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위험에 빠진 스캐빈저
“분식점 아저씨가 이거 엄마 갖다주랬어요.”
“이…게… 뭐…니?”
“죽이래요. 엄마 드시라고 아저씨가 주셨어요.”
수한이가 부엌에서 그릇과 숟가락을 가지고 왔다.
작은 손으로 조심히 그릇에 죽을 부었다.
“엄마, 먹어 봐요. 그 아저씨가 만드는 건 정말 맛있어요.”
선호연은 입맛이 없었지만, 아들의 부탁에 천천히 입으로 죽을 가져갔다.
요즘은 도통 배가 고프지 않았다.
위장의 운동이 둔해지자 배고픔을 잘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됐다.
굳어진 혀는 말만 뺏어간 게 아니었다.
미각도 함께 사라졌다.
간이 아주 센 음식이 아니면 맛을 느끼기 힘들었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 주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음식을 먹어야 했지만, 갈수록 먹는 행위 그 자체가 힘들어졌다.
선호연이 잘 먹지 못하자 수한이가 죽을 담은 숟가락을 그녀의 입속에 넣었다.
‘뭐지?’
이상했다.
이건 다른 음식과 느낌이 달랐다.
‘느낌? 그래 이건 분명 느낌이야. 확실히 입안에 있는 죽이 느껴져.’
마치 몸이 죽을 원하는 듯 굳어 있던 혀가 먼저 반응했다.
서서히 음식 맛도 올라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들의 말대로 죽은 맛있었다.
잊고 있던 다양한 맛이 느껴졌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 왜 그래? 몸이 아파?”
“아…니…야… 아…들… 너…무…맛…있…어…서 그…래…….”
엄마가 좋아하니 수한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선호연은 죽을 먹을수록 몸이 좀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고통도 줄어들고 움직임도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
이 느낌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비후초를 먹었을 때의 느낌이다.
비슷하다고 생각한 건 비후초를 먹은 것보다 죽을 먹은 지금이 몸의 컨디션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이건 경일이 비후초를 아끼지 않고 죽에 넣어서 일어난 오해였다.
평소 그녀가 먹은 양보다 열 배나 많이 들어가 있어서 일어난 효과였다.
‘신기하다. 비후초를 먹지도 않았는데도 몸이 이렇게 편안해지다니. 우리 아들의 사랑이 담긴 죽을 먹어서 그런 건가. 오래간만에 고통이 줄어들고 몸이 편안해지니 살 거 같아.’
선호연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죽을 먹자 수한이가 기뻐했다.
그녀가 걸린 던전병 역시 만만치 않은 고통을 동반했다.
특히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발작이 일어날 때면 이대로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던전병을 완쾌시키기 위해서는 황룡초를 꾸준히 복용해야 했다.
하지만 황룡초는 이길호의 수입으로는 한 달에 한 번 사기도 버거웠다.
그런 황룡초의 대안이 비후초였다.
아니, 모든 던전병의 대안이 비후초였다.
조금이나마 모든 던전병을 치료했고, 고통을 억제하는 효능은 어느 던전 고유 식물보다 뛰어났다.
환자에 따라서는 황룡초보다 비후초를 선호하는 이도 많았다.
당장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가 있으니 이해가 충분히 되고도 남았다.
거기다가 가격도 황룡초의 반값이라 부담이 덜했다.
가장 좋은 건, 황룡초와 비후초를 같이 복용하는 것인데, 이길호의 형평상 그건 불가능했다.
이길호는 스캐빈저 일이 잘 풀릴 때를 제외하고는 어쩔 수 없이 비후초를 샀다.
비후초는 아내의 던전병의 고통을 덜어 주고 진행을 멈춰 주었다.
약간의 회복까지 가능하니 그녀에겐 꼭 필요한 식물이었다.
하지만 그들 형편으로는 비후초 값도 만만치 않았다.
이길호가 아들 수한이를 돌보지 못할 만큼 일을 해야 아내의 증상이 악화되는 걸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던전병에 걸리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던전에서 채집하는 황룡초의 수량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가격이 올라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안정적이던 비후초의 가격도 점점 오르고 있어 걱정이 많았다.
