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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77화 (77/300)

[77화] 새로운 걱정

“음~ 어떻게 해야 잘했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그래, 이럼 되겠군.”

경일은 광산 관리 스킬을 실행해 한 부분을 고쳤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곧바로 메세지가 전송됐다.

[지금부터 음식의 교환 비율을 네 배 올립니다. 같은 양의 음식을 얻으시려면 네 배의 광석이 필요합니다.]

양아치 3인방은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는 순간 아연실색해졌다.

“네 배?”

세 명의 입에서 같은 타이밍에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네 배라고? 이 새끼가 미쳤나. 사람을 이런 곳에 가두어 놓고 뭐 하는 짓이야? 개새끼야, 내가 네 장난감이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라고. 남자라면 나랑 목숨을 걸고 한 번 붙어 보자! 이 쓰레기 새끼야!”

금발이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차경호는 기존 2년에서 1개월이 추가되어 2년 1개월 동안 광부로 투입됩니다.]

다시 한번 경일을 향해 욕을 뱉으려는 그의 입이 합죽이가 되었다.

금발이 아무리 악바리라도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다.

2년만 참으면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늘어난다는 메시지는 그의 입을 막기에 충분했다.

“경호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악에 받쳐 소리치던 금발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 가는 것을 보고 코에 피어싱 한 남자가 걱정했다.

“상규야, 기간이 늘었어. 여기에 있어야 하는 기간이 무려 한 달이나 늘어났어.”

“뭐?”

“이 개새끼가 지금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차경호는 기존 2년 1개월에서 1개월이 추가되어 2년 2개월 동안 광부로 투입됩니다.]

금발은 또다시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서는 그대로 굳었다.

이 순간, 자신의 처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자신은 작은 저항조차 할 수 없는 개미라는 것을.

금발의 이야기에 이들은 입을 닫았다.

이 일로 김만복은 이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났다.

양아치들은 네 배로 늘어난 교환 비율 때문에 그를 괴롭힐 시간이 없었다.

자기 전까지 일을 해야 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양아치들은 괴로웠지만, 의외로 광산에 있는 사람 중 이들의 시간이 가장 빠르게 흘렀다.

주폭과 김만복의 시간은 더디게 흘렀지만, 누구보다 바빠진 양아치들의 시간은 총알 같이 지나갔다.

이번 사건으로 광산의 생산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양아치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네 배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 * *

자포리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스탄다비아에서도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알리사까지 관리를 해야 했다.

그는 나바론의 잔존 세력을 모두 쫓아냈다.

스타테인 성을 가진 모든 사람은 거지꼴로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머물던 내성에서 엄청난 재물이 쏟아져 나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온갖 사치품들이 방마다 그득했다.

장롱마다 화려한 비단으로 된 옷들이 가득 차 있었다.

온갖 보석이 쏟아져 나왔고, 그들의 일족을 그린 거대한 초상화가 복도마다 걸려 있었다.

주방에는 온갖 비싼 식자재가 널려 있었으며, 찬장에는 은으로 된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 모든 것은 승자의 것이었다.

엄청난 전리품에 다들 기뻐했지만, 단 한 사람, 자포리자의 얼굴은 오히려 어두워졌다.

“영주님, 기쁘지 않으십니까? 이 정도의 재물이면 그동안 돈이 없어 미뤄 왔던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칼튼이 자포리자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이 정도 규모의 영지에 이렇게 많은 재물을 모았다는 건, 그만큼 영지민들을 쥐어짰다는 얘기겠지. 이 모든 재물이 그들의 피눈물로 보이니, 전혀 기쁘지 않다. 이것만 보아도 알리사 영지민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보일 지경이야. 그들을 외면하고 이 돈을 스탄다비아의 발전에만 쓴다면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제는 알리사 영지민도 나의 품에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칼튼은 자포리자의 말에 기뻐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한편으로는 이런 사람이 자신의 주군이란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자포리자는 내성의 일을 정리하고 영지민들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윽!”

내성을 벗어나 영지민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들어가자마자 기사들이 코부터 막았다.

거리에서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온갖 오물들이 넘쳐흘렀다.

사람들의 대소변과 쓰레기가 거리에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자포리자의 일행과 달리 대소변의 냄새와 각종 쓰레기가 썩어 가며 뿜어내는 악취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들에겐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일상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서는 하나같이 삐쩍 말라 있었다.

모두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는 게 삶의 의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포리자 일행을 본 영지민들은 곧바로 흩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거리가 텅 비었다.

귀족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 이럴 수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자포리자의 입에서 한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어떻게 한 지방의 영주란 작자가… 믿을 수가 없구나. 그의 눈에는 개돼지만도 못한 영지민들의 삶이 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쥐어짰으면…….”

자포리자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알리사의 세금은 얼마인가?”

“소득의 80%입니다.”

대답하는 알리사 관리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자포리자의 분노가 자신에게 향할까 봐 겁이 난 것이다.

“80%라고? 영지민들이 살아 있는 것이 용할 지경이구나.”

자포리자는 최대한 많은 영지민을 둘러봤다.

그들의 삶은 처참했다.

경일과 만나기 전, 스탄다비아 영지민들의 삶보다도 못 해 보였다.

멀쩡한 집이 오히려 드물 정도였다.

이들은 지붕이 없는 집, 벽이 무너진 집, 나무와 풀로 대충 얼기설기 엮어 만든 집에서 생활했다.

