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98화 (98/300)

[98화] 꼬리가 잡혔다

경일은 붉어지려는 얼굴을 숨기고 얼른 입을 열었다.

“우리 수한이, 오늘 뭐 먹고 싶어? 수한이가 이번에 듬직하게 아주 잘해서 상으로 아저씨가 수한이 먹고 싶은 거 다해 줄게.”

수한이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확 밝아졌다.

“음~”

골똘히 생각하던 수한이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돈가스가 먹고 싶어요!”

“돈가스? 그래, 아저씨가 돈가스 금방 해 줄게.”

경일은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만두를 만드느라 돼지고기는 늘 준비가 되어 있어 부족한 재료는 없었다.

‘튀김이야 많이 만들어 봐서 자신 있는데, 돈가스는 잘될는지 모르겠네.’

경일은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잘라 망치로 두들겨 얇게 폈다.

수한이의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커다란 왕돈가스를 할 예정이었다.

‘돈가스 소스는 어떻게 만들더라?’

욕심 같아서는 전문점처럼 맛있게 만들어 주고 싶지만, 자신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대신 던전 채소를 듬뿍 넣어 끓인 육수를 베이스로 케첩과 설탕, 식초, 간장을 넣은 간단한 소스를 만들었다.

감칠맛을 위해 굴 소스를 조금 넣고 마늘을 넣어 마무리했다.

전분 가루로 점성을 더해 주니 그럴듯한 돈가스 소스가 완성됐다.

기름 솥에 불을 붙이고 기름이 끓을 동안 이길호에게 줄 오늘의 안주를 준비했다.

오늘의 안주는 민물 메기 매운탕이었다.

먹이를 듬뿍 주었더니 메기가 살이 통통 올라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

민물 메기 매운탕에서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특유의 흙냄새를 잡는 것이었지만, 던전의 맑은 물에서 자란 메기는 애초에 흙냄새가 없었다.

모든 국물의 베이스인 민물 새우 가루를 넣은 육수에 여러 양념을 넣고 금방 한 냄비를 뚝딱 끓여 냈다.

주문한 음식이 모두 완성되었는데, 오늘따라 왠지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경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이 부자를 위해 하나라도 더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쏘가리회였다.

경일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인벤토리에서 쏘가리를 한 마리 꺼냈다.

던전에서 살아 있는 쏘가리를 손질하고 곧바로 인벤토리에 넣은 것이라 신선도는 최고였다.

얇게 포를 뜬 쏘가리회를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자~ 오늘의 안주 나왔습니다.”

경일은 수한이 앞에 커다란 왕돈가스를 놓고, 이길호의 앞에는 쏘가리회와 메기 매운탕을 놓았다.

“우와! 사장님, 무슨 안주가 이렇게 많습니까? 더군다나 이 귀한 회까지.”

“쏘가리회는 저의 작은 성의입니다. 수한이 아버님께 귀한 선물도 받았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번 드셔 보세요. 입맛에 맞아야 할 건데.”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음식이야 맛있는 거로는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고 아닙니까? 이거 기대가 되는군요.”

이길호가 입맛을 다지며 쏘가리회를 와사비 간장에 살짝 찍고는 입안에 넣었다.

“와~”

이길호가 탄성을 내뱉었다.

“살이 단단해서 이빨을 밀어내는데요? 이런 식감의 회는 처음입니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입에서 폭발하는 것이… 정말 맛있습니다!”

“아빠, 나도 나도!”

이길호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수한이도 궁금했는지 자신도 달라고 떼를 썼다.

“그래, 우리 아들도 먹어야지.”

이길호가 먹기 좋은 크기의 회 한 점을 집어 맵지 않게 적당히 와사비 간장을 묻혀 수한이 입에 넣어 주었다.

“어때 먹을 만해?”

이길호가 열심히 씹고 있는 수한이를 보며 물었다.

“맛있어요!”

이길호는 수한이가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회라 걱정이 됐지만, 맛있게 먹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아들의 왕돈까스를 먹기 좋게 잘라 주자 수한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입에 넣었다.

“수한아, 맛있어?”

경일은 오늘 처음 만든 돈가스라 그 맛이 궁금했다.

던전의 재료가 들어갔기에 기본 이상의 맛을 해 주겠지만, 고기 요리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맛있어요! 고기도 맛있고, 튀김옷도 바삭하고 좋아요! 소스랑 같이 먹으니 정말 맛있어요!”

