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나 좀 강한 듯
“누가 보냈긴, 난 너희가 보낸 삐끼를 따라 내 발로 여기 온 거뿐이야. 이곳에 온 건, 그럴만한 급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 자세한 얘기는 말해 줘도 못 믿을 거야. 하여간, 간단하게 말해서 난 단지 미스릴을 팔러 온 거뿐이야.”
경일은 나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앞으로 광산에서 일할 귀중한 재원인데, 그에 따른 하나의 예우 차원이었다.
자신의 말을 믿거나 말거나 그건 저들의 선택일 뿐이었다.
“이 새끼야,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우두머리 남자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는 경일이 끝까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씨발, 재수도 더럽게 없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기분이었다.
자신들에게 지금껏 당한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 테지만, 우두머리 남자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명이 쓰러지고, 이제 세 명의 남자가 남았다.
링 위의 복서가 서로 주먹을 맞댔을 때 상대의 실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이 조금 전 기세를 피워 올렸을 때 자신보다 한참 못 미치는 실력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경일은 굳이 무기가 없어도 이들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었다.
미스릴 몽둥이를 꺼내 든 건,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이유로 몽둥이를 꺼내 든 것뿐이었는데, 미스릴 몽둥이는 그가 생각도 못 한 의외의 효과를 발휘했다.
몽둥이가 미스릴로 된 걸 알아본 남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저, 저, 저거 설마 통짜 미스릴이야?”
“그런 거 같다. 미스릴 특유의 색깔이 맞아.”
“미친, 저 비싼 미스릴로 겨우 저런 무식한 몽둥이를 만들었다고?”
이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싸우기도 전에 이미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미스릴 100%로 된 무기는 일반 헌터들이 쓰기엔 너무 비쌌다.
영구적인 무기가 아니라서 길드장 정도의 위치가 아니고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비싼 미스릴을 가지고 저런 투박한 몽둥이나 만들다니.
저 정도의 양이면 최소 검 네 개는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 비싼 무기를 쓸 수 있을 정도면 눈앞의 남자는 최소 길드장급 이상의 헌터임이 분명했다.
이건 무조건 지는 싸움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무척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저 여유로움이 결코 허풍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저건 강자만이 가지는 특유의 여유가 틀림없어. 오늘 제대로 걸렸구나. 나 혼자라도 살아남아야 해. 방법은 다른 놈들을 미끼로 던지고, 그 순간에 빠져나가는 것뿐이야.’
우두머리 남자는 음흉한 속을 숨기고 동료들을 비장하게 말했다.
“우린 세 명이야. 싸우기엔 여긴 공간이 좁으니, 한꺼번에 덤비면 승산이 있을지도 몰라. 가만히 앉아서 당할 바에야 반항이라도 해보자고. 우리가 어떤 놈들인지 저놈에게 똑똑히 보여 주자.”
“그래, 죽이 되든 쌀이 되든 일단 한 번 해보자.”
우두머리 남자의 말에 동료들이 응답했다.
서로 눈빛을 맞추더니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냈다.
그와 함께 세 명의 남자가 경일에게 덤벼들었다.
“쯧쯧!”
그들이 각오를 다지며 최선을 다해 덤벼들었지만, 너무 느렸다.
경일의 미스릴 몽둥이가 화려하게 춤을 추었다.
단도보다 몇십 배는 무거워 보이는 몽둥이가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겁도 없이 경일의 정면으로 달려들던 남자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턱에 미스릴 몽둥이를 맞은 남자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이 돌아간 남자는 게거품을 게워 내며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이런 개자식이!”
동료가 당한 모습에 흥분한 남자가 경일을 향해 단도를 빠르게 찔렀다.
몽둥이를 휘두르느라 드러난 허리를 노리고 단도가 직선으로 뻗어 왔다.
경일이 가장 취약한 타이밍에 날카로운 공격을 해 오는 게, 싸움 센스가 돋보였다.
“제법인데.”
