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누가 판 거지?
생각은 마친 손필견은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물건을 구한 상점을 일일이 다니며 판 사람을 조사했다.
몇 군데 가게가 그를 기억하고 있어 미스릴을 판 사람에 대해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예상과 달리 판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 판 사람이 모두 다르다고? 이 많은 사람이 같은 던전에서 이걸 모두 캤다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래, 가능할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일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는 거잖아.’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지만, 각자 다른 사람이 팔았다면 더 이상 미스릴을 판 사람을 쫓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머릿속에 박힌 의문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잊으려 할수록 더 생각났고, 자려고 할 때마다 생각이 났다.
뭔가 냄새가 나는데 실체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의문은 새로운 의문을 만들어 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은 더 커져만 갔다.
결국 그는 암시장을 다시 찾았다.
혹시 자신이 놓친 게 있지 않을까 해서 더욱 자세하게, 집중해서 판매한 사람에 관해 물었다.
그러다 그는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다.
20대 후반의 180㎝ 정도의 키를 가진 같은 말투를 사용하는 남자라는 것을.
분명 사람은 다른데, 공통된 게 너무 많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성별, 나이, 키가 같다는 점이었다.
거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말투.
‘이상한 게 너무 많아. 각자 다른 사람이 미스릴을 팔러 왔는데 그들의 키와 나이, 성별까지 같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설마? 그래 이걸 가능하게 하는 건 딱 하나뿐이야. 처음 내 생각대로 한 사람이 판 게 틀림없어. 변장하고 팔러 다닌 거라면 이 모든 것이 설명돼.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그는 결국 고순도의 미스릴을 판 사람이 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냈다.
의문이 풀리자 답답했던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거처럼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진한 돈 냄새.
‘한 사람이 이만한 물량을 어떻게 구했지? 그 방법은 분명 하나밖에 없어. 이 새끼는 분명 공개되지 않은 던전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것도 고순도의 미스릴이 생산되는 던전을. 그런데 굳이 왜 변장을 하고 물건을 팔러 다녔을까?’
이 질문의 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이 노출될까 봐 숨긴 거야. 노출을 숨긴 이유? 그건 한 가지밖에 없어. 이 새끼는 자신이 이 물건을 지킬 힘이 없다는 것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거지. 그렇다는 건, 이건 먼저 줍는 놈이 임자라는 거잖아. 이놈만 잡으면 난 돈방석에 앉을 수 있어. 씨발, 이건 하늘이 내려 주신 기회야. 내 인생이 드디어 활짝 피는구나. 개새끼들아 기다려라. 조만간 내 눈에 알짱거리던 것들을 싹 정리해 주마. 특히 곽마권, 넌 뒤졌다. 푸하하하하하!’
손필견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날부터 경일을 잡기 위해 길드의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 * *
신화 길드의 5팀장의 부인은 오늘도 남편의 내조를 위해 노력 중이었다.
길드장이 대단한 미식가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고, 그녀는 그가 먹어 보지 못한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헤맸다.
그런 그녀의 노력이 통했는지 동네 분식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동네 분식으로 달려갔다.
가격이 너무 싸서 의심되긴 했지만, 분식점 앞에 선 긴 줄을 보자 일단 안심이 되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갔지만, 막상 음식을 먹어 본 후에는 실망을 하고 돌아온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분식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머, 잘생겼네.’
5팀장의 부인은 경일의 잘생긴 얼굴에 관심이 갔다.
예쁘게 생긴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문을 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음식을 만드는 경일의 모습을 훔쳐봤다.
‘이상하게 낯이 익은데? 내가 저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저 정도 얼굴이면 내가 절대 잊을 리가 없는데…….’
어릴 때부터 남자 아이돌의 사생팬이던 5팀장의 부인은 잘생긴 남자의 얼굴은 절대 잊지 않았다.
그녀는 왠지 낯이 익은 듯한 경일의 얼굴을 계속해서 훔쳐봤다.
오픈 주방이다 보니 경일의 모든 행동을 다 볼 수 있었다.