수한이가 잘 먹는 모습을 보자 살짝 어깨가 으쓱해졌다.

처음에 비하면 확실히 요리 실력이 는 것 같았다.

이길호는 소주를 한입에 털어 놓고는 회 몇 점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씹었다.

“정말 맛있습니다! 이 맛을 잊고 산 지가 너무 오래됐네요.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는 가족끼리 둘러앉아 회를 먹곤 했는데… 지금은 먹고살기에도 바빠서…….”

얼굴이 아련해지는 게 과거를 추억하는 것 같았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의 사회는 나이가 워낙 어려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이길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참 좋은 세상이었던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일은 자신의 음식으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웃음을 가슴에 담았다.

분식점의 문을 닫은 경일이 거리로 나섰다.

“사장님, 퇴근하시나 봐요.”

“아, 네. 안녕하세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아주머니가 경일에게 인사를 건넸다.

동네를 지나다 아는 체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님일 때가 많았다.

경일은 마주치는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옥탑방으로 향했다.

그는 오래간만에 옥탑방을 청소했다.

던전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옥탑방에는 먼지가 자욱하게 앉아 있었다.

이건 도저히 사람이 사는 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내 소중한 보금자리였는데. 이거 내가 다 미안하네. 앞으로는 내가 확실히 신경 쓸게”

옥탑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이왕 하는 김에 옥상 청소까지 마쳤다.

쓰레기만 한가득 나왔다.

“속이 다 시원하네.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아.”

청소를 마친 경일은 게이트로 들어갔다.

던전은 어머니의 품처럼 늘 포근했다.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경일은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지금 한창 하는 일은 민물 새우 연못과 물고기 연못의 확장이었다.

포장 손님이 부쩍 늘어나면서, 이제 재료 수급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연못을 최소 두 배 이상 늘일 필요가 있었다.

경일은 연못에 서식 중인 민물 새우로 모두 잡아서 임시로 만든 연못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연못의 물을 빼고 확장할 준비를 마쳤다.

“역시 노가다의 꽃은 삽질이지.”

경일의 삽이 마치 두부를 퍼내는 것처럼 흙을 퍼냈다.

레벨이 낮을 때는 여러 장비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신의 몸이 장비였다.

그의 몸은 어떤 장비보다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푹푹푹!

삽이 연신 땅을 파고 들어갔다.

삽질 한 번에 한가득 흙을 퍼내니 금방 연못이 넓어졌다.

대충 원하는 넓이가 되자 삽질을 마치고 바닥에 방수포를 깔았다.

연못의 물이 새지 않게끔 꼼꼼히 방수포를 깔고, 그 위에 플랑크톤의 먹이가 듬뿍 들어간 황토를 덮었다.

최대한 개울의 자연환경과 비슷하게 만들어 민물 새우가 스트레스 없이 잘 자라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수생식물이 충분히 자랄 수 있을 만큼 두툼하게 흙을 깔고, 연못의 벽에는 자연석을 쌓았다.

처음 연못을 만들 때는 힘이 없어 작은 돌로 벽을 만들어야 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몸만 한 자연석을 주워 계단식으로 차곡차곡 쌓았다.

자연석의 틈을 흙으로 대충 메꾸고 나니 아름다운 연못이 만들어졌다.

물길을 다시 연못으로 돌려 물을 받았다.

연못이 제법 커서 물을 채우려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 시간 동안 경일은 개울로 가서 수생식물을 채집했다.

민물 새우는 수초가 있는 곳을 좋아했다.

수초가 어느 정도 형성이 돼 줘야 민물 새우의 먹이인 플랑크톤도 잘 살 수 있었다.

개울의 수초를 일일이 옮겨 심어 주자 개울과 거의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경일은 옮겨 놓은 민물 새우를 새로 만든 넓은 연못에 넣었다.

“에고, 이거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이 정도 양이면 며칠 쓰면 없겠는걸.”

경일은 개울에서 온종일 민물 새우를 잡아다 연못에 넣었다.

“잘 커라, 새우들아.”

민물 새우 연못의 확장이 끝나자 물고기가 지낼 연못의 확장에 들어갔다.

이미 한 번 해 본 작업이라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두 배 정도 확장한 연못에 민물 새우 연못과 같이 개울과 비슷한 자연환경을 꾸며 주었다.

애초에 민물 새우 연못보다 훨씬 크게 만든 연못이라 두 배로 확장하니 그 크기가 제법 컸다.