경일은 감탄과 함께 허리를 급하게 틀었다.
날카로운 단도가 그의 허리를 스쳤다.
심장이 쫄깃해졌다.
단도에 잘린 옷이 벌어지면서 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허리가 시원해졌다.
“제기랄!”
남자는 회심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재빨리 자세를 다잡으려 했다.
“이런 쥐새끼가!”
경일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치며 몽둥이를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방금 이 짧은 거리에서 자신의 단도를 피하는 경일의 경이적인 스피드를 봤다.
그런 그의 공격은 자신의 실력으로 피하고 말고 할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다가올 고통에 최대한 각오를 다지며 그저 고통이 작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퍼억!
몸을 때리는 큰 소리가 들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몸 어디에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아함에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방과 복도에 몸을 반쯤 걸치고 슬라이딩하듯 앞으로 넘어져 있는 남자가 보였다.
“이런 개쓰레기 새끼가!”
남자가 거친 욕을 뱉어 냈다.
이건 경일에게 하는 욕이 아니었다.
한눈에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 같이 공격하자고 부추기고는 자신만 빠져나가려다 제대로 걸린 모습이었다.
우두머리 남자는 미스릴 몽둥이에 맞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경일이 화가 났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한번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난 너 같은 쥐새끼가 세상에서 제일 싫더라. 넌 좀 많이 맞자. 온갖 잘난 척은 다하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동료를 팔아 혼자만 살려고 말이야. 같은 동료인데, 최소한 그런 야비한 짓은 하지 말아야지. 안 그래?”
스탄다비아를 접하면서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들의 보여 주는 진한 의리에 한창 감동 중인 경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동료를 배신하는 더러운 모습을 눈앞에서 걸렸으니.
우두머리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운이 없었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미스릴 몽둥이가 사정없이 우두머리 남자의 몸을 강타했다.
“그, 그만해, 살려 줘!”
그는 엄청난 고통에 괴로워하며,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일은 관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자는 우두머리 남자가 맞는 모습을 보고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경일의 구타에 그는 불 위에 마른오징어처럼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우두머리 남자의 다음 차례는 자신일 게 빤했다.
저 무식한 미스릴 몽둥이를 처음 봤을 때는 잠깐 탐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걸로 맞을 생각을 하니 끔찍할 뿐이었다.
우두머리 남자가 맞고 있는 동안 도망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곧 마음을 돌렸다.
자신의 실력으론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 당하긴 싫었다.
죽더라도 마지막 발악은 한 번 해보고 죽고 싶었다.
마음을 굳게 다졌다.
경일이 한참 우두머리 남자를 구타하고 있는 이 순간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조금이라도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경일의 허점을 찾으려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굳이 허점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온몸이 허점투성이였다.
자신의 존재를 아예 지워 버린 듯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런 개자식이!’
자신을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그의 모습에 이가 갈렸다.
화가 난 남자가 바닥을 강하게 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쉬익!
날카로운 단도가 공기를 꿰뚫고 가는 모습이 제법 섬찟했다.
“쥐새끼가 또 있네.”
경일은 남자의 살기를 느끼며 곧바로 몸을 돌렸다.
날카로운 단도가 조금 전 공격당했던 허리를 다시 한번 노리고 찔러 왔다.
“이런 악독한 새끼!”
가볍게 휘두른 몽둥이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가 남자의 단도를 후려쳤다.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깡!
단도는 야구공처럼 날아가 검의 자루까지 벽에 박혔다.
“허억!”
순식간에 손에서 사라진 단도에 남자는 대경실색했다.
경일은 망설이지 않고 남자가 놀라서 벌어진 턱을 강하게 걷어찼다.
덜컥!
턱뼈가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뒤로 확 꺾이며 공중에 떠올랐다.
남자의 몸이 테이블에 떨어지며 함께 뒹굴었다.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곧이어 고개가 힘없이 돌아갔다.
남자가 기절한 걸 확인하고 경일이 몸을 돌려 우두머리 남자를 화난 얼굴로 노려봤다.