“우…리 아…들… 다 컸…네… 엄…마…를 위…해 이…렇…게 맛…있…는 죽…도 구…해… 오…고, 사…랑…해.”
수한이는 엄마가 오래간만에 많이 먹는 모습을 보자 기뻤다.
엄마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내일도 죽을 부탁하러 갈 결심을 했다.
이길호는 돌아오는 아내의 발작을 대비해 비후초를 살 돈을 모으려 열심히 던전을 헤집고 있었다.
돈이 되는 건 무조건 배낭에 넣었다.
값이 비싼 던전 고유 식물이나, 금속 등을 채집하고 싶었지만,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스캐빈저는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곳의 던전만 해도 거의 50명이 넘는 스캐빈저들이 던전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나마 적은 돈이나마 될 만한 건 공략대가 발골 하고 남기고 간 몬스터 사체뿐이었다.
이길호는 몬스터 사체를 발견하는 족족 가죽이 붙어 있는 손이나 발등을 절단해 배낭에 넣었다.
배낭은 점점 무거워지고, 그의 몸에서는 몬스터의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겼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유독 이번 달은 운이 없는지 잠을 줄여 가며 여러 던전을 돌아다녀 봤지만, 수입이 형편없었다.
며칠 안으로 아내의 던전병이 발작을 할 테고, 비후초를 먹이지 못하면 밤새 그녀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봐야 했다.
자신과 수한이를 생각해서 비명조차 크게 못 지르는 모습은 너무나 처절했다.
입에 문 수건을 있는 힘껏 깨물며 그녀는 끝까지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런 아내의 비참한 모습에 그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차라리 대신 아플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휴~ 어쩌지?”
이길호는 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졌다.
배낭 어깨끈이 묵직하게 그의 어깨를 눌렀다.
배낭에 들어 있는 몬스터의 사체에서 흘러내린 피가 배낭 바닥에 맺혀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걸어가는 그의 발자국 뒤로 긴 핏자국이 남았다.
거의 다섯 시간을 넘게 던전을 헤맸지만, 건진 건 형편없었다.
이제 던전을 나가야 했다.
게이트가 사라지기 전에 던전을 나가지 못하면 지구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남들보다 1분이라도 더 던전을 돌아다녔지만, 결국은 허사였다.
몬스터 사체를 공장에 넘기고 받은 돈은 몇 푼 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아내가 발작하기 전까지 도저히 비후초를 살 돈을 모을 자신이 없었다.
“휴우~”
그의 입에서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두운 밤을 쓸쓸히 홀로 걷고 있는 이길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약간 멍한 눈빛으로 고개를 힘없이 떨군 그에게서 진한 괴로움이 묻어났다.
오랫동안 손을 본 사람이 없는지 금이 가고 고르지 못한 땅을 밟을 때마다 그의 지친 몸이 휘청거렸다.
오늘따라 유달리 밝은 달빛이 부담스러웠다.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심히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들과 아내가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거실에서 잠깐이나마 눈을 붙였다.
그는 몇 시간 자지 않고 눈을 떴다.
아내와 아들을 위한 죽을 끓여 놓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길을 나섰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경일이 아들을 각별히 챙겨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홀로 남은 아들이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던 건, 모두 경일의 덕분이었다.
“그런 사장님이 있는 걸 보면, 아직 세상은 살만한 거겠지.”
아들을 챙겨 주는 경일을 생각하자 힘든 그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훈풍이 불었다.
새벽부터 서두른 끝에 도착한 곳은 D급 던전이었다.
평상시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위험하기 짝이 없는 D급 던전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공략대가 던전의 크리스탈을 깨뜨리자 게이트의 색이 변했다.
두려움이 밀려들었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던전으로 들어가니 그의 두려움을 비웃듯 우윳빛의 맑은 하늘에서 화사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선선한 바람이 그를 감쌌고, 햇살은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그나마 날씨라도 좋아 다행이다. 시야가 넓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네.”
이길호는 우선 공략대의 흔적부터 찾아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던전의 크리스탈이 깨지며 던전의 몬스터가 약해지긴 했지만, 겨우 10레벨인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공략대가 한 번 쓸고 간 길이라 몬스터를 만날 확률이 낮은 대신, 남아 있는 던전의 자원도 얼마 되지 않았다.