감각이 예민해진 경일은 이미 한 여성이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음식 포장을 주문한 손님들이 기다리기 지루한지 요리를 만드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이들이 많아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5팀장 부인의 눈빛이 남들보다 끈적해서 조금 불편한 정도였다.
그녀는 이미 경일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경일이 파는 던전 사과를 사 간 주인공이었다.
경일을 알아보지 못한 건 시간이 지난 탓도 있지만, 그녀의 기억 속의 모습이랑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본 모습은 모두 경일이 변장을 한 모습이라 본래의 모습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사과를 남편이 들고 가 신화 길드장 곽마권에게 대접했고, 곽마권은 이것이 던전 사과라는 것을 눈치채고 경일을 찾았다.
5팀장 부인은 낯이 익은 경일을 모습을 의아해하며 오늘의 안주를 포장해 왔다.
이왕 간 김에 여러 개를 포장하려 했지만, 일인당 하나만 가능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오늘의 안주만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포장해 온 건 쏘가리 매운탕이었다.
포장 용기의 뚜껑을 여니 큼직한 쏘가리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이거 생각보다 더 괜찮잖아. 이런 걸 이만 원에 판다고? 사장이 멍청하거나, 천사거나 둘 중 하나겠네. 이 비주얼만 봐도 두 시간을 기다린 게 아깝지가 않아.”
하지만 그녀는 쏘가리 매운탕의 대단한 비주얼에 오히려 맛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었다.
많은 음식을 사러 다닌 덕에 그녀도 음식을 보는 눈이 생겼다.
쏘가리 매운탕은 지금까지 본 음식 중에 최강의 가성비였다.
가성비가 좋은데 맛까지 좋은 음식은 아무래도 드물었다.
그녀가 찾는 건 입맛 까다로운 길드장을 만족시킬 음식이라 기대감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큰 냄비에 매운탕을 옮기고 5분 정도 데웠다.
부엌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 찼다.
“이게 무슨 냄새야?”
마침 퇴근을 하고 들어온 5팀장이 코를 킁킁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왔어요?”
“우와, 이거 죽이는데? 이 녀석 되게 튼실해 보이네.”
5팀장은 냄비 안에 끓고 있는 쏘가리를 보고 살짝 놀랐다.
“보기에는 끝내주는데. 맛은 어때?”
“나도 아직 안 먹어 봤어. 자기 오면 같이 먹으려고.”
“그래? 그럼 얼른 밥 먹자.”
“일단 씻고 와. 옷도 갈아입고.”
“먹고 씻으면 되지. 매운탕도 다 끓은 거 같은데 그냥 먹자.”
“그럼 손이라도 씻고 와.”
“알았어.”
5팀장이 손을 씻는 동안 그녀는 밥상을 차렸다.
“한 번 먹어 봐. 소문 듣고 내가 산동네까지 갔잖아. 두 시간이나 기다려서 사 온 거야.”
“산동네? 그렇게 못사는 동네에서 이런 음식을 팔아? 그 동네 사람들이 사 먹기에는 너무 비싸 보이는데?”
“자기야, 놀라지 마. 이거 이만 원이야, 이만 원.”
“뭐? 이게 이만 원짜리라고? 이거 먹어도 되는 거야? 상한 재료로 만든 거 아냐?”
5팀장은 매운탕 국물을 뜨려던 숟가락을 멈춰 세웠다.
“아니야. 거기가 오픈 주방이라 만드는 게 다 보이거든. 주방도 깨끗하고, 들어간 채소랑 생선도 되게 싱싱하더라고. 그리고 아무리 싸도 상한 걸 살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줄을 서겠어?”
“그래?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
5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매운탕 국물을 입에 넣었다.
“허억!”
그의 눈이 동그란 수준을 넘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왜? 자기야, 맛없어? 진짜 상한 거야?”
남편의 과한 반응에 그녀는 안 좋던 예감이 적중한 듯해서 마음이 상했다.
“이게… 그게… 말이지…….”
