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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76화 (76/300)

[76화] 인생이 쉬웠지?

“씨발, 죽고 싶어?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우리를 따라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금발은 김만복을 떼어 놓고는 자신들의 일행만 데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김만복은 그들이 숲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휑한 눈으로 보고 있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뜻밖에 가장 먼저 적응한 사람은 주폭이었다.

그는 양아치들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곡괭이 하나를 들고 광산으로 갔다.

광산에서 감도는 불길함에 정신이 함몰될 거 같았지만, 그는 용기를 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의 절실함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밖에서 본 광산은 어두웠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오자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바깥이 훨씬 밝아 이곳이 어둡게 보인 것이었다.

깡깡깡깡!

그는 군데군데 보이는 파란빛이 감도는 벽을 곡괭이로 때렸다.

일은 쉽지 않았다.

술에 절어 살던 육체는 그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몇 시간을 일한 주폭의 발밑에 던전 금속이 섞인 아이 머리통만 한 광석이 떨어졌다.

그는 즉시 광석을 들고 광산의 입구로 갔다.

입구에는 사과 궤짝 같은 박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너무 생뚱맞게 놓여 있으니 시선이 안 갈 수가 없었다.

“혹시…….”

주폭은 떨리는 손으로 광석을 넣었다.

광석이 박스에 들어간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주폭의 손에 음식과 물이 쥐어졌다.

경일이 인벤토리에 저장해 놓은 것들이었다.

“이거 말고 술, 술을 달라고.”

주폭은 곧바로 광산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다시 열심히 일해 광석을 채취했다.

채취한 광석을 넣고 제발 술이 나오기를 빌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건 아까와 같은 한 끼 식사였다.

그의 얼굴이 실망으로 가득 찼다.

김만복은 주폭이 하는 짓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돌덩이를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나와 조심히 박스에 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빛이 일렁이더니 음식과 물이 생겼다.

“헉!”

그는 메시지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곳에서 먹고살려면 광산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맞아서 아픈 몸을 이끌고 광산으로 들어갔다.

온종일 굶은 그는 특히 목이 말랐다.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 끌려온 셈이라 술이 깨면서 갈증이 심해졌다.

곡괭이를 챙겨 들고 그도 광산에서 일을 시작했다.

광산은 곡괭이로 벽을 내려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양아치 일행은 탈출할 곳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이곳은 사방이 절벽으로 막혀 있는 지형이었다.

아주 큰 우물과 같았다.

절벽은 높았고, 맨손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절벽을 따라 걸으며 살폈지만, 절벽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곳이 탈출이 불가능한 완전한 감옥이라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개에 씨팔~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이 개새끼야! 당장 내가 있던 곳으로 보내 달라고!”

금발이 솟구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메아리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막 해가 넘어가기 일보 직전, 처음에 끌려왔던 자리로 돌아왔다.

“이 새끼는 어딜 간 거지? 그새를 못 참고 도망갔나? 나머지 한 명은 또 어디를 간 거야? 그 새끼를 쫓아갔나? 씨발, 제까짓 것들이 가 봐야 어디를 가겠어. 우리도 못 벗어났는데 저것들이라고 무슨 수가 있으려고. 상규야.”

“왜?”

금발이 부르자 머리를 반만 염색한 양아치가 대답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질 거 같으니 불이라도 피워야겠다. 어젯밤에 추워 뒤질 뻔했잖아.”

“어떻게 피우려고?”

“마른나무에 홈을 파서 비비면 가능할 거야. 언젠가 TV에서 본 기억이 나.”

반만 염색한 남자의 질문에 대답은 코에 피어싱 한 남자가 했다.

그들은 적당한 나무를 구해와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넓적한 나무에 곡괭이로 홈을 만들고, 바위에 갈아 뾰족하게 만든 막대기를 홈에 넣고 비볐다.

불은 쉽게 붙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불을 붙이기 전에 손바닥의 껍질이 먼저 벗겨질 판이었다.

당장이라도 이 짓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어젯밤 겪어 본 추위가 생각나 멈출 수가 없었다.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밀려왔다.

어둠과 함께 기온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씨발, 이거 왜 이리 안 붙는 거야? TV에서 볼 때는 쉽게 붙이던데. 어휴, 손바닥 아파.”

참다못한 코에 피어싱 한 남자가 짜증을 냈다.

“야, 멈추지 마. 쉬는 순간 기껏 올린 열도 식어 버리잖아. 입으로 욕을 하든 말든 손은 쉬지 말라고.”

