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작업의 시작
신화 길드 곽마권과 대복 길드 손필견은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였다.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이들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남다르다고, 이 둘은 나름 어릴 때부터 유명세를 떨쳤다.
그 유명세가 악명이라 문제이긴 해도, 하여간 나름 이 동네에서 제법 설치고 다녔다.
뱀처럼 집요하고 서서히 사람의 피를 말리는 것이 특기인 곽마권과 눈이 돌면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저돌적인 손필견은 서로의 성격이 극과 극으로 달랐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잘 어울려 다녔는지도 몰랐다.
온갖 양아치 짓을 하고 다니며 소년원을 들락거리던 이들의 인생이 달라진 건 헌터로서 각성을 하면서였다.
하는 짓은 사회의 해충인데, 모든 복이 이들에게 쏠린 듯했다.
주위 사람들이 한탄했으나, 원래 불공평한 게 인생 아니겠는가.
그들은 남들보다 빠르게 헌터로서 성장해 나갔다.
피와 뼈를 가르는 헌터의 세계는 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놀이터였다.
사회가 어려워질수록 헌터들의 권력은 점점 강화되었고, 그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이 중요했지, 남의 아픔 따위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걸리적거리는 것은 모두 치워 버렸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잔인한 테러를 가했다.
이들의 악명이 높아질수록 그들의 위치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런 그들이 갈라지게 된 이유는 한 명의 여자 때문이었다.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그들에게 한 명의 여자가 나타났고, 둘 다 반해 버렸다.
서로 친구 사이이기도 했지만, 라이벌이기도 한 그들은 절대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여자의 마음은 그들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다.
서로에게 지기 싫어서라도 그 여자를 꼭 차지해야 했다.
승자는 곽마권이었다.
그는 그의 성격답게 뒤에서 수작을 꾸몄다.
여자의 아버지에게 사기를 쳤고, 여자는 어쩔 수 없이 곽마권의 품으로 들어갔다.
처음 손필견은 곽마권이 한 작업을 모르고 있었다.
분했지만 어쩔 수 없이 패배를 억지로 삼켜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곽마권이 뒤에서 한 짓을 알게 되고, 그는 눈이 뒤집혔다.
그런 그가 곽마권의 여동생을 강간했다.
그 뒤로 그들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곽마권과 손필견은 서로를 죽이고자 노력했다.
둘 중에 한 명이 세력을 만들면 나머지 한 명도 세력을 만들었고, 둘은 그렇게 경쟁하며 성장했다.
얄궂게도 그들은 헌터로서의 재능도 비슷했다.
비슷한 레벨의 헌터로서 성장했고, 비슷한 규모의 길드를 키워 냈다.
“손필견만 못 움직이게 한다면 벵갈 길드를 먹는 건 일도 아니야!”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손필견한데 아끼는 애첩이 있어. 그 애를 좀 이용할 생각이야. 지시는 내가 할 테니, 부길드장이 작업을 좀 해야겠어. 그리고 1팀장은 벵갈 길드랑 한판 붙어야 하니까, 애들 관리 잘하고 있고. 둘 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둘은 짧게 대답했다.
곽마권은 경일을 찾는 일을 잠시 멈추고 일단 길드 재건부터 실행했다.
경일을 찾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무너질 판이었다.
작전은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이성호는 20대 초반의 여자와 만나고 있었다.
작은 키에 비해 비율 좋은 몸매, 눈꼬리가 올라간 고양이상의 예쁜 얼굴이었다.
남자를 미치게 하는 무언가를 가진 여자였다.
‘색기가 아주 넘치는구나. 손필견이 반할 만하네. 어휴~ 이거 여기 오래 있다간 내가 넘어가겠어.’
이성호는 마음을 다잡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전화로 말했듯이 그렇게만 해 주시면 됩니다.”
“정말요? 손 아저씨랑 보름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만 하면 화이트 트롤 가죽으로 만든 버킨백을 사 주는 거죠?”
화이트 트롤의 가죽으로 만든 제품은 여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무나 구매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가격이기도 했지만, 이게 또 돈만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그런 물건이 아니었다.
화이트 트롤의 가죽도 워낙 귀하기도 했고, 최고급 장인이 수제로 제작하기 때문에 생산되는 수량도 한계가 있었다.
이 백을 사려면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최소한 몇 억 이상 구매한 실적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럼요. 사실 이미 사 두었습니다.”
이성호는 가방을 찍은 사진을 보 여주었다.