저녁이 됐지만,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집은 몇 집 되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저 아이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을 잃어버리겠지.’

자포리자의 눈에 비친 거리가 색깔을 잃어 갔다.

죽기 직전의 모습 같이, 보이는 모든 것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갔다.

머리가 빙빙 돌았다.

그와 함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저녁에 되어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자포리자의 몸에서 열기가 뻗어 나왔다.

알리사의 관리는 겁을 먹고는 언제부턴가 일행의 가장 뒤에 있었다.

그의 고민이 한없이 깊어졌다.

차라리 전쟁을 하라면 자신 있었지만, 이번 일은 해결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영지민들의 삶을 보자 내성에서 찾은 그 많은 재물이 오히려 작아 보였다.

모든 재물을 영지민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해도 그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나바론이 얼마나 사치를 부렸는지 오히려 그 정도의 재물밖에 남지 않은 것이 화가 났다.

“그놈을 그리 편하게 보내 주는 것이 아니었어. 살려서 영지민들과 똑같은 삶을 살도록 해야 했다.”

자포리자는 나바론을 너무 쉽게 죽인 것을 후회했다.

경일이 도와주고 있으나, 스탄다비아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가 꾸준히 공급해 주는 고철로 몬스터와의 전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영지민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영지 자체에 수입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다행히 경일이 보내 주는 던전의 흙을 농지에 뿌려 농작물의 수확량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많이 부족했다.

경일이 직접 수확해 보내 주는 던전의 농산물도 영지민의 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었다.

이런 상황에 스탄다비아보다 훨씬 더 열악한 알리사 영지까지 떠안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세금을 줄여 주고 알리사 영지민들을 이대로 두는 방법밖에 없나? 만약 이대로 모른 척한다면 새로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내년까지 많은 영지민이 굶어죽겠지.’

가진 것 하나 없는 이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삶이 얼마나 혹독할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세금을 줄여 주는 것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 보지만, 양심상 그게 잘되지 않았다.

또 하나의 걱정은 전염병이었다.

자포리자는 경일이 보내오는 메모로 많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가 요즘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위생이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위생이란 개념이 거의 없었다.

영지민들은 대소변 및 온갖 오물을 당연하다는 듯이 집 앞의 거리에 버렸다.

사람들에겐 입 냄새, 땀 냄새, 암내, 소변 냄새, 똥냄새, 음식 냄새 등 형언할 수 없는 냄새들로 가득했다.

이런 비위생적인 환경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발생시킬 수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전염병이 퍼지면 신의 분노라고 생각했고,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시체는 아무 곳에나 버려졌다.

경일이 전해 준 지식으로 자포리자는 전염병이 신의 분노가 아님을 알았다.

곧바로 스탄다비아는 대소변을 거리에 버리는 것이 금지되었다.

처음에는 영지민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그들도 거리에서 악취가 사라지자, 이제는 말을 하지 않아도 거리에 대소변을 버리는 일이 사라졌다.

마을과 일정 거리가 떨어진 곳에 커다란 웅덩이를 몇 개 파서 그곳에 버렸다.

거기에 풀과 건초 낙엽 등을 섞어 숙성을 시켰다.

경일에게 배운 퇴비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완전히 숙성시키기 위해서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려 아직 퇴비로 활용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악취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이대로 알리사를 내버려 두면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희생될 수도 있었다.

자포리자는 알리사 영지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우선 세금 감면을 발표했다.

회색빛으로 죽어 가던 거리가 되살아났다.

세금은 그들의 목을 조르는 족쇄와 같았다.

그들은 사실 영주가 바뀌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귀족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모두 피를 빠는 거머리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하루하루를 넘기기에도 힘든데,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세금이 줄어든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의 희소식이었다.

알리사의 농지가 스탄다비아보다 많고 비옥하긴 했지만, 이곳의 농지도 계속된 농사로 기력을 잃어 가는 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년 전부터 가뭄이 이어졌다.

영지에 흐르는 몇 개 안 되는 개울은 거의 말라 버렸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우물을 파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일일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농지까지 옮겨야 했다.

농사일은 몇 배로 힘들어졌지만, 수확량은 더 줄어들었다.

영지전을 승리하긴 했지만, 자포리자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는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실행했다.

영지민들의 피를 빠는 관리들의 모든 재산을 압수하고, 그들의 신분을 노예로 격하시켰다.

새롭게 행정을 볼 관리들을 뽑았다.

사치품들을 모두 팔아 식량을 사들여 영지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자포리자는 잠을 줄여 가며 최선을 다했다.

* * *

경일도 자포리자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이런 경우에 처했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음은 아프지만, 둘 다 살릴 수 없다면 한쪽을 포기하는 수밖에.’

알리사 영지민들에게 미안한 얘기였지만, 이들이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은 자포리자의 책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현대인인 경일의 논리일 뿐이었다.

그는 자포리자가 알리사 영지민을 외면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지민들을 끝까지 챙기는 건 영주로서의 당연한 도리였고, 그는 도리를 어길 사람이 아니었다.

경일이 아는 자포리자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이왕 도움을 주고 있는 이상, 그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며 도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경일은 장사를 마치고 머리를 식힐 겸 시내로 나갔다.

분식점과 던전을 오가던 생활만 하다 오래간만에 시내로 나가니 기분이 좋았다.

많은 사람이 활기차게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느끼며 길을 걷던 그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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