금발이 코에 피어싱 한 남자에게 화를 냈다.

“씨, 말만 씨불이지 말고 네가 직접 해. 아까부터 일은 제일 적게 하면서 잔소리는 제일 많이 하네. 에이씨,. 더러워서 못 하겠네.”

코에 피어싱 한 남자가 참지 못하고 막대기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이 새끼야! 이게 무슨 짓이야. 하기 싫으면 교대해 달라고 하면 되지, 막대기는 왜 던져? 이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잖아.”

“그럼 네가 처음부터 하면 되겠네. 좆같아서 못 해 먹겠네. 일은 제일 안 하면서 잘난 척은 오지게 하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일도 네가 가져왔잖아. 어디서 좆같은 일 하나 물어 와서 이게 무슨 꼴이야? 나 같으면 친구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제일 열심히 하겠다.”

“뭐라고? 지금 말 다했냐? 내가 일 물어 왔을 때 제일 좋아했던 거 너잖아. 그런 놈이 상황이 좀 바뀌었다고 제일 먼저 지랄을 해? 죽어 볼래, 이 새끼야!”

“그래, 한 번 죽어 보자. 여기 사람도 없고 죽기 딱 좋네. 한 번 죽여 봐!”

이들은 서로를 책망하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둘에게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자 반만 염색한 남자가 중간에 끼어들어 그들을 말렸다.

“잠깐만, 둘 다 참아. 여기서 화를 내면 어쩌자는 거야?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싸움질이나 하고 있을 거야? 이러다가 한 사람이라도 크게 다치면 어떡할래?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이러고 싶냐? 당장 오늘 밤에도 추위에 벌벌 떨고 싶어? 이러지 말고, 우리끼리라도 힘을 합치자고.”

머리를 반만 염색한 남자가 둘을 말렸다.

둘은 서로 못 이기는 척하고 다시 불을 피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불은 붙을 듯 약만 올리고 쉽게 붙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또다시 불 없는 밤을 맞이해야 했다.

금발과 코에 피어싱 한 남자는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서로를 안고 있었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그들은 추운 밤을 다시 한번 지새웠다.

“이 새끼들은 어딜 간 거지?”

금발이 추위로 굳은 몸을 펼치며 말했다.

“어디 자기들만 좋은 곳을 발견한 거 아냐?”

이틀을 추위에 벌벌 떨며 밤을 지새운 이들은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춥고 배고프고 무엇보다 목이 말랐다.

몸살이 왔는지 식은땀이 났다.

해가 떴는데도 아침이 오기 전 새벽처럼 여전히 추웠다.

하루만 더 이대로 보내다가는 죽을 거 같았다.

“목이 말라 미치겠다. 목 안이 다 헐었어.”

머리를 반만 염색한 남자가 말했다.

“나도.”

“우리 이러다 죽겠다. 숲이 이렇게 울창한데 분명 물이 있을 거야. 힘들어도 물부터 찾아보자.”

금발의 의견에 이들은 힘든 몸을 일으켰다.

“어, 저기.”

막 물을 찾아 떠나려는 순간, 코에 피어싱 한 남자가 한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 김만복이 있었다.

김만복과 주폭은 상대적으로 덜 추운 광산 안에서 잠을 잤다.

숲의 추위를 잘 알고 있는데, 밖에서 잘 이유가 없었다.

배가 고픈 김만복은 어제 채굴한 던전 금속이 섞인 광석을 가지고 나왔다.

“저 새끼가.”

금발은 김만복을 보고 이를 갈았다.

김만복은 맞은 얼굴이 부어 있기는 했지만, 혈색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이틀을 추위에 떨며 제대로 잠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한 자신들에 비하면 훨씬 나아 보였다.

금발이 폭발하기 직전에 코에 피어싱 한 남자가 말했다.

“경호야, 저것 봐. 음식이랑 물이야. 저 새끼가 박스에 뭘 넣더니 음식이랑 물이 나타났어.”

“뭐? 물이라고?”

물이란 말에 금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온몸이 쑤시고 한기가 든 몸은 벌벌 떨렸지만, 물이란 소리에 금발은 김만복을 향해 뛰어갔다.

금발이 막 물을 마시려는 김만복의 손에서 생수병을 가로챘다.

분명 가로챘다.

김만복이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생수병을 가로챘으나, 그의 손에는 생수병이 없었다.

놀라기는 김만복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덤벼든 금발이 분명 생수병을 가로챘는데, 생수병은 여전히 자신의 손에 있었다.