지금의 공격이 마치 네 탓이라는 듯이.
“잠깐, 잠깐만요. 이건 내가 시킨 게 아닙니다. 그놈 혼자 저지른 거라고요!”
기절한 남자의 몫까지 맞을 생각을 하니, 그의 눈에 또 다른 두려움이 차올랐다.
“힘이 센 놈이 왕이다. 이게 너희가 믿고 따르는 논리잖아.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 큰소리치며 당연하 듯 그들의 물건을 강도질하고 말이야. 억울해할 거 전혀 없어. 여기선 내가 가장 힘이 세니까 내 마음대로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너희 같은 것들에겐 몽둥이가 직방이야. 오늘 내가 하늘 위의 하늘을 보여 주지.”
따악!
기존의 타격음과 다른 소리가 났다.
우두머리 남자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미스릴 몽둥이가 정확하게 그의 팔뼈를 가격했다.
“헉!”
남자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팔이 부러졌는지 손이 덜렁거렸다.
“이런, 미안, 미안. 내가 최대한 상처 안 나게 때린다고 했는데, 실수를 해 버렸네. 열심히 일해야 할 사람인데, 내가 많이 미안해.”
우두머리 남자는 뼈가 부러진 고통으로 정신이 아득히 멀어져 갔다.
그런 그의 정신을 도로 잡아끄는 단어가 있었다.
경일이 한 말 중 ‘일’이란 단어가 그의 귓속을 강렬하게 파고들었다.
‘이놈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일을 시킨다고? 설마 인신매매를 하는 놈이란 말인가? 헌터들을 납치해 일을 시킨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우리 길드를 노리는 세력이 아니란 말인가? 이 새끼 뒤에 도대체 무슨 조직이 있는 거야?’
몸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격렬한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불행하게도 그의 의문은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경일의 매질이 이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대가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광산으로 이동을 원하십니까? (Y / N)]
경일은 처음 몽둥이를 맞고 쓰러진 남자만 빼고 모두 광산으로 보냈다.
“야, 깨어난 거 알고 있으니 일어서. 피똥 싸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남자는 경일이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그의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숨을 그렇게 거칠게 쉬면서 눈만 감고 있다고 기절한 거라 우기면 통하겠냐?”
경일이 한 명을 따로 남긴 건, 이번 기회에 그동안 궁금하게 생각했던 걸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몇 레벨이야?”
“14레, 레벨입니다.”
남자는 경일이 세 명의 헌터에게 매타작을 하고 있을 때, 이미 깨어나 있었다.
그리고 똑똑히 목격했다.
자신의 동료가 사라지는 모습을.
그는 경일을 마치 귀신을 바라보듯 쳐다봤다.
나름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자신들을 이렇게 쉽게 제압을 한 것도 모자라, 사람을 사라지게까지 했다.
참으려 해 보지만 떨리는 입술과 턱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머지는?”
“15, 16, 17 레, 레벨입니다.”
경일은 오래간만에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상태창>
레벨 27
힘 (265/270)
민첩 (269/275)
체력 (272/275)
마나 (275/275)
[스킬]
식물 찾기 (Lv. 2)
스탄다비아의 현황 관찰 (Lv. 3)
인벤토리
사람 찾기 (Lv. 2)
광산 관리 (Lv. 2)
[특성]
스탄다비아와의 동조가 이루어짐
경일에겐 헌터라면 누구나 신경 쓰는 마의 구간이 별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벌써 몇 개의 마의 구간을 통과해 있었다.
다음 마의 구간인 레벨이 30이긴 하지만, 헌터로서의 욕심이 그리 크지 않아서 그런지 별다르게 신경이 쓰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들을 겪어 보니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구나. 이들이 약한 거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세 명을 상대로 쉽게 이길 정도면 강한 게 맞는 거겠지.’
처음 해보는 헌터와의 싸움을 통해 자신이 어느 정도 강한지 조금이나마 감을 잡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