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작업
“뭐? 돌려 달라고? 장난해? 우리는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알아? 감정이 장난이야? 감정하는데 든 장비 사용료랑 전문가의 인건비는 누가 주냐고? 엉?”
세 명의 남자가 백준수를 둘러싸고 윽박질렀다.
“아니, 왜 그러세요. 감정비 드리면 되잖아요.”
험악한 분위기에 몸이 한껏 움츠러든 백준수가 마지못해 말했다.
“이천만 원.”
“네?”
감정비를 들은 백준수의 눈이 확 커졌다.
“아니, 무슨 감정비가 이천만 원이에요? 이건 말도 안 되잖아요!”
“우리 쪽 전문가가 이쪽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분이거든. 그러니 당연히 비싸지. 사람마다 인건비가 다른 건 상식이잖아. 그래도 여기는 양심적인 가게라 사장이 따로 한 푼도 안 먹어. 우리도 바쁘니까 얼른 계산하자고.”
“아니, 지금 당장 그런 큰돈이 어디 있다고.”
“그건 손님 사정이고. 당신 물건을 감정했으니 감정값 내놓으라고. 아, 씨발. 짜증 나게 같은 말 계속하게 만들지 말자.”
남자 한 명이 거칠게 윽박질렀다.
그가 강하게 째려보자 백준수는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이쪽저쪽으로 곁눈질하기 바빴다.
“아니면 오천에 검 팔면 되잖아. 그럼 서로 얼굴 찌푸릴 일도 없고 말이야. 안 그래?”
세 명의 남자가 백준수에게 바짝 다가갔다.
남자들의 툭 튀어나온 배가 그를 압박했다.
“그럼… 오천만 원에 팔게요.”
험악한 분위기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백준수는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그래, 좋은 결정이야. 이로써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잖아.”
세 명의 남자가 만족한 듯 웃으며 백준수와 거리를 벌렸다.
허 사장이 돈이 든 가방을 건네자, 액수도 확인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가게를 나갔다.
나가는 백준수의 발걸음에 많은 미련이 남아 있었다.
“푸하하하! 이건 못 해도 최소 15억은 받을 수 있어. 도대체 몇 배 장사를 한 거야. 이 맛에 내가 여기를 못 떠난다니까.”
허 사장이 크게 웃었다.
기분이 무척 좋은지 그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허 사장, 우리 몫 잊지 말라고.”
세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럼요. 물건을 처분하는 대로 관례에 따라 벵갈 길드에 입금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해.”
세 명이 남자는 곧 자리를 떴다.
고개를 떨군 채 한숨을 푹푹 쉬고 걸어가던 백준수가 시장을 벗어나자마자 어깨를 펴고 자신 있게 걷기 시작했다.
상점에서의 찌질 하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부길드장님. 미끼를 물었습니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에 뵙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이 사실을 이성호에게 보고했다.
부민 암시장이 문을 닫을 무렵, 일련의 무리가 허 사장의 가게에 들이닥쳤다.
1팀장 문태범과 그의 팀원이었다.
“사장 새끼 어딨어! 당장 튀어나와!”
가게 안을 울리는 큰소리에 허 사장이 놀라며 뛰쳐나왔다.
“제가 여기 사장입니다만, 누구십니까?”
“나? 검 주인. 네놈이 오늘 낮에 뺏어 간 검의 원주인!”
일순간 허 사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험악한 분위기에도 그는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날카롭게 주시했다.
여기서 장사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은 허다하게 일어났다.
일이 일어날 때마다 겁을 먹었으면 애당초 이곳 암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난 물건을 뺏어간 적이 없습니다. 분명 금액을 제시했고, 손님도 승낙했습니다. 우리는 거래를 했을 뿐입니다.”
“허~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나도 네놈이 말하는 거래를 한 번 해 볼까?”
문태범이 옆에 있던 팀원의 검을 허 사장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자, 우리도 거래를 한 번 해 보자고. 그 검 얼마 줄 거야?”
평범한 강철로 만든 검이었다.
“20만 원 드리겠습니다.”
허 사장이 침착하게 검을 보고서 말했다.
“이런 개씨발 놈이. 최고의 장인인 백건우가 만든 건데, 겨우 20만 원을 준다고? 장난해?”
문태범이 기세를 피워 올리며 허 사장을 압박했다.
‘이런, 보통 헌터가 아니잖아.’
온몸이 바늘에 찔리는 듯한 착각에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젯밤 꿈이 길몽인 줄 알았는데… 제기랄, 영감탱이가 죽어서도 나를 괴롭히다니.’