5팀장은 입을 열어 맛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적당한 단어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미안해. 하긴 싼 게 비지떡인데. 내 실수야. 그 가격에 맛까지 좋길 바라는 게 어떻게 보면 도둑놈 심보지. 그 동네가 워낙 못사는 동네라 양만 보고 사람들이 줄을 섰나 봐. 솔직히 맛이 없다고 해도 들어간 재료에 비하면 싼 건 사실이지. 그래도 재료는 싱싱한 거 쓰니까 내가 양념을 추가해서 다시 끓여 줄게.”
그녀가 미안해하며 쏘가리 매운탕이 든 냄비를 잡았다.
“스톱! 그 손 놔. 어디 요리도 못하는 게 감히 어디에다 손을 대려고 그래. 내가 너무 맛있어서 순간 정신이 나간 거야. 당신도 한 번 먹어 봐. 그럼 내 행동이 이해가 될 거야.”
“뭐? 이게 그렇게도 맛있다고?”
5팀장 부인은 남편의 급발진을 미심쩍어하며 쏘가리의 살을 적당히 떼어 국물과 함께 입에 넣었다.
“하아~”
맛을 본 순간 온몸의 힘이 풀려 버렸다.
이건 한마디로 최고였다.
지금까지 그녀가 먹어 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
국물도 국물이지만, 쏘가리란 생선이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라는 사실을 지금 안 것이 너무 억울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더 자주 먹었을 텐데.
5팀장과 그의 아내는 그 뒤로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저 매운탕이 냄비 바닥이 보이도록 빡빡 긁어 먹었고, 그날 밤 그들은 오래간만에 한몸이 되었다.
3일 뒤, 신화 길드 곽마권의 책상 위에 쏘가리 매운탕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뭐야?”
“5팀장님이 길드장님 드시라고 가지고 온 겁니다.”
“그래? 알았어.”
곽마권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5팀장이 자신에게 아부한다고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남들은 비싼 선물을 하는데 비해 5팀장의 선물은 초라했지만, 그의 정성이 갸륵해 귀엽게 보고 있었다.
던전 사과를 가지고 온 것도 그였고.
곽마권은 갑자기 던전 사과를 생각나자 속이 쓰려 왔다.
길드를 안정시킨 뒤로 많은 돈을 들여 시장을 수색하고 있으나, 아직 성과가 없었다.
들인 시간과 노력, 돈에 비해 성과가 없으니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너무 늦었다.
이미 올라탄 폭주 기관차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달릴 수밖에 없었다.
5팀장 부인이 사과 장수를 찾았다는 보고를 받고도 그를 놓쳤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졌다.
한 방에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줄 엄청난 기회였는데…….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류를 읽었다.
급하게 결재할 서류가 여러 개 있었다.
그런 그의 집중력을 계속 깨뜨리는 게 있었다.
그건 냄새였다.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5팀장이 보낸 음식에서 나는 냄새가 계속해서 그의 식욕을 자극시켰다.
까만 비닐봉지가 단단히 묶여 냄새가 새어 나올 틈이 없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는 점점 진해졌다.
정확히는 냄새가 진해진 게 아니라 곽마권이 냄새에 점점 끌려가고 있었다.
‘냄새가 왜 이리 좋은 거지? 일을 끝내고 맛이나 볼까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는걸.’
곽마권은 비닐봉지를 열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쏘가리 매운탕이 자신이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길드장실을 냄새로 가득 채워 버린 것이다.
“오~ 이건 냄새가 제대로인데? 이거, 오래간만에 입맛이 당기는걸.”
그는 데워서 먹을까 고민을 하다 그냥 먹기로 했다.
냄새가 너무 좋아 그동안 기다리는 것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봉된 숟가락으로 국물을 입안에 넣는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근래에 먹은 음식 중 가장 충격적인 맛이었다.
“어라, 이거 뭐지? 끝내주게 맛있잖아!”
미각 스킬을 가지고 있는 곽마권은 누구보다 쏘가리 매운탕의 진정한 맛을 알아봤다.
그릇 중간에 실한 쏘가리 한 마리가 통째로 누워 있었다.
쏘가리의 몸통 살에 숟가락을 찔러 넣자, 탄력이 넘치는 쏘가리 살이 순간 곽마권의 숟가락을 밀어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