“어머, 어머, 너무 예쁘다! 아가, 내가 얼른 널 데리러 갈 테니 조금만 참아 줘.”
그녀의 눈이 탐욕으로 불타올랐다.
‘이런 거 보면 하늘이 공평하긴 하네. 저렇게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뇌가 우동사리군. 아무리 화이트 트롤 가방이 가지고 싶다고 하지만, 처음 보는 내 요구를 이렇게 쉽게 수락하다니.’
“조건은 아시죠?”
“그럼요.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여행 중에 손 아저씨가 전화를 못 받게 하면 된다는 거잖아요. 그런 건 간단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행 갔다 왔는데도 백 안 주시면 손 아저씨한테 말할 거예요.”
‘어이쿠, 이 멍청한 아가씨야. 그걸 말하는 순간 아가씨도 죽어. 하긴, 그런 걸 알 정도면 이런 수상한 거래에 응하지도 않았겠지. 가방을 안 줄 생각이었는데, 입을 막으려면 줘야겠군. 너무 멍청해서 좋은 점도 있는데, 이런 건 또 안 좋네.’
“그럼요. 조건만 확실히 이행해 주시면 됩니다. 대신 일은 확실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한 가지라도 이행이 안 되면 계약은 취소됩니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우리 아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녀는 두 손을 가슴 앞으로 올리고 두 주먹을 쥐었다.
커다란 가슴에 비해 그녀의 주먹은 참 앙증맞았다.
일주일 뒤, 그녀로부터 손필견과 보름간 해외여행을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하하하하! 역시 부길드장이 생긴 것처럼 이런 뒷공작은 참 잘한단 말이야.”
곽마권은 기분 좋게 웃었다.
‘저게 칭찬이야? 욕이지. 하여간 사람 엿 먹이는 것도 가만 보면 아주 타고났어.’
이성호는 입맛이 썼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군. 암시장에 보낼 놈은 준비해 놨지?”
“네. 길드장님 지시만 떨어지면 지금이라도 바로 출동 가능합니다.”
“쇠뿔도 단번에 뽑으라 했으니, 오늘 저녁에 보내.”
“네, 알겠습니다.”
이성호는 인사를 하고 길드장실을 나왔다.
단정해 보이는 옷차림의 남자가 부민 암시장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게 옷을 입긴 했지만, 유행에 뒤떨어진 디자인의 옷과 머리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좀 맹해 보였다.
남자는 신화 길드 5팀 소속 헌터 백준수였다.
‘이건 너무 촌스럽잖아. 얼른 일 끝내고 옷부터 갈아입어야겠어. 그래도 오래간만에 재밌는 일에 투입되니 좀 설레기는 하네.’
백준수는 멍청해 보이는 얼굴로 벵갈 길드가 관리하는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허 사장이 웃으며 백준수를 맞았다.
“저기, 찾는 물건이 있는 건 아니고요. 혹시 여기서 물건을 사기도 하나요?”
허 사장은 백준수의 어리숙한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부민 암시장은 호구를 등쳐 먹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그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손님이 가져온 물건의 가격을 후려쳤다.
특히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수법은 주로 협박이었다.
“네, 그럼요. 어떤 물건인지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네.”
백준수는 착한 어린이처럼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꺼낸 건, 검이었다.
심플한 디자인의 검이지만, 칼집의 재질이나 풍기는 느낌이 고급스러웠다.
허 사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오래간만에 건수 하나 올리겠는걸. 딱 봐도 고급스러운 게 보통 물건이 아닌 거 같은데.’
기대감을 숨기고 백준수에게 물었다.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공손히 묻는 허 사장에게 백준수는 검을 내밀었다.
칼집에서 검을 빼자 날카로운 예기가 번뜩였다.
순간, 알 수 없는 뭔가가 자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뺨이 따끔거렸다.
‘이거… 어떻게 이런 물건이. 이 암시장이 생기고 나서 본 가장 좋은 물건이 될 거 같은데?’
허 사장은 칼날을 이리저리 살폈다.
손잡이 바로 윗부분의 칼등에 작은 직인이 음각되어 있었다.
‘이건, 백건우 장인이 만든 거잖아! 귀한 물건인 건 알았지만, 이건 초대박이야!’
허 사장은 삐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고 얼굴 근육이 다 당길 지경이었다.
백건우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장장이 중 한 명이었다.
주문이 워낙 많이 밀려 있어서 오늘 주문해도 3년 뒤에나 수령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흠흠.”
그는 간단한 헛기침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혹시 생각하시는 가격이 있으세요?”