잠자는 범의 꼬리를 밟은 거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밀려들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백건우 장인이 강철로 된 검을 만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시는 분들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우리 뒤에 벵갈 길드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좋게 해결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쫘악!
소리와 함께 허 사장이 바닥을 뒹굴었다.
문태범이 그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이 새끼가 겁도 없이 내 검을 뺏어 간 것도 모자라 나를 협박해? 죽고 싶어?”
문태범의 목소리가 가게 밖에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시장이 닫는 시간이라 거리가 한산했다.
그런 만큼 그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허 사장의 가게에 이상이 생긴 걸 눈치챈 다른 상인이 얼른 벵갈 길드에 연락을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벵갈 길드 헌터 몇 명이 허 사장의 가게 안으로 들이닥쳤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야!”
가게를 들어오며 소리친 남자는 오늘 백준수를 협박했던 남자 중의 한 명이었다.
“너야? 내 동생을 협박한 놈이?”
문태범이 기세를 일으키며 남자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자신만만했던 남자가 겁을 집어먹는 건 금방이었다.
신화 길드에서 무력으로 넘버 투인 문태범을 벵갈 길드의 일반 헌터가 상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저기 그게 아, 아니라 잠…….”
남자는 말을 끝까지 잊지 못했다.
문태범은 다혈질인 그의 성격답게 말로 하지 않았다.
곧바로 주먹으로 남자의 턱을 올려쳤다.
순간, 남자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굉장한 힘이었다.
남자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머리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음조차 없었다.
턱에 주먹이 꽂혔을 때, 이미 기절한 듯했다.
입에서 피와 함께 게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뿌리째 뽑혀 바닥을 뒹구는 이빨을 보고 만족한 듯 웃음을 지었다.
벵갈 길드 헌터들은 문태범에게 제대로 겁을 먹었다.
그들은 곧바로 가게를 뛰쳐나가 전화를 걸었다.
문태범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느긋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애피타이저를 먹었으니 이제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될 터였다.
오래간만에 길드와의 싸움이라, 그는 가벼운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얼마 후, 암시장으로 달려온 벵갈 길드 헌터들이 순식간에 허 사장의 가게를 에워쌌다.
“어떤 놈이 감히 벵갈 길드의 구역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정체를 밝혀라!”
벵갈 길드의 1팀장인 엄덕구가 가게를 향해 소리 질렀다.
“이제 나가 볼까.”
문태범이 천천히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벵갈 길드 헌터들을 살폈다.
강렬한 흥분과 살기가 뒤섞인 눈빛으로 벵갈 길드 헌터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바닥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조금 전 큰소리치던 엄덕구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엄덕구의 직감이 강하게 경고를 보냈다.
그는 긴장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물었다.
“나? 난 내 검을 찾으러 왔는데. 내 철없는 동생이 유흥비 한다고 내 검을 들고 나갔더라고. 그런데 네놈들이 아주 제대로 삼켰더라? 동생을 협박하고 뭐, 거의 검을 강탈했더군. 형으로서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겠어?”
문태범이 여유롭게 웃었다.
그에 반해 엄덕구의 얼굴에 서린 그늘은 더욱 짙어졌다.
“검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그만하시죠.”
엄덕구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들이 힘으로 백준수의 검을 강탈했듯이 힘이 약한 자신들은 문태범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씁, 장난해? 강도질한 놈이 물건 내줄 테니 그만하자고 하면 끝이야?”
“오천만 원은 받지 않겠습니다. 합의금으로 생각하시고 여기서 끝냅시다. 서로 싸워서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네놈들에게 협박을 당해 동생이 정신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았어. 한동안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지경이라고. 마음의 상처가 평생 갈 건데, 그걸 겨우 오천으로 퉁 치자고? 내가 오천만 원 줄 테니, 네 동생 데리고 와 봐. 평생 정신병원에 살게 만들어 줄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괜한 억지 부리지 마시죠.”
“억지? 하~ 이 어이없는 새끼들. 너희가 백건우 장인이 만든 내 검을 억지를 부려 삼킨 건 괜찮고?”
“이러지 마시죠. 우리 뒤에는 대복 길드가 있습니다. 여기서 접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엄덕구가 대복 길드의 이름을 들먹이며 부탁을 가장한 협박을 했다.
“하~ 이런 씨벌놈이 계속해서 협박질이네. 그래, 오늘 한번 죽어 보자. 과연 누가 죽을지는 하늘만이 알겠지. 쳐라.”
