 많은 주문이 밀려들었지만, 음식 나오는 속도는 거의 비슷했다.
거의 세 배가 넘는 주문을 빠르게 쳐낼 수 있던 건, 화구의 숫자 때문이었다.
여덟 개의 화구에서 손님들이 주문한 각종 찌개가 끓고 있었다.
이전 가게보다 화구가 네 배로 늘어났지만, 경일의 움직임은 거침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주방을 이용한 사람처럼 움직였다.
늘어난 신체 능력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밀려드는 주문에도 전혀 실수가 없었고, 오히려 약간의 여유마저 느껴졌다.
음식이 나오면 손주아가 재빨리 손님에게 서빙 했다.
뜨거운 찌개류가 많은데도 그녀는 서툴지만,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하려는 게 중요하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정도 열의면 금방 일을 배우겠어. 손님들도 내가 서빙 할 때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고.’
넓은 홀에 손님이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손주아는 고군분투 중이었다.
“주아 씨, 괜찮아요? 너무 힘들면 잠시 쉬었다 하세요.”
경일이 요리하는 중간중간에도 그녀의 일을 돕고 있지만, 첫날부터 손님이 너무 많았다.
“아니에요, 사장님. 저 잘할 수 있어요.”
손주아는 기합을 넣고서는 열심히 홀을 누비고 다녔다.
“사장님, 축하드려요. 1년도 안 된 거 같은데, 대단하시네요.”
단골들이 하나같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다들 축하를 해 주는 게 동네 잔칫집 같았다.
경일은 오픈 선물로 수건을 건넸다.
“잘 먹고 갑니다.”
손님들이 만족하며 돌아가는 모습이 식당을 하는 사람에겐 가장 큰 긍지였다.
손주아가 손님 테이블에 된장찌개를 나르다 실수하는 바람에 뜨거운 된장찌개 국물이 손님 바지에 튀었다.
“앗, 뜨거워.”
“어머, 손님. 죄송합니다!”
당황한 그녀가 얼른 행주를 가져다가 손님 바지를 닦으려 했다.
놀라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표정을 본 남자 손님이 자신의 바지를 닦으려는 손주아의 손에서 행주를 낚아채고 자신이 열심히 닦았다.
“제가 너무 큰소리를 냈죠. 죄송합니다. 별거도 아닌 일에 호들갑이나 떨고. 사실 하나도 안 뜨겁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서툴러서. 세탁비는 물어 드리겠습니다.”
“아닙에요. 이거 작업복이에요. 보세요. 된장찌개가 튀어도 하나도 티가 안 나잖아요. 하하하.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세요.”
“이거 죄송해서…….”
“아닙니다. 대신 오래오래 여기서 일해 주세요. 더 자주 밥 먹으러 오겠습니다, 하하하!”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본심이 튀어나왔다.
“그럼요. 무조건 열심히 오래 할 생각입니다.”
경일은 손님의 놀란 목소리에 급하게 주방에서 나오다 손님의 반응을 보고 도로 들어갔다.
‘사람이 워낙 예쁘고, 싹싹하니 손님도 그녀의 밝은 에너지에 빠져드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 드문 사람인 건 확실하네. 그런데 만약 내가 실수했으면 손님이 저렇게 친절하지는 않았겠지? 쩝.’
유난히 손주아에게 친절한 단골을 보니 부러우면서 살짝 시기심도 났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손주아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손님이 많아서 적응하기 힘들어 그런 거예요. 점점 나아질 겁니다. 그리고 주아 씨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네?”
“제 생각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네.”
첫날부터 실수해서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오히려 격려해 주는 경일의 말에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 있었지만, 잘하고 있다는 말에 이후로도 열심히 했다.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졌지만, 화를 내는 손님들은 없었다.
오히려 격려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 손님들은 다들 사람들이 너무 좋구나.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어 다행이야.”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분식점이 화사해졌다.
저녁이 되자 이길호가 수한이를 데리고 왔다.
한 손은 아들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작은 화분을 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손주아가 빠르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아,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 거기 말고 다찌에 앉아도 됩니까?”
“네, 그럼요.”
이길호가 수한이를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한참 음식을 만들던 경일은 이길호가 온 걸 보고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수한이 아버님.”
“축하드립니다. 여기 오픈 선물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고.”
“아닙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죠. 이번에 집안에 일이 있어 아들에게 소홀했는데, 사장님이 대신 신경을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덕에 아들이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동네에 사장님 같은 분이 들어온 건, 우리 모두에게 축복입니다. 사장님이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한 이후로 동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확실히 늘었습니다. 희한하게 우리 아들이 여기서 음식을 먹고 나서부터는 잔병치레도 한 번 안 하고, 피부도 뽀얗게 올라오고 해서 너무 좋습니다. 키도 부쩍 컸고요. 이게 다 사장님의 선한 마음씨 때문인 거 같습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제가 오히려 아이들 웃음소리에 힘을 얻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이쿠, 이럴 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길호가 깊숙이 고개를 숙이자 경일이 얼른 그를 잡아 일으켰다.
“수한이 배고플 건데, 얼른 자리에 앉으세요.”
경일의 말에 이길호는 아들을 안아 자리에 앉히고는 자신도 앉았다.
“사장님 이건 뭔가요? 오늘의 안주?”
이길호가 메뉴판에 새롭게 적힌 것을 보고 물었다.