경일은 개울에 놓아 둔 통발에 있는 물고기들을 연못으로 옮겼다.

맑은 물속에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집에서 물고기를 기르는구나!”

알차게 보낸 또 한 번의 하루가 지나갔다.

* * *

대복 길드의 길드장실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 새끼들아, 사람 한 명 찾아오는 것도 못 하냐? 그 새끼가 암시장에 나타났다고 연락까지 받았다면서. 그동안 그 새끼 잡으려고 내가 얼마나 신경 썼는데,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

대복 길드 길드장 손필견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미스릴을 팔고 돌아가는 경일을 은밀히 쫓고 있던 세력은 신화 길드와 앙숙인 대복 길드였다.

경일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손필견이 그의 뒤를 쫓은 지 몇 달이 지나고 있었다.

손필견이 경일의 존재를 눈치챈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무기의 마나 친화력이 떨어진 걸 느꼈다.

무기를 바꿔 줄 때가 온 것이었다.

새로운 무기를 제작하기 위해 길드가 관리하는 암시장에 오래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명색이 길드장인 그가 아무 재료로 무기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라, 괜찮은 재료를 수소문했다.

그때,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게 경일이 판 미스릴이었다.

손필견은 경일이 판 미스릴이 대단한 상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미스릴이라고 해도 모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같은 미스릴이라도 순도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순도는 마나 친화력에 영향을 끼쳤다.

약간의 불순물은 도로에 깔린 방지 턱과 같은 역할을 했다.

중간중간 포함된 불순물로 인해 마나의 흐름이 방해를 받는 것이다.

레벨이 높은 헌터일수록 감각은 더 예민했고, 이런 부분을 더 크게 다가왔다.

기분 좋게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데, 생각도 못 한 잡음이 들릴 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100%의 순도를 가진 미스릴은 그만큼 귀할 수밖에 없었다.

경일이 판 미스릴의 값어치를 알아본 손필견은 곧바로 구매했다.

그가 이번에 산 미스릴은 1.5㎏ 정도로, 검을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손필견이 검을 만들려고 했으면 아마 경일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무기인 창을 만들려면 매우 부족한 양이었다.

창대까지 모두 통으로 미스릴로 제작할 생각이어서 최소 10㎏ 이상의 미스릴이 필요했다.

그의 위치상 미스릴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루도 되지 않아 그가 필요한 양만큼의 미스릴을 모을 수는 있었지만, 손필견은 사지 않았다.

경일이 판 미스릴에 본 터라 순도가 떨어지는 미스릴이 그의 눈에 차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암시장뿐만 아니라 다른 암시장도 수소문했다.

한 달 정도의 노력 끝에 그는 12㎏의 미스릴을 모두 모을 수 있었다.

처음 자신이 산 미스릴과 정확히 같은 순도의 미스릴이었다.

최상급의 미스릴을 구매하게 돼서 기분이 좋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이거 분명 같은 던전에서 나온 미스릴 같은데? 왜 이렇게 중량을 쪼개 시간을 두고 팔았지? 그것도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군데에서. 이거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이 원한 물건을 구한 것만으로 만족했을 테지만, 손필견은 확실히 감이 뛰어났다.

‘보통 저 정도 수준의 미스릴이라면, 하급 던전에서 나온 것은 아닐 거야. 제법 수준 있는 길드의 공략대가 캔 게 틀림없을 텐데. 그 정도의 길드라면 이런 최고의 물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어. 자기들 쓰기에도 모자를 건데, 이걸 팔았다라… 이건 말이 안 돼. 그렇다면 길드가 채취한 게 아니란 건데… 더군다나 조금씩 전부 다른 상점에 판 이유가 뭐지? 그리고 내가 구한 게 전부가 아닐 확률이 높아. 이 정도 물건이면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헌터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샀을 거야. 그런데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내가 원하는 만큼의 미스릴을 구했다라… 이거, 암시장에 얼마나 많은 양의 미스릴이 풀린 거지?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던가? 아니, 한 번도 없었어. 당연히 있을 수가 없지. 이 정도의 미스릴을 가진 세력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이건 꼭 미스릴을 판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고 하는 행동 같잖아. 그렇다는 건, 미스릴을 판 사람은 분명 한 사람일 거야. 그래야 앞뒤가 맞아떨어지잖아. 내 생각이 틀림없어. 아무래도 이거 내가 대단한 보물 지도를 주운 거 같은데?’

어마어마한 돈 냄새는 다혈질인 그를 평소와 다르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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