돈이 될 만한 건 이미 공략대가 모두 채집해 갔다.
그는 기껏 공략대가 발골 하고 남은 몬스터의 사체에서 가죽이 붙어 있는 부분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휴~ 그래도 D급 던전의 몬스터니까 어제보다는 훨씬 낫네.”
이길호는 자신의 칼로 열심히 몬스터의 사체를 내려쳤다.
하지만 몬스터 사체는 생각보다 잘 잘리지 않았다.
자신의 힘이 약한 것도 있지만, 그동안 관리를 안 한 탓으로 칼이 잘 들지 않았다.
“오늘따라 칼까지 말썽이네. 이것도 한 번 손을 봐야 하는데, 돈이 아까워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너도 참,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한다. 이렇게 몬스터 사체나 썰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이길호가 들고 있는 칼은 헌터 전용 무기였다.
던전 금속인 미스릴이 10% 정도 섞인 칼로, 초보 헌터들이 애용하는 무기였다.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각성을 했다.
아들의 각성이 기뻤던 부모님이 없는 돈으로 무리해서 사 준 칼이었다.
각성이라는 것 자체가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선물이었다.
당시 그는 드높은 자신감에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인 것마냥 행복했다.
노력 하나는 자신 있었기에 남들보다 더 빨리 고레벨의 헌터가 될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께 근사한 집도 한 채 사들이고, 친구들에게 으스대며 남들보다 멋진 삶을 살고 싶었다.
이때만 해도 이길호는 자신이 남이 버린 몬스터의 사체나 잘라 파는 스캐빈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관리를 해 주지 않아 이미 군데군데 이빨이 나가고 몬스터의 지방이 덕지덕지 묻은 칼로 겨우 몬스터의 사체를 잘라 냈다.
“시작부터 더럽게 힘드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소매로 대충 훔치고는 배낭에 자른 몬스터 사체를 넣었다.
이길호는 한 마리의 미어캣처럼 최대한 주위를 살피며 조심히 앞으로 걸었다.
그의 눈은 무척 바빴다.
몬스터를 대비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의 눈은 주로 풀밭을 훑고 있었다.
이번 달은 아무리 노력해도 비후초를 살 돈이 모이지 않았다.
‘제발 비후초 하나만 눈에 띄어라.’
이길호는 간절히 기도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드디어 비후초를 발견했다.
무려 30m나 떨어진 곳에 있는 손바닥만 한 비후초를 발견한 것이었다.
평상시라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거리였는데, 그의 집념이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비후초를 향해 달렸다.
험준한 암벽 바로 앞에 있는 비후초를 조심히 캐서 배낭에 넣었다.
“됐다. 여보, 됐다고!”
이길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 날뛰었다.
“역시 D급 던전에 들어온 건 잘한 선택이었어. 스캐빈저는 나밖에 없으니, 오늘 더 많은 걸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비후초를 찾은 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대박이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이길호의 눈에 황룡초가 들어왔다.
곧바로 뛰어가 황룡초를 채집했다.
“와, 이거 아주 실하네. 지금까지 본 황룡초 중에 제일 큰 거 같아. 이거 한 몇 년은 자란 거 같은데? 그만큼 약효도 뛰어나겠지?”
너무 좋아 입에서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크르르륵.”
그 순간, 조용히 그의 귀를 파고드는 낮고 섬찟한 소리.
소름 끼치는 찌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관통했다.
마치 수십 개의 바늘이 한꺼번에 등을 찌르는 듯한 섬뜩함이었다.
“크르릉.”
낮게 으르렁대며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은 지옥개였다.
핏빛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고, 벌어진 입에서 뻘건 침을 흘렸다.
던전의 핵이 깨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지옥개의 얼굴은 구겨진 종이처럼 상해 있었다.
지방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근육질의 지옥개가 이길호를 노려봤다.
이길호는 지옥개를 인식한 순간, 곧바로 앞으로 뛰었다.
그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크아앙!”
지옥개가 도망가는 이길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