문태범의 명령에 1팀원들이 벵갈 길드 헌터들에게 뛰어들었다.
“이런!”
대복 길드의 이름까지 팔았는데, 싸움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벵갈 길드 헌터들은 대응이 늦었다.
이미 기세가 넘어간 것도 있고, 실력 면에서도 대복 길드와 같은 급인 신화 길드의 헌터들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대복 길드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엄덕구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하지만 대복 길드의 이름이 이들에게 먹히지 않는 이상,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아악!”
“아아악!”
“살려 줘!”
벵갈 길드 헌터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뭐하냐? 나도 손맛 좀 보게 덤벼.”
문태범이 엄덕구를 향해 손짓했다.
“제기랄!”
이 정도의 실력자가 동원된 거로 봐서는 이것이 함정이란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자신의 팀원들이 맞고 있는데, 팀장인 자신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야압!”
엄덕구의 검이 빠르게 문태범의 심장을 노리고 쇄도했다.
챙!
검은 얼마 가지 않아 여지없이 막혀 버렸다.
“이런, 이거밖에 안 돼? 벵갈 길드 1팀장이란 놈의 실력이 겨우 이러면 실망인데.”
문태범이 실실 웃으며 엄덕구를 약 올렸다.
‘내 정체를 정확히 아는 거로 봐서는 역시 이놈들은 우리를 노리고 왔어. 우리 같은 작은 길드를 삼켜 봐야 별로 득이 될 것도 없는데, 이유가 뭐지? 소속 헌터들이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고, 이곳 암시장에서 나오는 수익이 큰 것도 아닌데. 누굴까? 대복 길드의 이름을 듣고도 무시할 수 있는 세력이라면… 설마? 신화 길드! 그래, 이 동네에서 대복 길드의 이름에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건 신화 길드밖에 없어.’
엄덕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들의 정체가 신화 길드라면 이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지 생각해야 했다.
그가 선택한 건 항복이었다.
괜히 끝까지 싸우다가 병신이라도 되면 자신만 손해였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자신들은 새우였다.
괜히 두 고래 간의 힘 싸움에 끼어들어 봤자, 척추만 부러질 게 빤했다.
“항복합니다. 무조건 항복합니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그에 따르겠습니다.”
엄덕구는 곧바로 무기를 던지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발 빠른 선택에 문태범은 김이 빠졌다.
“뭐야,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진짜 안 싸운다고? 나 참.”
문태범은 혀를 차고 무기를 집어넣었다.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야, 내 검 가져와.”
“네.”
벵갈 길드 헌터 한 명이 잽싸게 가게로 들어가더니 미스릴 검을 가지고 왔다.
“부길드장, 다음은 어디지?”
문태범은 자연스럽게 아랫사람 대하듯 이성호를 불렀다.
‘씨발, 사람들 앞에서 쪽팔리게. 내가 지나가는 동네 똥개도 아니고.’
이성호는 투덜거리며 엄덕구에게 다가갔다.
“야, 너. 길드장에게 전화 걸어. 여기 너희 인질로 잡혔다고, 30분 안에 튀어 오라고 해. 만약 30분 안에 안 오면 모두 죽을 거야.”
“네, 네, 네!”
겁을 먹은 엄덕구가 곧바로 길드장에게 전화를 했다.
“길드장님…….”
벵갈 길드 길드장 김일제는 엄덕구의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그는 곧바로 자신들의 뒤를 봐주는 대복 길드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고는 남은 길드원들을 모두 이끌고 곧바로 암시장으로 향했다.
약 스무 명의 벵갈 길드 헌터들이 암시장의 뒤편에 있는 공터에서 신화 길드의 헌터들과 대치했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기어 들어온 거야? 죽고 싶어?”
김일제가 신화 길드 헌터들을 향해 기세를 피워 올리며 압박했다.
“하하하!”
그때, 누군가가 호탕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곽마권이었다.
“자기 집 앞마당이라고 제법 신이 났네, 신이 났어. 개새끼도 안 되는 놈이 말이야.”
그 모습을 본 김일제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아니, 당신은 신화 길드 길드장 곽마권… 이게 무슨 짓이냐! 지금 우리와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야?”
“전쟁은 너희가 먼저 시작했잖아. 우리 1팀장 동생을 협박해 검을 뺏은 것도 모자라 우리 헌터들을 치려고 이놈들을 보내지 않았느냐?”
곽마권이 가리킨 곳에는 엄덕구를 비롯한 그의 팀원들이 얌전하게 꿇어앉아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