“이번에 가게 확장하면서 손님들이 간단하게 한잔할 수 있는 안주를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에서 본 건데, 손님들이 한잔하면서 식당 주인이랑 대화도 하더라고요. 저도 이런 걸 한 번 해 보고 싶었거든요. 아직 확정된 안주가 없어 그날그날 시장의 상황에 따라 만들어 드립니다. 오늘의 안주는 쏘가리 매운탕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쏘가리 매운탕이 이만 원이라니, 너무 싼 거 아닙니까? 이렇게 장사하다 망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다 남으니 하는 거죠. 일단 한 번 드셔 보세요. 그럭저럭 먹을 만할 겁니다.”
“아, 네. 그럼 저는 그걸 주시고. 아들은 뭐 먹을래?”
“아빠, 나는 김밥 먹을래요.”
“김밥? 맛있는 거 많은데 다른 거 먹지?”
이길호는 그동안 아들에게 신경을 못 써 준 게 미안해서 더 좋은 걸 먹이고 싶었다.
“아니에요. 낮에 떡볶이랑 어묵이랑 튀김도 먹어서 저녁은 김밥 먹을래요.”
“그래. 사장님 김밥도 하나 부탁드립니다.”
“네.”
경일은 냉장고를 열어 던전에서 미리 손질해 온 쏘가리를 꺼냈다.
오늘은 오늘의 안주로 쏘가리 소금구이를 하려 했는데, 얼큰한 걸 좋아하는 이길호의 식성에 맞추어 매운탕을 하기로 했다.
던전에서 3일 전 손질한 쏘가리지만, 갓 잡은 듯 신선했다.
인벤토리는 신기하게도 시간이 멈춘 세상이었다.
물건을 넣는 순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처음 넣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나왔다.
혹시 생명이 있는 것도 수납 가능한지 실험해 봤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냄비에 미리 적당히 끓여 둔 물을 붓고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나박하게 썬 무를 넣었다.
민물 새우 가루와 표고버섯 가루를 넣고 지구의 맛인 다시다를 국물에 살짝 풀었다.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다.
화구의 강한 화력에 물은 금방 끓어올랐다.
잘 손질된 쏘가리를 넣고 미리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풀었다.
던전의 재료와 지구의 재료가 적절히 만난 쏘가리 매운탕이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어 갔다.
쏘가리 뼈가 고아지며 국물에 구수하고 묵직한 맛이 녹아들었다.
좀 더 깔끔한 맛을 위해 매운탕의 거품을 깨끗이 걷어 냈다.
마지막으로 두부와 파, 썰어 논 깻잎을 넣고 간 마늘 한 숟가락을 넣었다.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한 청양고추도 잊지 않고 넣었다.
경일은 부루스타를 다찌에 올리고 그 위에 매운탕을 올려놓았다.
몇 가지 밑반찬과 함께 근사한 술안주가 완성되었다.
수한이를 위한 김밥도 순식간에 말아 아이의 앞에 놓아 두었다.
“와우~”
“우와~”
이길호와 수한이의 입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수한이는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무리 수한이를 신경 쓴다고 해도 바깥일과 집안일에 환자까지 돌봐야 하는 이길호가 집에서는 이런 푸짐한 상을 차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사장님, 끝내주는데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이렇게 푸짐한데 겨우 이만 원이라니. 믿을 수가 없네요.”
손님들도 쏘가리 매운탕 냄새에 끌려 다찌로 다가왔다.
“우와! 사장님, 이거 뭐예요? 메뉴에 이런 것도 있었나요?”
“오늘의 술안주입니다. 이번에 가게를 확장 이전하면서 준비했습니다.”
“어머, 냄새가 끝내주는데요? 아, 괜히 밥 먹었네. 사장님, 혹시 포장도 되나요?”
“그럼요. 포장해 드립니다. 하나 포장해 드릴까요?”
“네!”
“사장님, 제 것도 부탁합시다.”
“사장님, 나도 하나 싸 주세요.”
순식간에 쏘가리 매운탕 주문이 다섯 개나 들어왔다.
경일은 다섯 개의 냄비를 올리고 한꺼번에 매운탕을 만들었다.
타타타타탁!
도마 위에 채소가 빠르게 썰려 나갔다.
이길호는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대단하네. 일반인이 저 정도로 빠르게 칼질을 할 수 있다니. 아직 서른 살은 안 넘어 보이는데. TV에서 본 요리의 대가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써는구나. 만약 채소 써는 대회가 있으면 사장님이 일등 하겠는데.’
이길호는 실없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웃겼든지 피식하고 한 번 웃었다.
그때, 부루스타 위에 쏘가리 매운탕이 맛있는 소리를 냈다.
그는 우선 국물부터 한 숟갈 떠서 먹었다.
“어?”
이길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빠, 왜 그래요?”
수한이가 이길호의 놀란 표정을 보고 물었다.
“아니… 이게 너무 맛있어서 그래. 수한이도 먹어 볼래? 아, 수한이가 먹기엔 너무 매우려나?”
“아빠, 나도 매운 거 잘 먹어요.”
기대감이 가득한 수한이의 눈을 보자 이길호가 쏘가리의 큼직한 살과 함께 앞 접시에 국물을 떠 주었다.
“국물이 매울 수도 있으니까 생선 살 위주로 먹어.”
“네.”
수한이는 먹던 김밥을 내려 두고 포크로 생선 살을 찍어 입에 넣었다.
“우와! 아빠, 생선 살이 쫄깃해요. 무슨 고기 같아요!”
“맛있어?”
“네, 엄청 맛있어요.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에 제일 맛있어요.”
“그래, 많이 먹어. 아빠가 한동안 신경 못 써 줘서 힘들었지. 아빠가 미안해.”
“아니에요. 엄마가 아파서 그런 건데.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옛날처럼 배고프지도 않았어요.”
수한이가 똑소리 나게 대답을 했다.
이길호는 그런 아들이 대견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잘못으로 어린 아들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가는 거 같아 쓸쓸하기도 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