‘어라, 이게 뭐야? 분명 생수병을 잡았는데…….’

금발이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생수병을 잡았다.

이번에는 천천히 확실하게 김만복이 들고 있는 생수병을 잡았다.

하지만 생수병은 그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손이 생수병을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놀란 금발이 다시 한번 시도했으나, 눈에 빤히 보이는 생수병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컥!”

김만복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금발이 생수병이 손에 잡히지 않자, 화풀이로 김만복의 배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김만복은 손에서 생수병을 놓치고 바닥에 뒹굴었다.

텅!

생수병이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넘어진 생수병 안의 물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금발은 바닥에 떨어진 생수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손은 그대로 생수병을 통과해 버렸다.

“이게 뭐야? 이런 게 가능한 거야? 상규야, 진원아, 너희가 와서 잡아 봐.”

머리를 반만 염색한 남자가 조심히 손을 뻗어 생수병을 만졌다.

허공을 만지듯 그의 손도 생수병을 그대로 통과했다.

코에 피어싱 한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남의 것을 뺏을 수 없다는 것을.

결국, 그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절대 경일의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지만, 당장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결해야 했다.

이대로 몇 시간이 더 흐른다면 움직일 힘도 없을 것이다.

“야, 어떻게 물을 구했어?”

금발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김만복에게 물었다.

“그냥 물어볼 것이지. 왜 사람을 때리고 지랄이야. 어린놈의 새끼들이 버릇없게.”

김만복은 기죽지 않고 소리쳤다.

어제 맞은 것만 해도 분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야, 가만 보면 이 새끼도 보통 놈이 아니야. 그렇게 맞고도 아직 기가 안 꺾인 거 보면. 하긴, 그런 놈이니 그런 짓을 시켰겠지? 너, 더 맞고 싶냐? 좋은 말 할 때 그냥 얘기해.”

금발이 서슬 퍼런 눈으로 노려보자 기가 죽은 김만복이 입을 열었다.

“광산 안에서 파랗게 빛이 나는 광석을 캐서 저 박스에 넣으면 돼.”

“이런 제기랄. 결국은 그놈 뜻대로 일해야 하잖아.”

일해야 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 볼의 안쪽을 질겅질겅 깨물었다.

코에 피어싱 한 남자가 곡괭이를 챙겨 친구들에게 주었다.

양아치들은 발을 질질 끌며 광산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이곳의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광산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열심히만 하면 하루 세끼는 먹을 수 있었다.

살 집도 필요했다.

그들은 광산 일이 끝난 저녁에는 집을 지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온종일 일을 해야 했다.

몇 달을 노력한 결과, 제법 그럴듯한 집이 완성됐다.

집이 완성되고 시간이 남자 양아치들은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는 시간을 모두 이곳을 탈출하는 방법을 찾는데 썼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봤지만, 그 어디에도 탈출이 가능한 곳이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직접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것인데, 자신이 새가 아닌 이상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광산 일이 끝나면 할 일이 없었다.

남는 시간을 재밌게 보낼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 그들에게 눈에 띈 건 김만복과 주폭이었다.

그날부터 이들은 그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가장 심하게 괴롭힌 건 김만복이었다.

김만복 때문에 이곳에 끌려왔다고 생각한 양아치들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시작은 역시 폭력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악랄해졌다.

그의 얼굴에는 멍 자국이 빠질 날이 없었고, 육체가 쉴 시간이 없었다.

일부러 잠을 재우지 않는다든지, 한나절을 꼬박 의미 없이 뛰게 만든다든지, 그들은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김만복을 괴롭혔다.

가장 힘든 건, 광부 일을 못 하는 것이었다.

광부 일을 해야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데, 양아치들은 억지로 다른 일을 시켜 광부 일을 막았다.

통통했던 김만복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말라 갔다.

“이것들이 하는 짓이 아주 가관이구나? 감히 생산량에 지장을 줘?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지금까지의 인생이 너무 쉬웠지? 내가 인생의 쓴맛을 아주 제대로 맛보게 해 주지!”

경일은 오래간만에 제대로 뚜껑이 열렸다.

김만복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당해도 싼 인간이었다.

경일은 자신을 해코지하려고 했던 이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던전의 광산은 스탄다비아의 생명 줄이었다.

이번 영지전을 승리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가 광산에서 채굴한 미스릴 덕이었다.

미스릴은 스탄다비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이자, 가장 견고한 방패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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