“아뇨. 제가 검을 잘 볼 줄 몰라서. 얼마까지 가능한가요?”
백준수는 어눌한 말투로 물었다.
그의 간절한 눈빛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대박! 이건 완전 호구 중에 상호구잖아. 나에게 이런 축복이 내려오다니.’
어젯밤 꿈자리가 안 좋아서 흉몽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최고의 길몽이었다.
“음~”
허 사장은 신중하게 검을 살피는 척을 했다.
이미 백건우의 직인이 들어 있으니 진품 여부만 확인하면 됐다.
이 검의 가치는 금방 알 수 있었으나, 그는 일부러 딴청을 부렸다.
“일단 쓰인 금속은 미스릴 같은데, 함유량을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감정하는 동안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 네. 잘 부탁드려요.”
부탁은 허 사장이 해야 할 판인데, 백준수가 오히려 부탁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남겨 먹을 수 있겠어. 어젯밤 할아버지가 꿈에 나오더니, 이런 행운을 주려고 했던 거야? 매일 술 먹고 행패만 부리다가 죽은 양반이 그래도 양심은 좀 있나 보네.’
허 사장은 웃음을 감추며 칼의 감정을 맡겼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칼의 무게는 1.4㎏, 재질은 100% 미스릴이었다.
백건우 장인이 만든 진품이 맞았다.
‘하하하하! 이건 잘하면 일 년 치 이익을 하루 만에 올릴 수 있겠는걸? 아니지, 이 정도면 삼 년 치도 넘겠다.’
결과를 확인한 허 사장의 손이 살짝 떨려 왔다.
그는 얼굴의 웃음기를 지우고 백건우에게 갔다.
백준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쯧쯧, 아주 팔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네. 급한 모양인데 내가 바로 사 주지. 대신 가격은 내가 책임 못 져. 킥킥킥!’
그 모습에 허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손님, 결과가 나왔습니다. 좋은 소식 한 가지와 안 좋은 소식 한 가지가 있습니다.”
“네? 안 좋은 소식이요?”
백준수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래도 좋은 소식도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요. 일단 좋은 소식은 검의 재질이 100% 미스릴이란 겁니다.”
허 사장의 말에 백건우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나쁜 소식은 좋은 재료에 비해 칼을 만든 대장장이의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는 겁니다. 안타깝지만, 미스릴이란 귀한 재료를 똥통에 빠뜨린 거나 다름없습니다.”
허 사장의 말 한마디에 따라 백준수의 표정이 요동쳤다.
미스릴은 던전 금속으로 헌터들의 무기와 갑옷을 만드는데 최고의 재료로 알려져 있다.
같은 힘으로 몬스터를 베었을 때 가해지는 피해는 지구의 어떤 금속도 쫓아가질 못할 만큼 월등한 수준이었다.
‘감정을 이렇게 읽기 쉬운 놈도 오래간만이네. 이건 포커 칠 때 자신의 패를 모두 오픈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허 사장은 웃고 싶은데 도리어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하니, 얼굴에 경련이 일 지경이었다.
“저기 그럼 얼, 얼마까지 가능합니까?”
백준수가 당황하며 살짝 말을 더듬었다.
“음~”
허 사장은 살짝 한 템포 쉬고 인심 쓰듯 말했다.
“뭐, 미스릴 시세는 손님도 잘 아실 거고. 검은 재가공이 필요해 보입니다. 녹여서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 가격이 좀 많이 내려가겠네요.”
“네?”
백준수가 조금 전보다 심하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입술에서 살짝 피가 보였다.
미스릴은 묘한 성질이 하나 있었다.
강철은 녹여서 계속 재가공해도 성능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미스릴은 재가공할 경우 마나를 받아들이는 기존의 효능이 크게 떨어졌다.
안 그래도 던전에서 나오는 미스릴의 양이 많지 않은데, 재활용이 힘들다는 점과 수명이 정해져 있어 미스릴의 품귀 현상이 더욱 크게 일어났다.
“그럼 얼마입니까?”
“오천만 원 드리지요. 우리도 이걸 재가공하는 비용이랑 이거 저거 따지면 오천만 원이 한계입니다.”
“휴~”
무거운 탄식이 백준수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생각한 거보다 가격이 너무 낮네요. 감정해 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그냥 가지고 있어야겠네요. 검 돌려 주세요.”
허 사장의 여유롭던 표정이 빙판이 갈라지듯 금이 갔다.
그와 함께 가게 입구에서 우락부락한 덩치의 남자 세 명이 들이닥쳤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